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동차의 독과점을 이용한 국내 소비자 홀대정책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현대차를 타든 타지 않든 현대를 싫어하는 국내 소비자가 꽤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대표기업인데 소비자들이 이런 정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벼이 여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차량 판매가액 기준으로 독일의 BMW와 벤츠가 GM 대우를 제치고 한국 시장에서 각각 4위와 5위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100만대의 생산 규모를 가지고 있고 2만명 가량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데도 6위로 밀린 GM 대우의 굴욕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BMW와 벤츠의 이러한 부상은 결국은 경쟁이 심한 고급차 부문에서 현대의 고가 정책이 실패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르노삼성이나 기아에서는 어차피 이런 고급차를 만들지도 않고 있으므로 제네시스가 국산차로는 유일한 대표선수인데 그만큼 시장을 많이 내주었다는 것이니까요. (물론 수입 외제차의 가격 경쟁력이 그리 높지 않았을 때도 외제차를 타는 사람은 항상 있어왔습니다만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았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수입차 점유율이 10%를 바라본다는 지금 돌아봐도 수입차 점유율 1-2% 하던 시절이 그리 옛날도 아닙니다.)
국내의 이런 성적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의 현대차에 대한 평판은 그야말로 날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 블로그, 포탈 사이트, 자동차 사이트에서 독자들의 현대차에 대한 평을 읽어보면 현대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건 소유하고 있건 호평이 넘쳐나고 있어서 일부 미국 독자들조차 현대가 댓글 알바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정도입니다. 불과 2005년경만 해도 자동차 잡지에서 ‘현대가 옛날에는 형편없었는데 요즘은 꽤 괜찮은 차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면 독자의 댓글 반응은 70%- 80%가 ‘현대는 형편없다’, ‘기사내용 못 믿겠다’, ‘아무리 그래도 현대를 사기는 꺼려진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2008년 제네시스가 출시될 때쯤 되니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5대 5를 살짝 넘어서서 긍정적인 평가가 많아지더니 올해 YF 소나타 출시와 함께 어느 순간엔가 긍정적인 평가가 대세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10-20%의 현대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이들은 대부분 뚜렷한 논리조차 갖추지 못한 전형적인 악플러가 많아서 적어도 인터넷 상에서 현대는 비호감에서 호감 브랜드로 확실히 돌아섰습니다. 물론 블로거나 네티즌은 일반 국민보다 약간 사고가 앞서가는 경향이 있어서 미국인들이 다 현대에 호의적이라는 식으로 평가하기에는 시기상조이지만 적어도 인터넷에서나마 현대에 대한 이런 긍정적인 평가가 대세가 된 것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대를 당혹스럽게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항상 세상사가 그렇듯이 일의 시작은 한참 잘 나가려고 하는 상황에서 터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 2010년 5월 6일 미국의 모 자동차 사이트의 YF 소나타 관련 포럼에 아래와 같은 글이 올라왔습니다.
영어를 읽기 싫은 분들을 위해 정리를 해드리자면 미국의 한 소비자가 TF 소나타를 구입했는데 구입 2주만 에 대형사고가 날 뻔 했다고 합니다. 내용인즉 운행 중에 갑자기 핸들(영어로는 steering wheel이나 한국말로 이렇게 굳어졌으므로 그냥 핸들로 표현합니다.)이 저절로 한 쪽으로 돌아가면서 차가 차선을 이탈해서 대형사고가 날 뻔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비자는 현대딜러를 찾아가서 따졌고 두 명의 한국인이(아마도 엔지니어인듯) 와서 차량을 보고 나서는 차량을 운행금지 시켰다는 이야기입니다. source; yahoo auto
이후에 이 댓글이 올라오고 나서 이 게시판은 한동안 난리가 났었습니다. 이미 대다수의 미국인 네티즌들은 현대에 대해 호감으로 돌아선 때문이기도 하고, 게시판 자체가 YF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서 그랬는지 대다수가 이 글을 올린 사람을 믿을 수가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자동차가 저절로 핸들이 돌아가느냐,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는 의견이 대세였고 급기야 이 글을 올린 사람에게 어느 현대 딜러쉽에서 차를 샀는지 대라, 하다못해 네가 진짜 소나타를 샀다는 인증 샷이라도 올려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일부는 도요타나 GM의 영업사원이 잘나가는 소나타를 흠집 내고자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했습니다.
이 글을 올린 주인공은 현재 수리가 진행 중이므로 당분간은 현대 딜러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면 관련 현대 딜러의 이름을 대지 않았고 구체적인 근거를 대지 않는 글쓴이의 태도에 게시판의 다른 회원들의 의심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다가 이 글쓴이는 여러 사람들로 계속된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관련 게시판에서 홀연히 사라져서 역시 도요타 등 경쟁사의 영업 사원이 맞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 2달 정도 후인 6월말 해당 글쓴이는 다시 게시판에 나타나서 현대 측의 처리내용에 대한 불만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유튜브에 자신의 소나타의 동영상을 전격 공개했습니다. 이 동영상에는 시동을 걸고 나서 소나타의 핸들이 저절로 움직이는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동영상을 본 미국 네티즌들은 경악했습니다. 이제 상황은 급반전되어서 현대 소나타에 분명히 조향장치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사람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이는 소수의 소나타에만 일어나는 문제라고 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하는 사람이 더 많았으나 소나타 오너들 사이에 불안감이 퍼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오너들도 나도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핸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문제는 대개 타이어의 밸런스 문제이기 쉬운데 이런 문제까지도 불안감을 가지고 글을 올리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불안감을 느낀 소나타 오너들이 미국 현대자동차 법인에 전화를 거는 일이 빈번해지고 자신의 자동차를 구입한 딜러들에게 문의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문의에 대해서 현대 측에서는 그런 조향장치의 문제로 신고를 받은 적도 없다고 했고 차를 판 딜러들도 차에는 문제가 없으니 그냥 타라는 이야기 뿐이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이는 미국에 수많은 자동차 사이트 게시판 중의 하나에서 일어난 문제일 뿐이어서 아직 다른 사이트에 파급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YF 소나타는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점차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습니다. 7월말에는 얼마나 잘 팔렸는지 존 크라프칙 미국 현대법인 사장은 기자들에게 소나타 물량 공급이 달려서 차를 더 팔고 싶어도 못 판다는 식으로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지난 8월 소나타는 마의 20,000대 벽을 돌파해 21,399대를 판매해서 미국에서 중형차 부문 3위(전체로는 6위)를 차지했습니다. 3만대 정도되는 도요타 캠리와 2만 5천대 정도의 혼다 어코드의 뒤를 잇는 것으로서 중형 세단의 강자인 닛산 알티마, 시보레의 말리부, 포드의 퓨전 등을 제치고 달성한 성적이라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한 성과였습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현대 소나타가 2만대를 넘게 판 적이 한번 더 있긴 했습니다. 오토옵저버에 따르면 2007년 12월 현대는 NF 소나타를 무려 24,000여대를 판 적이 있었는데 사실 이 특이한 성과 뒤에는 대당 무려 4000불이 넘는 할인 마케팅이 있었습니다. 당시 현대의 중형차 소나타는 파격적인 세일덕분에 타사의 준중형 세단과 가격에서 비교를 당하는 상황이어서(옵티마를 아반테 가격에 살 수 있다면 어떨지 짐작해보시길) 제대로 인정할만한 성과가 아니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듯이 미주 현대법인에서 발표한 소나타의 대당 판매가격은 혼다 어코드를 뛰어넘었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전의 글에서도 누차 말했듯이 90% 품질의 차를 80% 가격에 파는 시대에서 105% 품질의 차를 100%의 가격(혹은 그 이상)에 파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제 가히 소나타의 전성시대가 열리려는 참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현대 알라바마 공장의 생산 능력이 연간 30만대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만드는 월 3만대 정도의 차량에는 소나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산타페도 만듭니다. 더군다나 여기서 만들어진 차량 중(소나타와 산타페 둘 다) 5000대 가량은 캐나다로 보내집니다. (현재 캐나다에서도 현대가 종합 판매 순위에서 혼다를 누르고 돌풍을 일으키는 상황이라 캐나다 판매량도 무시하기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하여간 현대에서는 지금의 인기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지 올 6월만해도 알라바마 공장에서 곧 미국에서 출시할 현대 신형 엘란트라(아반테 MD)를 만들려고까지 하기도 했는데 소나타의 물량이 달리자 이 계획을 취소한 것은 물론 기존에 있던 산타페마저도 아예 기아의 조지아 공장으로 보내어 만들기로 확정한 상황입니다. 어쨌거나 차가 없어서 못 파는데 딜러들에게 할인금을 많이 지급할 이유가 없으니 현대의 현재 상황은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지난 7월 31일 5월 달부터 제기되어온 사소한 문제를 부인으로 일관하며 무시하던 현대에게 사건의 뇌관이 터졌습니다. 미국 도로교통 안전국(NHTSA)에서 소나타의 조향장치 문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오토 블로그 뉴스 캡처
'조향장치 결함' 쏘나타, 미국서 리콜되나?
하지만 현대에 우호적인 한국 쪽 언론의 반응은 도요타가 잘나가다가 급발진 문제로 리콜을 받고 판매가 주춤했던 사례를 미국 정부의 도요타에 견제로 볼 수 있듯이 이번 조사 조치도 갑자기 잘 나가는 현대에 대한 견제가 아니겠느냐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에서는 이는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며 단순히 조립 과정의 불량이 발생한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일단 조사를 지켜봐야 하겠습니다만 지금 한참 소나타의 판매가 오르고 있고 더 많은 공급을 위한 길을 터 놓은 상황에서 혹시라도 구조적인 문제가 발견되어 리콜을 하게 된다는 것은 현대에게는 악몽과 같은 상황일 것입니다.
미국 언론에서는 혹시 현재 7위권이기는 하지만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서 현대가 가까운 미래에 닛산, 혼다와 크라이슬러를 제치고 미국 내 빅 4로 자리매김을 할 것인가가 한참 논쟁 중일 정도로 현대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데 현대 판매의 33%를 차지하는 volume seller인 소나타가 이런 위기를 당한다는 것은 현대의 판매에 분명히 치명타가 될 것입니다.
저도 답답했던 것은 문제가 무엇이든 간에 왜 현대는 소비자의 정당한 불만제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하다못해 차량 판매 2주 만에 차가 이렇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면 새 차로라도 바꾸어주었으면 미국 정부 조사가 아니라 아마도 한 명의 열성팬을 확보할 기회였을 것입니다.) 석 달이나 끌다가 결국 미국 도로교통안전국 조사까지 가게 만들어서 뉴스거리를 만들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나가는 대기업이라도 위기관기를 제대로 못해서 소비자에게 지탄받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우습게도 현대가 미국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는 이유로 꼽히는 것이 미국 소비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만 보면 현대도 역시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았던 다른 기업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명성이라는 것이 쌓기는 힘들지만 잃기는 쉽습니다. 현대가 미국에서 현재 받는 호의적인 평가는 지난 10년간 힘겹게 쌓은 것입니다. 적어도 현재 미국 인터넷 상의 분위기는 현대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조차도 악플로 평가될 정도로 좋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변심하기 쉽고 현대차는 도요타나 혼다와 같이 30-40년에 걸쳐서 쌓은 소비자들의 신뢰와 같은 것이 없습니다.
이번 조향장치 관련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관심이 많이 갑니다만 이와는 별개로 현대의 초기 대응은 아쉽기만 합니다. 현대는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서 소비자에게 더욱 귀를 기울이는 회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가 이미 고가 정책으로 국내에서 일부 소비자들에게 받는 지탄을 받는다는 사실이나 대형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잃고 외제차들에게 안방을 내주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면 지금도 그렇지만 나중에 현대가 미국에서 진정으로 잘 나가게 될 때 과연 이런 위기대처를 잘하겠느냐는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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