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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그리고 미국 생활 이야기

미국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겪게 되는 일

미국에 온지 1년도 되지 않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 여름날 차를 몰고 퇴근하고 있는데 제 차 앞의 자동차가 갑자기 급정거를 했습니다. 그 차의 앞의 차가 좌회전을 하기 위해 속도를 줄였기 때문인데 저도 추돌을 피하기 위해 급정거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적절한 안전거리를 유지한 덕분에 추돌하기 직전에 설 수 있었고 십년감수했다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뒤에서 제 차를 들이받는 소리가 났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에 꽤 놀랐지만 다친 곳은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룸미러로 확인해보니 뒤에 포드 포커스 한대가 제 차의 뒷범퍼를 들이받은 상태였고 운전자인 백인 아가씨는 나보다 더 놀란 듯 운전석에서 굳어 있었습니다. 일단 차에서 내려서 손상 정도를 확인해야 했는데 아주 약간 목이 뒤로 젖혀지기는 했지만 통증이 있거나 어디에 부딪힌 상태는 아니었는데 목이 아프다고 쇼(?)를 하면서 차에서 내릴까 하는 불순한 생각이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연기에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그냥 담담하게 차에서 내렸습니다.

포드 포커스와의 악연의 시작 (5분의 1 읽으셨습니다)

차에서 내려서 확인해보니 뒷 차가 제 차의 뒷 범퍼 아랫부분으로 약간 파고 들은 형상이 되어 가해자의 포드 포커스는 후드가 약간 접힌 상태가 되었고 범퍼와 라디에이터도 눈에 띄게 파손된 상태였습니다. 제 차는 이 포드에 비하면 아주 경미한 손상이었습니다. 범퍼만 부분적으로 파손되고 페인트가 보기 싫게 벗겨진 정도였으니까요. 저도 생전 처음 당해보는 미국에서의 교통사고라 뭘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내 차와 악연이 깊은(?) 포드사의 준중형 세단 포커스


이러는 과정 중에 도로 1차선에 멈춰서 있는 제 차와 가해자의 차량이 상당히 심한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이 사고를 증명할 수 있는 카메라도 없고 이 가해자 아가씨가 나중에 자신은 이 사고와 관련 없다고 발뺌이라도 할 것이 무서워서 교통사고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꼬리를 물고 차들이 지나가면서 운전자들이 창문을 내리고 차를 갓길로 빼라고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지만 하도 사람들이 불평을 하니 차를 어쩔 수 없이 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차를 빼고 나서 저는 일단 제 자동차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고 그 아가씨는 자신의 보험회사와 통화를 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보험회사에서는 경찰에 연락을 해서 경찰의 사고기록(police report)을 받아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난감하더군요. 한국에서야 응급상황은 119, 경찰은 112, 간첩신고는 113으로 전화번호를 다 알고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무슨 번호를 걸어야 경찰이 오는지 말이죠. 미국에서 제가 아는 유일한 번호는 응급상황에 911을 건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기지를 발휘해서 그 백인 아가씨에게 말했습니다. 보험회사가 그러는데 네가 경찰을 불러야 한다더라. 빨리 경찰을 불러라 하고 말이죠.

superiorpics.com

순진한 그 아가씨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경찰에 전화를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은 응급이건 경찰이건 다 911을 누르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만 당시에는 이런 것을 몰랐던 지라 이렇게 머리를 썼다는 사실이 상당히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20분 정도 있으니까 경찰이 도착해서 사고의 전모를 파악하고 나름대로 기록을 했습니다. 그리고 경찰 사고기록이 필요하면 나중에 연락을 하라고 하면서 경찰은 떠났습니다. 저나 그 아가씨나 둘 다 자신의 보험회사에 신고도 했고 더 이상 할말은 없었습니다.

네가 잘했느니 내가 잘했느니 옥신각신 싸울우지 않았던 이유중의 하나는 일단 이 가해자가 아름다운 아가씨였다는(?) 사실이 컸는데 제가 좋아하는 (하지만 별로 유명하지 않은) 미국 영화배우 알리샤 위츠를 닮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경찰이 사건 정황에 대해 누구 잘못인지 묻지도 않고 단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확인한데다가, 저도 워낙 이런 말싸움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글이 길어서 미안합니다. 천천히 읽으시면 조금 재미있습니다만 시간을 빼앗아서 죄송합니다. ^^;;

일단 모든 보고가 끝나고 나서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우리와 같은 층에 사는 존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존은 자신도 사고 현장을 지나가면서 보았다며 미국의 법으로는 후방추돌의 경우 무조건 가해차량의 책임이 100%이기 때문에 너는 잘못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필요하면 자신이 증인이 되어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이 마음씨 착한 아저씨가 너무나 고맙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방추돌이기 때문에 저의 책임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나니 길에서 그 아가씨와 말싸움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말싸움이 없는 미국의 접촉사고 현장 (5분의 2 읽으셨습니다)

사고에 따라서 가해차량의 책임이 7:3이라거나 8:2 이런 식으로 비율이 나와야 하는 상황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속설이 조금은 사실일 수 있을 것이고 운전자는 어느 상황에서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방이 더 잘못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사고의 경우처럼 앞사람이 급정거를 어떤 이유에서 했건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뒤쪽 차량이 100%의 책임을 진다고 한다면 교통사고 현장에서 싸울 일이 없기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조사를 해보니 한국에서도 후방추돌 사고의 경우 뒷 차의 과실을 무조건 100%로 잡는다고 하더군요.

과실의 산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 후방추돌이 아닌 가벼운 접촉사고의 경우일 것 같은데 미국에서는 이런 경우에도 길거리에서 말싸움을 벌이는 경우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통상적인 반응은 차에서 내려서 차의 손상 정도를 확인하고 경찰과 보험회사에 전화를 한 다음에 그냥 조용히 차에 앉아서 기다리는 겁니다. 제 생각으로는 미국인들이 한국사람들보다 더 점잖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경찰과 보험회사가 충분히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은 믿기 때문일 수도 있고, 본인들이 나서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실제 경찰의 사고 기록 작성에 있어서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합니다.

같은 예는 아닙니다만 한국에서 제가 겪은 황당한 경우가 한 가지 기억납니다. 2000년 초반이었던 그 날은 전날 눈이 와서 도로가 결빙이 된 상태였는데 저는 길가에 제 르망을 주차하고 도로가 보이는 창가의 자리를 잡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도로변이 정식 주차선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서울의 여느 2차선 도로와 같이 한쪽으로 차들이 줄줄이 주차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엘란트라가 다가오더니 미끄러지기 시작해서 제가 보는 눈앞에서 주차된 제 르망의 뒷범퍼를 들이받는 것이었습니다. 식사를 하다 말고 뛰어나갔지요.

다행히 제차는 범퍼에 약간의 눌림이 있는 정도였는데 가해차량은 상당히 많이 부서진 상태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 차가 일으킨 사고에 대해 100%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험사와 처리를 협의하다 보니 길가에 불법주차를 한 제 책임도 20%는 있다고 했고 상대방의 엘란트라의 파손 정도가 커서 결국은 제가 조금은 부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부담분이 50만원 정도여서 제 보험료 상승을 막기 위해 저는 눈물을 머금고 보험을 통하지 않고 제 개인 돈을 부담해서 가해자 차량을 고쳐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절차가 복잡한 미국의 자동차 수리 (5분의 3 읽으셨습니다)

이런 상황에 미국 같았으면 어떻게 처리가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존 아저씨가 소개해준 자동차 공업사에 며칠 후 차를 몰고 갔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공업사 측에서 예약을 했느냐고 했습니다. 차가 부서져서 갔는데 이런 것도 예약이 필요한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날은 일단 예약을 하고 부서진 차를 몰고 집에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예약된 날짜에 갔는데 더 황당하게도 그 날은 차를 고치기 위해 예약한 날이 아니고 그냥 사고 견적만 내준 날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저런 체크를 하더니 대략 750불의 견적이 나온다고 들었고 견적 후 다시 집에 와야 했습니다. 사실 제가 돈 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비싼 가격도 황당했습니다.

평소에는 한적하다가 갑자기 막히는 미국의 고속도로


제가 한국에서 고속도로 톨게이트 진입을 앞두고 후방추돌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비슷하게 뒷 범퍼의 손상만 있었고 제가 아는 공업사에서 원래 15만원이라는 것을 13만원으로 깎아서 범퍼를 교체작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도 가해차량의 소유주가 가격을 부담했는데 왜 돈을 깎는 수고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달러로 계산하면 대충 150불 정도였을 것 같은데 미국의 범퍼 수리비는 교체가 아니고 수리인데도 750불이라니 세상이 이런 바가지가 어디에 있나 싶더군요. 이번 일로 인건비 비싼 미국의 현실을 실감했고 한국의 솜씨 좋은 자동차 수리공이 미국에 오면 돈 정말 많이 벌겠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견적을 받은 날 견적 후에 자동차를 고치러 입고하는 날짜를 다시 받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차를 입고시켰는데 수리도 그날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며칠이 걸린다고 해서 기아 리오를 렌트해서 집에 타고 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다시 방문해서 차를 찾아왔습니다. 이 경험은 미국의 문화가 분명히 본받을 것도 있지만 한국식 효율성만 못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런 악몽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제가 맨하탄 방향으로 들어가는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도에서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도로 출구를 앞두고 차들이 길게 정체해 서있었고 뒤늦게 발견한 앞차가 급정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차를 계속 따라오던 저도 역시 급정거를 했습니다. 저는 간발의 차로 사고를 피했는데 관건은 제 뒤의 차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포드 포커스였는데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것이 룸미러로 보였습니다. 제발 정지해라 하고 마음속으로 빌고 있는데 다행히 급정거를 한 이 차가 제 차에 추돌을 하지 않고 서게 되었습니다. 아주 다행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이 포드 포커스의 뒤에서 달려오던 캐딜락 택시였습니다. 안심도 잠깐 순식간에 이 캐딜락 택시가 제 차 뒤의 포드 포커스를 들이받고 포드 포커스는 충격으로 밀려서 제 차를 다시 들이받았습니다. 약간의 공간이 있어서 제 차는 제 앞의 차를 들이받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3중 추돌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뻔뻔스러운 택시 운전기사 (5분의 4 읽으셨습니다. 거의 끝입니다. ^^;;)

저도 갈 길이 바빴고 제 뒤의 소형차에 가득 탄 4명의 젊은 흑인들도 새 차를 사서 시승식을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불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화가 나더군요. 왜 이 캐딜락 택시의 히스패닉 운전기사에게 왜 전방주시 의무를 태만히 했느냐는 (쉬운 말로 앞 좀 똑바로 보고 다녀 라는) 항의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래 봤자 뭐가 달라지겠냐 싶어서 그냥 담담하게 사고 수습을 했습니다. 얄미운 이 친구는 자기 차의 ABS브레이크가 작동했는데도 충돌했다면서 애꿎은 차를 비난하고 자기 잘못은 없는 것처럼 뻔뻔스럽게 이야기하더군요. 뉴욕에 와서 예의 없는 뜨내기 이민자 친구들에게 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 그냥 포기하고 듣고 있었습니다. 보험회사와 경찰에 연락을 했고 사고 처리 절차는 이전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복잡한 미국 경찰의 교통사고기록


제 자동차의 손상은 그냥 뒤 범퍼가 손상된 정도라 속으로 또 750불짜리구나 하면서 갈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후 처리 절차가 조금 달랐습니다. 전에는 그냥 보험사와 계약된 자동차 공업사에 예약을 하고 견적을 받고 수리를 받으면 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제 보험회사와 가해자 보험회사와 따로 시간약속을 잡고 수리 견적을 받았습니다. 거기다가 무슨 보고할 것이 그렇게 많은지 뉴욕 주정부에 보고를 해야 했고, 경찰서에 직접 찾아가서 경찰 사고 기록을 찾아야 했으며, 두 세가지나 되는 리포트를 작성해서 보험사에 내야 했습니다. 피해자가 된 것만 것 억울한데 이렇게 시간을 내서 잡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주 분개스러웠는데 다시 한번 뉴욕의 시스템에 대해 실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일을 마무리하고 가해차량의 보험사에서 저에게 300달러 가량의 견적을 내주더니 즉석에서 수표를 끊어주었습니다. 차를 입고시켜서 저를 거치지 않고 바로 돈이 공업사로 지급되는 미주리에서의 관행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700불 이상의 견적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의 반도 안 되는 견적을 주어서 의아했는데 보험사 직원 이야기로는 일단 이 돈으로 공업사에서 일을 보고 모자라는 차액은 따로 청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수난이 끊이지 않는 나의 애마

나중에 줄 돈을 주더라도 되도록이면 견적을 적게 내어서 초기 비용지불을 최소화하려는 꼼수로 생각이 됩니다. 이런 꼼수를 응징하기 위해서라도 공업사에 가서 제대로 범퍼를 수리했어야 했는데 제가 시간도 없고 돈도 궁한 바람에 300달러 수표는 계좌에 넣고 써버렸고 아직도 뒤 범퍼는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노련한 보험사의 계략이 먹혔다고나 할까요?

어쨌거나 말싸움이 없는 미국의 접촉사고 처리현장은 좀 배울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사고처리 시스템을 정교화하여 접촉사고 당사자들이 나서서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아도 충분히 공정하게 처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재수없는 사고의 피해자가 시간을 내서 경찰서에 가야하고, 두 군데 보험사에 몇 번씩이나 전화하고, 보험사 견적을 받기 위해 시간을 내야하고, 문서를 작성해서 주정부에 보내고, 비슷한 문서를 보험사에 보내고, 차량 수리 견적을 받기 위해 예약을 하고, 수리를 받기 위해 예약을 하고, 한국보다 몇 배나 되는 돈을 들여서 수리를 하는 비효율적인 문화는 본받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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