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미있는 자동차 이야기

제네시스, 미국에서 현대 로고 떼고 판다

1월말 경에 국내 언론에서 현대가 제네시스에 날개를 형상화한 로고를 한국과 중국 모델에만 붙이고 미국에는 기존의 현대 로고를 넣어 팔 것 이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거치면서 2월 초 현대는 태도를 바꾸어 프론트 그릴에서 아예 현대 로고를 빼기로 했다고 automotive news에서 보도되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은 현대차 미국법인 상품기획, 개발담당 부사장인 존 크래프칙씨의 입에서 나온 말이므로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내용인데 아래 내용은 기사 원문의 일부입니다. 국내 신문기사를 검색해보니 관련 내용을 찾을 수가 없어서 아마 국내에서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 같은 부분인데 저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Hyundai picks a face for Genesis
The final piece of the styling puzzle is in place for Hyundai's Genesis luxury sedan. The car, scheduled to go on sale this summer, will have a plain grille without the Hyundai logo, said John Krafcik, Hyundai Motor America's vice president for product development.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러 로고를 배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로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대가 카피했다는 의심을 사는 미니의 로고

미국의 각종 자동차 관련 게시판에서는 작년 일 년 내내 현대가 독자적인 고급 브랜드를 내놓아야하나 아니면 현대라는 브랜드로 제네시스를 내놓아야 하는가에 대해 네티즌들의 설전이 뜨거웠었습니다. 마치 현대자동차의 내부에서 중역들이 회의 소재로 삼을 내용을 가지고 북미의 네티즌들이 논쟁을 벌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상당히 흥미로웠기 때문에 저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현대가 독자적인 고급 브랜드를 런칭해야 한다는 측의 주장은 미국의 소비자들은 겉보이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아무리 차가 실속이 있어도 미국에서 중저가로 각인된 현대가 내놓은 고급차를 아무도 살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겉모습을 너무 중시한다고 비판을 하는데 미국 사람들도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은 참 재미있기도 합니다.)

품질 좋은 차를 만들기로 유명한 도요타도 초기에 미국시장에 정착할 당시에 품질문제 뿐만이 아니고 중저가 차량을 파는 싸구려 메이커의 이미지 때문에 고전을 많이 했고 나중에 그 품질을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요타라는 메이커로는 사람들이 고급차를 만들어도 제대로 인정을 받니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따라 렉서스를 런칭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 미국 네티즌들은 미국 소비자들은 비록 렉서스라는 브랜드도 결국 도요타에서 만드는 것임을 알았지만 결국은 고급 브랜드로 인정을 해주었고 현재 판매에서도 성공을 한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니 현대가 새 럭셔리 브랜드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럭셔리 브랜드를 내놓지 않아서 실패한 예로 드는 것이 바로 마즈다의 밀레니아와 폭스바겐의 페이튼입니다.

럭셔리 브랜드가 아니어서 실패한 차?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밀레니아는 마즈다가 1995년 당시 플래그쉽(flagship, 기함) 세단이었던 929를 대체하면서 야심차게 내놓은 고급 세단입니다. 마즈다는 미국 고급차 시장에 합류는 늦었지만 나름대로 기술력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진작(1989년) 시장에 나와서 나름대로의 입지를 굳힌 도요타의 렉서스나 혼다의 어큐라, 닛산의 인피니티 등을 지켜보고 있었고 이 들을 벤치마크해서 당시로서는 나름대로 고성능의 엔진, 풍부한 옵션을 내세우며 고급성과 스포츠 성을 겸비했다며 밀레니아의 성공을 확신했었습니다. 그러나 렉서스와 다른 여러 가지 점 중에 중요한 한 가지 차이가 바로 고급 브랜드의 배지를 달지 않은 것이었는데 정말 이 점이 문제였는지 판매 면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2002년 단종되게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 다른 예가 폭스바겐의 페이튼입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그냥 대중적인 자동차 메이커지만 한국에서는 독일산 수입차라는 프리미엄 때문인지 고급차로 간주되고 있는 폭스바겐의 플래그쉽 모델로서 한국에서 적절한 가격과 나름대로 큰 차체와 좋은 성능, 고급스런 디자인을 바탕으로 상당히 선방하고 있습니다. 미국시장에 벤츠 S 클래스나 BMW의 7시리즈의 아성에 도전한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가지고 상륙하였으나 2005년과 2006년 합해서 겨우 2000대 조금 넘게 팔고 미국시장에서 철수한 아픈 경험이 있는 차입니다. 여러 가지 판매 전술에서 실수가 있었지만 일부 미국의 네티즌들이 특히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폭스바겐이라는 메이커로 6만 불에서 10만 불짜리 차를 판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반박하는 네티즌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폭스바겐의 페이톤은 6만 불에서 시작하지만 현대의 제네시스는 3만 불 이하에서 시작하는데 현대 제네시스의 저렴한(?) 가격은 페이톤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사람을 구매 대상층에 포함시킬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밀레니아는 자동차의 상품성이 문제였지 마즈다이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반박이 있습니다. 밀레니아에 대한 당시의 평론가들의 평가도 그다지 럭셔리한 것도 아니고 스포티하지도 않다고 지적한 바가 있고 일반 소비자들도 좁은 실내, 값싸 보이는 내장 등에 대해 불평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출범 당시의 렉서스(LS400)나 지금의 현대 제네시스처럼 후륜구동도 아니니 직접 비교 대상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리스크가 큰 현대의 럭셔리 브랜드

그럼 미국에서 럭셔리 브랜드를 새로 시작하지 않는 현대 자동차의 속사정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전해진 소식(혹은 루머)을 종합하면 현대도 도요타처럼 렉서스류의 럭셔리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미 현대는 한국시장에서 에쿠스를 발매하면서 현대라는 로고를 숨겨보기도 했고 강남에 에쿠스 전용매장을 만들면서까지 중저가의 현대의 이미지와 고급 자동차의 이미지를 분리해보려고 했지만 지금까지만 보면 이 작은 시험은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도요타인 것을 이미 아는 일본인들에게 렉서스가 인기가 없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현대자동차의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는 소비자들에게 에쿠스하면 에쿠스가 아니고 현대차니까요. 하지만 미국의 예를 생각하면 이런 이미지가 서서히 세대를 거치면서 분리되어 도요타는 도요타고 렉서스는 또 다른 럭셔리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 잡는 것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현대는 제네시스에 새로운 엠블럼을 부여하기도 한 것을 보면 현대의 실험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계속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대의 로고가 들어간 프론트그릴

미국의 자동차 시장은 연간 1700만대 정도로 100만대를 조금 넘는 한국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입니다. 적어보이지만 3%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현대는 미국과 일본 빅 3를 제외하면 최대의 점유율을 보이는 회사입니다. 하지만 현대로서도 이렇게 큰 시장에서 럭셔리 브랜드를 새로 만드는 것은 상당한 도박일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 딜러를 모집해야 하고 정비 공장도 세워야 하고 어마어마한 광고비를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들어간 비용은 결국 자동차 값의 인상요인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아직도 현대차의(혹은 제네시스의) 최대의 경쟁력은 가격입니다. 그런데 이 3만 불에서 4만 불대의 시장에는 각종 럭셔리 메이커의 쟁쟁한 차들이 포진해있습니다. 어큐라, 인피니티, 렉서스, 볼보, 사브 등 메이커의 상당수의 차종이 이 가격대 안에 들어가고 벤츠와 BMW의 소형차가 이 가격대에 나와 있습니다. 물론 제네시스의 크기와 엔진 등을 고려하면 벤츠의 C 클래스나 BMW의 3 시리즈와 비교하는 것이 말이 안 됩니다만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급을 비교해서 쇼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을 놓고 차를 고릅니다. 즉 제네시스의 경쟁자가 BMW의 5시리즈가 아니라 3시리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제네시스의 향후 판매전망에 큰 이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현대의 그랜저(미국명 아제라)는 미국의 자동차 평론가들로부터 상당한 극찬을 받았고 매니아 층도 상당합니다만 한 단계 아래 급으로 분류되는 혼다 어코드(특히 EX-L V6)와 비교하면 가격은 비슷한데도 판매량은 비교가 안 되게 적습니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만 현대 아반떼와 기아 로체가 가격이 비슷하다고 가정을 한 가운데 아반떼가 더 많이 팔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즉, 아무리 제네시스의 값이 내려가도 여전히 BMW 3 시리즈를 살 사람은 BMW로 간다는 것입니다.


홍길동이 된 제네시스

그럼 어떤 사람이 제네시스를 사 줄까요. 일단 가장 가능성 있는 소비자는 이미 현대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가진 현재의 아제라(그랜저)나 베라크루즈 오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BMW나 벤츠의 소형 세단을 생각하다가 같은 돈에 큰 차를 사기위해 제네시스를 살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 계층이 현대가 노리는 소비자입니다만 이들이 BMW 배지를 포기하고 현대로 가겠느냐 하는 것이 미국 네티즌들이 논쟁을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현대가 럭셔리 브랜드를 시작하느냐 마느냐는 이런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느냐에 달린 문제로 보입니다. 어차피 현대에 충성심이 강한 소비자들은 현대가 럭셔리 배지를 달고 비싸게 팔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대 로고가 빠진 일명 생선가시 그릴

하지만 현대의 저가차 이미지와 과거의 악명(?)을 기억하고 있는 럭셔리 자동차의 오너들이 3만 불대의 현대차를 선택해 주겠느냐하는 문제는 쉽게 결론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들을 끌어드리는 방법은 면모를 일신한 새로운 브랜드의 출현이라는 것이 위에 언급한 미국 네티즌들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일단 현대는 사운을 건 도박을 하기 보다는 관망을 하기로 한껏 같습니다. 한국에서 현대와 애써 분리하려는 노력과는 달리 미국에서 제네시스는 현대로써 팔릴 예정이니까요. 그런데 서두에 말씀드렸다시피 현대가 자동차의 전면부 라디에이터 그릴이나 후드에 보통 들어가는 자동차 메이커 엠블럼을 넣지 않고 뒷 트렁크 부분에만 현대라는 메이커 이름을 넣는다고 합니다. 즉, 적어도 정면에서는 무슨 메이커의 차인지 모르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어렸을 적에 본 만화(혹은 드라마) 생각이 납니다. 아들은 서울에서 명문대를 나오고 대기업에서 촉망받는 사원이 되어 사장의 딸과 교제 중이었는데 시골에서 아들을 보기위해 상경한 아버지는 아들이 초라한 모습의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기를 원하지 않았던 모습 말입니다. 현대는 자신의 미국에서의 초라한 이미지를 그냥 두면 잘 나갈지도 모르는 잘난 자식인 제네시스에 덧씌워서 앞길을 막고 싶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한국의 제네시스도 현대의 엠블럼이 사용되지 않고 미국에서도 현대의 엠블럼이 사라집니다. 제네시스가 인격이 있다면 어떤 심정이 될까요. 홍길동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억울한 심정일까요 아니면 부끄러운 아버지의 모습을 감추고라도 성공하고 싶어 할까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대가 미국에서 제네시스를 선보이면서 한 말은 제네시스가 미국 소비자들에게 각인된 저가차 메이커인 현대의 이미지를 올려줄 것이라는 것이었는데 현대의 고민은 이해를 하면서도 현대 엠블럼도 없는 차가 어떻게 현대의 이미지를 올려 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