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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대한 오해와 진실

고무 다라이에서 납이 검출되었다는데

오늘 아침에 ‘고무 다라이 전 제품에서 납 검출 비상‘ 이라는 제목의 뉴스기사를 보았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종종 고무 다라이(그냥 고무 통이나 고무 대야라고 하면 의미 전달이 생생히 안 되니까 그냥 뉴스대로 다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습니다.)를 이용해서 김장 등을 하셨기 때문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이 기사를 읽지 못하신 분을 위해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소비자 시민모임이라는 단체에서 서울시내 재래시장에서 고무 다라이를 구입해서 한국 생활환경 시험 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한 결과 검사한 13개 모든 제품에서 19에서 107 ppm에 이르는 납이 검출이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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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미국에서도 잊을만하면 납 성분이 들어간 중국산 장난감을 리콜을 한다는 뉴스가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의 장난감을 고를 때면 가능하면 페인트가 칠해진 장난감은 아예 피하고 있었는데 오늘 올라온 최신 뉴스를 보니 미국의 한 학교에서 교내에 비치된 장난감을 검사해보니까 전체의 2%에 해당하는 장난감이 납에 오염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결국은 집에서만 조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납 중독이라는 병에 대해 처음 제대로 공부해 본 것은 의대에 들어와서 생화학을 배우면서 납이 축적된 경우의 신체 내 반응과 치료에 대해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내과 등 임상 각 과목을 배울 때는 납 중독에 대해 거의 들어보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보건상의 문제여서 그런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제 환자들에서 납중독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고 주위에서 이런 진단을 받을 사람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중요한 문제인 납 중독

그러다가 나중에 미국에 오게 되어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의외로 미국에서는 납중독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미국의 사정을 잘 모를 때는 막연히 선진국이라고 사소한 문제에도 호들갑을 떠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납의 위험성을 공부할 때 기억나는 사건은 아마 1978년 U.S. Consumer Product Safety Commission에서 집에서 사용되는 페인트 중에서  납 성분이 600ppm 이상 함유된 페인트 사용을 금지시킨 것이 될 것 같습니다. 미국의 집들은 건물 외벽뿐만이 아니라 내부에도 벽지를 바르는 한국과는 달리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페인트가 세월이 지나면 단단해지고 조각이 떨어져 나오게 되는데 아이들이 이 페이트 조각을 집어먹게 되고 체내에 축적된 납이 나중에 차차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 경우는 납의 농도가 상당히 높고 부작용도 크게 되는데 이런 환자는 사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그다지 많지는 않습니다. 공중보건학적으로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납 성분이 공기 중에 포함되게 되고 이 납 성분의 먼지가 호흡기를 통해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납 성분 페인트가 금지될 당시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서 혈중 납 성분이 높은 아이들의 수가 천삼백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물론 납 성분 페인트를 금지시킨 후 현격한 감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우리가 잘 아는 장난감의 사례를 비롯해서 여성 화장품이나 심지어는 미국의 상수도가 납으로 오염되었다는 보도 등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어떨까요. 미국에서 어린이 납 중독의 주요인인 납 성분 페인트가 실내에 칠해지지 않는 문화적 차이에 의해서 아마 미국만큼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위험요인은 우리가 알건 모르건 도처에 깔려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몇 년 전에 뉴스에서는 한강에서 잡힌 붕어, 잉어등을 조사해보니 기준치를 넘는 납으로 오염되어 있어서 식용으로 쓸 수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뭐가 진짜인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후에 다시 안전하다는 보도도 나왔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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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지천의 물고기 체내에 중금속 오염을 보도한 기사


납 중독의 증상은?

만약 납중독이 생겼다면 어떤 증상이 있을까요. 위에서 어린이의 경우를 자꾸 언급한 이유는 어린이들이 페이트 조각도 집어먹을 수 있고 장난감을 입에 가져가는 등의 위험요인이 어른보다 크기도 하지만 성장이 한참 진행 중이기 때문에 납으로 인한 피해에 더 취약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위장관 증상으로 복통, 변비, 설사 등이 있을 수 있는데 제가 미국 의사 면허 시험 볼 때 자꾸 배가 아픈 어린이가 있는데 검사는 정상으로 나왔다는 식으로 해서 납 중독을 알아맞히는 시험 문제까지도 나왔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유 없이 자꾸 배가 아픈 아이들이 납중독이라는 식의 연결은 곤란하지만 이런 희귀한 경우도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납 중독인 아이들은 특유의 빈혈증상이 오는데 이것도 상당히 중요한 증후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중추 신경계 장애입니다. 아이가 지능이 낮아지고, 집중력도 없고, 산만하며, 두통을 호소할 수도 있고 간질발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중추신경계 손상은 일단 발생하면 평생 가는 수가 있어서 엄청난 중요성을 가집니다.

이런 증상을 가진 아이를 피검사로 납 함량을 검사한다면 어렵지 않게 납수치를 알아볼 수는 있습니다만 오랜 기간 축적된 납이 몸속으로 들어가서 증상을 일으키고 난 후에 현재는 납의 유입이 없는 상태라면 혈중 납이 정상으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발로 몇 개월간 축적된 납을 검사하는 방법도 있는데 비용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정도면 충분

어른의 납중독 환자는 대개 직업적으로 납을 사용하는 작업장에서 노출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냥 일상적인 환경에서 납중독이 일어나서 진단받는 경우는 거의 보질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환경이 납으로 오염되었다는 뉴스를 보긴 하지만 그 때 그 때 기억했다가 피하는 정도(한강에서 잡힌 고기 안 먹기 등)의 주의만 기울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증상은 소아와 비슷하게 위장, 신장, 신경계에 증상이 오는데 일반인으로서는 별로 기억해야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고무 다라이 사건으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우리의 환경에 공기, 물, 토양 등에 아주 미량 존재하는 납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듯이 고무 다라이에 들어 있는 납의 양도 사실은 그 용기 자체에 들어있는 것이고 그 용기를 이용해서 김치 등을 담갔을 때 얼마나 녹아 나오겠느냐 하는 것이 또 다른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고무 다라이가 안전하다 혹은 아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물론 저 자신도 당분간은 고무 다라이를 이용해서 요리하기는 좀 찜찜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뜨거운 물로 다라이에서 납 성분을 억지로 우려내지 않는 한 일반적 요리로는 납 성분이 크게 빠져 나오지는 않을 것도 같습니다.

하루속히 정부기관 등에서 적절한 실험으로 식품용기에 안전한 납 함량을 공개해주고 주로 영세업자들일 것이 분명한 고무 다라이 제조상들에게도 분명한 지침이 주어져서 국민들도 안심하고 고무 다라이 업자들도 피해를 보지 않는 방향으로 사건이 마무리되기를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