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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자동차 이야기

현대차 대박 식당에서 배워라.

얼마 전에 미국 모터트랜드의 웹사이트를 방문했다가 제네시스 쿠페(코드명 BK)의 뉴욕 모터쇼 데뷔를 앞두고 공식 사진이 공개되었다고 1면에 나와 있었습니다. 조금은 안정되고 점잖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제네시스 같은 타입의 세단과는 달리 쿠페는 타는 사람이 약간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자동차를 정말 좋아하는 그야말로 열성 팬들을 만들 수 있는 분야이고 잘 만들면 기술력을 뽐내기도 좋은 분야이기 때문에 낮은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회사들이 팬 서비스 차원과 기술력 과시 차원에서 나름대로 공을 들이는 분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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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 트랜드 웹사이트 1면의 기사

현대 자동차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회사들의 고질적인 문제라면  잘 달리고, 돌고, 서는 자동차의 기본기가 떨어진다는 문제이고 국내 자동차 회사들은 항상 안락하고 조용하며 옵션이 풍부한 차를 찾는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을 핑계로 이런 차를 만들기에 소홀하여 온 것이 사실입니다. 비록 현대가 스쿠프로 시작되는 쿠페의 역사를 갖고 있고 그 후의 많은 현대의 컨셉트카의 디자인이 이후 티뷰론 등의 차에서 이어져오기도 했고 쌍용의 칼리스타, 기아의 엘란 등도 부분적으로나마 국내 자동차 회사들도 이 분야에 관심은 있었음을 방증하고는 있지만 실력으로 뭔가 보여준 적은 없다는 면에서 아직 걸음마단계라고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정말 맛없는 메뉴뿐인 현대 자동차라는 식당

모든 자동차 회사가 BMW와 같은 핸들링을 갖는 차를 만들 수도 없고 가장 무난한 자동차를 만들어서 많이 파는 것이 목적인 현대와 같은 메이커가 꼭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가 자동차 매니아들의 토론에서는 토론의 대상으로 끼지도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혼다의 NSX같은 전위적인 차를 만들어본 적도 없고 비교적 작은 기업들인 마즈다의 로터리 엔진 같은 도전도 해본 적이 없으며 스바루의 4륜구동에 대한 집착 같은 면도 없어서 자동차 시장을 레스토랑에 비교하자면 맛있는 메뉴만 찾는 미식가인 자동차 매니아들에게는 현대자동차라는 음식은 그야말로 가장 무미건조하고 맛없는 메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값도 싸고 양도 많다지만 맛이 없으니 더 비싸고 맛있는 요리를 사먹지 못하는 사람들만 선택하는 메뉴가 바로 현대 자동차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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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식가들의 수는 사실 얼마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식단 구성을 미식가를 위해서 했다가는 음식 몇 접시 못 팔 것이라는 것이 현대의 경영진들의 생각인 것 같은데 문제는 이런 미식가들 중의 상당수는 어떤 식으로든 대중의 자동차에 대한 인식에 영향력이 있는 위치의 사람들(예를 들면 자동차 잡지 기자와 편집장과 같은)일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뉴욕의 유명한 식당들은 식당을 평가하는 ZAGAT같은 책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싸고 양을 많이 주더라도 ZAGAT의 편집장이 먹고 싶은 메뉴가 하나도 없는 식당에 우호적일 수는 없을 겁니다.


이 같은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도요타가 F1에 출전하기를 결정했었다던가 미국 내 자동차 메이커의 잔치인 NASCAR에 까지 진출하는 역사까지 따져보면 현대의 소심증과 게으름은 참으로 답답하기만 합니다. 도요타는 현재 세계 1위이니 너무 가혹한 비교라면 비슷한 규모의 후발주자인 혼다와의 비교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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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리 레이싱카라니 참 신기합니다.


1960년대 초에 뒤늦게 자동차 시장에 진출한 조그만 오토바이 회사였던 혼다가 선발업체들의 견제와 일본 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뚝심을 가지고 미국시장 진출까지 이루어냈고 1973년 석유파동과 함께 발표된, 당시만 해도 이런 엄격한 배기가스 규제는 아무도 맞추지 못한다고 비난이 많았지만, 미국의 새로운 배기가스 규제 법안을 만족시키는 자동차를 만들어내서 미국인들을 놀라게 했던 역사, 그리고 F1에 도요타보다 먼저 진출해서 오토바이 엔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1965년 일본차 최초로 그랑프리를 차지한 역사 등을 생각해보면 한숨이 더욱 깊어집니다.(더우기 Formula 1 진출이 양산차 제작보다도 먼저라는 특이한 사실도 참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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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의 F1 머신




그런데 제네시스를 필두로 미국 자동차 애호가들의 관심이 서서히 고조되고 있고 이번에 제네시스 쿠페의 사진이 공개된 것만으로도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물론 자세한 스펙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평가는 외관의 스타일이 좋다는 정도입니다만 반응은 이례적으로 뜨거운 편입니다.(항상 그렇듯이 물론 싫다는 사람들도 있고 뭔가 베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역시 있습니다.)


제네시스 역시 핸들링이 문제인가



이런 기대와는 다르게 거품이 꺼져간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예전의 글에서 제네시스의 핸들링에 대한 우려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인지 미국 자동차 블로그스피어에 약간의 사건(?)이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3월초에 중앙일보 웹사이트에서 김기태 기자의 제네시스에 대한 동영상 시승기를 본 적이 있는데 현대의 지나친 옵션 장사에 대한 완곡한 비판과 함께 예상대로 기대에 못 미치는 핸들링을 보여주어 후륜구동의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았지만 핸들링에 관한한 역시 현대는 안 되는 것인가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이 내용에 영문자막까지 입혀져서 유튜브에 올라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놓치지 않고 다시 미국의 한 블로거가 미국의 자동차 관련 블로그에 뉴스로 보도했습니다. 댓글을 읽어보니 불과 1-2주전의 기대에 찬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역시 싼게 비지떡인가 하는 실망에 찬 내용이 대다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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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블로거들이 실망을 표하고 있는 중앙일보 시승기


현대도 그렇고 구경하는 우리들도 그렇지만 미국 블로그에 올라간 댓글을 놓고 매번 일희일비할 일은 아닙니다만 미국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는 알아야 장사를 제대로 할 것 같습니다. 요즘 중국차에 관해 들려오는 소식들을 보니 내외장을 고급스럽게 꾸미고 전자장비 부품으로 무장한 차는 만들기가 어렵지 않지만 기본기에 충실한 차를 만들기는 더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대가 지금까지 이뤄온 성과가 더 값진 것일 수 있습니다만 앞으로 갈 길이 너무 멉니다. 현대가 지금 개발 중인 제네시스 쿠페라도 정말 기본기를 탄탄하게 만들어서 미국과 세계의 자동차 애호가를 놀라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맛있는 메뉴 하나만 있어도



이름만 남아있던 인피니티가 미국 자동차 팬들을 경악시키며 정말 실력 있는 메이커로 다시 보여지게 했던 G35나 쓰러져가던 크라이슬러를 기사회생시킨 300c같은 차를 생각해보면 자동차 메이커가 갑자기 이름을 빛내거나 갑자기 떼돈이 굴러들어오는 것이 사실 죽을 각오로 최고의 차를 수십 년간 만들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뒤에는 축적된 내공이 받쳐주어야 하겠습니다만) 때로는 단 하나의 히트작, 단 하나의 상징적인 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는 차로 족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현대가 국내 소비자들의 엄청난 비난을 사면서까지 절실히 성공하고 싶어 하는 미국 시장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이고 어쩌면 현대라는 레스토랑의 성공이 정말 맛있는 단 한 가지 메뉴로도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런 제언도 해보는 것입니다.




p.s. ; 오늘은 다시 조선일보 최원석 기자의 제네시스 시승기를 읽었는데 BMW만은 못하지만 렉서스 GS에 손색이 없는 후륜구동으로서의 장점을 잘 살린 주행성이 돋보였다고 하는군요. 평소에 중앙일보 김기태 기자와 조선일보 최원석 기자의 시승기가 이렇게 다른 적은 없었는데 불안해졌다가 다시 안심도 조금 되었다 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미국에 차가 와봐야 저도 어떤 평가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