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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그리고 미국 생활 이야기

가방을 공짜로 주는 미국 사람들의 상술

지난 추수감사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내년에 한국으로의 여행을 하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여행에 필요한 물건 하나를 벼르고 벼르다가 연휴 쇼핑기간을 이용해서 사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분들은 이해를 하실 것 같은데 아이들을 데리고 장거리 여행을 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달리는 차안에서 지루해하는 것도 문제고 더 어린 아이들의 경우 울고 떼쓰게 되면 여행의 기분이 다 날아갑니다. 더군다나 이 곳 뉴욕에서 한국까지 열 시간이 훨씬 넘는 비행을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위기를 극복하는 노하우를 수집한 결과 비행기 안에서 휴대용 DVD player로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우리는 2살도 안된 애기가 있는데 가장 좋아하는 것이 EBS에서 나온 ‘방귀대장 뿡뿡이’입니다. 미국도 디즈니에서 나온 유아용 DVD가 많이 있는데 이 녀석이 한국 사람의 피가 흐르는지 말도 못하는데도 한국산 프로그램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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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지난 추수감사절이 막 지나고 다음 날 새벽에 신문 낱장 광고에서 본 50불이나 할인해준다는 portable DVD player사러 Circuit City(한국의 하이마트 같은 곳)에 갔습니다. (미국은 추수감사절과 성탄절 지난 연휴가 최대의 쇼핑시즌입니다. 가장 좋은 할인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지요.) 가보니까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100미터도 더 서있더군요. 추위에 떨면서 한참 기다리다가 드디어 내 순서가 되어 입장. 제가 찾는 portable DVD player는 놀랍게도 단 한 개가 남아있더군요. 천신만고 끝에 한 개를 집어 들고 계산대에 줄을 서 있는데 어떤 젊은 중국여자가 접근하더니 뭐라고 중국말로 물어보더군요. 제가 중국 사람처럼 생겼는지 가끔 중국인들이 저에게 중국말을 거는 것이 처음은 아닌지라 태연하게 영어로 대답해줬죠. 나 중국말 못한다하니까 영어로 다시 미안하다며 제가 손에 들고 있는 portable DVD player어디서 났느냐고. 그래서 아까 마지막 하나 남은 것 내가 샀다. 그렇게 대화가 일단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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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다가 그 중국분이 다시 오더니 저에게 가방을 주는 겁니다. DVD player를 담는 전용 가방인데 저쪽에 가보니까 무료라고 쓰여 있더라 그래서 네 것도 하나 가져왔다 하면서요. 아마 자기가 물어본 질문에 답해줘서 고마웠는지 아니면 남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즐기는 성격인지 하여간 저도 너무 고맙게 잘 받았고요. 미국 같은 냉정한 자본주의 세상에 공짜로 가방을 나눠주는 것도 다 있구나 생각하면서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가방을 받았습니다. 공짜니까. 계산을 하는 순서가 되니까 이게 완전히 공짜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10불짜리 가방인데 일단 돈을 지불하고 사니까 mail-in rebate form이라는 걸 받았습니다. 일종의 영수증 비슷하게 생긴 리베이트 신청 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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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식을 가방회사에 보내면 10불짜리 수표를 가방을 산 소비자에게 보내준다는 것이죠.  공짜는 공짜이되 약간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공짜죠. 그럼 의문이 왜 처음부터 그냥 공짜로 나누어 주지 않고 돈을 받고 판 후에 다시 소비자 요청에 의해서 가방 산값을 돌려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 짐작으로는 아마 가방의 원가가 2-3불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모든 소비자들이 가방 값을 신청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죠. 돈이 액수가 적고 귀찮아서 그냥 넘어가면 결국 가방 회사는 가방을 정상가로 판매한 것이 되니까 이익이 남겠죠. 다시 말해서 더 많은 소비자가 공짜니까 더 많이 살 것이고 일단 사고 나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리베이트를 신청을 안하면 결국은 매출이 신장된다는 것이죠.

일단 집에 와서 잠시 가방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며칠 후에 리베이트 신청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일단 영수증을 복사하고 리베이트 신청서 용지에 서명을 하고 편지봉투에 넣고 우표를 붙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리베이트 용지에 신청 절차를 잘 읽어 보니까 영수증 사본과 리베이트 신청서는 물론 가방을 담았던 포장지에 있는 바코드를 오려서 보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뿔사!! 그건 이미 가방 산 날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는데.

이래서 멍청하게 필요 없는 가방 하나 산 셈이 되었지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바코드 없이 리베이트 신청 편지를 보내기는 보냈습니다. 아직 리베이트가 안 오고 있어서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양심적인 사람들이면 보내 주겠죠? 기대는 안하지만.

그리고 한 가지 더.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상술이 없을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사람들보다 훨씬 부지런해서 리베이트를 거의 100% 가까이 신청을 하면 남는 게 없어지니까 그런 게 아닐까 짐작은 해보는데 제가 상품을 만드는 입장이면 한번 시도해 볼만한 상술 같습니다. 예를 들어 20만 원짜리 휴대폰을 5만원을 할인해주는 대신 리베이트 신청을 하게 하는 거죠. 글쎄 귀찮아서 이런 물건을 아예 사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미국 와서 이래저래 돈 손해 보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