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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대한 오해와 진실

굶어도 살이 빠지지 않는 진짜 이유

한국의 비만 클리닉의 경험으로는 환자분들의 대부분이 정말 비만해서 병원에 오는 것이 아니고 살이 ‘약간’ 찐 상태에서도 뭔가 더 살을 뺄 수 있는 비결을 찾아서 오시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보니 비만 환자들은 그야말로 정말 ‘환자’이더군요.

비만에도 급이 있습니다. 체질량지수를 이용해서 비만도를 분류하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인데 비만을 전문적으로 치료하지 않는 저 같은 의사들도 당뇨, 고혈압, 관절염 등 다른 의학적인 문제 때문에 방문한 고도 비만환자를 많이 보기 때문에 비만 환자를 대충이라도 분류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런데 환자를 분류할 때 의학적으로 체질량 지수를 계산하는 것보다도 가장 쉽게 와 닿는 것이 바로 무식하게 그냥 몸무게를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거대한 미국인들

처음에 미국에서 병원 일을 시작할 때 가장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가 도량형의 차이에 대한 감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키가 170cm이고 몸무게가 70kg이라면 감이 정확히 오지만 5피트7인치에 155파운드라고 하면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제 키와 몸무게도 몰랐으니까 말할 필요도 없었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감이 없어도 환자가 200파운드니, 300파운드니 하는 말은 일단 거대한 몸집이겠구나 하고 쉽게 감이 왔습니다.

캐나다에서 온 닥터 라카스의 말에 의하면 자기는 400파운드보다 더 나가는 환자도 본 적이 있는데 환자가 병원에 입원할 때 너무 몸집이 커서 집의 벽을 부수고 환자를 기중기 비슷한 것으로 꺼내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한지 비교적 초기에 들은 이야기라 그때는 도저히 그런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만 지금 시간이 많이 지나고 보니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충분히 듭니다.

보통 체질량지수가 40이 넘으면 미국에서는 병적인 비만(morbid obesity) 혹은 고도비만으로 분류가 됩니다. 이 정도가 되려면 키가 170cm인 사람의 경우 115kg가 넘으면 됩니다. 사실 100kg넘는 사람을 한국에서는 거의 본 일이 없습니다만 가장 근접했던 경우가 제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는 몸무게가 85kg가 넘는 비만한 친구였는데 넘었는데 군대를 빠지고 싶어서(별로 건전한 사고는 아니었습니다만) 자기가 억지로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면서 95kg정도까지 몸무게를 늘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살이 찔수록 숨이 차고 몸이 힘이 들어서 도저히 체중 불리기를 계속할 수 없어서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이 친구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확실히는 나지 않는데 방위를 갔다는 것 같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운동을 하지 않고도 체중을 감량 할 수 있습니다.



비만이 가져오는 건강문제

하여간 비만은 미국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현재 미국 인구의 2/3가 과체중이고 그 중은 절반(미국 인구의 1/3)은 비만의 분류에 해당됩니다. 지금도 비만인구는 계속 느는 추세이고 소아 비만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비만은 계속 늘어날 것이 확실시 됩니다. 한국도 놀랍게도 성인 비만이 전 인구의 1/3로 나오고 있습니다.(물론 미국인들이 전반적으로 더 뚱뚱하지만 비만의 진단기준이 한국인에서는 체질량 지수가 25이상이고 미국은 30이상인 차이가 있어서 유병률은 비슷하게 나옵니다.)

비만한 사람은 당뇨, 고혈압, 심부전, 골관절염 등의 질환 뿐 아니라 각종 암, 우울증, 심지어는 각종 피부병에 걸리기도 더 쉽습니다. 여기서 비만의 위해에 대해서 다 언급할 수는 없지만 하여간 비만은 그냥 보기에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고 직접적으로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병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비만 클리닉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만났던 29세의 여성인 L씨가 기억에 납니다. 아무리 봐도 날씬할 뿐 살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자신의 팔, 허벅지, 아랫배 등의 살을 걱정하며 조그만 체중 증가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지속적인 상담을 원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에서도 각종 부위별 비만에 대한 치료의 옵션이 있기는 했지만 저는 이런 치료를 권장하지 않았고 이 분의 경우도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고 안심시켜드리는 것이 제가 했던 일의 전부였습니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이유는?

그런데 어느 날 이 분의 고민 중의 하나는 왜 굶을 때는 살이 조금 빠졌다가 별로 먹지 않아도 조금만 있으면 살이 다시 찌느냐는 것이었는데 칼로리 섭취가 분명히 전반적으로 줄었는데 몸무게가 줄지 않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은 아침도 대개 거르고 점심 한 끼는 잘 먹지만 저녁도 간단히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는데 이런 눈물겨운 노력이 왜 살을 빼는데 역효과가 나는지 이 분 뿐만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분들이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중에 체중 감량을 하려면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면 체중이 준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맞는 이야기이지만 조심스런 해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의학이나 생물학을 하시는 분만 아니고 이미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신 기초대사량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하루에 2000칼로리(kcal, 혹은 대칼로리)의 영양을 섭취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매일 매일 우리의 운동량만으로 이 모든 칼로리가 소모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급격히 증가하는 미국의 고도비만인구


물론 개개인의 운동의 정도는 편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예를 들어 사무직 근로자와 건설 노동자의 운동량이 같을 수는 없겠지요) 일률적으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만 이 기초대사량은 비교적 사람에 따라 편차가 적은 편입니다. 이 기초대사로 소모되는 칼로리를 보통 60%정도로 잡습니다.(생각보다 훨씬 많지 않습니까?) 이 기초대사라는 것은 심장박동, 체온유지와 세포단위의 각종 대사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기초대사량과 매일 에너지 소모량

기초대사량을 계산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은 자신의 몸무게에 24를 곱하는 것입니다. 즉 60kg인 사람의 기초대사량은 60x24=1440kcal이 기초대사량으로 매일 소모되는 열량입니다. 남자, 소아가 기초대사량이 약간 더 높고 인터넷에 보면 기초대사량을 높인다는 식품, 운동 등이 있던데 조심스런 해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가만히 누워있는데도 살이 빠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인생에 쉬운 일이 없는 것 다 아는 이야기이지요.

그리고 또 최고 10%까지 잡는 것이 식사로 인해 소모되는 열 발생 에너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쩌면 말 자체가 이상한데 식사를 하면 그 자체로 에너지 소모가 일어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식사를 하고나서 소화와 흡수를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초대사와 별도로 추가로 에너지 소모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해가 없어야 할 것이 식사로 들어오는 칼로리가 이로 소모되는 칼로리의 10배가 되기 때문에 더 먹음으로써 살을 빼는 비결은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운동에 의한 에너지 소모인데 이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기초대사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운동을 하면 얼마만큼의 칼로리가 소모된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들은 표준적인 체형의 사람이 특정 운동을 한다고 가정하는 추정치입니다. 별로 운동을 안하는 사람은 기초대사량에 1.3을 곱하고 적당한 정도로 활발한 신체 활동을 하는 사람은 1.5를 곱해주면 매일 에너지 소모량이 자동적으로 계산됩니다.

아까 위에서 언급한 60kg의 몸무게의 성인이 만약 사무직 회사원이라고 생각하면 이 사람이 운동으로 소모하는 칼로리는 매일 1440x1.3=1872kcal이 되겠네요. 이 사람이 살을 빼고 싶으면 매일 식사로 들어오는 칼로리가 1870kcal 보다 적으면 살이 빠지게 됩니다. 만약 1500kcal을 매일 먹으면 1872-1500=372kcal이 되니까 매일 40g 정도의 지방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런 식사를 70일 정도를 하면 3kg을 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매일 1200kcal을 먹으면 3kg 빼는 데 40일 정도가 걸리는군요.



굶는데 살이 찌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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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일반인들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L씨의 궁금증은 칼로리 섭취를 줄이기 위해 아침을 꼬박꼬박 굶어주고 게다가 가끔 하루씩 아예 아무것도 안 먹다시피 하는데 몸무게는 왜 그대로 인가 하는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굶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하루 굶으면 몸무게가 보기 좋게 쑥 빠집니다. 하루 1-2kg 빠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식사를 다시 시작해서 두세 끼만 정상식사를 하면 금방 원래 몸무게로 돌아옵니다.

우리 몸의 55-70%가 수분이라는 것 다 아실 겁니다. 여자 분의 경우 지방의 분포가 좀 많아서 55-60%를 수분으로 잡습니다. 몸무게가 60kg 이라면 33kg 정도가 수분인 셈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굶으면 이 수분 섭취가 일단 현저히 줄게 됩니다. 그리고 대사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단 체내에 저장된 포도당 성분이 소모되고 나면 다음 순서는 근육 자체가 파괴되어 포도당으로 바뀌어져 대사에 사용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체중감량을 하고자 하는 목표는 체내의 수분을 줄이거나 근육을 줄이는 것이 아니고 지방을 빼는 것일 겁니다. 이 지방의 분해는 금식을 시작하고 3-5일 지나야 시작이 됩니다. 즉 3일까지는 밥을 굶어도 지방의 분해가 없이 체내의 수분과 근육만 손실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수분은 정상적인 식사를 몇 끼만 하면 즉시 재 보충이 되고 근육을 잃는 것은 각종 칼로리를 태울 엔진을 잃는 것과 마찬 가지므로 결국 잠시 줄었던 체중은 금방 정상화가 되고 체내의 지방 량은 줄지 않고 장기적으로 칼로리 소모를 더 못하게 되니까 체중이 오히려 늘지 않으면 다행이 됩니다.

살을 빼려면 아침을 먹어야 한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기초대사량에 문제가 생깁니다. 자주 금식(혹은 끼니 거르기)을 자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몸은 이를 영양분 섭취가 힘들기 때문에 기초대사량을 감소시키고 지방축적을 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입니다. 이는 인간의 몸이 무지해서가 아니고 수천 년간 충분한 영양분 섭취를 하지 못해온 상태에서 적응해온 인간의 몸의 생존 전략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렇게 마음대로 세끼를 먹는 것도 미국의 경우 겨우 100년 이내이고 한국의 경우 50년 이내이므로 그 이전의 수천 년간 우리 몸이 겪어야 했던 상습적인 굶주림을 생각하면 뭔가 먹을 것이 들어오면 열심히 지방의 형태로 저장해야 했던 사정이 잘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살을 빼기를 원하면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먹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끼를 꼬박꼬박 먹게 되면 우리 몸은 반대의 해석을 시작합니다. 에너지가 충분히 공급되는 것으로 알고 기초대사량을 서서히 올리는 것입니다. 다만 세끼를 먹는다고 과도한 칼로리를 섭취하면 안 되고 위에서 계산했듯이 하루 칼로리 소모량을 계산해서 그보다 적은 양을 섭취하면 되겠습니다.

조금 이야기가 어려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리하자면 살을 빼려면(지방을 줄이려면) 하루 세끼 꼬박 먹고 식사를 거르지 않아야 하며 전체 칼로리는 에너지 소모량보다 적게 조절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운동하지 않아도 살을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과정을 가속화 하려면 적당한 운동을 해주면 효과가 더 좋아지게 됩니다. 물론 다른 자잘한 변수들이 또 많이 있습니다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에 비만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