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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그리고 미국 생활 이야기

한국 의사가 본 한국 환자와 미국 환자의 차이

미국에 살아 본 사람들은 대개 미국과 한국을 놓고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 비교라는 것이 아무래도 제한적인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하다 보니 좁은 시야에서 나오는 편견과 주관이 가득한 비교가 되기 쉽다. 예를 들어 나는 미국 사람들은 교통신호를 잘 지킨다고 누누이 들었는데 실지로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미국의 소도시에서 미국인들의 운전 질서에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뉴욕에 와서는 기회만 있으면 새치기하고 신호를 무시하는 차량과 보행자들로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아마 뉴욕에서만 살았던 한국인이라면 미국인들은 한국인보다도 더 교통질서를 안 지킨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비슷한 류의 이야기로 미국인이 한국인보다 더 순진하고 착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국 사람도 사람 나름이라 순진하고 착한 사람만 만난 사람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겠지만 영악한 사람만 겪은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평균을 따지자면 이런 이야기에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고 본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공통적으로 도시 사람들이 더 계산적이고 시골사람들이 더 순수한 면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에 몰려 사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땅이 넓은 덕분에 인구가 대도시에만 집중되지 않고 소도시와 시골에 골고루 분포해있어서 미국에 살다 보면 미국의 시골사람들을 경험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비교적 순수한 사람들을 많이 접하다 보면 아무래도 미국 사람에 대한 판단이 호의적으로 더 기울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처음 미국에 오게 되었을 때 가장 기대한 것 중의 하나가 미국의 착한 환자들이었다
. 제한된 경험이었지만 한국에서 외국인들을 경험해보기도 했고,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그네들의 병원의 모습을 보기도 했고, 여러 경로로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 환자들은 의사의 말을 잘 들을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미국에 와서 보니 미국 환자들처럼 좋은 환자가 없었다. 한국의 환자들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점이 참 많았는데 환자들이 금주, 금연하라는 말이든가, 싱겁게 먹고 운동을 하라는 등의 권고를 무시한다든가, 치료가 잘 안되어 이유를 캐보면 갑자기 민간요법을 시작했다거나 무슨 한방의 치료를 받고 있기가 일쑤였고, 의사로서도 설명할 수 없는 질병의 원인에 대해서만 집착한다든지, 의사에 공연히 적개심을 가지고 대하거나 매사에 의심하는 환자도 있었다.


때로는 어디가 아픈지도 말하지 않고 한번 맞혀보라는 환자도 있었는데 이런 사람을 만나면 정말 의과대학에서 점술과 관상은 왜 안 가르쳐주었는지 원망스럽기 조차 했다. 어려운 환자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한번만 이런 사람을 봐도 기분이 며칠간 개운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환상이 더 커졌었던 것 같다. 미국에 와서 보니 역시 미국 환자들은 대개 친절했고 정중했으며 자신의 상태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줄 알았다.

이렇게 맘껏 미국 환자들의 진료를 즐기고 있었던 중에도 나에게 현실을 깨닫게 해준 몇 개의 사건이 있었다
. 한번은 인턴 때 병동 일을 늦게 마치고 클리닉에 매 주 있는 진료를 위해서 도착했는데 클리닉이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니 한 흑인 환자가 진료를 받다가 진료하는 여의사에게 음담패설을 하는 등 부적절한 행위로 인해서 진료가 중단되고 결국 병원 경비가 와서 몰아내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정말 어이없고 황당했지만 사람 사는 곳에 어찌 좋은 사람만 있을까 생각했다. 어디에나 썩은 사과는 있게 마련이니까.

내과 레지던트
2년차를 하고 있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아침 회진 중에 백인 할머니 환자 병실에 들어갔는데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아침에 환자 말고도 네댓 명의 가족들이 병실에 꽉 차 있는 모습은 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과 간단히 인사하고 환자를 진료하고 나오는데 환자 가족인 한 중년의 남자가 수첩과 볼펜을 들고 따라 병실을 나왔다. 그러더니 내 이름과 소속을 알려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숨길 수도 숨길 이유도 없었기에 알려줬지만 왜 물어보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그 가족들이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했고 소송을 위해 환자 근처에 갔던 의료진의 이름은 다 소송 명단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떳떳했지만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는 없었다. 오랫동안 들어왔던 미국은 의료 소송의 천국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은 첫 번째 경험이었던 것이다.

작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 한 젊은 히스패닉 남자 환자에게 수혈에 관한 동의를 받으려고 한 상황이었는데 그는 내 환자가 아니었고 하루만 동료를 커버하는 날이었기에 환자를 잘 몰랐다. 일단 들어가면서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하고 나 자신을 소개하는데 이 환자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뭐가 그렇게 우스우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여러 가지 고통을 겪는 환자라도 웃는 얼굴을 보여줄 때 더 격려가 된다고 생각하고 항상 해오던 습관이어서 이렇게 문제를 일으킬 줄은 몰랐다. 그래서 당황 속에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수혈에 관한 설명을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그는 수혈 부작용이 없다고 보장할 수 있느냐며 따졌던 것이다.

나는 부작용의 확률은 매우 낮고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 경미한 증상으로 즉각 처치가 가능하며 수혈로 인한 이익이 그렇지 않은 경우의 불이익보다 훨씬 크므로 수혈을 권한다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러나 환자는 의사들은 항상 그런 식이다, 책임을 질 수 없으면 그냥 나가달라고 하면서 화를 냈다. 도저히 설명이 가능하지 않아서 그대로 물러났는데 이 환자가 어디에다 불평을 했는지 간호부장, 고객센터, 당직 사회사업실 등에서 쉴 새 없이 호출을 해댔다. 내가 아무리 상황을 설명해도 이 사람들 말이 자신들도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내가 다시 환자에게 가서 정중히 사과해서 넘어가자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한국에서 레지던트를 할 때 거의 똑 같은 일이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 때도 내 생각에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지만 위의 지시로 그냥 말 많고 목소리 큰 환자를 무마시키고자 찾아가서 사과하고 넘어갔었던 일이 있었다. 당시에 마음 속으로 이래서 한국 사람은 안 된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는데 미국에서도 똑 같은 일은 겪은 것이다.

작년에 한국에 여행을 가서 얼떨결에 전에 근무했던 한 의원에서 진료할 기회가 있었다
. 진료를 하면서 꽤 많은 환자를 보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 환자들도 미국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착하고, 순진하고, 정중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어찌나 마음이 잘 통하는지 눈만 마주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한국 환자들이 단 몇 년 만에 이렇게 변할 수도 없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왜 나는 성질 나쁜 한국 환자를 보고는 이래서 한국에서는 의사 못한다니까 불평해놓고, 못된 미국 환자를 보고는 세상에 나쁜 사람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 하고 합리화를 했을까.

내 말을 듣지 않는 한국 환자에 수없이 실망하기도 했지만 그 환자들에게 미국 환자들에게 해주듯이 자세한 설명을 했었던가. 혹시 환자의 마음속에 작은 생채기나마 남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하기는 했었던가. 항상 환자의 입장을 헤아리고 사려깊게 행동했는가.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만 한국말로 한국 사람을 보는 것은 너무도 쉽고 당연한 일이었기에 지금 미국 환자를 보는 것만큼 환자를 의식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금 내 마음 속에서는 미국 환자들에 대한 환상이 졸아듦과 동시에 한국 환자들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 중이다. 미국 사람들은 다 순진하고 한국 사람들은 다 영악하다고 하는 편견이 다양한 사람을 많이 겪으면서 결국은 사람 나름이다라는 명제로 수렴해 가듯이 미국이나 한국이나 둘 다 의사에게 어려운 소수의 환자는 있지만 실은 좋은 환자가 다수이다 라는 명제로 수렴해 갈 것 같은 느낌이다. 무학 대사가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했다. 나의 한국 환자들에 대한 편견은 돼지의 눈이 아니었던가 반성해본다.


** 위 글은 메디슨의 사보에 기고를 의뢰받고 썼다가 대신 다른 글이 올라가는 바람에 빛을 보지 못한 글입니다. 제가 수필을 자주 쓰는 것이 아니어서 오랜만에 독자들께 제가 쓴 글을 소개해 드려봅니다. 혹시 이 글 대신에 올라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메디슨 사보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클릭하시고 38페이지로 가시면 <어떤 미국 할머니의 유산>이라는 제목의 제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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