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t Cetera, Et Cetera, Et Cetera

한국에서 뭇매 맞는 미국 의료보험 제도

사례 1.
39세 흑인 여자환자가 응급실을 통해서 중환자실로 입원했습니다. 입원 당시 이미 의식이 없어서 환자에게 아무 질문을 물을 수도 없었지만 소지품을 통해 이름을 확인하고 입원수속이 이루어졌습니다. 미국에서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마약 반응검사가 양성이었고 진단은 급성 폐부종으로 내려졌습니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체내의 잉여수분을 빼내기 위해 이뇨제를 다량 투여하고 상태를 관찰했습니다. 마약으로 인한 급성 폐부종의 경우 대개 치료의 반응이 빠릅니다. 환자는 3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나와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고 퇴원 날짜가 되었습니다. 환자는 아무런 의료보험이 없음은 물론이고 자신은 집까지 갈 차비도 없고 퇴원시 준 처방전으로 약을 살 돈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경우 social worker와 case manager가 교통편을 알선을 하고 저는 병원 약사를 연결해서 무료로 퇴원 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약사가 자기 재량으로 이런 식으로 약을 무료로 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의사의 요청에 의해서 제약회사에서 샘플로 공여 받은 약을 모았다가 주는 것이어서 약간의 행정적인 절차가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환자의 병실로 가서 환자에게 무료로 줄 약을 구하는 중인데 한두 시간만 기다리면 준비가 될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식사를 하던 환자는 화를 내면서 지금 당장 갈 거니까 지금 당장 약을 가져오라며 병실 바닥에 먹던 식기를 집어 던지더군요. 정말 어이가 없더군요. 나는 돈 없는 자신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무료로 약을 주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대접을 받다니. 나중에 동료들에게 말하니 반응이 아마 이 환자가 빨리 퇴원해서 다시 마약을 하려고 그런다고 그러더군요. 2700만 원 정도 했던 입원비는 물론 내지 않고 퇴원했습니다. 병원에서 청구서는 보낸다고 하던데 받을 기대를 안한다고 합니다.

사례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환자는 68세의 백인 여자입니다. 전부터 저를 잘 아는데 그 이유는 병원에 일주일마다 입원해서 3일정도 기본검사 후 퇴원을 반복하기를  최근 3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이 했습니다. 가진 병이 얼마나 많은지 당뇨, 고혈압, 천식, 골관절염, 척추압박골절, 고지혈증, 심부정맥 혈전증, 고도 비만을 비롯해서 총 20가지정도의 진단이 붙은 사람입니다. 집도 없어서 국가에서 제공되는 요양병원에 사는데 걸핏하면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응급실로 실려 오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이 환자는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라는 우리나라의 의료보호에 해당하는 보험이 있기 때문에 자기 부담금이 전혀 없습니다. 모든 의사들의 바람은 제발 이 환자가 병원을 안 오는 것이지만 하도 자주 입원해서 “frequent flyer"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이 환자가 입원과 퇴원을 한번하면 비용이 1000만 원 정도 되는데 물론 국가 부담입니다.

사례 3.
한 4세의 히스패닉 남자아이가 외래를 방문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태아 알코올 증후군의 증거가 확연한 얼굴 생김이었고 정박아로서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것입니다. 제가 속으로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함께 온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고 양부모(foster mother)라고 했습니다. 자세한 내막을 들으니 기가 막혀서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로서 현재는 미국시민인데 다섯 명의 다른 아버지로부터 총 14명의 아이를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14명의 아이들이 모두 태아 알코올 증후군으로 태어난 정박아들이고 모두가 각각 다른 양부모에 입양되어 길러지는 중이라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어머니가 현재 15명째 자녀를 임신 중인데 여전히 술과 마약에 절어 산다고 합니다. 그 녀가 낳은 모든 아이들은 모두 국가에서 지급되는 월급을 받는 양부모에 의해 길러지며 모두가 한 달에 천만원정도하는 특수교육을 무상으로 받고 있습니다. 이 특수교육은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미 정부 예산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위의 사례들은 모두 제가 직접 겪은 일들입니다. 많은 블로거들이 쿠바와 비교해가며 사정없이 비난하던 바로 그 미국의료의 실상입니다. 언론의 자유조차도 없는 일당독재의 공산국가에서 나온 믿을 수도 없는 통계자료를 근거로 후진국 중에 후진국처럼 비난을 받았던 나라말입니다. 저는 사실 쿠바 이야기를 듣고 북한이 우리나라 기자나 정치인들을 초대해서 북한의 시설 좋은 곳만 보여주며 복지국가인 것처럼 기만을 부리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복지 국가 중에 복지국가라는 캐나다에서 노인들이 미국 병원에서 공짜로 치료받기 위해 해마다 플로리다로 몰려드는 것을 아십니까. 캐나다에서는 물론 공짜지만 무슨 치료건 간에 몇 달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 들이 미국에 오면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암을 진단받은 멕시코 사람들이 국경을 몰래 넘어 텍사스로 들어오는 것을 아십니까. 물론 무료로 치료받기 위해서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의료의 수준의 차이가 너무 커서 심각한 병을 진단받으면 불법 입국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돈이 없거나 병원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은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미국 전국각지에서 온 동료의사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저를 이상한 사람취급을 하더군요. 미국에서 보험이 없다고 치료를 못 받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이해를 못했습니다. 미국 병원은 돈이 없든지 보험이 없든지 상관없이 입원이 가능하고 퇴원 몇 달 후 날아오는 천문학적인 청구서는 휴지통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도대체 왜 치료를 못 받느냐고 반문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사례를 더 보시죠.

사례 4.
50대 초반의 한국인 부부입니다. 이민 온지 5년인데 맞벌이로 열심히 돈을 벌어서 제법 자리를 잡았습니다. 부부 합해서 연봉은 한화로 세전 1억 정도이고 둘 다 자영업에 종사합니다. 문제는 매달 60만원 정도하는 의료 보험료가 비싸다는 이유로 보험 가입을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부인이 급하게 호흡곤란을 일으켜서 천식발작이라는 의심 하에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갔습니다. 응급실에서 밤새 관찰은 하였지만 별다른 병의 증거가 없었고 환자의 증상도 저절로 좋아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나중에 외래로 다니면서 검사를 하기로 하고 퇴원했습니다. 한 달 후에 부부는 구급차 사용료 40만원과 4시간동안의 응급실 사용료와 검사비등 400만원과 에 대한 청구서를 받고 평소 의료보험을 들지 않은 것을 땅을 치며 후회를 했다고 합니다.

많은 한국인들의 미국 의료보험 제도에 대한 편견은 비단 마이클무어 감독의 식코라는 영화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고 마지막 사례에서 보듯 대부분의 재미교포들이 자영업에 종사하면서 의료보험료를 아까워해서 무보험 상태로 지내다가 일단 문제가 터지면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해야하는 관계로 이런 사례들이 알려지면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봅니다.

캐나다나 유럽 선진 각국은 세금과 의료 보험료가 월급의 절반입니다. 미국사람들이 받는 의료보장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세금이 덜한 대신에 의료보험료가 유럽보다 더 들어가는 것은 그리 불공평한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미국 내에서 의료제도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이는 많은 미국인이 치료를 못 받고 죽어가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미국 의회와 정부에 막강한 로비력을 행사하는 의료보험회사들이 가져가는 액수가 너무 크고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에 많은 돈이 투입이 되는데 각종 보건의료 지표가 다른 선진국에 좋지 못한 점, 그리고 국가적으로 의료에 쓰이는 비용이 전반적으로 너무 높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미국에서 4천 2백만 정도 되는 노인과 장애인의 무상 의료를 위해 사용되는 메디케어 예산이 250조원정도(2006년 자료)이고 4천만정도의 빈민의 무상의료에 투입되는 메디케이드는 예산이 300조원 규모(2004년 자료)입니다. 우리나라 전체의 일 년 예산이 200조 정도인 것과 비교해보세요. 미국의 의료제도가 엄청난 혜택을 주고 있지만 그 비용도 엄청납니다. 미국에서는 이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명박을 비판하는 것도 좋고 당연지정제 폐지를 비판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명박 당선자가 할지 안할지도(혹은 할 수 있을지 못할지) 모르는 당연지정제 폐지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엉뚱하게 미국의료제도 혹평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치료 못 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미국 꼴이 난다고 말입니다. 미국 의료제도 문제가 많은 것은 확실하고 우리가 그런 제도를 그대로 본받을 필요도 없고 돈 없어서 흉내도 못냅니다.

하지만 돈을 벌기위해 그리고 정치적 선동을 위해 상당한 과장을 많이 섞어 만들어진 미국영화 한편을 보고 미국의료제도를 혹평하면서 쿠바를 본받자고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 언론들이 확실히 제 할 일을 안하는 것이 맞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썩을 대로 썩어서 깊게 곪은 상처가 터지기 직전인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도 메스를 들이댈 생각은 안하고 부지런히 거즈만 갈아주고 있는 정치인과 관료 그리고 이를 방관하고 있는 언론을 보면서 IMF가 터지고 나서야 서로를 비난하기 바빴던 그들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는 것은 저만의 지나친 기우일까요. 저와 함께 근무하는 사회주의식 의료제도를 경험해본 유럽 출신의 동료의사는 단언하더군요. "미국 의료 제도가 환자들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도이다" 라구요. 저는 단지 한국과 미국 시스템밖에 경험하지 않아서 감히 이런 말은 못하겠습니다만 미국의 제도가 한국에서 정말 그렇게 뭇매를 맞아야 하나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