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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그리고 미국 생활 이야기

미국에서 만난 좋은 이웃 이야기

오늘 우연찮게 다음 세계엔을 보다가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겪었다는 몇몇 사람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도 드러내놓고 인종차별을 하는 미국 사람을 보지는 못했으나 인종차별을 겪은 분들의 마음에 십분 공감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선입견이 있었고 미국에 오기전에 인종차별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던 사람입니다. 또한 지인들도 저에게 미국에 살면 인종차별이 좀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만 미국은 넓은 땅이며 미국에 사는 사람들의 행태도 인종차별을 한다 안한다라는 단 한 마디로 말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저도 미국에 많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며, 드러내지 않고 은근히 차별을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라는데 동의합니다.  제가 꼭 그런 경우를 겪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을 많이 만난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미국에서 만난 평범한 이웃과 동료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이런 글을 썼다고 해서 미국에 인종차별이 없다고 옹호하는 사람으로 비춰지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있듯이 미국도 마찬가지로 사람사는 곳이라는 취지로 쓴 글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

헬렌 할머니는 우리 아파트의 복도 건너편에 사는 할머니였습니다. 우리 아내 말을 빌면 정말 깨끗하고 곱게 나이가 드신 전형적인 미국 할머니였는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다른 가족이 없이 혼자 사셨었습니다. 하지만 추수감사절과 같은 미국 명절 때만 되면 텍사스 번호판을 단 BMW가 헬렌 할머니네 지정 주차공간에 주차되었었기 때문에 아마 텍사스에 사는 자녀가 이렇게 가끔 방문하는가 보다하고 짐작을 했었습니다.

이 할머니가 얼마나 우리 내외를 아껴 주었는지 만날 때마다 내가 뭐 도와줄 것 없느냐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라 하셨지만 우리 부부는 걸음도 간신히 걸으시는 저 연약한 할머니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도 부담을 드려서는 안 되겠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헬렌 할머니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자동차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미국에서이지만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도대체 어떻게 운전을 할까 신기하게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제 생각은 너무 단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실비실한 걸음으로 간신히 차까지 걸어가시는 것을 한번 본적이 있는데 차에 일단 오르시더니 정말 젊은 사람 못지않게 능숙하게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우리 내외에게 인사로 손을 흔드시며 아파트 마당을 빠져나가셨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같은 층에 사는 역시 혼자 사는 베티 할머니와 단짝으로 스포츠 센터도 다니시고 댄스교실도 함께 다니신다고 했었습니다. 우리 내외는 미국은 노인들도 이렇게 운전도 하고 독립적으로 잘 사는구나 하면서 신기해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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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할머니에게 특히 고마웠던 것은 제가 출근하고 집에 혼자 남아있는 우리 아내가 심심할까봐 우리 아내를 꼬박꼬박 시민회관의 요가 교실에도 데려가서 (비록 할머니, 할아버지가 태반인 댄스 교실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시고 한국어도 모르는 분들이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열심히 아내의 말을 통역(?)해서 이웃들에게 전달해주던 고마운 분들이었습니다. 명절 때도 그랬고 우리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선물에다가 직접 적은 축하 카드까지 써서 우리 아파트 문 앞에 걸어주셨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서 퇴원하다가 만났을 때 아기가 너무나 귀엽다고 아기를 꼭 안아주시고 아기가 아무리 울어도 자기는 귀가 어두워서 안 들리니 걱정 말고 키우라고 농담까지 하면서 윙크를 해주셨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너무 신세를 많이 진 것도 미안하고 헬렌 할머니의 마음씀씀이가 너무 감사해서 나중에 헬렌 할머니에게 정말 잘 해드리자고 다짐을 했는데 그만 뉴욕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뉴욕으로 이사 간다고 하니까 너무나 아쉬워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사를 앞둔 어느 저녁 집으로 초대해 주시고 손수 만든 쿠키와 차를 대접해 주시던 헬렌 할머니 지금도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

존은 중년의 아저씨인데 역시 혼자 살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 아파트에 이렇게 혼자 사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목소리가 너무 부드럽고 침착해서 게이일까 의심도 했지만 한 번도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본적이 없어서 증명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도 역시 너무나 친절하고 한번 만나면 미국 생활에 필요한 온갖 팁을 알려줘서 부담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한번은 제가 가벼운 접촉사고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갑자기 좌회전을 하기 위해 정지한 차를 보고 저도 역시 급정거를 했는데 뒤차가 미처 충분히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제 차에 부딪친 것입니다.

차에서 내려서 보니 뒷 범퍼가 약간 손상된 정도였는데 상대방 운전자였던 20대 초반의 키 크고 마른 빨간 머리의 이 백인 아가씨는 상당히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어쨌거나 경찰을 부르고 보험회사에 전화해서 사고를 수습하고 집에 왔는데 사고가 수습되고 제가 현장을 떠나는 것을 지나가던 존이 본 모양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주차장에 들어왔는데 어느새 존이 허겁지겁 주차를 하더니 저에게 와서 다친 데는 없냐, 아까 사고 난 것을 보고 따라왔다, 미국 법으로는 이유가 어찌되었건 뒤에서 받은 사람이 다 책임을 지게 되어있으니 너는 걱정할 것 아무 것도 없다, 나도 사고 보았으니 증인을 서줄 것이니 필요하면 연락해라, 그리고 차를 고치는 것은 어디어디가 기술이 좋고 잘 고친다 하면서 온갖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특히 고마웠던 것은 솔직히 존이 제 사고를 목격했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증인까지 서준다고 하면서 제 편을 들어 주었다는 것이 자기의 이익을 지키는 데만 능숙하고 겉보기에는 친절해도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 미국인의 속성이라고 알고 있었던 저에게는 이런 인심을 경험한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여러 번 존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신세를 졌는데 정작 떠나올 때는 마지막 인사도 못했습니다. 해가 긴 여름날 오후가 되면 가끔 반바지에 하와이풍의 셔츠를 입고 동네 풀장에 수영한다며 나가던 모습을 본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존 아저씨 올 여름도 분명히 수영하러 열심히 다닐 겁니다.

3.

니콜은 제가 처음 일하던 미국 병원의 중환자실 간호사입니다. 중부지방이라서 금발에 파란 눈의 미국인이 비교적 흔했지만 니콜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미인이었고 제 눈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전성기보다 더 낫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미인 니콜이 마음까지 어찌나 착한지 제가 당직을 설 때면 밤에 잠을 좀 자라는 의미로 밤새 생기는 사소한 일은 아침에 기상시간에 맞춰서 전화해주고 이런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다 처리했으니 알고만 있어라 라고 해주었습니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나에게만 친절한 줄 알았는데 모든 사람에게 다 잘해줘서 동료 간호사들에게 마저도 인기가 최고였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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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니콜의 이름을 모든 간호사 중에 제가 가장 먼저 알게 된 데는 약간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의사들은 보통 닥터 아무개라는 식으로 불리는데 그 외의 모든 직종은 거의 대부분 성씨가 아닌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느 간호사가 저에게 닥터코우라고(Dr. Ko를 발음을 그렇게 합니다) 부르지 않고 그냥 “‘코우~”하고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내 허락도 안 받고 ’닥터‘자를 떼고 성씨를 맘대로 부르다니 이것도 혹시 인종차별(?)이 아닌가 하고 반감이 생겨서 못 들은척하고 끝까지 버텼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를 부른 것이 아니고 “니콜”하고 니콜을 부른 것이었습니다. ’콜‘이라는 말에만 강세가 들어가다 보니 ’니‘에 해당하는 부분이 안 들렸던 것이었습니다. 하마터면 저의 속 좁은 피해망상증으로 괜히 없는 인종차별 사건을 만들 뻔 했지만 어쨌거나 니콜의 이름은 정말 쉽게 제 기억에 각인이 되었었습니다. 한 가지 지금까지도 속상한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중환자실 근무를 연달아서 몇 달 하면서 니콜과 서서히 친해졌습니다. 제가 원래 약간 낯을 가리는 편이고 금발의 미녀라니 아무리 직장 동료라도 거리가 두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이런 저런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저와 크게 다른 것이 없는 그냥 사람이었고 남들 돕는 일을 정말 웃으면서 해줄 수 있는 고운 심성의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근무를 옮겨서 다른 병동 근무를 몇 달간 하고 오랜만에 중환자실에 하루 당직으로 돌아와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쁘게 일하던 저는 중환자실 주방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니콜과 0.1초간 눈이 마주쳤습니다. 니콜은 그 빛나는 파란 눈을 반짝이며 환한 미소로 “닥터 코우, 반갑....”하고 말을 하려는데 제가 너무 바쁜 나머지 그냥 휙 지나쳤었지요. 환자 쪽으로 뛰어가면서 니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중에 이야기해야지 하고 바로 돌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아마 오랜만에 돌아와서 반갑다 잘 지냈냐 하고 인사를 하려는 것이었을 것 같은데 그 날은 그냥 그렇게 잊히고 니콜을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니콜을 마주쳤는데 얼마 전만해도 환하게 웃으며 반가워하던 니콜이 약간 사무적으로 저를 대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혹시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을 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시간이 나면 좀 물어봐야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그 후로 중환자실을 갈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뉴욕으로 병원을 옮기게 되었고 혹시 오해가 있었다면 풀어야지 하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중환자실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니콜은 비번인 듯 병원에 없었고 다른 간호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니콜의 미소를 보지 못하고 떠나온 것이 지금도 섭섭하고 허전합니다. 그 인사한번 안 받아준 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군요. 저라는 사람을 아예 기억하지도 못할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4.

린디는 제가 천사라고 이름붙인 동료 여의사입니다. 뉴욕 북부 출신인데 변호사인 남자 친구를 따라서 세인트루이스까지 왔습니다. 제가 병원에 출근한 첫날 동료들과 잡담하는 자리에서 어제 미국에 도착했는데 가구와 가전제품을 어디서 살지 걱정이라고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했는데 놀랍게도 다음날 인터넷에서 근처의 가구점, 전자제품 양판점, 식료품점, 백화점의 주소와 전화번호, 지도를 열장도 넘는 종이에 정성스럽게 출력해와서 가져다주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하라고 전화번호까지 적어주었습니다.

출근 셋째 날에는 제가 병원 가운과 청진기를 사야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어디서 사야하는지 아느냐고 묻더군요. 물론 모른다고 했더니 친절하게도 자기 차에 저를 태우고 병원에서 15분정도 거리의 워싱턴 대학병원의 구내 서점까지 데려다 주고 물건 사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미국 여자와 말해본 것도 처음이고 더군다나 한 차에 같이 타고 어딘가를 가본 것도 처음이라 혹시 이 친구가 저에게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우스운 오해를 하기도 했는데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가 기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서 제가 불쌍해서 도와준 것이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었습니다.

이 착한 린디는 윗년차와 회진할 때 윗년차 레지던트가 매일 커피를 마신다는 것을 알고는 어느 날 커피를 한잔 뽑아 와서 출근에 늦는 윗년차를 기다리는 그야말로 미국사람답지 않은 행동을 하기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린디가 환자를 대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역시 착한 심성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환자를 돕는 모습이 느껴졌고 역시 천사는 천사구나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주책없이도 수술복을 입고 있는 린디의 팔에 솜털이 보송보송 한 것을 보고 여자가 웬 털이 많으냐고 놀리기도 했는데 린디는 저를 꼬집으면서 그런 소리하지 말라고 하며 웃어주었습니다. 나중에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가 미국에서는 그런 신체적인 것에 대한 농담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알려주더군요. 나중에 린디에게 사과하니까 자기는 다 이해한다며 재미있었는데 뭘 그런 거에 마음 쓰느냐고 대범하게 넘어가 주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뉴욕으로 온다고 하니까 자기는 제가 안 갔으면 좋겠다고 하고, 또 자기가 뉴욕 출신이니까 자기 맘이라면서 못 간다고 협박도 했는데 결국 이렇게 떠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간다고 인사할 때는 네가 원하는 거면 가야지 하면서 살짝 포옹도 해주었는데 나중에 연락할게 하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안부 메일도 못 보냈습니다. 지금이라도 보낼까요?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착한 린디 지금은 결혼했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