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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그리고 미국 생활 이야기

미역줄기 무침 먹는 미국 여성들

얼마 전에 정말 희한한 일을 목격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뉴욕에 소재한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 부속병원의 식당에서 한 아리따운 백인 여성이 밥도 없이 미역줄기 무침을 먹고 있더군요. 별의별 한국음식을 먹는 외국인을 보았지만 마치 샐러드 먹듯이 식사대용으로 미역줄기 무침을 먹다니 정말 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지역은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지역이라 도대체 어디서 저런 것을 샀을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 후로도 특히 젊은 여성이 미역줄기 무침을 먹는 광경을 몇 번 더 보았습니다. 용기를 내어서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음식을 알게 되었으며 어디서 구했고 맛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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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김밥하고 비슷한데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습니다.

우린 병원식당에 보면 스시 바가 있어서 간단한 스시와 롤을 즉석에서 만들어서 팝니다. 그나마 한국음식에 비슷한 맛이니까 미국사람들 먹는 음식을 먹기 싫을 때 저도 김밥 먹듯이 롤을 먹습니다. 값도 싸지 않아서 김밥 한줄 분량에 5.75불(5500백 원 정도)씩이나 하는데 미국사람들 잘도 사먹습니다. 사서 그냥 먹는 것도 아니고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습니다. 물론 롤에 와사비와 간장이 포함되어 있지요. 먹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일본음식이 이렇게 미국에 깊숙이 침투했을까 하는 궁금증과 더불어 샘이 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실망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 미국여성이 먹던 미역줄기 무침이 어디서 왔나 알아낸 것이죠. 사진까지 찍었는데 결국은 우리 병원식당에 스시코너에 일본음식인 것처럼 팔고 있었습니다. 항상 롤만 먹다보니 그런 것이 파는지 제가 미처 보지 못했나 봅니다. 혹시 한국음식을 미국사람들이 일본 음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습니다. 미국 사이트에는 대부분 해조 샐러드(seaweed salad)라고 해서 일본음식으로 나와 있었고 일본 웹사이트에서도 확인해본 결과 일본요리인 것으로 소개되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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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미역 줄기 무침

 그리고 미국 내의 많은 일식집에서 팔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순수한 한국음식으로 알고 있었고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가 집에서 밑반찬으로 해주시던 요리가 사실은 일본에도 있었고 일본 사람들은 이를 건강식으로 미국에 퍼뜨려서 미국의 여성들이 다어어트식으로 먹게 했던가 봅니다.

제가 군의관으로 군복무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혹시 미국 육군에서 세계 각국에 파견 나갈 군인들을 위해 여러 가지 언어를 가르치는데 한국어가 일본어, 아랍어등과 더불어 미국인에게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로 분류되었다는 신문기사 본 적 있으십니까. 한국군에도 그러한 교육 기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근무했던 곳이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 강사들이 영내에 많이 살고 있었고 이들이 건강적인 문제가 생기면 우선 찾는 곳이 바로 제가 근무한 의무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미국인 부부가 5살 정도 된 남자 아이를 데리고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감기 같은데 열이 오랫동안 내리지 않고 기침도 오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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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병원 식당의 스시코너


무슨 문제가 있을까봐 걱정되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진찰 결과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아 그냥 안정하고 수분섭취하고 좀 두고 보자고 이야기 해주면서 혹시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좀 먹게 해줘라. 왜냐하면 감기에 걸리면 대개 입맛이 떨어져 음식, 수분 섭취가 떨어지니까 억지로 먹일 필요는 없지만 잘 먹는 것을 좀 줘서 입맛을 돋우는 것은 괜찮다는 의미로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아이가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하느냐고 물어봤지요. 대답은 놀랍게도 ‘김밥’ 이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지도 않는 나이이고 거의 집에서 미국식 음식만 먹고 자라니까 한번씩 밖에 외식을 나가면 한국음식을 먹었나봅니다. 한국아이들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미국식 음식인 햄버거, 피자 아닌가요? 어떻게 미국아이는 김밥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을까 하면서 매우 신기하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우리 음식을 약간은 과소평가하고 외국인이 이런 음식을 먹어줄까 싶은 생각을 하는 요리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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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카페에서도 롤을 쌓아 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치, 불고기, 비빔밥 등 일부 대표적인 음식을 제외하고는 외국인에게 소개시키기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미역줄기 무침이 건강식이면 예를 들면 집에서 밥에 그냥 구은 김을 싸먹는 것도 어떻게 보면 대단히 훌륭한 맛과 영양을 가진 음식이고 그냥 콩나물 무침, 시금치나물 무침 등도 자랑할 만합니다. 전에 LA의 한 한국음식점이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메뉴로 선보인 것이 각종 나물인데 미국사람들에게 꽤 인기가 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습니다. 시대는 바야흐로 웰빙의 시대인데 한국식 같은 건강식이 아직도 미국인들에게 덜 알려졌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만약 입맛에 가장 편견이 없고 중립적인 어린아이가 김밥을 가장 좋아한다면 김밥보다 훨씬 더 맛있고 건강식인 음식이 한국 음식에는 많지 않습니까. 언젠가 한국 음식이 지금의 일본음식보다도 훨씬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