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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그리고 미국 생활 이야기

미국 변호사와 한국 의사

영화화되어 인기를 끌었던 ‘펠리컨 브리프’, ‘타임투킬’, ‘레인메이커’ 등의 소설을 쓴 존 그리샴의 초기작인 ‘의뢰인’을 예전에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내용 중에 한 소년이 마피아 변호사의 자살을 목격하게 되고 FBI로부터 조사를 받게 되는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변호비로 소년은 단돈 1달러를 내놓는데 아무리 별로 성공적이지 못한 변호사 생활을 지내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런 제안을 받아들인 이 변호사 아줌마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소년의 처지가 딱해보였는지 아니면 소년의 용기가 가상하다고 생각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단지 호기심 때문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하여간 흔치 않은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송을 부추기는 미국 변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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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도 영화화되었었다

예전에 텍사스 주 휴스턴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머물었던 호텔은 미국의 최대의 병원중의 하나인 텍사스 메디컬 센터 주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호텔보다도 호텔방에서 본 케이블 티브이의 광고 하나가 기억이 납니다. 어떤 변호사 그룹이 등장해서 의료 과오 소송을 부추기는 내용인데 상담도 무료고, 소송에서 지면 변호사비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변호사와 의사로 구성된 최상의 팀이 당신을 도울 것이라고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병원 입원료가 호텔비보다 비싸기 때문에 그 호텔에는 병원에 통원하면서 치료를 받는 많은 환자가 머물고 있었는데 이런 광고를 보면 정말 소송을 하고 싶어지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미국에서 텔레비전을 보면 가끔 제약회사에 집단 소송을 걸기위해 약물의 부작용을 경험한 환자를 모집하는 로펌들의 광고가 나옵니다. 실제 이런 사례로 바이옥스라는 소염진통제가 뇌경색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시장에서 철수한 후에 바이옥스 복용 후에 뇌경색이 생긴 사람을 모집하는 광고가 한때 많이 나왔었습니다. 또한 직장에 소송을 걸기위해 작업장에서 석면 등에 노출된 사람을 모집하는 변호사들의 광고도 종종 보는 풍경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소송들이 피해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소송할 사람을 모집하는 광고는 참 특이한 풍경인 것 같습니다.

여담인데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미국의 의료비를 끌어올리는 한 축이 미국의 민간보험회사의 지나친 이익 챙기기도 있지만 남발되는 의료과오 소송으로 인해서 의사들이 소신 진료를 하지 못하고 자꾸 방어 진료(혹은 과잉 진료)를 하게 된다는 것과 의사들이 의료 소송에 대비해서 부담하는 보험료가 또한 중요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의료사고 보험이 아직 시작단계인데 미국 의사들은 의료 소송 보장 보험에 들지 못하면 개업이든 취직이든 안 된다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특히 비교적 고소득이면서 치명적인 상황을 많이 다루는 미국 외과계열 의사들이 자신들이 열심히 일하고 번 돈을 보험회사에 다 갖다 바쳐야 한다고 불평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의사의 보험료건, 의료 소송으로 지불되는 배상금이건, 아니면 제약회사의 배상금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의료비와 약값 상승으로 직결되고 이는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부담을 가중시키게 됩니다. 미국의 경우 의료 사고의 억울한 피해자의 인권을 지키는 문제가 엉뚱하게도 보험회사와 변호사들의 배를 불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의료 과오 소송이 날로 증가하는 우리로서도 곱씹어 볼 대목입니다. 어떻게 하면 의료 과실의 피해자들이 최대의 보상을 받고, 의사는 의사대로 방어 진료의 유혹에서 벗어나 소신진료를 할 수 있을 것인지 정부와 민간의 연구가 있어야겠습니다.

사기친 융자 브로커를 혼내주려다가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가 변호사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저는 미국에 와서 집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융자 중개인의 실수(혹은 사기)로 한화 500만 원 정도의 손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하 1불당 1000원으로 표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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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반드시 제 손실을 보상받겠다고 결심을 하고 몇몇 변호사를 접촉해보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동네의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소송에 들어가기 전에 상담 자체를 명목으로 최소 시간당 20만원에서 30만원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경우 소송에 드는 비용을 500만원에서 일천만원 정도를 예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배보다 배꼽이 클 것 같은지라 소송에 대한 상담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참 부담스러웠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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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제 법률서비스 회사의 광고

그러던 작년 가을 어느 날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흥미로운 서비스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선불제 법률 서비스라는 것인데 매달 소액의 회원비를 지불하고 만약 변호사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추가 비용 없이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 말하자면 법조계의 보험 회사와 같은 곳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데 회비가 한 달에 2만4천 원 정도로 변호사 상담비용을 생각하면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싼게 비지떡이냐 아니냐

물론 싼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이 기억나기도 했지만 싼 값에 변호사와 상담을 한번 해볼 수 있는 자체가 어디냐고 생각하고 회원가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회원가입을 하자마자 변호사가 필요한 상황이 생겼습니다.  작년 여름에 가족들을 태우고 운전하고 가다가 교차로에서 정지신호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면서 경찰에게 티켓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벌금을 얼마 내라가 아니고 뉴욕의 형사 법원에 출두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회원 가입을 한 법률회사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를 했습니다만 대답은 실망스럽게도 교통 위반 티켓을 받은 날짜가 회원가입 이전이기 때문에 무료 변호 서비스에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다른 변호사를 구할 수밖에 없었고 결론적으로는 새로 구한 이 변호사는 거의 해준 것 없이 변호사비만 챙기고 저는 벌금에다 변호사비까지 이중으로 지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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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신호 위반으로 형사법정에 서다.

그래도 저는 그다지 유감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법률 서비스 가입의 원래 목적이 융자 중개인에게 사기당한(?) 500만 원가량의 돈을 찾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법률 회사쪽 변호사와 상담을 한 결과 다시 한 번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변호사 말이 제가 비록 융자 중개인과 이야기하면서 구두 약속과 이메일로 확약을 받는 과정은 있었지만(제 이메일 계좌에 이 중개인이 보낸 메일이 다 증거로 남아있는데도) 융자에 대한  조기 상환 벌금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계약서가 따로 없기 때문에 소송의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소송을 시작도 못하고 포기

시작도 하기 전에 비관적인 전망으로 제 기를 꺾는 태도에 화가 조금 났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이라도 해보자고 일단 이 융자 중개인에게 편지를 보내서 제 손실에 대한 변제를 요구하기로 했습니다. 변호사가 편지를 한 장 써서 융자 중개인에게 보내주기는 했는데 나중에 편지는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왔고 도대체 융자 중개인이 수취를 거부한 것인지 직장을 옮긴 것인지 조차도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은 제가 개인적으로 수사를 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융자 중개인의 조기 상환 벌금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별도의 계약서가 없어서 재판도 승산이 없다는 말을 이미 들은 터라 소송하려는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달 후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선불제 법률 서비스의 회원을 탈퇴하고 몇 달간 회비로 나간 150불 가량은 변호사와 전화로 5분 정도 통화한 비용을 지불한 것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물론 저렴한 비용으로(그래도 손해본 돈 보다는 적은 돈을 쓰고) 좋은 변호사를 만나 억울함을 풀려는 제 시도가 실패했다고 해서 제 개인적인 경험하나로 미국의 변호사 서비스가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라는 식으로 일반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미국에 변호사가 흔하고 흔한 것이 사실이고 변호사들이 사안에 따라서 소송을 부추기는 것도 비밀 아닌 비밀입니다. 하지만 변호사가 수적으로 많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쉽게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제가 짐작했던 것은 너무 순진한 기대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일단 변호사를 만나려면 20만원이 필요하고 500만원을 되찾기 위해 500만원을 내라는 이야기를 듣었던 저로서 드는 생각은 미국에서 큰돈이 될 수 있는 의료 소송과 제약 회사 소송을 공짜로 해줄 변호사는 넘쳐나는데 의사인 저같은 사람이 사소한 억울함을 푸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면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한 경우 도대체 뭘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문가 과잉공급, 반드시 이롭지만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로스쿨 등 변호사의 수를 늘리려는 시도가 진행 중입니다. 지금까지 소수의 법조인들이 누려온 특권과 국민들이 누리지 못했던 권리를 생각하면 변호사 수는 더 늘어야 하고 변호사 사무실의 문턱은 더 낮아져야 합니다. 하지만 변호사 숫자가 늘어나면 자동적으로 국민들의 권리도 더 신장되고 변호사에 대한 접근이 쉬워질 것으로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호사도 하나의 직업이고 개인의 이윤 추구 자체를 막을 수는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변호사가 많아져도 돈이 되는 분야에만 집중될 수 있고 때로는 특정 분야에서만 불필요한 소송이 남발되는 반면에 서민들의 법률적 권리의 보호는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기게 됩니다.

법조계뿐이 아니고 의료계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전두환 정권 이후에 새로 늘어난 의사의 숫자가 해방 후 배출되어온 의사수의 다섯 배나 늘었지만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흉부외과, 일반외과는 전공의가 부족해서 앞으로 큰 수술 한번 받으려면 의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있는 반면에 미용과 관련된 성형외과, 피부과 전공 지원자는 넘쳐나는 현상과도 맥이 닿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에게 법률이든 의료든 특정 분야의 전문 서비스의 질을 올리고 접근을 쉽게 한다는 것은 단지 그 분야의 전문인의 숫자만 손쉽게 늘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때로는 공급의 증가가 비용의 증가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교훈이 사회 각 분야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의 정책 결정의 목표가 국민들의 실질적인 편의와 삶의 질 개선이 되어야지 눈에 보이는 실적이나 수치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