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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대한 오해와 진실

조류독감, 새똥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

제가 미국에 와서 의사생활을 시작하면서 느낀 것은 미국과 한국이 지리적으로도 멀지만 사람들이 걸리는 병도 조금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암을 예로 들어봐도 미국에는 대장암이 흔하고 한국에는 위암이 흔하며, 미국에는 유방암이 흔한데 한국에는 자궁암이 많았습니다. 이런 사실은 이미 의과대학 시절에 다 배운 것들이고 한국의 암 발병 추세에도 식단의 서구화 등의 영향으로 대장암과 유방암이 증가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암 뿐만이 아니고 다른 병들도 발생률이 다르다는 것도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염병을 예로 들면 미국은 에이즈가 많고 한국은 결핵이 많았습니다. 이런 감염성 질환의 발병율의 차이들도 역시 개인위생이나 성문화의 차이 등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만 어떤 때는 감염성 질환을 비롯한 이런 모든 질병에 대한 감수성의 차이가 민족별로 다른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지난 2002년 중국의 광동지방과 캐나다의 퀘벡지방의 중국인들을 중심으로 사스가 유행이었을 때 다행히도 한국에는 사스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왜 유전적으로 유사한 중국인은 사스에 그렇게 많이 걸리고 한국인은 걸리지 않았나 분석을 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국내외 언론에서는 김치가 사스뿐만이 아니고 조류독감에 대한 한국인의 저항력의 원천이 아니겠느냐고 분석하기도 했지만 정말 그런 것인지는 아직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혹시 정부에서는 공항 등에 설치해서 발열 상태의 입국자를 검색했던 열화상 장치를 사용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으로 사스감염의 파급을 막아냈다고 생각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역시 발열이 시작되기 전의 잠복기 환자가 국내에 유입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전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전염병의 국제간 파급을 막는 것은 국제적인 여행객을 완전 차단하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인간의 탐욕이 가져오는 위기

저는 여러 가지 장르의 영화를 다 좋아하지만 특히나 ‘레지던트 이블’, ‘28일후’라든가 ‘나는 전설이다’와 같은 인류에게 대재앙이 닥친 후에 극복해내는 과정을 그린 영화는 빼놓지 않고 보는 편입니다.  이런 영화가 저에게 특히 더 흥미로운 이유는 인류멸망의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고 싶기도 하지만 인류 멸망의 극한 상황이 인간의 손에 의해 초래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바이러스로 인한 인류멸망을 경고하는 영화 '나는 전설이다'


지금 지구상에서 인간이 주인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 대단한 인간은 1500년 이래도 무려 784종의 생물을 멸종시켰는데(World Conservation Union자료) 지구의 온도를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올리고 있고 100년 안에 전 세계의 주요생물이 멸종한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광우병이나 조류 독감도 사실은 발생 그 자체는 자연적이었을지 몰라도 파급은 인간들이 기여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많은 질병들이 과거에는 국지적인 영향밖에 미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것들인데 이제 교통의 발달로 전 세계의 인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만이 멸종의 위험에서 자유롭다는 생각 자체가 인류멸종의 위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전 세계의 감염학자들의 최고의 악몽과 같은 시나리오는 1918년과 1919년도에 전 세계적으로 최고 5000만 명을 사망케 했던(비공식적으로는 1억이라고도 함) 스페인 독감과 같은 감염이 재현되는 것입니다. 물론 과거의 경험을 교훈삼아 독감 예방 접종은 주요 선진국에서 연례행사가 되었고 이런 대재난을 방지하고자 사회 여러 부문의 노력이 있습니다만 얼마나 우리가 잘 하고 있는지 100% 확신은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돌연 나타난 조류 독감은 이곳 미국에서도 공중보건학적으로 상당한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 정부에서는 조류독감과 pandemic flu(전 세계 유행성의 독감)을 거의 같은 비중으로 취급하는 관련 정보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미국에 독감 대유행시의 환자 수용소



조류 독감 예삿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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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제 보건기구의 홈페이지에 가 봐도 조류독감 문제가 상당한 무게를 가지고 다루어지고 있고 수시로 업데이트된 뉴스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개막할 세계 보건기구의 총회에서도 다루어질 주요안건중의 하나가 바로 조류독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의 기사를 보면(제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조류독감으로 걱정하는 것은 조류독감으로 인한 농가의 손실이나 가금류의 판로가 막힌다는 금전적인 문제가 대부분이고 조류독감이 국민들에게 건강상의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걱정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서울 광진구의 어린이 공원에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발생했는데도 입장객을 통제하지 않았다는 뉴스도 보았는데 정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류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모든 타입이 다 인체감염을 일으키는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 유행중인 조류독감의 타입이 하필이면 고병원성의 H5N1로써 이는 드물지만 인체감염을 일으키며(특히 어린이들) 사망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조류에서 인간에게 온다는 것은 사실 그다지 무섭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조류를 가까이 두고 생활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보고된 조류독감은 대개 시골지역이었습니다. 인구밀도가 높지 않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으니 대유행에 대한 우려가 적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서울 한복판에서 생겼다고 합니다. 서울에서는 인구의 이동을 통제할 수도 없고 방어선을 설정할 수도 없습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이 이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인간에서 인간으로 감염을 쉽게 일으키는 타입으로 변하는 것인데 이런 일이 한참 먼 미래의 일일지 내일 당장 일어날지 모르지만(영영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게 지금 상상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이고 바로 국제보건기구나 미국정부에서 걱정하는 내용입니다.

국민은 태평하고 정부는 긴장해야 하는데 거꾸로 된 상황

지난 5월 13일 롯데호텔에서 AI 재조명 1차 세미나가 열렸다고 합니다. 실제보다 부풀려져 국민적 공포를 일으키고 있는 조류독감에 대해 국민을 안심시킬 목적이었다고 하는데 신문기사 상으로 보면 전문가 입장에서 합당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잘 전달한 것으로 보이고 특히 조류독감에 걸린 가금류조차도 익혀먹으면 건강에 위해가 없다는 내용 등은 국민들이 알아야 할 과학적인 사실로써 반드시 필요한 정보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신문 상으로만 접해서 실제로 언급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조류독감의 주요 인체 감염 경로라고 알려진 조류의 분변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었습니다. 조류 독감에 감염된 새의 분변이 배설되면 이 분변이 공기 중에서 건조되고 이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돌아다니다가 인체에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집에서 기르는 닭, 오리와는 달리 우리 주변에 흔한 비둘기는 조류독감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고 하니 다행입니다마는 새의 분변을 보고 어떤 새가 떨어뜨린 지 알 수는 없는 만큼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물에서 생활하는 철새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이는 조류독감 바이러스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많은 우리 국민들에게 조류독감의 공포까지 더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만 개인적 차원에서 조류독감의 예방차원에서 뭔가 한다면 새의 분변이 많은 지역에 가지 말고(철새 도래지이건 조류 농장이건) 또한 자동차 등에 떨어진 분변을 가급적 빨리 세차해버리는 것도 좋은 생각 같습니다. 또한 정부입장에서는 국민들에게 과장되게 알려진 조류독감의 실체를 잘 홍보하는 것도 좋지만 조류독감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정말 제대로 일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위에도 썼지만 어린이 공원에 조류독감이 발생했는데 규정대로 반경 1.5km에 통제선을 설치하기는커녕 어린이가 대부분 동반된 입장객을 들여보냈다고 하니 다른 것들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참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