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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그리고 미국 생활 이야기

인심 사나운 뉴요커들

뉴욕하면 세계 경제의 중심이고 브로드웨이로 대표되는 문화의 도시이고 많은 영화의 무대가 된 낭만의 도시입니다. 하지만 뉴욕에서 사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뉴욕은 미국속의 후진국이라고 불립니다. 우리끼리는 third world country라고 하는데 사실 개발도상국이나 제 3세계 국가를 약간 비하하는 듯 한 표현이라 쓰기가 꺼려지지만 뉴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만큼이나 많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뉴욕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뉴욕에서 태어나서 뉴욕에서 자란, 그러니까 뉴욕 밖의 미국이 어떤 곳인지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정말 뉴요커지만 시야가 상대적으로 좁지요. 그 외에도 다른 지방 출신이지만 학업, 직업 관계로 뉴욕에 사는 젊은 친구들도 대체적으로 뉴욕을 좋아합니다. 한마디로 즐길 것이 많고 흥미로운 것이 많으니까요.

뉴욕을 싫어하는 사람은 대개 낙천적이고 느긋한 사람, 규범과 예의를 중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뉴욕 사람들은 예의가 없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며, 지나치게 이해 타산적이라고 합니다. 또한 교통지옥에다가 공기도 나쁘고 물가는 비싸서 삶의 질이 뉴욕 이외의 지역의 미국에 비해 좋지 않은 것도 뉴욕에 대한 반감에 한몫을 합니다. 그런데 잘 들어보면 서울 사는 사람들이 서울에 대해 불평하는 것과 내용이 비슷합니다. 혹은 미국교포들이 말하는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고 미국은 재미없는 천국이란 얘기는 아마 뉴욕을 예외로 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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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리 주라는 비교적 한가한 지방에 살다가 뉴욕으로 이사 온 저에게는 뉴욕은 정말 나쁜 첫인상의 도시였습니다. 그 첫 단초를 제공한 사건이 뉴욕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 교통국 혹은 자동차 등록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의 각 주는 각각의 다른 차량 등록제도와 운전면허증을 발급합니다. 따라서 주를 넘어서 이사하면 자동차 번호판도 바뀌고 운전면허증도 재발급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등록을 일정 기한을 넘기게 되면 벌금을 물게 됩니다.

저는 이 벌금을 피하고자 뉴욕에 이사 오자마자 차량 등록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 직장 동료 등으로부터 얻은 후에 정말 힘들게 일찍 퇴근을 해서 DMV에 갔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로 DMV에 간 날은 오후 5시까지로 영업시간이 되어 있어 주차장에 차가 들어갔는데 제 시계로는 영업 종료시까지 10분이나 남았는데도 주차장 직원이 오려면 더 일찍 왔어야 한다며 늦었다고 주차장도 들여보내 주지 않아서 그냥 돌아왔습니다.

며칠 후 다시 사정이야기를 하고 간신히 낮 시간에 DMV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뉴욕의 DMV에서 미주리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번호표도 없이 50미터 정도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까. 속으로 아 이곳은 미국이 아니구나 생각하고 절망. 번호표를 나누어 주면 될 일을 그 많은 사람을 다 서있게 하는 의도는 다 뭐란 말입니까. 지쳐서 그냥 집에 돌아가면 일이 줄어들까봐 그런단 말입니까. 그 50미터 줄이 다 없어지는데 3시간이 걸렸습니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픈 그 고통의 끝에 제 순서가 왔는데 결국은 운전면허 재발급을 못 받고 집에 왔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은 차량 등록 사무만 하는 DMV이다. 운전면허를 갱신은 다른 DMV를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분노와 허탈감에 집에 귀가.

그 다음 주에 정말 정말 어렵게 근무 중에 시간을 내서 다시 한 번 그 운전면허 등록 업무를 한다는 DMV에 갔습니다. 다시 줄서서 세 시간 기다리고 제 순서. 이사 와서 뉴욕 면허를 받으려면 그 전에 살던 주의 운전면허증에 발급일이 기입되어 있어야 하는데 미주리 주는 법적으로 발급일이 필요가 없어서 유효기간만 쓰여 있고 발급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뉴욕 공무원 말이 뉴욕 면허증 발급을 못해준다. 대신 미주리 주의 DMV에 연락해서 발급 증명서를 떼오라는 거였습니다. 그 실망감과 분노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이런 정보를 도대체 어디에서 알고 대비를 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하면서 집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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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다시 방문. 그동안 미주리 주 DMV에 요청해서 서류를 받아서 갔습니다. 다행히 줄은 2시간 만에 끝났습니다. 이번의 문제는 제가 미주리에서 운전면허 갱신을 이사 오기 직전에 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뉴욕 주 법으로는 다른 주든 어디서든 운전면허를 갱신한지 6개월 이내에는 운전면허 발급이 안 된다는 겁니다. 무슨 그런 법이 다 있는지. 그래서 그 때가 2월이었는고 미주리 주 운전면허 갱신은 그 전해 10월이었는데 4월 중순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그럼 왜 진작에 안알려 주었던거야. 억장이 다시 무너졌지요.

다섯 번째 방문은 그래서 넉넉하게 5월 초까지 기다렸다가 갔습니다. 드디어 무사히 접수를 하고 집에 귀가. 이제 차량등록이 남았습니다.

여섯 번째로 차량등록만 한다는 DMV에 갔습니다. 또 지루한 기다림 끝에 순서가 왔는데 이번에는 미주리에서 구입한 제 차량의 소유자가 제 아내와 공동명의인데 왜 혼자만 왔느냐고 하면서 서류 접수를 거부하는 겁니다. 제가 제 아내는 올 사정이 안 되어 내가 대신 서류에 서명을 받아왔다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아내를 데려오라고 해서 결국 또 허사가 되었습니다. 서류에 서명이 이미 되어있는데 공무원이 왜 제 아내를 봐야한다는 말입니까.

일곱 번째로 다시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온 식구가 출동했습니다. 3시간을 기다리는데 애기는 칭얼거리고 자꾸 돌아다니려하고 주위의 인심 사나운 뉴요커들은 인상을 쓰면서 ‘왜 이런 데에 아기를 데려오는 거야?’하는 듯 한 표정이었습니다. 전 속으로 ‘누구는 애기를 데리고 오고 싶어서 데려오나?’하면서 버텼지요. 제 순서가 되니까 이번에 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때가 장장 5월말입니다. 이번에는 도대체 무엇으로 접수거부를 할까 궁금해졌습니다. 이번에는 제 아내가 서류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소위 6점서류(6 points documents)라는 것인데 쉽게 말해서 신분을 증명하는 신용카드, 의료 보험증, 운전면허증, 여권 등등의 자료를 준비하라는 겁니다. 문제는 저는 직장에서 일을 하니까 6점 서류를 맞출 수 있는데 전업 주부인 아내는 이런 것들이 없다는 것이죠. 제가 화가 나는 것은 제가 자격이 되는 서류가 다 있는데 왜 아내의 것들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 생각이고 거부는 그 쪽 맘이니까 그냥 집에 왔지요.

어덟 번째 방문때는 자동차 보험 증명서(New York State Insurance ID card)가 발급 된지 3달이 넘었다고 거부되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동차 보험 영수증인데 제가 1월에 뉴욕에 이사 와서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고 보험증명서를 받았으니까 발급 후 3 개월이 지난 상태였습니다. 물론 보험 자체는 유효기간이 안넘었지만요. 그래서 새로 보험 증명서를 받아와라. 오늘은 접수 못해준다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보험증서를 받은지 세 달이 넘은 것도 DMV에서 말도 안되는 법을 들먹이며 6개월을 기다리게 만들어 생긴 일인데 이번에는 보험 유효기간인데도 발급된지 너무 오래되었다구요? 정말 화가 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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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로 다시 방문. 그간에 보험회사에 연락해서 보험증명서를 준비. 이젠 아내도 저도 이번에 거부되면 한국가자고 하며 DMV에 들어섰습니다. 드디어 받아주더군요. 그리고 새 번호판을 가지고 집에 왔습니다.

한참 있다가 자동차 등록증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이번에는 제 이름 철자가 엉망인겁니다. DMV에서는 분명히 스펠을 또박또박 불러줬더니 무슨 일처리를 이렇게 하는지. 너무도 심신이 지쳐서 다시 DMV 갈 생각도 안하고 지금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안 것인데 처음에 간 DMV 주차장은 사실 DMV 주차장이 아닌 사설 주차장인데 입구에 DMV 주차는 여기서 하세요하고 쓰여 있습니다. 일종의 사기지요. 그리고 그 직원이 자기가 퇴근하고 싶어서 저한테 DMV 문 닫았다고 다음에 일찍 오라고 속인 겁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DMV 주차장으로 가라고 알려나주지. 진짜 DMV 주차장은 동네를 한블럭 돌아서 DMV의 반대편에 있더군요.

자동차 등록과 운전면허 갱신으로 인한 장장 6 개월의 수난으로 시작한 저의 뉴욕 생활은 그 후로도 정말 미국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인심 사나운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점차 기대는 분노로, 분노는 체념으로 바뀌면서 점차 안정을 찾게 됩니다.

서울에 온 외국인들은 서울 사람들이 예의가 없다( 지나가면서 치고 가도 사과도 안한다는 등)거나 남을 배려를 안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일겁니다. 하지만 뉴욕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마도 인구밀도가 높은 모든 대도시의 공통적인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서울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면 서울시민들의 노력이 더 요구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듯이 서울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뉴욕은 문명화, 현대화를 서울보다 100년은 앞서서 겪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법도 그렇고, 자신이 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그렇고, 자기 일처리 제대로 못하면서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도 그렇고, 애기를 데리고 온 사람에게 눈총주는 사람들도 그렇고, 뉴욕이 서울보다 나은 것이 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