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여름에 뉴욕에서도 한인들이 많이 산다는 플러싱의 한 병원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한인 환자도 많아서 작은 지역에서나마 한국인의 위세를 실감했습니다. 한번은 중환자실에 다른 볼 일로 갔다가 갑자기 흉통을 호소하시는 한국인 할머니 환자 주위에서 직원들이 말을 알아듣기 위해 쩔쩔매는 것을 보고 통역을 해주고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주었던 기억도 납니다. 의사로서 직접 환자를 치료해 주는 것뿐만이 아니고 그냥 통역을 도와주는 것도 상당히 뿌듯하고 보람이 있더군요. 그런데 이런 추억도 있었지만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조금 색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병원은 병원이 조금 작아서 물리치료실 내의 회의실을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의사들이 함께 씁니다. 회의를 하기도 하지만 점심도 먹고, 신문도 보고, 잡담도 하는 거의 휴게실과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직원들이 모여서 1달러씩 각출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뭐하느냐고 물어보니 로또 복권을 사기 위해 돈을 모은다고 하였습니다. 각각 1달러를 내서 11명이 11달러를 모아 로또를 사고 나중에 당첨이 되면 나눠 갖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낄 거냐고 하기에 물론 1달러를 보태서 12달러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뉴욕 지역의 메가 밀리언이라는(총 12개 주가 참여 중) 이 로또는 한국과 방식이 비슷합니다. 1달러를 내면 1에서 56까지의 숫자 중에서 다섯 개를 뽑고 다시 1에서 46까지의 숫자중 하나를 뽑아서 총 6개의 숫자를 뽑게 됩니다. 우리들은 12명이었기 때문에 총 12개의 숫자 조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1등의 확률이 대략 1억7천만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12개의 게임을 하면 1천400만중의 하나로 잭팟의 확률이 올라갈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돈도 물론 12명이 나눠야 합니다. 당시에 잭팟의 규모가 2천4백억 원 정도였으니까 12로 나누면 세전으로 200억 원 정도 됩니다. 여전히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미국 한 병원의 복권 공동 구매의 미풍양속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어차피 천문학적인 숫자라 12명이 힘을 합해도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 이들이 이런 게임방식을 이 친구들이 선호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뭐라고 번역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뉴욕 맨하탄에 마운트 사이나이병원(Mt. Sinai Hospital)이라고 있습니다. 혹시 고전적인 로맨스 영화 ‘러브스토리’를 보신 분이 아실지 모르겠는데 마지막 부분에 알리 맥그로우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찾은 병원이 바로 이 병원입니다.
그냥 상식에 도움이 되고자 말씀드리면 뉴욕의 4대 병원이 있습니다.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이 그 중 하나이고, 우리나라 인천 송도에 병원을 짓는다는 뉴욕의 장로교 병원(New York Presbyterian Hospital)이 다른 하나입니다. 이 병원은 아이비리그의 명문인 코넬대학과 콜럼비아대학의 의대가 연합해 만든 병원이고 뉴욕 대학교는 뉴욕대학병원(NYU 혹은 New York University)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 병원(Montefiore Medical Center)이 마지막 하나입니다.
어쨌거나 수년전에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의 물리치료실에 근무하는 물리치료사 10명 정도가 이와 똑같은 복권 게임을 했다고 합니다. 돈을 모아서 복권을 공동구매하고 당첨이 되면 공정하게 나누기로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잭팟에 당첨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릅니다만 잭팟이라고 하면 보통 2천억은 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한 사람이 당첨금을 수령해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팔자를 고칠 꿈에 부풀어 있는 나머지 직장 동료들은 얼마나 허탈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일설에는 돈을 가지고 도망간 것은 아니고 다른 직원들에게 돈을 나누기를 거부해서 재판에 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도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을 듣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많은 다른 병원 직원들 사이에서도 로또 광풍이 불었고 그 바람이 플러싱에 있는 병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복권이 당첨될 것에 대비한 경험
그러나 과거의 실수에서 배운 것은 이들이 순진하게 계주(?)의 도덕성에만 기대지는 않고 각각의 참가자가 한 종이에 모두 서명을 하고 복권을 놓고 복사한 후에 복권과 서명이 함께 복사된 종이를 나누어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권 추첨일을 기다리는 것이죠. 매 주 한 번씩 금요일마다 이런 재미있는 시간을 가지는데 투자되는 돈의 액수도 크지 않지만 혹시 200억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로 며칠을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이 복권은 일주일에 두 번 추첨을 합니다.)
저는 워낙에 이런 운이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하고 살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냥 동료들과 뭔가를 함께 한다는 면에서 이 복권 구입에 동참했다가 처음으로 복권을 샀던 그 날 퇴근한 후에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저녁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1년도 더 전에 보았던 뉴스를 기억을 했습니다. 이 뉴스에서는 복권에 당첨된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돈 때문에 불행해지고 말았던 사례를 보도하였는데 이런 뉴스를 생각해보니 결국은 돈이 있어도 돈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복권이 당첨되기 전에 미리 대비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계획이 있으면 들뜬 마음으로 돈을 낭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큰 집과 좋은 차를 사고, 돈을 어디어디에 투자를 하고, 누구에게 돈을 조금 나누어 주고, 빚을 갚고 하는 여러 가지 즐거운 공상을 하니 정말 시간이 짧더군요. 더군다나 200억 원은 이렇게 예산을 구체적으로 짜보니 그렇게 큰돈도 아니었습니다. 꿈이 더 커져서 만약에 2천4백억이라면 또 어떨까 하는 공상을 했습니다. 이제는 각종 투자와 지출 면에서 한결 여유가 생기더군요. 그리고 괜히 12명이서 함께 복권을 산 것이 아닐까 하면서 겨우 200억으로 뭘 하나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투자할 곳은 많은데 돈이 부족하니 말이죠.
그런 것 외에도 다른 한 가지 걱정은 복권이 당첨되고 나면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엄청나게 밀려든다는데 그런 것은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릴 것인지 비밀로 할 것인지, 비밀로 한다면 어떻게 비밀을 지키면서 돈을 쓸 것인지(갑자기 새 차라도 사면 분명히 너 복권이라도 당첨되었느냐고 물을 것이 분명하므로) 여러 가지 궁리를 했습니다. 일단 복권 당첨은 비밀로 하고 돈은 서서히 아주 조금씩 쓰면서 주위에서 알아채지 못하게 한다는 것과 그런 의미에서 직장생활은 계속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복권이 당첨되는 것만 남아있었습니다.
허무하게 끝난 복권 추첨
드디어 대망의 토요일이 되었고 추첨 방송을 보는데 오랜 기다림에 맞지 않게 추첨은 정말 짧게 끝나더군요. 2-3분 만에 일사천리로 구형의 투명한 구체가 정신없이 구르고 공이 튀어 나오고 번호를 불러주었습니다. 결과는 12명이 고른 72개의 숫자들 중에서(물론 중복도 있었지만) 다 합해서 겨우 4개가 일치하는(그것도 다 다른 사람의 숫자로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꼴찌인 2달러짜리도 한 개 없는 결과가 나와서 법정 분쟁도 없었고 돈을 잘못 관리해서 파산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허무하게 며칠이 지나가고 다들 아무런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은 듯 열심히 살아가더군요. 저도 그래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척 했습니다. 그 후로 몇 번 더 복권을 개인적으로 산적이 있는데 역시 번번이 꼴등도 한 번 안 나오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신경을 안 쓰고 살 때는 몰랐는데 한번 신경을 쓰고 보니 정말 복권의 종류도 많고 복권 판매소도 많았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경제학자들은 복권의 수익금의 용도가 아무리 좋은 곳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부의 재분배 측면에서 좋은 도구가 아니라고 한다고 합니다. 복권 수익으로 불우이웃을 돕든 체육 시설을 짓던 돈이 많은 사람들은 복권을 살 이유도 없고 돈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그나마 없는 돈으로 복권을 사고 정신적 위안을 삼아보는데 당첨 안 될 확률이 훨씬 높으므로 결국은 가난한 사람한테서 걷는 세금과 같은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한국에 처음 로또가 도입이 되고 로또 광풍이 일었을 때(당첨금이 2000억 원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본 에피소드가 기억이 납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에도 망하고 집도 날리고 남은 재산은 수백만 원 정도가 다였는데 재기를 위해서 택한 방법은 로또를 몽땅 사서 여관방을 전전하며 로또가 되기만을 바라고 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분이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확률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로또로 재기하시기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참 가슴 아프고 애처로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렇고 로또 광풍이 일었을 때 로또 판매소 앞에 길게 늘어서 있었던 사람들도 그렇고 기대를 가지게 되면 확률 같은 것은 의미가 없어지지요. 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안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서글픈 발명품, 복권
미국의 라디오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메가 밀리언 로또복권의 광고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옵니다. 항상 하는 말이 “you never know!"(세상일 모르는 거 아니냐, 될지 누가 아냐?)입니다. 메가 밀리언 복권의 수익금의 50%는 당첨금으로 지급되고 15%는 행정 비용(복권 판매와 인쇄 등), 35%는 장학사업, 공중보건 사업, 지방 자치단체 보조금 등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결국 미국 서민은 로또로 며칠간 지속될 꿈을 사고, 미국 정부는 조세 저항 없는 세금을 징수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부자나라라는 미국에서도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혹은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로또를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저도 포함됩니다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돈이 없어도 불행하고 너무 많아도 불행한데 돈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면 가난한 사람에게 걷는 세금인 복권이란 것이 정말 서글프고도 기막힌 발명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세상일 모르는 거지만요.
그 병원은 병원이 조금 작아서 물리치료실 내의 회의실을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의사들이 함께 씁니다. 회의를 하기도 하지만 점심도 먹고, 신문도 보고, 잡담도 하는 거의 휴게실과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직원들이 모여서 1달러씩 각출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뭐하느냐고 물어보니 로또 복권을 사기 위해 돈을 모은다고 하였습니다. 각각 1달러를 내서 11명이 11달러를 모아 로또를 사고 나중에 당첨이 되면 나눠 갖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낄 거냐고 하기에 물론 1달러를 보태서 12달러를 만들었습니다.
도로변에도 매일 금액을 보여주며 광고를 하는 미국 로또
미국 뉴욕 지역의 메가 밀리언이라는(총 12개 주가 참여 중) 이 로또는 한국과 방식이 비슷합니다. 1달러를 내면 1에서 56까지의 숫자 중에서 다섯 개를 뽑고 다시 1에서 46까지의 숫자중 하나를 뽑아서 총 6개의 숫자를 뽑게 됩니다. 우리들은 12명이었기 때문에 총 12개의 숫자 조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1등의 확률이 대략 1억7천만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12개의 게임을 하면 1천400만중의 하나로 잭팟의 확률이 올라갈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돈도 물론 12명이 나눠야 합니다. 당시에 잭팟의 규모가 2천4백억 원 정도였으니까 12로 나누면 세전으로 200억 원 정도 됩니다. 여전히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미국 한 병원의 복권 공동 구매의 미풍양속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어차피 천문학적인 숫자라 12명이 힘을 합해도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 이들이 이런 게임방식을 이 친구들이 선호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뭐라고 번역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뉴욕 맨하탄에 마운트 사이나이병원(Mt. Sinai Hospital)이라고 있습니다. 혹시 고전적인 로맨스 영화 ‘러브스토리’를 보신 분이 아실지 모르겠는데 마지막 부분에 알리 맥그로우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찾은 병원이 바로 이 병원입니다.
그냥 상식에 도움이 되고자 말씀드리면 뉴욕의 4대 병원이 있습니다.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이 그 중 하나이고, 우리나라 인천 송도에 병원을 짓는다는 뉴욕의 장로교 병원(New York Presbyterian Hospital)이 다른 하나입니다. 이 병원은 아이비리그의 명문인 코넬대학과 콜럼비아대학의 의대가 연합해 만든 병원이고 뉴욕 대학교는 뉴욕대학병원(NYU 혹은 New York University)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 병원(Montefiore Medical Center)이 마지막 하나입니다.
20가지도 넘는 복권이 있지만 당첨금이 큰 로또가 역시 인기!
어쨌거나 수년전에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의 물리치료실에 근무하는 물리치료사 10명 정도가 이와 똑같은 복권 게임을 했다고 합니다. 돈을 모아서 복권을 공동구매하고 당첨이 되면 공정하게 나누기로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잭팟에 당첨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릅니다만 잭팟이라고 하면 보통 2천억은 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한 사람이 당첨금을 수령해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팔자를 고칠 꿈에 부풀어 있는 나머지 직장 동료들은 얼마나 허탈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일설에는 돈을 가지고 도망간 것은 아니고 다른 직원들에게 돈을 나누기를 거부해서 재판에 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도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을 듣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많은 다른 병원 직원들 사이에서도 로또 광풍이 불었고 그 바람이 플러싱에 있는 병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복권이 당첨될 것에 대비한 경험
그러나 과거의 실수에서 배운 것은 이들이 순진하게 계주(?)의 도덕성에만 기대지는 않고 각각의 참가자가 한 종이에 모두 서명을 하고 복권을 놓고 복사한 후에 복권과 서명이 함께 복사된 종이를 나누어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권 추첨일을 기다리는 것이죠. 매 주 한 번씩 금요일마다 이런 재미있는 시간을 가지는데 투자되는 돈의 액수도 크지 않지만 혹시 200억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로 며칠을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이 복권은 일주일에 두 번 추첨을 합니다.)
복권 당첨 후 불행해진 사람들에 관한 보도
그래서 복권이 당첨되기 전에 미리 대비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계획이 있으면 들뜬 마음으로 돈을 낭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큰 집과 좋은 차를 사고, 돈을 어디어디에 투자를 하고, 누구에게 돈을 조금 나누어 주고, 빚을 갚고 하는 여러 가지 즐거운 공상을 하니 정말 시간이 짧더군요. 더군다나 200억 원은 이렇게 예산을 구체적으로 짜보니 그렇게 큰돈도 아니었습니다. 꿈이 더 커져서 만약에 2천4백억이라면 또 어떨까 하는 공상을 했습니다. 이제는 각종 투자와 지출 면에서 한결 여유가 생기더군요. 그리고 괜히 12명이서 함께 복권을 산 것이 아닐까 하면서 겨우 200억으로 뭘 하나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투자할 곳은 많은데 돈이 부족하니 말이죠.
그런 것 외에도 다른 한 가지 걱정은 복권이 당첨되고 나면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엄청나게 밀려든다는데 그런 것은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릴 것인지 비밀로 할 것인지, 비밀로 한다면 어떻게 비밀을 지키면서 돈을 쓸 것인지(갑자기 새 차라도 사면 분명히 너 복권이라도 당첨되었느냐고 물을 것이 분명하므로) 여러 가지 궁리를 했습니다. 일단 복권 당첨은 비밀로 하고 돈은 서서히 아주 조금씩 쓰면서 주위에서 알아채지 못하게 한다는 것과 그런 의미에서 직장생활은 계속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복권이 당첨되는 것만 남아있었습니다.
허무하게 끝난 복권 추첨
드디어 대망의 토요일이 되었고 추첨 방송을 보는데 오랜 기다림에 맞지 않게 추첨은 정말 짧게 끝나더군요. 2-3분 만에 일사천리로 구형의 투명한 구체가 정신없이 구르고 공이 튀어 나오고 번호를 불러주었습니다. 결과는 12명이 고른 72개의 숫자들 중에서(물론 중복도 있었지만) 다 합해서 겨우 4개가 일치하는(그것도 다 다른 사람의 숫자로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꼴찌인 2달러짜리도 한 개 없는 결과가 나와서 법정 분쟁도 없었고 돈을 잘못 관리해서 파산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허무하게 며칠이 지나가고 다들 아무런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은 듯 열심히 살아가더군요. 저도 그래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척 했습니다. 그 후로 몇 번 더 복권을 개인적으로 산적이 있는데 역시 번번이 꼴등도 한 번 안 나오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신경을 안 쓰고 살 때는 몰랐는데 한번 신경을 쓰고 보니 정말 복권의 종류도 많고 복권 판매소도 많았습니다.
실제 메가 밀리언 로또 복권
예전에 한국에 처음 로또가 도입이 되고 로또 광풍이 일었을 때(당첨금이 2000억 원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본 에피소드가 기억이 납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에도 망하고 집도 날리고 남은 재산은 수백만 원 정도가 다였는데 재기를 위해서 택한 방법은 로또를 몽땅 사서 여관방을 전전하며 로또가 되기만을 바라고 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분이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확률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로또로 재기하시기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참 가슴 아프고 애처로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렇고 로또 광풍이 일었을 때 로또 판매소 앞에 길게 늘어서 있었던 사람들도 그렇고 기대를 가지게 되면 확률 같은 것은 의미가 없어지지요. 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안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서글픈 발명품, 복권
미국의 라디오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메가 밀리언 로또복권의 광고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옵니다. 항상 하는 말이 “you never know!"(세상일 모르는 거 아니냐, 될지 누가 아냐?)입니다. 메가 밀리언 복권의 수익금의 50%는 당첨금으로 지급되고 15%는 행정 비용(복권 판매와 인쇄 등), 35%는 장학사업, 공중보건 사업, 지방 자치단체 보조금 등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결국 미국 서민은 로또로 며칠간 지속될 꿈을 사고, 미국 정부는 조세 저항 없는 세금을 징수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부자나라라는 미국에서도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혹은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로또를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저도 포함됩니다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돈이 없어도 불행하고 너무 많아도 불행한데 돈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면 가난한 사람에게 걷는 세금인 복권이란 것이 정말 서글프고도 기막힌 발명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세상일 모르는 거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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