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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 제대로 하기

영화로 무슨 영어공부가 되느냐고 하신 아버지

제가 예전에 누군가 쓴 글을 읽었는데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떤 한국 젊은이가 유럽에 배낭여행을 갔다고 합니다. 기차를 타고 다니며 세계에서 온 배낭족들과 어울리면서 지냈는데 그들이 하는 말은 좀 알아듣겠는데 여러 사람이 떠들고 놀 때 어느 시점에 분위기를 깨지 않고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가야 할지 너무 어려웠다고 한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우습게도 영어를 좀 하게 되면 연설하는 것보다 수다 떠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일대일은 쉬운데 여러 사람이 이야기 할 때 끼어들기는 상당한 내공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대화 주제에 대해서도 지식이 필요합니다. 스포츠면 스포츠, 연예면 연예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농담도 하고 사람들을 웃길 수 있지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주제 자체가 아는 내용이 아니면 끼기가 힘듭니다. 그것이 영어를 곧 잘하는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영어권 국가에 가서 초반에 외톨이가 되는 이유입니다. 영화로 공부하면 이런 면이 조금은 극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미국에 와야 한다는 절박감에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였지만 가장 시간적으로 긴 시간을 투자한 것이 바로 영화로 공부하기였습니다. 영화는 전에도 썼지만 미국 사람들이 쓰는 생생한 표현을 그대로 배우는데다가 문화와 매너도 배우고, 말하는 사람의 모습과 상황을 간접 경험함으로써 기억에 오래 남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배운 재채기 하는 법

제가 세인트루이스에서 근무할 때 일입니다. 병원의 내과 과장 비서인 Marybeth와 방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Marybeth와 그냥 친한 척만 하는 사무적인 관계였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어떤 제약회사 직원이 잠시 들러서 셋이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 친구가 갑자기 재채기를 했는데 이게 문제였습니다. 재채기가 나올 것 같으니까 잽싸게 고개를 돌려서 사람이 없는 쪽에 대고 재채기를 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손으로 입을 가렸고 물론 침이 손에 좀 묻었을 것은 자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어떻게 하나 신경이 쓰여서 보고 있는데 그냥 옷에 쓱 닦더니 그냥 이야기를 진행했고 나중에 방을 나가면서 저와 Marybeth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습니다. 악수를 나누고 이 제약회사 직원은 방을 나갔는데 Marybeth와 저는 서로를 쳐다보면서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침 묻은 손에 악수를 했다는 것이 서로 당황스러웠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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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국 최고의 시트콤이었던 Seinfeld. 종영되었으나 현재도 케이블에서 재방중이다.

그런데 Marybeth가 갑자기 미국 시트콤인 Seinfeld의 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극중에 나오는 비위생적인 요리사가 음식을 내오면서 음식에 재채기를 했던가 하는 내용이었는데 저도 보았던 에피소드라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서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둘 다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재미있을만한 일은 아니었지요. 물론 이후로 Marybeth와 저는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여담인데, 사실 저도 재채기가 나올 때 응급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병원에 들어와서야 배웠으니 남을 나무랄 자격은 없지만 이것이 단지 미국의 문화인지 병원이니까 배워서 그런 것인지 재채기를 할 때는 고개를 사람 없는 쪽으로 돌리고 옷소매(특히 어깨부분)로 입을 가리고 재채기를 합니다. 손으로 가리면 손바닥에 침이 튀는 것을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그냥 고개만 돌렸지 입을 가리지 조차 않았으니 작지만 참 큰 것을 배웠다고나 할까요.

영화를 가지고 공부하는 요령은 책으로 공부하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일단 영화를 자막 없이 보고, 영화를 다시 한글 자막과 영문 자막으로 봅니다. 완전히 영화의 내용이 이해가 되면 영화에 나온 단어나 숙어 등을 따로 정리하여 공부를 하면서 영화를 틀어놓고 영화의 대사를 마치 주인공이 된 듯이 따라서 읽습니다. 되도록 연기를 하듯이 사랑의 대화는 감미롭게, 분노의 발산은 화난 목소리로, 그리고 속삭일 때는 속삭이면서 대사를 읽고 물론 한사람의 대사만 하는 것이 아니고 영화에 나온 모든 캐릭터를 마치 예전 무성영화 시절의 변사가 연기하듯이 읽는 것입니다. 읽는다고 표현한 이유는 영화에 나온 영문 자막을 보고 따라서(혹은 동시에) 소리 내서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대사를 외우고 연기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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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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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주세요.



영화로 공부가 정말 되느냐고 하신 아버지

제가 이렇게 영어공부를 할 때는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장소였습니다. 방에서 문을 닫고 혼자 영화를 틀어 놓고 이렇게 소리 내서 공부를 하니 자연 바깥에서 다 들리니까 식구들이 관심이 가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방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들어오셨다가 물끄러미 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렇게 영화를 보는 것으로 공부가 되냐?” 하시더군요. 그 말의 의미는 영화를 보는 것은 단지 재미로 하는 것이고 공부란 모름지기 책을 펴놓고 뭔가 써가면서 하는 것이 공부인데 영어공부를 한답시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영화 CD를 틀어놓고 소리 내서 흉내를 내고 있으니 정말 이런 식으로 공부가 될까 궁금해서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물론 “공부 정말 잘되지요.”하고 대답하였지만 사실 이런 확신에 찬 대답을 하기까지 저도 오랜 시행착오의 세월을 보냈었습니다. 저도 대학 다닐 때 (이때는 미국에 오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고 그냥 이유 없이 영어를 잘 하고 싶어서) 영어를 공부하려는 시도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려니 단어도 걸리는 게 많고 고등학교 때 문법을 공부했던 것들이 기억도 확실히 나지 않아서 문법책을 다시 봐야 하는데 하는 생각만 가지고 살았습니다. 학원에 가니까 어쩐지 너무 쉬운 교재를 놓고 반복해서 따라하게 하니까 다 아는 내용(혹은 다 눈으로 해석이 되는 내용)인 것 같아서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아서 제대로 공부를 못해보고 대학 졸업할 때까지 막연한 의무감만 가진 채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당시에도 생각을 했던 것인데 그 눈으로 해석하면 쉬운 학원 교재가 제가 말로 소리 내어 읽거나 짝을 지어서 대화를 하려면 확실히 말이 잘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점이 사실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제가 의대생이란 것을 알고 있는데(클래스 내에서 자기를 소개하게 되기 때문에) 쉬운 문장이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참 자존심이 상하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면 집에서 따로 읽기 연습이라도 했을 법 한데 그렇게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방법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지요.

영어공부의 단계

그래서 뒤늦게 소리 내서 읽는 것이 최고의 공부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리랑 TV의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만든 영어 공부 월간지를 이용했는데 설명도 잘 되어있고 매월 두 개씩 테이프가 딸려 나와서 좋았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전에 설명 드린 책으로 영어공부 하는 법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 제 나름대로 주관을 가지고 진도에 급급하지 않고 해보니 한 달 치 교재를 공부하는데 두 달도 더 걸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모든 본문을 100번 이상씩 입에 대사가 붙어서 줄줄줄 읽어 질 때까지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다음에 교재를 업그레이드해서 이번에는 AFKN의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 월간지로 바꿔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그 때는 미드라는 표현도 없었지만 주로 당시 미국의 시트콤이나 드라마(the king of queens, seventh heaven, Seinfeld 등)를 보고 있으면 제가 어려서 아무리 AFKN을 봐도 들리지 않던 말들이 공부를 하고 들으면 잘 들린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고 또 한 번 공부한 내용은 잘 들리는데 왜 공부하지 않은 부분은 여전히 안 들리는지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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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업그레이드를 해서 뉴스, 다큐멘터리도 해보고 서점에서 CNN의 뉴스나 토크쇼를 기반으로 만든 교재도 사서 닥치는 대로 듣고 읽고 하면서 실력을 쌓아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즈음에 영화로 영어공부하기가 유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시 매달 교재를 받아볼 수 있는 구독을 해서 영화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미 다른 교재로 이런 공부가 실력을 증대시킨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영화로 공부하는 것도 역시 실력을 늘려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정말 좋은 점은 제가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오락의 시간이 공부의 시간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뉴스나 토크쇼와는 재미의 수준이 달랐기 때문에 그다지 지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공부 방법을 바꾼 것은 흥미를 잃지 않게 한 참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영화로 하는 영어공부의 주의사항

그런데 영화를 해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로는 영화란 것이 정말 어려운 영어공부 교재였습니다. 영어공부 교재를 난이도에 따라 서열화를 해본다면 굿모닝 팝스와 같은 교육방송이 가장 쉬웠고 다음은 아리랑 TV 뉴스  같은 한국인이 영어로 말하는 교재가 그 다음이고, 다음은 미국 뉴스, 다음은 미국 다큐멘터리, 다음은 오디오북, 다음은 미국 드라마, 그리고 가장 마지막이 영화였었습니다. 물론 각각이 다 난이도가 달라서 뉴스보다 쉬운 오디오북도 있고 영화가 다큐멘터리보다 쉬울 수도 있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그 이유는 일단 단어가 어렵다거나 표현이 어렵다거나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스튜디오에서 깨끗한 음질과 일정한 스피드의 대사로 녹음되었으며 문장의 구조가 비교적 정확한 뉴스와 비교하면 영화는 너무 잡음도 많고 말도 빠르고, 슬랭도 많고 감정이 섞인 말이어서 판독(?)이 용이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영화로 공부하려는 생각이 없을 때 그냥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한글 자막을 동시에 봐서 그런지 영어 대사를 알아들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전혀 한글 자막이 없는 경우는 분위기로 상황을 파악했지 말 하나하나는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thank you" "I'm sorry"같은 말들은 여전히 잘 들렸지만요. 그래서 저는 영어 공부 초보자가 영화로 공부하는 것을 말립니다. 최소한 중급이나 고급 학습자들이 영화로 할 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전에도 수없이 언급한 한 가지 원칙이 자신의 수준보다 약간 높은 교재를 골라야지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려우면 공부를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시간당 최대의 효율을 올릴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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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화로 영어공부에 도전했던 영화

두 번째로 영화 장르 선정이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이것도 사실 영화마다 다른데 단 한마디로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대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가족물이나 고전물 등은 대사가 아주 정제되어 있고 문장이 대개 잘 구성되어 있어서 공부하기에 매우 좋았습니다. 가장 곤란한 것이 SF나 액션 영화였는데 이런 영화는 중간에 액션씬이 많은데 대사는 겨우 “ouch", " dam it","yes","go!" 등 말 몇 마디로 30분씩 이어질 때도 있어서 재미는 있지만(물론 수십 번 보면 그나마 재미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건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어 공부에 좋은 영화는 욕이 덜 나오고 대사가 많은 것을 골라야 하는데 그게 바로 로맨틱 코미디나 고전물이었습니다.

간혹 약간 오래된 영화(로미오와 줄리엣, 카사블랑카 등)를 보면 우리나라 사극에서 쓰는 한국말이 현대물에서 쓰는 한국말과 다르듯이 조금 오래된 영어가 아닐까 걱정을 했는데 어디선가 읽어보니 영어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지금도 만들어지는 영어 시대물을 보면 영어가 아주 품위가 있는 것이 있어서 품위 있는 표현을 배우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렇게 배운 고급 표현을 사실 미국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사용해서 놀림을 받을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 보니 전혀 그런 걱정은 필요가 없더군요. 쉽고 격의 없는 영어는 정말 금방 배워지고 생각 없이 말하면 이런 표현만 나옵니다. 하지만 고급 영어도 편지를 쓰거나 뭔가 문서를 작성하면 필요하고 혹시 발표나 연설을 하게 되면 이런 좋은 표현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영화는 영어공부의 종합 선물세트이긴 하지만 누구에게나 맞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더 쉬운 교재로 내공을 키우고 도전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영화 선정과 좋은 교재 선정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가치 있는 공부이고 지루하지 않은 공부입니다. 세상에 여가선용과 공부를 같이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