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가 소개시켜드리는 정보는 다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것일 겁니다. 그 이유는 전문과목에 상관없이 발을 전문으로 보는 의사가 너무 적고 이들에 의한 저술의 양도 너무 적습니다. 여러분이 인터넷, 도서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신발 고르는 요령에 대한 정보는 대개 신발 제조업체측에서 나온 것으로써 너무 작지 않은 신발을 고르는 요령에 불과하기 때문에 발에 다양한 증세를 가진 사람을 위한 의학적으로 좋은 신발을 고르는 요령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꼭 한번 신발 고르는 요령에 대해 글을 써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발 마사지를 받아 본적이 있는데 중국에서 마사지를 배우고 왔다는 마사지사가 그러더군요. 발이야말로 우리 몸의 모든 내부 장기와 연결되어 있어서 발의 건강이 신체적 건강과 직결된다고요. 의사인 저로서는 그러하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이상 믿기힘든 이야기였지만 발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발을 관리해주기는커녕 아마도 하루에 한 번도 쳐다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보다보면 가끔 발에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를 만날 수 있는데 대부분은 신발을 신지 않았는데도 발에 통증이 오거나 아니면 걸을 때 너무 통증이 심해서 걸을 수 없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발에 통증이 있는데도 병원에 올 생각조차 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원래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아니면 참을 만하니까 그냥 참고 삽니다.
뒤축이 무른 신발 |
구두, 앞코에 봉제선이 보인다 |
미국에 와서 보니 족부전문의(podiatrist)라는 한국에는 없는 발을 관리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대를 나온 의사(MD, medical doctor)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발에 대해 전문적인 의학교육 과정을 마치고 엄격한 자격증 발급 과정을 통해 양성되는 준 의사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처음에 제 생각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족부전문의에게 무슨 치료를 받을까 궁금해 하기도 했는데 이 들은 예상외로 많은 것을 합니다. 발에 감염, 무좀, 발톱 관리, 기형 교정, 각종 수술 등 발에 관련된 많은 질환을 외과적, 내과적으로 관리해 줍니다. 우리나라에는 족부전문의 제도가 없지만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에서 하는 치료의 일부를 이 들이 담당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의학의 범위가 너무 너무 넓기 때문에 이 족부 전문의가 모든 질환을 커버하는 것은 아니고 미국에서도 정형외과와 가정의학과, 그리고 재활의학과에서도 약간의 겹침이 있지만 여러 가지 질환을 독립적으로 치료해줍니다. 어쨌거나 전반적으로 한국 사람보다 미국 사람들이 발 관리에 관심이 더 많지 않겠나하고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봅니다.
발의 통증은 대개 나이가 많을수록 많아지는 경향을 보이지만 이는 병이라고 느끼고 병원을 찾는 사람을 조사한 결과가 대부분이고 상당수의 젊은 사람들도 발에 통증을 느끼면서 그냥 참고 살고 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보니까 많은 젊은 병사들이 발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통증을 느끼고 있었고 소위 단화라는 구두를 신는 장교들도 발에 통증을 느끼는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하이힐을 즐겨 신는 젊은 여성들도 발에 통증을 느끼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잘못된 신발이 발의 통증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발 자체가 구조적으로 잘못된 경우(예를 들면 평발이나 요족, 망치족 등)도 발 통증의 원인이고 마라토너처럼 발을 너무 많이 혹사시키는 경우도 고려될 요인입니다. 하지만 좋은 신발은 그 자체로도 다양한 발의 증상에 대한 치료 효과가 있습니다. 케냐의 마사이족처럼 맨발로 살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신을 신발이니까 발이 가장 좋아하는 신발을 골라야 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발을 고를 때 고르는 기준은 딱 두 가지로 보입니다. 첫째는 발 사이즈와 둘째는 디자인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꼭 알아야하는 요령들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 발에 아무런 불편이 없는 분들은 몰라도 특히나 발에 통증이 있는 분들은 아래 요령에 따라서 신발을 골라야 합니다.
스니커즈같은 구두(X) |
구두같은 스니커즈(O) |
첫째로 구두보다는 스니커즈 타입의 신발이 발 건강에 좋습니다. 스니커즈의 정의가 내리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는데 단순히 운동화로 해석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진짜 스니커즈는 아래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1. 일단 밑창이 분리되어야 합니다. 신발에 따라 앞부분에만 접착제로 밑창과 신발 안쪽 바닥을 붙여놓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아래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2. 신발의 뒤축이 단단해야 합니다. 좀 가볍고 약한 신발(특히 여성을 위한 신발의 경우)은 뒤축이 무른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발목과 발 관절을 잡아주지 못하기 때문에 관절에 무리한 스트레스가 가해지고 발이 쉽게 피로해지게 됩니다.
3. 신발의 앞부분, 즉 앞볼에서 중간 1/3 지점까지의 부분이 부드럽게 잘 휘어져야 합니다. 신발을 손으로 들고 U자 모양으로 접어보세요. 이 부분이 잘 접어지는 것이 좋은 신발입니다.
4. 신발의 앞부분을 자세히 보시면 신발의 옆 부분에 신발의 위쪽을 구성하고 있는 가죽부분과 대개 플라스틱 재질의 바닥부분 사이에 봉제선이 없는 것이 스니커즈입니다. 신발의 윗부분의 가죽과 대개 플라스틱 재질의 바닥 부분이 접착제로 그냥 붙어있으면 이 봉제선이 보이지 않습니다. 구두는 100% 봉제선이 보이며 발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구두를 신어서는 안 됩니다. 정 구두를 신어야 한다면 구두처럼 보이는 스니커즈(예를 들어 락포트등의 메이커에서 이런 신발을 팝니다.)를 신는 것을 추천합니다.
둘째로 신발의 크기를 고려해야 하는데 발의 길이뿐만이 아니고 폭을 고려해야합니다. 대부분의 신발 메이커에서 신발은 길이에만 맞춰 만듭니다. 그래서 다양한 폭의 신발을 고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일단 신발을 사러 가시면 밑창을 분리해서 발에 대보시기 바랍니다. 발의 폭이 맞고 발가락 공간이 넉넉하면 좋은 크기의 신발입니다. 만약 발 길이는 좋은데 폭이 좁으면 폭만 넓은 신발이 없기 때문에 한 두 사이즈 큰 신발을 골라서 밑창에 발 폭을 다시 재어 봐야 합니다.
셋째로 신발의 뒷 굽이 1-3 센티미터 이상 되지 않아야 합니다. 결국은 하이힐은 발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결론입니다. 그렇다고 발에 아무 문제도 없는 여성이 그냥 멋을 위해 하이힐을 신는 것을 피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발 건강을 위한다면 가능하면 하이힐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넷째 신발의 바닥이 딱딱하지 않고 특히 뒷 굽에 쿠션이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스니커즈는 이렇게 만들어져 있으니 일부러 더 많이 물렁한 것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섯째로는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오전보다 오후나 저녁에 신발을 골라야 하는데 이때는 발이 약간 부어 커지므로 작을 신발을 사는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스니커즈
그럼 이렇게 간단한 원칙을 가지고 신발을 고르러 나가보면 희한하게도 이 조건에 맞는 신발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비싼 신발이 이런 조건을 다 충족하지도 않고 의외로 시장에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 신발이 이 조건에 맞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발을 살 때는 되도록 선택권이 풍부한 큰 시장이나 큰 가게에 가야 합니다. 작은 곳에 가면 선택권이 별로 없는 중에 골라야 하므로 좋은 신발을 고를 수 있는 확률이 적어집니다.
제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에 발에 정통한 미국에서도 몇 명 안 되는 교수님이 계십니다. 이 교수님이 한국분이신지라 한 때 의학적으로 완벽한 신발을 환자 치료용으로 제작해 보고자 한국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한국의 제화업체에서 교수님이 원하는 스니커즈의 제작기술을 가진 곳이 없어서 결국 중국까지 갔는데 마땅한 제작업체를 찾지 못하고 계획이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교수님이 들은 결론은 미국과 유럽의 극소수의 스포츠메이커들만이 신발 주형에 대한 원천기술을 가졌고 대부분의 아시아업체들은 단지 이 들에게 제공받은 주형으로 찍어내는 단계였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사정은 모르겠습니다만 별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스니커즈 제작에도 엄청난 인체공학적이 고려사항이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유명 메이커 스니커즈는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상당히 비쌉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중소기업에서도 주형을 만드는 원천기술이나 뒤축에 공기가 들어가게 하는 희한한 기술은 없어도 의학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스니커즈를 제조하는 곳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자기 발에 가장 좋은 신발을 찾으려면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지만 좋은 신발을 찾아서 고생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노력입니다. 발에 생길 수 있는 개별적인 질환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좋은 신발 신으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발을 가꾸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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