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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그리고 미국 생활 이야기

미국 은행에서 무이자로 돈을 빌리다

우리 정서상 상당히 나쁜 행위로 간주되는 것 중의 하나가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강하게 군림하는 태도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알고 보면 이 세상이 다 그러하고, 세상을 살다 보면 이 글을 쓰는 저나 여러분들도 이런 태도에서 자유롭기가 힘들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래도 잠재의식에 조금 지사적 정의감이 있어서 이런 태도를 경멸하고 반대로 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약한 사람을 신사적이라고 칭송합니다.

은행이 돈을 버는 법

어쨌거나 이런 인생의 모순이 극대화되는 것이 바로 돈에 관련된 문제이고, 이 은행이라는 곳이 알고 보면 이런 모순의 정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은행의 수입원 중 하나인 예대마진이라는 것이 결국은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고, 돈을 적립한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를 지급해서 축적되는 것이니 모두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있어서 그렇지 조선시대의 고결한 선비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 정의로운 사업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은행이 없으면 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도 없고, 공과금을 일일이 관련 기관을 찾아 다니면서 내야 할 것이고, 돈을 어디에 보낼 수도 없을 것이니 은행의 순기능까지 부정하면서 은행이 필요 없다는 식의 비약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한 동네에서도 가장 깨끗하고 번듯한 건물에는 은행이 있기 마련인데 세계의 중심지라는 뉴욕에서도 가장 좋은 건물이 즐비한 곳인 로어맨하탄에 가보면-은행이 편의점보다도 더 많다는데-세상에서 돈을 가장 잘 버는 사람들도 그곳에 모여있으니 피땀 흘려서 재화를 직접 생산하는 사람들보다 그 돈이라는 것을 가지고 이리저리 투자하고 파는 사람들이 훨씬 부유한 현실이 조금 불편하기는 합니다.

얼어붙는 미국의 부동산 경기


금융사업 중에서도 가장 인간의 탐욕의 정점에 있는 이 투자은행이란 사업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문제로 시작되어 미국정부가 개입해 구제금융을 제공해야 할 정도로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월가의 시련은 로어맨하탄에서 끝나지 않고 북미대륙을 넘어 유럽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보통사람들에게까지 여파가 미치고 있으니 빨리 이런 금융위기가 지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이 없이도 집을 살 수 있는 나라 미국

저도 처음 미국에 와서 덜컥 집을 샀을 때 미국이란 나라가 참 희한한 점이 많다는 것을 이미 느꼈습니다. 집값의 10%만 있어도 나머지는 다 모기지라는 형태로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살 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왔고 그나마 이렇게 집을 사고 나면 2차 모기지라는 것이 있어서 집을 살 때 들어간 집값의 일부(10%가 들어갔건 30%가 들어갔건)를 담보로 다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1억5천짜리 아파트를 사면서 3천만 원을 불입을 하고 나머지 1억2천만 원을 주택대출을 받는데 이자에 따라 매 달 50만원에서 100만원을 30년 정도 내면 집이 자신의 것이 되었었습니다. 그러다가 돈이 필요하면 집값으로 모기지에 이미 들어간 3천만 원을 담보로 다시 돈을 빌려 이자와 원금을 나눠서 갚으면 되니까 결국은 1억5천만 원을 30년 동안 값을 능력만 되면 돈 한푼 없이도 집을 살 수 있었다는 결과가 됩니다. 30년으로 계산해서 1억5천만 원이라면 갚아야 할 원금은 일년에 500만원밖에 안되지만 이자가 원금의 몇 배가 되기 때문에 그래도 한 달에 나가는 돈은 100만원가까이 됩니다. (물론 이자에 따라 다르지만)

뉴욕처럼 집값이 아주 비싼 곳을 제외하고 미국의 중산층들이 거주하는 차고가 딸린 방 세 개짜리 2층 단독주택은 대개 2억에서 5억 원 사이 이기 때문에 물려받은 유산이 없는 일반인이 대학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결혼하고 집을 사게 되면 매달 월급에서 200만원에서 300만원 가량이 모기지로 나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다시 아주 대략적인 추산입니다만 미국의 중산층 맞벌이 부부가 버는 돈은 연봉 6천 만원에서 1억2천만 원 사이라고 보고 이는 세금과 의료보험료 등을 제하면 실 수령액으로 연봉 4천 만원에서 8천 만원정도입니다. 즉 한 달에 버는 3백 만원에서 7백 만원에서 집값으로 절반이 지출되는 셈입니다. 


자동차도 집집마다 필요에 의해서 두 대 이상 있는 집이 많습니다. 리스라는 것을 통해서 할부로 구입할 월 불입액의 반도 안 되는 돈으로 살 수(사실은 빌릴 수) 있지만 차를 두 대를 운용하려면 할부든 리스든 불입액 외에도 들어가는 돈이 많으므로(기름값, 보험료, 수리비 등) 자동차로도 100만원이상 쓴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손에 쥐어지는 가처분소득이 100만원에서 300만원이 될 터인데 이 금액이 옷도 사 입고, 전기세도 내고, 가구도 사고, 식료품도 사고, 노후에 대비해서 저축도 하고 교육비건 외식비건 필요한 곳에 지출해야 하는 돈입니다.

생각보다 가난한 미국 사람들

미국은 공과금이든 물건값이든 싼 것 같으면서도 희한하게 생각만큼 싸지 않아서 한 달 지출을 하고 보면 한국보다 더 많이 들어갑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주부들의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정말 아무데도 돈을 쓰지 않는데 200만원에서 300만원은 쉽게 없어진다는 사람이 많은데 절약하려고 더 노력하면 노력할 여지가 없지는 않겠지만 남자로서 가계부를 10년 가까이 써 온 제 생각으로도 한인 주부들의 하소연이 일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고생해서 돈을 모아 월세, 전세로 시작해서 15평 아파트를 거쳐 30평대로 점점 옮겨가고 차도 작은 차부터 시작해서 점차 큰 차로 옮겨가는 것이 정상적인 코스였다면 미국은 결혼하자마자 큰 집도 사고 차도 외상으로 사서 평생 갚아나가다가 은퇴할 때가 되면 집과 차가 진짜로 자기 것이 되는 것이 정상인 나라인 것 같습니다. 즉, 한국이나 미국이나 평생 열심히 일한 사람이 말년에 적당히 좋은 집과 차를 갖는 것은 똑같은데 미국 사람은 선진적인(?) 금융 시스템 덕분에 작은 집을 옮겨 다니면서 고생하는 단계가 생략되고 바로 꿈꾸는 집을 얻게 되는 것이죠.

대신 미국 사람들은 좋은 집과 차에 들어가는 돈 때문에 한국처럼 저축할 돈도 없는 사람들이고 새 옷을 자주 사 입을 돈도 없으며, 자녀들 대학 등록금 내 줄 돈도 대개는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명한 미국의 부모님들이 독립심을 길러줄 목적으로 지원을 일절 안 해줘서 미국 대학생들은 다 스스로 벌어서 용돈 쓰고, 학자금은 대출받아서 충당한 후에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갚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사실 미국 부모님들이 지원을 해 줄 돈이 없어서 못해준다는 것이 학설(?)에 점차 밀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좋은 집과 차를 가진 미국인들이 겉보기에는 다들 부족한 것 없이 부유한 것 같아도 사실 통장의 잔고는 월급 타기 전날은 제로에 가깝게 되는 일이 흔하다고 합니다.


야속한 미국 은행

미국 은행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은행이 인격체는 아니지만 정말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태도의 전형을 보여 줍니다. 돈이 있어서 빚을 얻을 일이 없으면 돈 좀 갖다 쓰라고 매일 권유하는 이메일과 편지가 옵니다. 돈이 없어서 빚을 얻으려면 별의별 질문을 다해서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고는 필요한 것보다 훨씬 적은 돈을, 기대한 것보다 훨씬 높은 이자로 줍니다. 그리고 조금만 연체하면 이자가 사채 수준으로 올라갑니다. (이게 우리나라 은행들이 배우려는 선진 금융기법은 아니겠지요.) 그나마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면 좋은데 돈이 정말로 필요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출 자체가 거절됩니다.

은행이 자선사업을 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위에서 말한 영리를 추구하는 행위가 정의나 불의의 기준으로 판단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야속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정한 미국 은행에서도 무이자로 대출을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한국에 계신 분들에게는 어차피 그림의 떡이지만 첨단 자본주의의 나라에 이런 단면도 있다는 것을 그냥 재미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와서 시간이 조금 흐르고 신용카드를 만들 자격이 되었을 때 신용카드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용카드를 처음 만들고 보니 어이가 없게 신용카드 사용한도가 30만원 밖에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현찰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관계로 신용카드로 거의 모든 지출이 이루어지는데 한도가 30만원이다 보니 조금만 써도 한도에 쉽게 도달했습니다.

미국의 신용카드라는 것은 한국의 신용카드처럼 매달 결재금액을 다 갚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연체가 되는 시스템이 아니고, 리볼빙 카드와 같은 개념이어서 결재금액을 한달 이전에라도 아무 때나 갚아도 되고 만약 전체를 갚지 못하면 10%로 안 되는 Minimum payment라는 아주 소액만 채워 넣으면 사용한 금액에 대한 이자를 무는 대신 연체를 걱정하지 않고 한도 내에서 계속 사용이 가능합니다. 저의 경우 30만원이 한도인 카드를 쓰려면 결재를 한 달에 한 번 하는 것이 아니라 카드를 쓸 때마다 돈을 갚아 나가서 일정 한도를 계속 유지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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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운이 좋게 제가 속한 학회에서 회원을 대상으로 카드사와 제휴한 특별 카드를 만들 기회가 있었습니다. 카드를 만들려고 전화를 하니 카드사 직원이 1년간의 특별 홍보기간이기 때문에 무이자로 현금서비스를 해 준다고 혹시 원하면 말을 하라고 하더군요. 한도가 500만원 정도인 카드였는데 무이자라니 아무리 은행 예금 이자가 낮아도 200만원 정도 현금 서비스를 받아서 은행에 넣어두면 이득이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은행 계좌를 알려주고 200만원을 이체 입금시켜달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진짜로 돈은 통장에 들어왔습니다. 물론 신용카드 한도는 300만원밖에 안 남은 셈이었지만 신기하더군요. 그냥 돈을 빌려주다니 말이죠.

그런데 나중에 약간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대출 수수료로 대출액의 3%가 나간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즉 카드 사용액이 206만원이 빠져 나간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1년간 대출이자가 따로 없었어도 은행이자로 생기는 돈보다 더 큰 돈이 지출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 마음 속에는 당시 딱히 돈이 필요도 없었는데 그냥 무이자라는 말에 좋아서 현금 서비스를 받고 후회한 경험이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아무리 0% 이자라는 말을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은행에서 무이자 대출을 제의받다

그런데 최근에 제가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를 발급한 A은행에서 비슷한 제의를 하는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냥 북 찢어서 버리려다가 생각해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같은 은행 대출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자가 10%가 훨씬 넘는 신용대출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이 카드에서 대출을 받아서 이 은행 대출을 갚으면 아무리 3%의 수수료를 감안하더라도 이익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이 카드회사에서 보낸 수표에 제가 현금 서비스 받고 싶은 금액만큼 적어서 제 C은행 계좌에 입금했습니다. 이틀 정도 지나고 신용승인이 나서 결국 돈이 입금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3% 이자의 일 년짜리 대출을 받은 셈입니다. (A은행 입장으로는 무이자라고 할 수 있지만) 물론 이런 특별 홍보기간의 혜택이 누구에게나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계신 분으로서 어느 정도 신용점수가 되신다면 신청을 해 볼 방법은 있습니다.

많은 은행과 신용카드 회사들이 신용카드 상품 중에 0% APR balance transfer(무이자 신용카드 대금 이체)라는 것을 상시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는 신용카드 한도 내에서 다른 신용카드 이체금액을 갚아주는 대신 자신들의 카드로는 3%의 수수료 외에는 따로 이자를 물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용카드의 리볼빙에 따른 이자율이 연간 10-20%에 달하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이익이 됩니다. 간혹 저처럼 운이 좋다면 0% APR cash advance(무이자 현금 서비스)도 만날 수 있지만 balance transfer 자체로도 고액의 신용카드 이자를 무는 사람은 고려해 볼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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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이런 혜택을 제공하는 신용카드에서 신용카드 사용금액에 대한 포인트를 적립해서 현금으로 돌려주기도 하기 때문에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카드에 한시적이라도 0% 이자율이라면 이론상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돈이 더 생기는 것도 가능합니다. 현재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카드는 대개 1-5% 사이가 되지만 1%이상만 적립해줘도 좋은 카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신용카드를 신청할 때는 신청서에 적힌 아주 작은 글씨도 다 읽어보고 속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신용카드를 이용한 무이자 현금 서비스나 대금 이체 서비스의 단점이라면 대개 금액이 수십에서 수백 만원 이내의 소액이라는 것과(신용카드 한도액 내에서만 가능하므로) 신용카드이다 보니 승인이 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점, 카드가 올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 대개는 일년내지 일년반의 홍보기간이 끝나면 원래 이자가 회복된다는 점이 되겠습니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전 세계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좋은 집에서 잘 사는 것 같지만 미국의 중산층들에게도 이 시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또한 보통 사람들에게는 대출이 너무나 힘들어지고 있습니다만 신용카드를 잘 이용하면 공짜로 은행 돈을 쓰는 수도 생기는 것을 보면 미국이란 나라가 살면 살수록 신기한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출처 : http://static.howstuffworks.com/gif/foreclosure-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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