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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그리고 미국 생활 이야기

고유가 시대, 미국 휘발유 가격은 얼마일까

제가 1990년 초반에 한국에서 운전을 시작했을 때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었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보통 일주일에 한번 정도 기름을 넣었는데 게이지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 왠지 마음이 불안해져서 꼭 주유소에 가야  했습니다. 당시 한번 주유로 보통 2만원어치 정도 기름을 넣었고 기름 값은 리터당 450원정도로 기억이 납니다. 생각해보면 국내에도 이런 저유가(?)의 시대가 있었나봅니다. 하지만 당시의 전반적인 소득수준과 소비자 물가를 감안하면 실제로 싼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3년 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왔을 때 갤런당 일반 등급을 기준으로 휘발유 값이 2달러대였습니다. 처음 미국에 오면 남들도 그렇다고 하던데 무엇을 보든지 환율을 계산해서 물건 값을 한국과 비교해보게 됩니다. 갤런당 달러를 리터당 원화 가치로 열심히 계산을 해보니 대충 리터당 750원정도 되던데 당시 한국에서 1500백 원 조금 못되는 휘발유 가격을 생각하면 거의 반값이었습니다. 이렇게 싼 휘발유를 넣을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은 휘발유 값이 정말 많이 싼 줄 알았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어서 약간 실망도 했었습니다.

수직상승 중인 미국의 휘발유 가격

미국은 주마다 휘발유 값이 차이가 꽤 납니다. 제가 사는 뉴욕의 경우 갤런당 4불을 돌파했는데 이제 4.5불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리터당으로 계산해서(편의상 1달러당 1000원으로 계산해서) 이제 1000원을 확실히 넘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2000원을 향해서 가고 있는 한국의 휘발유 값을 생각하면 꿈과 같은 가격이지만 미국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아주 견디기 힘든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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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은 메모리얼데이(한국의 현충일) 연휴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고유가의 압박으로 해마다 즐기던 자동차 여행을 포기했다는 뉴스가 각종 매체에 등장했었습니다. 또한 뉴욕의 경우 출퇴근을 오토바이나 자전거로 하기로 결심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했었고요. 원래가 레저용으로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이 꽤 되는 미국이지만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는데 이제 더 많이 자전거족을 보게 될 것 같습니다.

고유가의 여파는 미국 자동차 시장에도 더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도요타의 프리우스와 같은 고연비의 하이브리드자동차는 없어서 못 팔고 중대형 SUV는 판매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포드의 경우 올 들어 SUV 생산을 40%나 감축했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어느 포드 자동차 딜러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포드 자동차를 사면 1000달러어치(100만원 상당)의 기름을 주겠다고 광고를 하고 있더군요.   

여담인데 곧 한국에도 상륙하게 되는 도요타 프리우스의 연비는 그림에서 보듯이 시내주행 연비가 고속도로 주행 연비보다 좋습니다. 갤런당 48마일을 달린다고 하니까 시내 주행 시 리터당 20km 정도를 달리는 셈입니다. 현대차 중에서 그나마 연비가 가장 좋다는 현대 엑센트(한국명 베르나)의 공식 시내 주행 연비가 11.3km니까(미국 기준) 하이브리드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최근 현대 자동차의 사장의 말을 인용한 미국 언론의 보도를 보니까 현대에서 도요타 프리우스보다 앞선 기술의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2010년 미국에서 시판할 것이라고 했다는데 어느 정도의 연비를 보일지 자못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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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오토에 나온 도요타 프리우스의 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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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오토에 나온 현대 엑센트의 연비


얼마 전에 1997년에 미국에 이민 오신 한국인 한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그러시는데 당시에는 미국에서 휘발유 값이 가장 비싸다는 뉴욕지역 마저도 휘발유 값이 갤런당 1달러 미만이었다고 합니다. 대개 89센트나 95센트 하는 수준이었는데 그마저도 휘발유 값이 조금이라도 싼 곳에 가서 넣으려고 노력했다고 하시더군요. 갤런당 90센트라면 리터당 230원 수준입니다. 정말 기름 값이 물 값보다 싸다는 말이 확실히 실감이 났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미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들어왔던 물보다 싼 기름의 신화는 이때는 분명히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과거와는 다른 미국인들의 고유가에 대한 인식

그래서 호기심이 생겨서 미국의 휘발유 값 변동 추이를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상당히 많은 수의 미국 정부, 비정부 기관에서 휘발유 가격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아래 그림을 보시면 미국인들이 갤런당 3.5달러에 육박하는 고유가를 겪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더군요. 27년 전인 1981년 이란 이라크 전쟁 당시에 미국인들은 이미 갤런당 3.34달러의 고유가를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미국인들의 고유가를 대하는 태도는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나본 미국 친구들의 말로는 당시에는 전쟁이 끝나고 고유가가 지나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희망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현재의 고유가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이나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등 산유국의 정치적 불안과 같은 국지적인 요인에도 기인하지만 전반적으로 산유국들의 원유 생산 능력이 거의 정점에 다다른 데다가 중국, 인도 등의 경제적 부흥으로 원유 소비가 늘어난 것이 원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고유가가 앞으로 점차 해소되기는커녕 점차 더욱더 악화될 것이라는 것을 미국인들이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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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가 추세와 미국의 에너지 정책을 비판하는 언급이 보인다


저는 지난 주말 병원 일로 한국에 방문하고 있습니다. 거의 2000원에 다다른 주유소의 유가 공지 팻말을 보고 정말 살기 팍팍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여러 가지 사정상 자동차가 필요하게 되어 렌트를 하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매제에게서 자동차를 공짜로 빌려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제가 보통은 자동차로 출퇴근을 했는데 고유가 덕분에 얼마 전부터 자전거로 출퇴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자전거로 통근을 하는 경우 인도와 차도를 넘나들어야 하는데 자전거의 안전이 참 걱정이 되던데 이런 점만 빼면 상당히 좋은 점이 많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한국의 직장인들

매제의 말로는 자전거로 직장까지 45분정도 걸리는데 왕복 한 시간 반 동안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이후로 체중도 많이 줄었고 느림의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했습니다. 또한 매제의 직장 동료들에도 이런 자전거 타기 붐이 일어서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통근에 동참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기업의 과장으로써 경제적 형편이 그리 나쁘지 않은 가정에서도 고유가의 압박을 느낄 정도면 서민들에게는 정말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휘발유보다 비싸져버린 경유가로 인해 블로그 스피어에서도 난리가 났더군요.

한참 전에 공부를 하다가 본 흡연에 관한 논문이 기억이 납니다. 미국인지 호주인지 어떤 대학병원 연구팀이 흡연율을 낮추는 변수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 흡연에 대한 광고를 금지한다던가 금연에 대한 교육을 대대적으로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옵션과 비교한 결과 흡연율을 낮추는 최고의 방법은 담배의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가지고 연구할 것이 뭐가 있는가 싶지만 의학을 하는 입장에서는 직관적으로 당연해도 연구를 통한 증거가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추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론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렇게 쌓인 자료를 가지고 정부 등에서는 정책 수립의 근거로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증거가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휘발유 가격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난 이유는 담배 소비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담배가격 인상이듯이 휘발유 소비를 줄이는 방법도 그 어떤 근검절약 캠페인을 벌이는 것보다도 가격을 올려서 사용을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정부에서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실제로 각종 뉴스를 통해서 보면 휘발유 세금을 내리면 휘발유 소비를 부추긴다는 점 때문에 휘발유 세금을 내릴 계획이 없다고 정부 당국자들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초고유가 시대에 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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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이런 시절은 이제 지나간것 같다

휘발유 가격이 비교적 낮은 미국에서도 이제는 고유가로 못 살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일부에서는 미국 정부가 대체 에너지 개발에 대한 투자에 너무 인색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에 얼마 전 한국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으로 유명한 전남 진도군의 울돌목 해상에 세계 최대 조류 발전소 건설이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또한 조류를 이용한 것과는 다른 파도의 힘을 이용한 발전소라든가 태양전지, 풍력 발전소 등이 계획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오래간만에 듣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 바라는 것은 다가오는 초고유가 시대에 대비해서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도 좋고 유가관리로 휘발유 소비를 억제하는 것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겠지만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편하고 안전하게 자전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시 구조를 바꿔준다든지 어차피 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경차에 대한 혜택을 대폭 늘려주어서 경차 소비를 더 촉진해주는 등의 정책적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년의 경우 제가 사는 뉴욕 주의 거주자의 경우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각종 하이브리드 자동차 지원책에 따르면 도요타 프리우스를 구입한다면 연방세로 300만 원가량의 세제 혜택을 받고 우리나라의 버스전용차로에 해당하는 HOV 차선을 달릴 수 있는 자격이 생기고 뉴욕 주 법에 의해 각종 혜택이 540만원에 달하게 됩니다. 미국의 두 번째로 큰 은행인 뱅크어브아메리카의 경우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사는 직원에게 300만 원가량의 현금을 준다고도 합니다. (참고로 미국 내 프리우스의 가격은 2300만 원 정도입니다.)

비록 우리나라에 아직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시판되고 있지는 않지만 경차에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한다면 국가 전체적으로 상당한 이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미 경차에 많은 혜택이 부여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작년 말 기준 6.4%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경차 보급률은 제 생각으로는 이탈리아의 50%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본의 26%까지는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가오는 초고유가 시대에 대비한 한국과 미국의 정부와 국민들의 노력이 점점 더해가는 시점입니다. 이런 종류의 경쟁이라면 한국도 그 어느 나라에 지지 않도록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와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