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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대한 오해와 진실

최진실의 자살, 막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응급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자살 기도 환자를 보곤 했습니다. 의사로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자살이라는 것은 정말 먼 나라의 일로만 여기다가 병원에서 있다 보면 자살 시도가 상당히 흔하구나 하는 감을 갖게 됩니다.

제가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는 한번도 자살 시도자를 보거나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인턴 때 응급실 근무 경험으로는 일주일에 한 명 이상은 보았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병원에서 잘 치료를 받고 회복되어 간 사람도 있지만, 병원에 오기 전에 혹은 와서 치료 도중에 숨지는 안타까운 사례도 많이 보았습니다. 


급격히 증가하는 우리나라의 자살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아마 자살이 정말 그렇게 흔한가 하는 의문을 가지실 것 같습니다. 통계를 보니 1995년에 10만 명에 11.8명이던 자살 사망자 수가 2005년에 26.1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런 수치는 OECD국가 중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하지요. 제가 90년대 초반에 의과대학 다닐 때만해도 이런 자살률은 북유럽의 선진국에서나 흔했지, 우리나라를 포함한 개발도상국에서는 그다지 흔하지 않은 것으로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이렇게 증가하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사방이 막혀있는 아무것도 선택할 옵션이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마지막 해결의 통로로서 자살을 선택하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 자체가 이 사회가 덜 건강하다는 방증이 아닌가 싶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우리 사회가 훨씬 더 보수적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1980년대 이전)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성범죄가 드물지 않게 있었고 성폭행이라는 것이 지금은 그야 말로 성적인 폭행으로 간주되지만 당시의 규범으로는 한 사람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가장 잔인한 행위의 하나로 읽혀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은 이런 수치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이 극복하는 방법

하지만 이런 분들이 정신적으로 치료를 받는 과정을 통해서 혹은 스스로 고통을 극복하고 다시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자살 이야기를 하다 말고 성폭행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사람이 어떻게 극한적인 정신적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가 하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의과대학에서 정신과학과 심리학을 배우면서 이런 성범죄의 희생자들의 마음 속에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 자살을 생각할 만큼 극단적인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제 궁금증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반대로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심리에는 어떤 일이 있는가를 잠깐 살펴보자면(이 부분은 자살과 직접 관계는 없습니다만) 영화나 언론 등을 통해서 약간 유명해진 ‘외상후성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질환이 생기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겪었던 고통스러운 상황을 반복해서 생생하게 기억하고 그 특정 상황에 대한 악몽을 반복해서 꾸게 되고, 그 사건이 다시 일어날까 봐 항상 불안하고 우울한 상태로 지내게 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큰 변을 당하더니 실성한’ 사람처럼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집 밖에도 나가지 않고, 사람만 보면 무서워하고, 가끔 소리를 지르고 도망치며, 자다가도 일어나서 소리지르고 우는 것은 정상으로 보이기가 힘들겠지요.


이런 환자들이 궁극적으로 고통을 극복하게 되는 과정에 심리적으로 생기는 현상을 쉽게 말해서 자신이 겪었던 비극을 제 3자의 입장에서 관조해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당했던 일이지만 이젠 그런 상황을 정서적으로 매번 직접 반복해서 겪는 대신에 자신이 아닌 남이 겪는 사건을 바라보는 것처럼 고통스런 감정과 이 사건을 보는 이성적 관점이 분리되게 되면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성폭행은 인류에게 의례 있어온 범죄 행위에 불과할 뿐이고, 피해자의 잘못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니며, 생각하기에 따라서 미래의 인생을 살아갈 때 영향을 미치게 해서도 안되고 미치지 않게 할 수 도 있다는 것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신문과 뉴스를 통해서 먼 곳에서 일어난 상상도 하기 싫은 비극적인 일들을 매일 보고 듣지만, 이런 일이 스스로에게 생긴다고 가정하더라도 제 3자이기 때문에 담담하게 이런 충격을 어떻게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자살 충동성 우울증을 극복한 이야기

제와 절친한 선배의 이야기입니다. 이 집안이 원래 유복한 집안인데다가 선배의 어머니께서 평생 근검절약하고 모으신 덕분에 상당한 알부자로 소문이 났었는데 어느 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선배 어머니께서 증권회사 직원의 말을 믿으시고 거의 전재산인 수십억에 해당하는 투자를 했다가 거의 모든 원금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재산을 평생 힘들게 아끼면서 모았기 때문에 그랬는지 충격은 너무나 컸고 선배의 어머니는 우울증에 빠져서 이제 죽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선배는 고심 끝에 반강제로 어머니를 대학병원 정신과에 입원을 시켜드렸고 아무리 우울증이 심했어도 어머니의 반발과 분노는 보지 않아도 짐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배의 말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머니를 매일 문병을 갔는데 입원 일주일이 지난 시점부터는 문병을 갈 때마다 하루가 달라지게 정신을 추스르는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정신과 의사들의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가 없지 않았던 선배로서도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서는 말 그대로 ‘정신과 의사들도 뭔가 하기는 하더라’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3주간의 입원 후에 어머니는 잘 퇴원하셨고 그 후로도 건강하게 살고 계십니다.

문제의 해결책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지경에 이른 사람에게는 자살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아마 이들에게 사후에 인터뷰를 할 수 있다면 다들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나 저처럼 객관적 사고가 가능한 상황에 있는 사람은 자살을 선택한 사람에게 동정과 이해는 하지만 자살이 옵션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은 사람들에게 자살이 옵션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합리적인 판단을 못하게 합니다. 수십억 원을 잃으신 선배의 어머니가 우울증을 극복했지만 돈이 다시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 재산을 잃었건, 평생 일해도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되었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건 간에 자살을 생각할 수 밖에 우울한 상황에 있는 사람은 치료가 필요합니다.

우울증 환자, 제대로 된 치료가 필요하다

우울증에 대한 치료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적어도 이성적 판단으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최근의 연예인의 잇단 자살을 보면 이런 생각이 더 듭니다. 탤런트 최진실(40)씨 자살이전에도 많은 스타들의 자살이 있었습니다. 최근 탤런트 안재환(36)씨의 경우가 있었고 그 전에도 2007년의 탤런트 정다빈(27)씨나 가수 유니(26)의 자살이 있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오기 직전인 2005년에는 저 자신이 열렬한 팬이자, 사촌 여동생의 친구였던 영화배우 이은주(25) 자살로 한동안 저 자신도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스타들의 죽음과 관련한 보도들이 다 비슷비슷했던 경향이 있었는데 저로서는 왜 이 자살을 주위에서 막지 못했나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고 최진실씨 자살과 관련한 신문의 헤드라인과 보도를 몇 가지만 보겠습니다.


최진실씨 자살 암시 문자 메시지 남겨

 

남편과 이혼한 이후로 '우울증 증세' 보여

 

최진실의 사망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 서초경찰서 양재호 형사과장은 2일 오후 1시에 공식 수사 브리핑 기자회견을 열었다. 양재호 형사과장은 "고인은 오전 0시 42분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메이크업아티스트 이모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문자 내용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00야, 혹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환희와 준희를 잘 부탁해' 였다. 다시 오전 0시45분쯤 "미안해" 라고 덧붙여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공개했다. 또한 고인은 죽기 전날 밤 모친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 故 안재환의 사채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데 왜 이렇게 괴롭히는지 모르겠다"고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故 최진실 모친의 진술에 의하면 "5년 전 남편과 이혼한 이후부터 약간의 우울증 증세를 보여왔다. 늘 외롭다, 힘들다는 식으로 최진실은 토로했고, 신경안정제를 조금씩 복용해 왔다고 한다. 더구나 지인들에게 이혼 후 양육 문제로 힘들어했고, 연예계에서 추락하게 될까 봐 걱정도 하며 죽고 싶다는 말도 많이 해왔다"고 밝혔다.


자살 예고는 구조 요청

이러한 보도를 보면 자살로 이르는 우울증의 증상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일단 고 최진실씨가 우울증을 앓아온 것은 확실합니다. 문제는 자살을 하는 사람은 자살을 예고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진지한 얼굴로 죽겠다는 말을 한다면 진짜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단계가 자살을 막을 수 있는 조치를 할 최후의 기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죽기 직전에 신변을 정리하거나 유언성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 또한 매우 긴급한 응급상황으로 이런 이야기를 누구라도 듣는다면 ‘나 우울해서 자살을 할 것 같아, 도와줘.’ 하고 말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런 구조요청이 묵살된다면 자살의 마음의 준비가 끝나면 자살을 하게 됩니다.

일부의 예외가 있을지 모르지만 여러분들도 지금껏 많은 연예인의 자살사건에서 신문보도를 보면 매번 같은 보도가 나옵니다. 그들이 우울증을 이미 앓고 있었고, 자살을 이미 예고했으며, 유언성의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이 상황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구조 요청을 그냥 넘겼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혹시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의사도 아닌 일반인이 어떻게 누군가가 우울한 상태이고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요. 하지만 이런 상황의 파악은 전문적 소양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우울증 환자는 많은 경우에서 우울하느냐는 직접적인 질문에 자신이 우울하다고 답을 해주며,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살을 생각하고 있느냐는 진지한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을 해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만큼 도움을 갈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자살자수가 38명이라고도 하는군요.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자살자의 70%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그 중의 70%는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우울증 환자의 15%가 자살한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 주위에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앞두고 간접적인 말로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릅니다. 꼭 물어봐 주세요. 우울한지,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렇다고 한다면 이들은 정신과 의사가 꼭 필요합니다. 물론 연예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 출처 :
http://blog.joins.com/usr/d/r/drjhoon/71/별은내가슴에.jpg
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08/1004/IE000967233_ST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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