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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그리고 미국 생활 이야기

뉴욕에서 도난당했던 자동차를 찾았어요

지난번 포스트에 뉴욕에서 제가 차를 도난당한 이야기는 이미 올렸습니다만 혹시 사건의 전모를 모르실 분을 위해 정리를 간략하게 해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지난 12월 29일 토요일에 만 하루 동안의 당직 근무를 위해서 병원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근무를 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퇴근 직전 당직실에 둔 가방에서 열쇠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주차장에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차가 없어졌더군요. 평소에는 가방에서 열쇠와 지갑을 꺼내서 소지하고 다니는데 뭐가 씌웠는지 누가 열쇠 따위를 가져가겠어 하는 배짱으로 열쇠를 챙기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아마 누군가 돈이나 뭔가 귀중품을 훔치러 들어왔다가 그나마 자동차 열쇠가 보이니까 일단 가지고 나갔다가 리모컨을 이용해서 차를 찾아서 훔쳐간 것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보험회사에 신고하고 각종 복잡한 서류작업과 정서적 우울증이 겹쳐서 힘들게 2주일을 보냈습니다.

차가 없어진지 2주일이 지난 토요일(1월 12일) 새벽이었습니다. 누가 5시 20분경 제 호출기(일명 삐삐) 번호로 호출을 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정신없는 간호사가 제가 당직인줄 알고 병원에서 호출을 했겠지 하고 무시하며 애써 다시 잠이 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호출기가 다시 울려댔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뭔가 전화해서 혼내 주리라 다짐하며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상대편에서 들리는 소리가 “병원입니다”가 아닌 “경찰서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아무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왜 경찰서에서 나를 찾을까. 그것도 집 전화도 아니고 병원에서 쓰는 호출기를 통해서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전화로 나를 호출한 사람을 부탁하니 어떤 남자 경관이 전화를 받더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마치 머리를 번개로 맞는 듯 한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통화는 미국이니까 영어로 했지만 번역을 하면.(경상도인지 전라도인지 사투리가 좀 섞였는데 스패니쉬 액센트의 영어와 한국말 액센트의 영어가 만났으니 이렇게 번역을 해야 맞을 듯 합니다.)

“고수민씨 맞지요?”
“맞는데예”
“차 찾아가이소”
“무신 소립니꺼?”
“범인이 잡혔십니더”
“뭐라고라, 증말입니꺼?”
“핑생 속아만 살았십니꺼. 퍼뜩 오이소. 차는 멀쩡하다 아입니까”
“참 잘됐네예. 알겠십니더. 어딥니꺼?”
“XX 지구대인데예, 와서 로드리게즈 순경을 찾으이소.”
“알겠심더, 참말로 감사하네예”

전화를 끊고 한참을 잠도 안 깬 머리고 멍하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통계상 도난 차량의 50%는 찾는다는 이야기를 보험회사 조사관에게서도 들었고 경찰에게서도 들었지만 대개 완파된 채로 발견된다는 이야기를 역시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차가 멀쩡히 돌아왔다는 소식은 도저히 쉽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빨리 차를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에 서둘러서 집을 나섰습니다. 얼마 전에 바가지요금을 쓰고 렌트한 차를 몰고 경찰서에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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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나의 캠리, 세차를 해서인지 새 차같다


그런데 경찰서 앞마당에 웬 낯이 익은 차 한데가 저를 잘 모른다는 듯이 멀뚱멀뚱 눈을 깜빡이며 서있더군요. 바로 저의 애마 캠리였습니다. ‘아. 나의 캠리가 드디어 돌아왔구나. 몸도 별로 상하지 않고 멀쩡한 모습으로...’ 하는 생각에 정말 울컥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제가 원래 이런 약한 사람이 아닌데 어찌나 속을 썩었는지 정말 이상한 기분이 북받히더군요. 물론 강한 남자답게 울지는 않았습니다.

경찰서에 들어서서 로드리게즈 순경을 찾는다고 하니 대기실에서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약 30분 이상을 기다린 것 같았습니다. 이제 차가 제 눈앞에 있으니 세상을 다 가진 듯 했고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도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차를 찾은 흥분감에 싸여 있다가 천천히 경찰서 내부를 돌아보았습니다. 특히 대기실의 벽에는 각종 현상범의 사진과 실종자의 사진들이 많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이들은 나에 비하면 정말 큰일을 겪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제 처지가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실종자들의 사진을 보니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죽었을까 살았을까 하면서 오만가지 상상이 다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만 한 해 1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갑자기 실종이 된다고 합니다. 이 들 중에는 자발적으로 어떤 이유로 도망간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라질 이유가 별로 없는 정말 실종자들입니다.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정말 이 세상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슬픈 일이 매일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여러 가지 공상을 하면서 기다리는데 근사한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백인 경관이 오더니 범인이 체포된 경위를 설명해주더군요. 체포된 범인은 사실 한사람이 아니고 남녀 커플이라고 했습니다. 이 남녀가 훔친 제 차를 타고 가다가 빨간 신호등을 어기고 사거리를 지났다고 합니다. 마침 그 지역의 순찰차에게 발각이 되어서 원래는 딱지를 떼려고 차를 세웠는데 음주운전에 무면허까지 발견이 되어 사태가 심각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도 몰랐던 미국 경찰차의 희한한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 순찰차에는 조그만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앞차의 번호판을 검색해서 자동차 등록번호를 자동으로 조회하고 만약 도난차량으로 나오면 경고를 해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호위반으로 걸린 이 운전자가 도난차량의 운전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 당일 새벽에 체포되어 저한테 까지 연락이 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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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기스가 많이 났는데 사진으로는 안보인다


정말 기가 막힌 우연이고 제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각종 서류에 서명을 하고 경관이 제 면허증들을 복사해 가져갔습니다. 자동차 열쇠를 무사히 넘겨받고 경찰서를 떠나 기전에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분명히 경찰서에 신고할 때는 집 전화와 휴대폰 번호를 남겼는데 번호를 남기지도 않은 호출기로 연락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깜빡 잊었다는 듯 제 자동차에 보관했었던 제 호출기 번호와 이름이 적힌 병원 주차 카드를 건네주더군요. 결국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당연한 경우였습니다.
차로 돌아와서 안을 살피니 차 안이 정말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고 여기저기 담뱃재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일단 세차장에 가서 25달러나 주고 세차를 하고 세차원들에게 너무 기쁜 나머지 12달러나 팁을 주었습니다.(물론 각별히 자세한 세차를 부탁하는 마음으로 말이죠) 30분도 더 걸린 세차가 끝나고 보니 더 신경을 쓴 것이라고는 겨우 대시보드와 가죽 시트에 무슨 냄새나는 왁스 같은 것을 듬뿍 뿌려서 얼룩지게 만든 것 말고는 뭘 추가로 더 해준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세차였습니다. 팁을 괜히 주었구나 후회는 되었지만 어쨌든 인생 최고의 날이니까 불만 없이 그냥 제가 마무리하기로 하고 그 세차장 구석에서 혼자서 1시간정도 이곳저곳을 박박 닦았습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개선장군처럼 집에 왔습니다. 온 식구가 기뻐했음은 물론입니다.(저와 아내는 당연히 기뻐했고 엄마와 아빠가 좋아하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2살배기는 덩달아서 좋아하고)

집에 앉아있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이더군요. 이런 불상사가 또 생길까봐.  그래서 자동차 용품 전문점에 가서 자동차 핸들(스티어링휠)에 장착하는 도난 방지장치까지 샀습니다. 그리고 기념으로 사진도 찍고요. 2008년 1월 12일은 저에게 인생 최고의 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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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달러짜리핸들 잠금 장치. 왠지 마음이 놓인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지방검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 범인들을 기소해야 하는데 제가 차를 빌려준 것이 아니고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문서에 서명해달라고 해서 팩스로 받은 문서를 서명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팩스로 받은 문서에 범인들 이름이 언급되어 있어서 혹시나 해서 병원 직원 전화번호와 이름을 대조해보니 병원직원은 아니더군요. 그래서 한 번 더 환자 이름으로 대조했더니 범인 중 여자와 정확히 매치되는 이름이 하나 나왔습니다. 이 사람이 범인일까요? 저는 아직도 모릅니다. 이 이름이 상당히 드문 이름이라서 범인일 가능성은 높지만 그냥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지요. 제가 미국 영화에서 본 한 면만 거울인 유리 앞에 서서 범인을 지목하는 그런 일은 이 경우에 해당되지 않나봅니다. 사실 저는 범인 얼굴을 본적도 없을 테니까요. 사실 범인 얼굴을 보기도 두려워서 범인을 보자는 말도 꺼내지 않았지요.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자동차 절도는 중범죄로서 약 5년 정도 징역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미국에 와서 길지 않은 시간동안 별의별 경험을 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은 가장 아팠지만 가장 좋은 결과가 온 정말 해피엔딩으로 끝난 영화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이런 작은 일로 이렇게 슬프고 힘들었는데 더 큰 어려움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또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평소에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잃는 고통은 정말 얼마나 클까요. 그것이 건강일수도 있고 어떤 재산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도 않는 것들 중에 우리는 살아가는 하루하루 그 존재자체로도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차를 잃어버리고 가장 위로로 삼은 말은 가족들이 무사한데 무슨 걱정이냐는 말이었는데 제가 경찰서에서 보았던 전단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까요. 그래서 다시 한번 제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으로 인해 감사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차를 도난당했다고 블로그에 올렸을 때 많은 분들이 오셔서 위로의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저를 걱정해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이 사건의 전모를 이렇게 보고 드리며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