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인기를 끌었던 영화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한 영화가 있습니다. '로렌조 오일'이라는 영화인데 원인이 모르게 신경이 말라버려서 점차적으로 신체 마비가 오고 결국 사망으로 진행하는 희귀병인 '부신백질이영양증'에 걸린 아들을 살리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부모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영화가 특히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이 영화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한 가지는 의사들이 치료법이 없다고 포기한 상황에서 부모들은 포기하지 않고 의학이 전공도 아니었던 그들 스스로가 의학책을 찾아보며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여기서 개발된 치료제가 바로 환자의 이름을 딴 '로렌조 오일'입니다. 이 로렌조 오일이 이 병을 완치시키는 약은 아니었습니다만 부분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고 그 후로 이 질환의 치료에 실제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서 의사로서 부끄럽게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의사들이 포기한 질환에 대한 치료법을 환자의 부모들이 스스로 찾아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들이 암완치법을 숨기고 있다?
오래전에 만난 한 젊은 환자의 경우가 기억이 납니다. 아주 똑똑하고 진취적인 사람이었는데 저에게는 진균성 피부질환 때문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던 경우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젊은이와 암 치료에 관해 길게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의 어머니가 당시 초기 대장암으로 진단을 받았고 병원에서 여러 가지 치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암치료법에 대해 엄청난 공부를 스스로 찾아서 하고 여기에서 생긴 여러 가지 질문을 저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이의 질문의 핵심은 세상에 수많은 숨겨진 암치료법들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대개 자연적인 치료법이고 부작용도 없으며 비용도 아주 싼) 왜 의사들은 이러한 획기적인 치료법들을 무시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주장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심지어는 기존의 의료계와 제약업계가 결탁하여 수익이 별로 나지 않는 자연적인 치료법들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음모론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궁금해 하기도 했습니다. 암에 대한 값싸고 확실한 완치법이 개발되면 많은 의사들과 제약회사가 실업자가 될 것이니 암의 완치법을 이들이 숨기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더군요.
이미 수많은 재야의 혹은 민간의 치료법들이 보완 혹은 대체 의학의 범주로 포함되어 기존의학의 보조적인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저 자신이 이런 보완 대체의학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았던 터라 이 젊은이의 오해를 풀어주느라 진땀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서점에 가서 좀 찾아보니 기존의 정통의학의 한계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자신들의 새로운 치료법에 대해 홍보하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주로 일본과 미국에서 기원한 학설들이 많았고 또한 암 치료가 특히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사실 의사나 환자나 악성 종양이 정말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라는 것과 수술,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로 대표되는 암의 치료법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침습적인 이런 새로운 치료법들이 더 인기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서점가보다는 인터넷 상에 이런 치료법들이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각종 카페나 동호회를 중심으로 지식이 공유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암진단은 곧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였고 의학의 발전으로 악성 종양의 완치율이 놀랍게 올라가고 있는 요즘에도 암으로 확진이 되면 누구든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행히 치료가 잘되는 암이거나 초기 암인 경우 치료의 옵션도 다양하고 좋은 예후에 대한 희망도 크지만 만약 진단 자체가 이미 말기 암이라고 한다면 병원에서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단 1%의 완치의 확률만 있어도 전 재산을 걸어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에서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을 해보자면 미국 환자들이 약간 더 현대의학에 기반을 둔 과학적인 치료법을 신뢰하고 한국 환자들은 전통의학적인 치료법이나 대체의학적인 방법을 미국 환자들에 비해 더 선호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한국과 같은 민간의학의 전통이 없는 미국에서 산신령님이 점지해주었다는 천지산과 같은 약이 인기를 끌기는 무리이겠지만 약간의 현대의학적인 지식과 방법론을 상술과 교묘히 혼합해서 환자들을 유인하는 새로운 치료법들이 한국과 미국 둘 다 엄청나게 많습니다.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의사조차도 이런 주장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미국의 정부기구인 NCI (National Cancer Institute, 국립암센터)는 따로 보완대체 의학적인 암치료법의 효과와 부작용을 밝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상당히 많은 정보가 이미 인터넷으로 공개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여러분들이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몇 가지 흥미로운 치료법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비타민으로 암도 치료할 수 있을까
수많은 치료법 중에 비타민으로 암을 치료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비타민이야말로 천연의 영양소로 생각이 되고 (요즘은 합성 제품이 많습니다만) 복용에도 부작용이 없을 것 같으며 (사실 비타민 과다증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 자체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비타민 부족의 경우는 도움이 되나 과다 상태가 더 좋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암까지 치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입니까. 종양의 치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비타민을 이용한 암의 예방에 대해 잠깐 언급해야겠습니다.
비타민 A, C, E는 체내에서 항산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항산화 작용이라 함은 쉽게 말해 우리 체내에서 생겨나는 유독한 활성 산소를 중화하는 작용입니다. 이를 암 예방에 적용하는 근거는 몸에 나쁜 필요 이상의 활성 산소가 중화 처리되지 못하고 정상 세포를 공격하게 되면 (정확히는 세포내의 DNA) 정상 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므로 항산화제의 투여로 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논리인데 이러한 가설에 많은 의학자들이 이미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한 바가 있습니다. 결과를 종합해 보자면 실망스럽게도 이런 항산화 비타민들은 악성 종양 발생을 막는 효과가 없으며 비타민 A의 경우는 오히려 발암 확률을 높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의학을 하다 보면 가장 어려운 점이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점이 신체에는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직관적으로는 이렇게 하면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맞는데도 실제로 실험을 해 보면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비타민 C 등의 암 치료에 관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벨상까지 받았던 영국의 펄링 박사 (Linus Pauling Ph. D.)는 1976년 통상적인 권장량의 20배가 넘는 고용량의 비타민C가 암환자의 생존율을 300일 가량 증가시켰다는 암환자 100명에 대한 임상 실험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의학계에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연구의 설계 자체의 결함이 발견되어 이런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펄링 박사의 연구를 보완한 새로운 연구가 미국의 최고의 병원이라 인정을 받는 메이요 클리닉에서 시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1978년부터 세 차례나 연구 디자인을 약간씩 변경하면서 비타민 C의 항암 효과를 검토했지만 결론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각종 인터넷 사이트나 저술 등을 보면 비타민 C의 항암효과에 대한 주장들이 아직도 떠돌고 있습니다.
암을 굶겨 죽이거나 경찰이 잡아가거나
미국 하버드 의대의 포크만 교수 (Dr. Moses Judah Folkman)의 치료법은 더 신기한데도 효과가 입증되어 실제 임상에 적용되고 있는 예입니다. 포크만 교수는 원래 외과 의사였는데 악성 종양을 수술하다가 종양이 대개 인근 조직에서 혈류를 끌어와서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받고 노폐물을 내보낸다는 데에 착안하여 악성 종양이 성장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혈관 생성을 차단하는 물질을 개발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 전쟁 시 북한의 탱크가 쳐들어오는데 탱크가 지나가기 위해 공병대가 새로 길을 내야 한다고 한다면 탱크를 타깃으로 하기보다는 공병대를 타깃으로 한 것입니다. 2004년 미국 FDA (식약청)에 의해 대장암에 대한 치료제로 '아바스틴'이라는 약이 공인을 받은 이후로 날로 적응증을 넓혀가고 있어서 암 정복에 대한 기대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예로 요즘 관심을 받고 있는 '자연살해세포 (natural killer cell)'를 이용한 치료법은 아마도 비타민 C처럼 이론이 그럴듯한 치료법과 아바스틴처럼 이론 상의 효과가 실제 임상효과로 검증이 된 치료법의 중간에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자연살해세포는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림프구의 일종으로 체내에 침입한 바이러스나 체내에서 매일 저절로 생겨나는 암 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에 이름이 그렇게 붙었습니다. 즉 우리가 생활 속에서 매일 체내에 새로이 만들어지는 암 세포를 가지고 있는데 말하자면 이런 범죄자 (암세포)를 잡는 경찰 역할을 하는 자연살해세포 덕분에 암이 생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암 환자에서 연구를 해보면 이 자연살해세포가 감소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암 세포를 잡아먹는 세포니까 암세포가 많으면 이 세포도 많아져야 할 것 같은데 범죄자가 들끓는 도시에 경찰이 오히려 적다는 이야기입니다. 연구를 해보니 이 세포가 감소되었기 때문에 암이 마음대로 증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경우도 있고 (경찰이 적어서 범죄자가 많아진 상황) 반대로 암 자체가 이 면역세포를 감소시키는 작용도 있는데 (범죄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경찰의 수를 감소시키는 경우) 이에 더하여 현재 암 치료로 주로 사용하는 항암치료는 그 자체가 암세포를 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암세포에 대한 면역을 또한 더욱 약화시킵니다.
여기서 착안하여 특정 약제로 경찰 역할을 하는 자연살해세포를 증가시킬 수 있으면 자연적으로 체내의 면역 반응에 의해 암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는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뉴저지에 소재한 한 기업에서 이런 약이 개발되었다는 주장이 나와서 미국에서 텔레비전 방송에서 특집으로 다뤄지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소위 면역 증강 치료는 사기성이 높은 것으로 판명되어 이내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약품들의 문제는 그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았는데도 이 약품으로 자연살해세포의 기능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광고하고 약을 팔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국내 한 회사에서 발달된 세포 배양 기술에 힘입어 자연살해세포를 환자 본인에게서 추출하여 체외에서 증식시킨 후에 체내에 재주입하는 방법을 임상 실험 중이라고 합니다. 이 방법이 비타민 치료법처럼 이론 상으로는 괜찮은데 실제로는 별 효과가 없을지 아니면 아바스틴처럼 암치료 진전의 한 획을 그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존의 항암치료의 약점을 보완시켜주는 치료로서 기대를 모으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희망이 있다
의대 다닐 때 교수님들이 항상 하시던 말씀이
이었습니다. 암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현재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민간의학, 대체의학의 방법들이 난무하는 이유는 기존 현대의학계에서 악성 종양 완치의 열쇠를 쥐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50년 전에 비해서 암 환자의 생존율도 훨씬 좋아졌고 예전에는 치료하지 못했을 암들이 이제는 새로운 약과 방법으로 치료되고 있습니다.
음모론처럼 저도 차라리 의사나 제약업계 사람들이 암완치의 비결을 알고 있으면서도 감추고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최소한 의사나 제약업계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암을 완치시킬 수 있겠죠.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는 이 비결을 누설시킬 것이고 온 인류가 암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도 있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또한 가족이나 본인이 암에 진단되었을 때 로렌조의 아버지의 심정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을 백방으로 찾으려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될 수밖에 없습니다만 이런 사람들을 이용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감시 체계가 아쉽습니다.
암의 정복은 아직도 갈 길이 먼 과제입니다. 하지만 점차 다가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의사들이 암완치법을 숨기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 www. terraespiritual. locaweb.com.br /espiritismo /filme334.html
오래전에 만난 한 젊은 환자의 경우가 기억이 납니다. 아주 똑똑하고 진취적인 사람이었는데 저에게는 진균성 피부질환 때문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던 경우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젊은이와 암 치료에 관해 길게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의 어머니가 당시 초기 대장암으로 진단을 받았고 병원에서 여러 가지 치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암치료법에 대해 엄청난 공부를 스스로 찾아서 하고 여기에서 생긴 여러 가지 질문을 저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이의 질문의 핵심은 세상에 수많은 숨겨진 암치료법들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대개 자연적인 치료법이고 부작용도 없으며 비용도 아주 싼) 왜 의사들은 이러한 획기적인 치료법들을 무시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주장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심지어는 기존의 의료계와 제약업계가 결탁하여 수익이 별로 나지 않는 자연적인 치료법들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음모론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궁금해 하기도 했습니다. 암에 대한 값싸고 확실한 완치법이 개발되면 많은 의사들과 제약회사가 실업자가 될 것이니 암의 완치법을 이들이 숨기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더군요.
이미 수많은 재야의 혹은 민간의 치료법들이 보완 혹은 대체 의학의 범주로 포함되어 기존의학의 보조적인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저 자신이 이런 보완 대체의학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았던 터라 이 젊은이의 오해를 풀어주느라 진땀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서점에 가서 좀 찾아보니 기존의 정통의학의 한계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자신들의 새로운 치료법에 대해 홍보하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주로 일본과 미국에서 기원한 학설들이 많았고 또한 암 치료가 특히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사실 의사나 환자나 악성 종양이 정말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라는 것과 수술,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로 대표되는 암의 치료법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침습적인 이런 새로운 치료법들이 더 인기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서점가보다는 인터넷 상에 이런 치료법들이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각종 카페나 동호회를 중심으로 지식이 공유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암진단은 곧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였고 의학의 발전으로 악성 종양의 완치율이 놀랍게 올라가고 있는 요즘에도 암으로 확진이 되면 누구든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행히 치료가 잘되는 암이거나 초기 암인 경우 치료의 옵션도 다양하고 좋은 예후에 대한 희망도 크지만 만약 진단 자체가 이미 말기 암이라고 한다면 병원에서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단 1%의 완치의 확률만 있어도 전 재산을 걸어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에서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을 해보자면 미국 환자들이 약간 더 현대의학에 기반을 둔 과학적인 치료법을 신뢰하고 한국 환자들은 전통의학적인 치료법이나 대체의학적인 방법을 미국 환자들에 비해 더 선호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한국과 같은 민간의학의 전통이 없는 미국에서 산신령님이 점지해주었다는 천지산과 같은 약이 인기를 끌기는 무리이겠지만 약간의 현대의학적인 지식과 방법론을 상술과 교묘히 혼합해서 환자들을 유인하는 새로운 치료법들이 한국과 미국 둘 다 엄청나게 많습니다.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의사조차도 이런 주장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미국의 정부기구인 NCI (National Cancer Institute, 국립암센터)는 따로 보완대체 의학적인 암치료법의 효과와 부작용을 밝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상당히 많은 정보가 이미 인터넷으로 공개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여러분들이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몇 가지 흥미로운 치료법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비타민으로 암도 치료할 수 있을까
수많은 치료법 중에 비타민으로 암을 치료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비타민이야말로 천연의 영양소로 생각이 되고 (요즘은 합성 제품이 많습니다만) 복용에도 부작용이 없을 것 같으며 (사실 비타민 과다증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 자체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비타민 부족의 경우는 도움이 되나 과다 상태가 더 좋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암까지 치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입니까. 종양의 치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비타민을 이용한 암의 예방에 대해 잠깐 언급해야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flickr.com /photos /karen_d /2325217088 / sizes / s/
비타민 A, C, E는 체내에서 항산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항산화 작용이라 함은 쉽게 말해 우리 체내에서 생겨나는 유독한 활성 산소를 중화하는 작용입니다. 이를 암 예방에 적용하는 근거는 몸에 나쁜 필요 이상의 활성 산소가 중화 처리되지 못하고 정상 세포를 공격하게 되면 (정확히는 세포내의 DNA) 정상 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므로 항산화제의 투여로 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논리인데 이러한 가설에 많은 의학자들이 이미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한 바가 있습니다. 결과를 종합해 보자면 실망스럽게도 이런 항산화 비타민들은 악성 종양 발생을 막는 효과가 없으며 비타민 A의 경우는 오히려 발암 확률을 높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의학을 하다 보면 가장 어려운 점이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점이 신체에는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직관적으로는 이렇게 하면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맞는데도 실제로 실험을 해 보면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비타민 C 등의 암 치료에 관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벨상까지 받았던 영국의 펄링 박사 (Linus Pauling Ph. D.)는 1976년 통상적인 권장량의 20배가 넘는 고용량의 비타민C가 암환자의 생존율을 300일 가량 증가시켰다는 암환자 100명에 대한 임상 실험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의학계에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연구의 설계 자체의 결함이 발견되어 이런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펄링 박사의 연구를 보완한 새로운 연구가 미국의 최고의 병원이라 인정을 받는 메이요 클리닉에서 시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1978년부터 세 차례나 연구 디자인을 약간씩 변경하면서 비타민 C의 항암 효과를 검토했지만 결론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각종 인터넷 사이트나 저술 등을 보면 비타민 C의 항암효과에 대한 주장들이 아직도 떠돌고 있습니다.
암을 굶겨 죽이거나 경찰이 잡아가거나
미국 하버드 의대의 포크만 교수 (Dr. Moses Judah Folkman)의 치료법은 더 신기한데도 효과가 입증되어 실제 임상에 적용되고 있는 예입니다. 포크만 교수는 원래 외과 의사였는데 악성 종양을 수술하다가 종양이 대개 인근 조직에서 혈류를 끌어와서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받고 노폐물을 내보낸다는 데에 착안하여 악성 종양이 성장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혈관 생성을 차단하는 물질을 개발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 전쟁 시 북한의 탱크가 쳐들어오는데 탱크가 지나가기 위해 공병대가 새로 길을 내야 한다고 한다면 탱크를 타깃으로 하기보다는 공병대를 타깃으로 한 것입니다. 2004년 미국 FDA (식약청)에 의해 대장암에 대한 치료제로 '아바스틴'이라는 약이 공인을 받은 이후로 날로 적응증을 넓혀가고 있어서 암 정복에 대한 기대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예로 요즘 관심을 받고 있는 '자연살해세포 (natural killer cell)'를 이용한 치료법은 아마도 비타민 C처럼 이론이 그럴듯한 치료법과 아바스틴처럼 이론 상의 효과가 실제 임상효과로 검증이 된 치료법의 중간에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자연살해세포는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림프구의 일종으로 체내에 침입한 바이러스나 체내에서 매일 저절로 생겨나는 암 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에 이름이 그렇게 붙었습니다. 즉 우리가 생활 속에서 매일 체내에 새로이 만들어지는 암 세포를 가지고 있는데 말하자면 이런 범죄자 (암세포)를 잡는 경찰 역할을 하는 자연살해세포 덕분에 암이 생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암 환자에서 연구를 해보면 이 자연살해세포가 감소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암 세포를 잡아먹는 세포니까 암세포가 많으면 이 세포도 많아져야 할 것 같은데 범죄자가 들끓는 도시에 경찰이 오히려 적다는 이야기입니다. 연구를 해보니 이 세포가 감소되었기 때문에 암이 마음대로 증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경우도 있고 (경찰이 적어서 범죄자가 많아진 상황) 반대로 암 자체가 이 면역세포를 감소시키는 작용도 있는데 (범죄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경찰의 수를 감소시키는 경우) 이에 더하여 현재 암 치료로 주로 사용하는 항암치료는 그 자체가 암세포를 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암세포에 대한 면역을 또한 더욱 약화시킵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bio-pro. de /en /region /stern /magazin /04426 /index.html ?linkGlossaryTerms=0
여기서 착안하여 특정 약제로 경찰 역할을 하는 자연살해세포를 증가시킬 수 있으면 자연적으로 체내의 면역 반응에 의해 암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는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뉴저지에 소재한 한 기업에서 이런 약이 개발되었다는 주장이 나와서 미국에서 텔레비전 방송에서 특집으로 다뤄지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소위 면역 증강 치료는 사기성이 높은 것으로 판명되어 이내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약품들의 문제는 그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았는데도 이 약품으로 자연살해세포의 기능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광고하고 약을 팔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국내 한 회사에서 발달된 세포 배양 기술에 힘입어 자연살해세포를 환자 본인에게서 추출하여 체외에서 증식시킨 후에 체내에 재주입하는 방법을 임상 실험 중이라고 합니다. 이 방법이 비타민 치료법처럼 이론 상으로는 괜찮은데 실제로는 별 효과가 없을지 아니면 아바스틴처럼 암치료 진전의 한 획을 그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존의 항암치료의 약점을 보완시켜주는 치료로서 기대를 모으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희망이 있다
의대 다닐 때 교수님들이 항상 하시던 말씀이
"어떤 병이 치료법의 종류가 많다는 이야기는 그 병의 확실한 치료법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었습니다. 암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현재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민간의학, 대체의학의 방법들이 난무하는 이유는 기존 현대의학계에서 악성 종양 완치의 열쇠를 쥐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50년 전에 비해서 암 환자의 생존율도 훨씬 좋아졌고 예전에는 치료하지 못했을 암들이 이제는 새로운 약과 방법으로 치료되고 있습니다.
음모론처럼 저도 차라리 의사나 제약업계 사람들이 암완치의 비결을 알고 있으면서도 감추고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최소한 의사나 제약업계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암을 완치시킬 수 있겠죠.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는 이 비결을 누설시킬 것이고 온 인류가 암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도 있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또한 가족이나 본인이 암에 진단되었을 때 로렌조의 아버지의 심정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을 백방으로 찾으려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될 수밖에 없습니다만 이런 사람들을 이용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감시 체계가 아쉽습니다.
암의 정복은 아직도 갈 길이 먼 과제입니다. 하지만 점차 다가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건강에 대한 오해와 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부를 망치는 습관, 가꾸는 습관 (52) | 2008.07.22 |
---|---|
예쁜 발, 잘생긴 발을 만드는 법 (46) | 2008.07.07 |
굶어도 살이 빠지지 않는 진짜 이유 (91) | 2008.05.27 |
블로거들 함께 채식합시다 (40) | 2008.05.24 |
조류독감, 새똥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 (18) | 2008.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