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을 때 가끔 열 받게 하는 신문기사중의 하나는 서울의 물가가 선진국의 도시들보다도 비싸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아무래도 선진국보다도 낮은 우리나라는 물가를 절대치로 비교하면 조금이라도 싸야 정상일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휘발유, 주택가격 등의 특수성이 있는 제품을 제외하고라도 공업제품인 수입차나 명품 옷, 가방 등이 외국보다 비싸다는 사실은 저을 분개하게 만들었고 어떻게 생각하면 "나 같은 사람은 어차피 그런 것 사지도 못하니까 부자들이나 바가지 쓰게 차라리 잘됐다"는 약간은 못된 심보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시 생각하면 결국은 힘들게 벌어온 외화가 이런 쓸데없는(?) 물건을 수입하느라 낭비되는 것 같아서 그것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고요. 그것뿐인가요. 하기스 기저귀, 센트럼 비타민, 위스퍼 생리대에서 코카콜라까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제품도 한국이 비싸다고 하니까 한국은 살기에 비싼 나라인가보다 하고 체념하고 살았습니다.(물론 비싼 메이커야 안사면 그만이지만 다른 메이커도 덩달아서 비싸니까 마음에 별로 위안이 안 되더군요.)
미국으로 이민을 결심하고 나서 이제는 선진국의 쾌적한 환경(?)과 조금이나마 싼 물가로 살맛이 좀 나겠구나 하는 기대를 많이 했었습니다. 미국에 막상 오고 나니까 이상하게 지출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월세 생활을 하니까 매달 고정 지출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다가 가계부를 쓰고 물가 수준을 점점 알게 되면서 미국이라고 모든 것이 마냥 싸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물건들은 한국에 비해 턱없이 가격이 싸서 사는 즐거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랄프로렌, 갭, 노티카 같은 옷은 정말 세일 때 잘만 사면 한국의 1/4에서1/5도 안 되는 가격에 샀으니까 별로 필요가 없어서 많이 안 샀지 어쩌다 한번씩 쇼핑을 할때마다 수지맞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런 느낌을 주는 상품 중의 하나가 바로 외식업체의 음식 메뉴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연애를 하느라고 그 비싸고 비싼 TGI Friday나 아웃백 스테이크에 가끔 가서 스테이크를 먹기도 했는데 미국에 와보니 사실 갈만한 외식업소도 마땅히 없고 (아무래도 잘 모르는 미국 음식점에 무작위로 뭔지도 모르는 메뉴를 시키기도 그렇고 해서) 그래도 한국에서 보아왔던 TGI Friday나 아웃백 스테이크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제가 한국을 떠나오기 조금 전부터 외국계 외식업체가 가격인하 경쟁을 벌여서 스테이크로 따져서 한사람 식사가격이 3만 원대에서 2만 원대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왔는데 미국에 오니까 1만 원대이더군요. 아무리 싸도 사실 두 사람 식사 한 끼 3만원 가까이 지출하는 것은 별로 경제적이지 않은데다가 연애할 때 이미 돈을 많이 썼으므로 결혼하고 나서 ‘잡은 물고기 떡밥 안준다’는 철칙을 준수하기 위해 비교적 싼 음식의 혜택에도 불구하고 별로 많이 이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내도 한국에서는 비싼 미국음식을 찾더니 미국에 오니 이번에는 거꾸로 비싼 한국음식만 찾았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엉뚱한 데로 흘렀는데 본론으로 돌아가서 얼마 전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한국일보사에서 나온 ‘경제학 비타민’이라는 책을 소개한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 소개에서 대표적으로 예를 들은 책의 내용이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유독 비싼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책도 읽어보지 않고 책 소개 내용을 재인용해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만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비싼 이유를 잘 설명하는 것 같아서 이곳에 소개를 드립니다.
미국은 한국보다 중산층이 많고 스타벅스를 사먹을 여유가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국처럼 3000원대에 팔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고 사먹지 않으나 2000원대는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지금 우리 동네 스타벅스에서 가장 싼 커피는 1.25불부터 시작합니다.) 스타벅스 입장에서는 가격을 2000원대로 내리면 중산층들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니 매출이 훨씬 늘어나니까 가격을 낮추는 것이 이익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중산층이 적어서 가격을 3000원대에서 2000원대로 내려 봐야 어차피 커피소비가 많이 늘지 않으니 차라리 높은 가격을 택한 것이라고 합니다.
읽어보니 이해는 가는데 그래도 이들 외국 업체가 한국 사람을 봉으로 여기는 듯 한 생각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저는 커피를 많이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스타벅스 앞을 지날 때마다 줄서서 커피를 사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쯧쯧쯧. 겉멋만 들어가지고”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된장녀라는 신조어가 돌고 이런 젊은이를 희화화하는 사회분위기가 되니까 저도 약간은 함께 편승하는 사고를 하긴 했었나 봅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친구들을 만났던 장소는 아무래도 음식점이 아니면 커피숍이 많았습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 때 당시에도 커피값이 그다지 싸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대강 2-3천 원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대학생 입장에서 결코 적은 돈이 아니어서 한번 이런 커피숍에 들어가면 엉덩이가 좀 아프더라도 적어도 세 시간은 잡담을 하다가 나와야 본전을 찾은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속으로 생각하기는 커피원가 겨우 몇 십 원 할 텐데 정말 심하게 바가지를 씌우는 구나 하고 욕을 하면서도 열심히 커피숍에 다녔더랬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저로서는 지금 스타벅스에 다니는 젊은 친구들을 비난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돈의 가치로 따져도 스타벅스에 가는 젊은이들이 제가 쓰던 돈 보다도 더 적은 돈을 주고 커피를 먹는 것이고 무선인터넷도 되고 혼자 앉아서 책도 읽을 수 있는데다가 나름대로 환경도 쾌적하니 돈의 값어치로 따져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다지 나쁜 소비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예전에 1988년 서울 압구정동에 맥도널드 햄버거 1호점이 개점했을 때 강남의 부자들이 햄버거를 사먹어 보려고 성수대교 사거리까지 길게 줄을 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한심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맥도널드는 그냥 서민들이 빨리 한 끼를 해결하는 장소로 한국의 천원 김밥집 같은 곳인데 대한민국에서는 상류층들이 선진국 미국의 문화를(혹은 맛을) 경험해보는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씁쓸했었지요.
그런데 미국에 와서 스타벅스를 본 후로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스타벅스는 아무래도 서울의 중심상권에 위치해 있고 뭔가 세련되고 고급스런 문화가 있는 곳으로 저 같은 사람(약간 시골출신에다가 돈도 시간도 그다지 많지 않은 사람)은 융화되기가 어려운 공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미국의 스타벅스가 한국보다 덜 세련되고 덜 고급이라는 것만은 아니지만 제가 본 느낌으로는 그냥 미국인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그냥 보통의 커피집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스타벅스는 고급 쇼핑몰에도 있고 고급이 아닌 그냥 보통 쇼핑몰에도 있으며 맨하탄 중심가에도 있고 변두리 동네에도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에도 두 군데나 있는데 한군데는 위의 사진에서 보여지듯이 병원 내 카페의 한구석을 빌려서 커피를 팔고 있으며 한군데는 주방도 따로 없이 그냥 보온병에 미리 끓여낸 커피를 팔고 있습니다. 이게 제가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스타벅스입니다.
아래 뉴스기사를 보시면 스타벅스가 미국 내에서는 1달러짜리 커피를 내놓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저가 커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기사가 최근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저가 커피를 내놓지 않는 이유는 위에 썼지만 미국에서 저가 정책으로 가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요. 작년에 미국 소비자 문제 전문지 컨슈머 리포트는 품목별 소비자 선호도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스타벅스는 전공 분야인 커피 부문에서 햄버거 업체인 맥도널드에 뒤졌습니다. 미국 소비자들은 맥도널드 커피가 스타벅스 커피보다 값도 싸고 더 맛있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죠. 사실 미국 맥도널드가 웰빙 열풍으로 패스트푸드인 햄버거의 소비가 줄자 건강음식으로 여겨지는 다양한 샐러드 메뉴를 내놓고 추가로 아침 식사 시장에 본격적으로 정성을 기울이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리고 값싸고 맛좋은 커피가 추가 메뉴로 들어가더니 드디어 일을 낸 것입니다.
게다가 같은 해 컨설팅 업체 브랜드 키스가 매년 실시하는 브랜드별 소비자 충성도 조사에서는 던킨 도너츠가 스타벅스를 앞질렀었습니다. 이렇듯 미국에서 스타벅스는 무슨 특별한 사람들만을 위한 고급 커피점은 아니고 단지 커피맛과 값을 가지고 던킨 도너츠나 맥도널드와 경쟁하고 있는 잘나가는 커피 전문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고 돌아서 그렇다면 한국의 스타벅스 소비자는 나름대로 현명한 소비를 하는 것이고 스타벅스는 나름대로 최상의 이익 실현을 위해서 바가지(?)를 씌울 수밖에 없다면 이상하게 뭔가 옳지 않은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도 도시 이름 자체에서 어쩐지 조금 부티가 나는 ‘뉴욕’(뉴욕에서는 사실 약간 슬럼가에 살고는 있습니다만)에 사는 사람이지만 뉴요커들의 고단하고 분주한 일상은 보지 못하고 화려한 뉴욕의 겉보기에만 현혹된 된장녀같은 사람(남자건 여자건)을 보면 참 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스타벅스를 이용하는 보통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낙인을 찍는 것은 좀 과한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도 지방에는 스타벅스도 많지 않고 커피 한잔 값이 하루 생활비인 사람도 있을 것이니 맘만 먹으면 스타벅스를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조금은 혜택 받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이제는 조금 잘 살게 되었으니 미국의 보통 문화가 한국에 가서 고급 문화로 대접받는 것은 이제 그만 보고 싶긴 합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결심하고 나서 이제는 선진국의 쾌적한 환경(?)과 조금이나마 싼 물가로 살맛이 좀 나겠구나 하는 기대를 많이 했었습니다. 미국에 막상 오고 나니까 이상하게 지출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월세 생활을 하니까 매달 고정 지출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다가 가계부를 쓰고 물가 수준을 점점 알게 되면서 미국이라고 모든 것이 마냥 싸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물건들은 한국에 비해 턱없이 가격이 싸서 사는 즐거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랄프로렌, 갭, 노티카 같은 옷은 정말 세일 때 잘만 사면 한국의 1/4에서1/5도 안 되는 가격에 샀으니까 별로 필요가 없어서 많이 안 샀지 어쩌다 한번씩 쇼핑을 할때마다 수지맞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별로 고급스러워 보이지는 않는 뉴욕 변두리의 스타벅스
이런 느낌을 주는 상품 중의 하나가 바로 외식업체의 음식 메뉴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연애를 하느라고 그 비싸고 비싼 TGI Friday나 아웃백 스테이크에 가끔 가서 스테이크를 먹기도 했는데 미국에 와보니 사실 갈만한 외식업소도 마땅히 없고 (아무래도 잘 모르는 미국 음식점에 무작위로 뭔지도 모르는 메뉴를 시키기도 그렇고 해서) 그래도 한국에서 보아왔던 TGI Friday나 아웃백 스테이크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제가 한국을 떠나오기 조금 전부터 외국계 외식업체가 가격인하 경쟁을 벌여서 스테이크로 따져서 한사람 식사가격이 3만 원대에서 2만 원대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왔는데 미국에 오니까 1만 원대이더군요. 아무리 싸도 사실 두 사람 식사 한 끼 3만원 가까이 지출하는 것은 별로 경제적이지 않은데다가 연애할 때 이미 돈을 많이 썼으므로 결혼하고 나서 ‘잡은 물고기 떡밥 안준다’는 철칙을 준수하기 위해 비교적 싼 음식의 혜택에도 불구하고 별로 많이 이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내도 한국에서는 비싼 미국음식을 찾더니 미국에 오니 이번에는 거꾸로 비싼 한국음식만 찾았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엉뚱한 데로 흘렀는데 본론으로 돌아가서 얼마 전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한국일보사에서 나온 ‘경제학 비타민’이라는 책을 소개한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 소개에서 대표적으로 예를 들은 책의 내용이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유독 비싼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책도 읽어보지 않고 책 소개 내용을 재인용해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만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비싼 이유를 잘 설명하는 것 같아서 이곳에 소개를 드립니다.
사진의 질이 엉망입니다만 메뉴판에 보면 house blend coffee가 1.25불입니다.
미국은 한국보다 중산층이 많고 스타벅스를 사먹을 여유가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국처럼 3000원대에 팔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고 사먹지 않으나 2000원대는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지금 우리 동네 스타벅스에서 가장 싼 커피는 1.25불부터 시작합니다.) 스타벅스 입장에서는 가격을 2000원대로 내리면 중산층들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니 매출이 훨씬 늘어나니까 가격을 낮추는 것이 이익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중산층이 적어서 가격을 3000원대에서 2000원대로 내려 봐야 어차피 커피소비가 많이 늘지 않으니 차라리 높은 가격을 택한 것이라고 합니다.
읽어보니 이해는 가는데 그래도 이들 외국 업체가 한국 사람을 봉으로 여기는 듯 한 생각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저는 커피를 많이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스타벅스 앞을 지날 때마다 줄서서 커피를 사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쯧쯧쯧. 겉멋만 들어가지고”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된장녀라는 신조어가 돌고 이런 젊은이를 희화화하는 사회분위기가 되니까 저도 약간은 함께 편승하는 사고를 하긴 했었나 봅니다.
1.25불짜리 스타벅스 커피. 양도 많고 맛도 괜찮았다.
제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친구들을 만났던 장소는 아무래도 음식점이 아니면 커피숍이 많았습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 때 당시에도 커피값이 그다지 싸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대강 2-3천 원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대학생 입장에서 결코 적은 돈이 아니어서 한번 이런 커피숍에 들어가면 엉덩이가 좀 아프더라도 적어도 세 시간은 잡담을 하다가 나와야 본전을 찾은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속으로 생각하기는 커피원가 겨우 몇 십 원 할 텐데 정말 심하게 바가지를 씌우는 구나 하고 욕을 하면서도 열심히 커피숍에 다녔더랬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저로서는 지금 스타벅스에 다니는 젊은 친구들을 비난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돈의 가치로 따져도 스타벅스에 가는 젊은이들이 제가 쓰던 돈 보다도 더 적은 돈을 주고 커피를 먹는 것이고 무선인터넷도 되고 혼자 앉아서 책도 읽을 수 있는데다가 나름대로 환경도 쾌적하니 돈의 값어치로 따져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다지 나쁜 소비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병원 구내에 있는 그나마 주방은 갖춘 스타벅스. 초라하기는 마찬가지.
제가 예전에 1988년 서울 압구정동에 맥도널드 햄버거 1호점이 개점했을 때 강남의 부자들이 햄버거를 사먹어 보려고 성수대교 사거리까지 길게 줄을 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한심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맥도널드는 그냥 서민들이 빨리 한 끼를 해결하는 장소로 한국의 천원 김밥집 같은 곳인데 대한민국에서는 상류층들이 선진국 미국의 문화를(혹은 맛을) 경험해보는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씁쓸했었지요.
그런데 미국에 와서 스타벅스를 본 후로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스타벅스는 아무래도 서울의 중심상권에 위치해 있고 뭔가 세련되고 고급스런 문화가 있는 곳으로 저 같은 사람(약간 시골출신에다가 돈도 시간도 그다지 많지 않은 사람)은 융화되기가 어려운 공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미국의 스타벅스가 한국보다 덜 세련되고 덜 고급이라는 것만은 아니지만 제가 본 느낌으로는 그냥 미국인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그냥 보통의 커피집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스타벅스는 고급 쇼핑몰에도 있고 고급이 아닌 그냥 보통 쇼핑몰에도 있으며 맨하탄 중심가에도 있고 변두리 동네에도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에도 두 군데나 있는데 한군데는 위의 사진에서 보여지듯이 병원 내 카페의 한구석을 빌려서 커피를 팔고 있으며 한군데는 주방도 따로 없이 그냥 보온병에 미리 끓여낸 커피를 팔고 있습니다. 이게 제가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스타벅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스타벅스를 파는 우리 병원 구내 카페
아래 뉴스기사를 보시면 스타벅스가 미국 내에서는 1달러짜리 커피를 내놓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저가 커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기사가 최근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저가 커피를 내놓지 않는 이유는 위에 썼지만 미국에서 저가 정책으로 가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요. 작년에 미국 소비자 문제 전문지 컨슈머 리포트는 품목별 소비자 선호도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스타벅스는 전공 분야인 커피 부문에서 햄버거 업체인 맥도널드에 뒤졌습니다. 미국 소비자들은 맥도널드 커피가 스타벅스 커피보다 값도 싸고 더 맛있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죠. 사실 미국 맥도널드가 웰빙 열풍으로 패스트푸드인 햄버거의 소비가 줄자 건강음식으로 여겨지는 다양한 샐러드 메뉴를 내놓고 추가로 아침 식사 시장에 본격적으로 정성을 기울이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리고 값싸고 맛좋은 커피가 추가 메뉴로 들어가더니 드디어 일을 낸 것입니다.
게다가 같은 해 컨설팅 업체 브랜드 키스가 매년 실시하는 브랜드별 소비자 충성도 조사에서는 던킨 도너츠가 스타벅스를 앞질렀었습니다. 이렇듯 미국에서 스타벅스는 무슨 특별한 사람들만을 위한 고급 커피점은 아니고 단지 커피맛과 값을 가지고 던킨 도너츠나 맥도널드와 경쟁하고 있는 잘나가는 커피 전문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고 돌아서 그렇다면 한국의 스타벅스 소비자는 나름대로 현명한 소비를 하는 것이고 스타벅스는 나름대로 최상의 이익 실현을 위해서 바가지(?)를 씌울 수밖에 없다면 이상하게 뭔가 옳지 않은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도 도시 이름 자체에서 어쩐지 조금 부티가 나는 ‘뉴욕’(뉴욕에서는 사실 약간 슬럼가에 살고는 있습니다만)에 사는 사람이지만 뉴요커들의 고단하고 분주한 일상은 보지 못하고 화려한 뉴욕의 겉보기에만 현혹된 된장녀같은 사람(남자건 여자건)을 보면 참 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스타벅스를 이용하는 보통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낙인을 찍는 것은 좀 과한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도 지방에는 스타벅스도 많지 않고 커피 한잔 값이 하루 생활비인 사람도 있을 것이니 맘만 먹으면 스타벅스를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조금은 혜택 받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이제는 조금 잘 살게 되었으니 미국의 보통 문화가 한국에 가서 고급 문화로 대접받는 것은 이제 그만 보고 싶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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