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붕괴 직전의 미국과 현재 한국의 공통점은 전 글에서 살펴보았고 이제 다른 점을 두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다른 점의 첫 번째는 LTV입니다. 이게 바로 정부가 믿는 구석인 듯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근거가 LTV(loan-to-value ratio, 담보대출 인정비율)가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경우 40% 정도라는 것입니다. 즉, 집 값이 1억의 가치가 있다면 이에 따른 대출은 4천만 원에 불과하니 최악의 경우 집 값이 반 값으로 폭락해서 5천만 원이 되더라도 은행은 여전히 담보로 잡은 주택을 차압 하기만 하면 충분히 손실을 만회할 수 있으니 주택가격 폭락이 미국과 같은 금융기관 부실화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2007년 전에는 주택 대출시 주택 가격의 80% 정도를 대출해주는 것이 관행이었고 그나마 남은 20%도 HELOC(home equity line of credit)이라는 이름으로 대출이 가능했었기에 내 돈 한 푼 없이 집을 살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서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가운데 주택 구입자가 대출을 못 갚게 되면 집을 차압 해서 팔아도 은행은 상당한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이 현실화된 것이 2008년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럼 한국은 이것보다 상황이 상당히 좋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LTV가 낮아도 부동산 시장이 붕괴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일이 터졌을 때 금융기관 부실화의 가능성만 낮다는 것 일뿐. 정부가 “최소한 은행은 안 망할 것이다.”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지금의 정부의 대처는 참으로 안일한 것을 보면 이게 오히려 독인 것도 같습니다.
두 번째 다른 점은 위에 첫 번째로 언급한 LTV와는 달리 오히려 미국보다 우리 상황이 더 좋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바로 국민의 소득과 주택가격의 괴리입니다. 일인당 GDP가 2만불 정도에 불과한 한국에서 2011년 6월 현재 전국 아파트 가격 평균이 2억 5천만 원이라고 합니다. 일인당 GDP는 4만 7천불 정도인 미국은 주택 가격 붕괴 직전의 주택 가격이(median price) 2억 3천만 원 정도였습니다. 미국에서는 흔히 연봉의 3 - 4배 정도의 주택을 구입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데 이를 넘어서 4배 이상 올라가면서 탈이 났습니다. (참고로 미국의 가구당 평균소득의 미국 일인당 GDP와 거의 비슷한 5만불 정도이고 한국의 가구당 평균소득은 3000만원 정도로 일인당 GDP보다 조금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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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재) |
서울 (현재) |
미국 (2007년) |
일인당 GDP |
2만불 가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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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 7천불 가량 |
가구당 평균소득 |
3천만원 |
4천 3백만원 |
5만불 가량 |
평균 집값(한국은 아파트 가격) |
2억 5천 858만원 |
5억 2천 878만원 |
23만불 가량 |
한국은 이런 기준으로 보면 아파트가 일인당 GDP의 13 배가 되고 가구당 평균소득으로 하면 8.6배가 됩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으니까 부동산이 비싼 것도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런 생각은 개별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두고 볼 때 적용할만한 법칙이라고 봅니다. 즉, 부동산 가격이 국토가 넓은 미국에서도 인구밀도가 높은 맨하탄은 비싸고, 국토가 좁은 한국에서 시골은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나라 전반적인 아파트 가격이 비싼 것은 인구밀도가 높다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나라의 평균적인 주택가격은 결국은 그 나라 국민들의 소득에 맞게 수렴해가는 것이 정상적인 가격이라고 봅니다. 일본에서도 부동산 거품이 한참이었던 1980년대 주택가격은 평균 소득의 5-8배까지 올랐다가 붕괴를 겪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은 아무리 인구밀도가 높고 집이 귀해도 살 사람이 살만한 가격이어야 주택의 가격이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위에 말한 미국에서 적정 주택 가격이 연봉의 3-4배라는 것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대개 미국 사람들이 세전(稅前) 연봉의 20-30%는 세금으로 나가기 때문에 연봉이 6만불(6천만 원)정도라면 손에 쥐는 손은 4천 5백만 원 정도가 됩니다. 이를 12로 나누면 매월 380만원 정도가 될 것이고 연봉의 3-4배 사이인 22만불(2억 2천) 정도 되는 주택을 소유한 사람이 30년 분할 상환하는 모기지 론을 얻을 경우 매달 불입하는 원리금이 (이자와 계약금에 따라 다르지만) 1백 만원에서 1백 5십만 원 정도 예상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전체 380만원에서 대충 30%인 130만원 정도를 제하면 60% 정도인 250만원이 남는데 이 정도는 남아야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온 수치입니다.
그럼 서울의 아파트를 가지고 계산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서울 가구당 평균 소득은 360만원인데 아파트 평균 가격은 5억 2천만 원입니다. 360만원 받아서 세금으로 10%를 뗀다고 하면 325만원 정도가 남는데 이 돈을 전부 30년짜리 아파트 대출에 집어 넣어야 5억 2천만 원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습니다. 생활비는 0원이어야 가능한 아파트 구입 시나리오입니다. 아무리 서울이 면적에 비해 인구가 많다지만 이게 과연 적절한 아파트 가격이냐에 대해서 의문이 생길 법 합니다.
아파트 값도 결국은 시장 경제 원리에 의해서 정해지겠지만 그렇다고 사회 구성원들의 소득과 무관하게 끝도 없이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계속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부동산 가격을 떠받치는 정책을 쓰는 모습을 보면 아파트 가격이 끝도 없이 오를 수 있다고 믿고 있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냉엄합니다. 정부가 최근 3년간 각종 투기 조장 정책을 펴고 있음에도 현재의 아파트 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것을 알기에 하락 추세가 반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그 사이에 대폭락이 오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모로 신기하기도 하지만 2006년과 2007년 부동산 폭등기에 대거 대출로 집을 산 사람들이 원금을 이자와 함께 상황하기 시작하는 내년이 오면 아파트 매물이 본격적으로 더 많이 나올 것이 예상이 됩니다. 그러면 아파트를 빨리 처분할수록 손해가 덜할 것이므로 앞다투어 아파트를 팔려는 경쟁이 붙다 보면 아파트 가격의 급격한 하락도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그럼 대통령과 경제 부처 장관들은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이런 일이 올 줄은 누구도 몰랐던 일이라고요. 한국은행 총재는 그럴 것입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에 정책 운용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이죠. 이렇게 남 탓만 하는 가운데 부동산 붕괴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이 커질 2013년경에 신문에는 서두에 제가 소개한 것과 같은 칼럼이 올라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위기가 올 것을 알았는데 왜 정부는 몰랐다고 하나?” 뭐 이런 글 말이죠.
물론 기적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붕괴가 없을 수도 있겠지요. 그럼 미국의 나쁜 점은 다 닮고 장점은 하나도 닮지 않은 한국의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끝끝내 버텨내면 좋은 것일까요? 이 역시 난감합니다. 오를 대로 올라버린 아파트 가격에 맞춰 소득이 따라가지 못한 다수의 서민과 중산층은 평생 전월세를 전전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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