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몽골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외국인 며느리가 어디에선가 인터뷰한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시어머니가 몽골에도 냉장고 같은 것을 본적이 있느냐고 물어볼 때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존심 상하는 상황이 우리 자신들에게도 예외가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언젠가 지인에게서 자신이 처음에 미국에 왔을 때 (2000년경) 미국인 할머니가 한국에도 세탁기가 있느냐고 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한국이 너무 짧은 시간에 산업화를 이루어서인지 외국인들의 인식은 우리가 느끼는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첫 줄에 공동구매에 관한 이야기가 보인다 에드먼즈닷컴에서 한국에 다녀가다(source;edmunds.com) 고맙긴 한데 낯이 좀 간지러운 평가(source; edmunds.com)
현대자동차는 일본차 회사?
그나마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의 개선에 크게 기여를 한 것이 한국 기업들의 외국 진출인데 한국에서는 기업들의 갖가지 행태가 존경보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외국에 살다 보니 그래도 우리나라 기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 곳 미국에서 한국을 대표할 만한 기업으로 삼성이나 LG을 빼놓을 수 없는데 애석하게도 이들 기업이 한국 기업이 아니고 일본 기업이니 심지어는 미국 기업으로 잘 못 알고 있는 미국인이 많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동차에서는 예외가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인데 예전에는 많은 미국인들이 일본 기업으로 생각했습니다.
일본기업에도 도요타나 니싼, 혼다처럼 잘 알려진 큰 회사들이 있지만 이스즈나 스즈키처럼 비교적 작은 회사들도 미국에 차를 팔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미국인들이 현대를 이런 군소 일본 회사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현대 측으로서도 일본의 국가 이미지가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는지 오해를 풀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한국 자동차에 대한 인식의 변화
그런데 약 10여 년 전부터 현대가 한국산이라는 이야기가 일반인들에게 까지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미국인 계몽에 앞장서는 것이 바로 미국의 자동차 저널리스트들과 일반 네티즌들입니다. 이들이 한국 바로 알리기 운동이라도 했다는 것이 아니고 글을 쓸 때 마다 한국차와 현대차는 같은 것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왜 현대 미국 진출 25년사에 하필이면 최근 10년간에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느냐면 이 시기가 현대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대폭 상승하기 시작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그 전까지는 존재감이 없는 무시의 대상이었다가 조금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가 처음부터 좋은 것은 아니어서 불과 2005년 이전만 해도 현대의 신차가 나오면 한국산 싼 차가 나왔는데 저렴하고 옵션 많은 차를 고르는 사람은 한 번 고려해 볼만하다는 정도의 평가가 많았습니다. 제가 전에도 썼지만 현대 그렌저 XG가 이랬고 이전세대 산타페나 소나타도 이런 평가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국에 건너오기 직전만 해도 이런 사실을 국내 언론을 통해서는 바로 알기가 힘들었습니다.
국산차가 미국에서 폭발적인 판매 신장을 하고 있으며 그 인기의 비결은 높은 품질과 가격이다 라는 정도였지요. (사실은 순위권 바닥이었던 저 품질이 중하 품질로 올라갔고 가격은 항상 가장 싼 차였지만요) 그런데 그랜저, NF 소나타, 베라크루즈 출시 등을 기점으로 미국 소비자들과 자동차 저널리스트들의 한국차에 대한 인식은 숨가쁠 정도로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관심을 가지고 계속 소식을 전해드린 제네시스가 이런 인식 변화의 한 복판에 있습니다. 제 작년부터 미국인들이 한국차에 대한 인식은 ‘한국에서 고급차를 만들 능력이 되느냐’ 혹은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는 입장에서 ‘차는 괜찮게 만들지만 이미지가 나빠서 많이는 못 팔 것이다’라는 것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현대 제네시스 쿠페 동호회 사이트
얼마 전에 웹 서핑을 하다가 제네시스 쿠페 미국 동호회 사이트를 발견했습니다. 아직 출시도 하지 않은 차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 정도까지 의견을 나누고 있는 모습은 정말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저도 많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에 제네시스가 출시하기 전에도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 제네시스에 대한 기대와 전망(긍정적이든 비관적이든)을 나누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지만 쿠페의 경우 이렇게 인터넷 동호회가 빨리 결성이 되고 각종 튜닝작업에 대한 업체 정보와 부품 정보까지 나누고 있는 모습은 정말 의외였습니다.
심지어는 어제부터는 쿠페 공동구매를 하자는 제의가 생기면서 많은 네티즌들이 호응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마 제네시스가 성능 면에서 그래도 당초의 기대를 크게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제네시스 쿠페에 대해서도 차가 제대로 나올 것을 믿고 여러 가지 기대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여러 네티즌들의 글을 읽는 가운데 한가지 눈에 뜨이는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네티즌이 유튜브에서 퍼 온 것인데 바로 우리나라 오토조인스의 김기태 PD가 제네시스 쿠페를 시승한 동영상에다 영문 자막을 입힌 것이었습니다. 자동차업계에서 바이럴 마케팅의 일환으로 은근슬쩍 자사의 홍보 동영상을 유튜브에 흘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만 이 오토조인스의 동영상을 보니 내용상 현대에서 만든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동영상의 내용이 제네시스 쿠페의 약점이 줄줄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동영상을 본 미국 네티즌들의 일부는 미국에 출시하기 전에 단점들이 보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상당수는 김 PD의 비판을 믿을 수 없다며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현대는 제네시스 세단 2만대, 쿠페 3만대가 연간 미국에서 팔려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가격이 낮은 쿠페가 많이 팔리는 것이 당연할 것도 같지만 우리나라처럼 미국에서도 문이 두 개밖에 없는 쿠페는 실용성이 낮아서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는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리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현대가 감히 이런 목표를 설정한 배경은 제네시스 쿠페가 가격대비 품질의 우위에서 정점에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입니다.
제네시스 쿠페의 경쟁자가 될 차들은 인피니티 G37쿠페와 같은 차들로부터 시보레 카마로 같은 차까지 아주 많습니다만 2만불 중반에 300마력이 넘는 후륜구동 스포츠카는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현대는 작년부터 꾸준히 각종 모터쇼 등을 통해서 감질나게 제네시스 쿠페에 관한 성능과 튜닝의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흘려왔기 때문에 차를 보고 싶어하는 젊은 미국의 네티즌이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심에 비해서 제네시스 쿠페라는 차에 대한 진짜 정보는 아주 부족한 현실입니다.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현대 측에서 발표하는 정보만으로는 차를 판단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난 1월에는 미국의 저명한 자동차 전문 사이트인 에드먼즈닷컴 측에서 한국을 방문해서 제네시스 쿠페를 시승하고 일차적인 느낌을 자사의 인사이드라인 웹사이트에 올렸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상반된 제네시스 쿠페 평가
그전까지의 뉴스는 거의 다 현대의 발표에 기반한 것이었지만 이 소식은 미국의 전문가가 한국까지 날아가서 차를 직접 접해본 만큼 미국 네티즌들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만한 글이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울진에서 차를 받아서 서울을 거쳐 설악산까지 길게 이어지는 며칠간의 여정에 관한 기록에서 제네시스 쿠페의 진짜 성능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대개 이렇게 차를 맛보기만 하는 것은 first drive라는 곳에서 소개되고 좀 더 자세한 내용은 road test나 comparison test부문에서 앞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 않은 것을 꼭 뭐라고 할 바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할 대목이었습니다. 하지만 문득 문득 나오는 차의 성능에 대한 언급이 많은 것을 암시하게 했습니다. 여기선 몇 가지 대목을 요약 소개해 봅니다.
1. 제네시스 쿠페는 아주 가혹한 운전 상황에서도 중심을 잘 잡아 주어서 언더스티어가 거의 없었다.
2. 브레이크는 성능을 절대 잃지 않았다
3. V6엔진은 토크가 충분해서 운행시 힘이 남아 돌았다.
4. 운전하는 느낌이 여러모로 인피니티 G37과 거의 비슷했다.
5. 운행시 각종 소음이 잘 억제되어 있어서 장거리 운행에 편안했다.
6. 결론은 제네시스 쿠페는 세계적인 수준의 자동차이다.
이 글에서 주로 장점이 언급되었는데 단점으로는 저속에서 서스펜션이 너무 딱딱해서 불편하다는 정도였습니다. 저도 이 글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글로 쓰고 보니 제네시스 쿠페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차 같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김기태 PD의 의견도 들어봐야 중심이 잡힐 것 같습니다. 김 PD는 2.0터보와 3.8리터 엔진을 다 시승했는데 3.8리터에 대한 평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스로틀의 반응이 느리다.
2. VDC가 자주 개입해서 스포츠 드라이빙을 방해한다
3. 전후 무게 배분의 밸러스가 좋지 못하다
4. 변속기와 클러치의 조화가 매끄럽지 않다
5. 고속주행에서 안정감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김PD도 장점을 열거하긴 했습니다. 예를 들어 엔진의 가속이 좋다든가 가격대비 성능이 국산차에서는 최고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경쟁자가 없다시피 한 국산차 시장을 생각해보면 엔진의 토크가 넓은 영역에서 나온다는 것 이외에는 스포츠카의 미덕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세단에서 문의 수만 두 개로 줄인 어정쩡한 차가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만발하고 있는 기대를 꺼뜨린 것에 대한 미국 네티즌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나 김 PD 평가에 더 신뢰가 갑니다.
현대차, 소비자 좀 무서워 해줬으면
현대 측에서 분명히 한국의 소비자들의 대다수는 스포츠 주행보다는 안락한 주행을 원한다고 생각하고 세단의 쿠페버전을 만들었으리라는 심증이 갑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스포츠세단은 아닌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던 제네시스 세단도 미국형으로 새로 서스펜션을 손보면서 미국에서는 주행 성능 부분에서 조금은 나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제네시스 쿠페도 이런 변화를 겪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정말 인사이드라인의 시승기처럼 더도 덜도 말고 인피니티 G37쿠페만큼만 달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인터넷의 시대가 정말 무섭긴 무섭습니다. 외국에서 일어나는 일도 이제 실시간으로 접하게 되었고 외국의 네티즌들도 한국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는 제네시스 쿠페가 미국시장에 데뷔하고 나서 이 관심과 열기가 유지될지 걱정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렇게 미국의 소식을 전할 때마다 댓글의 80%는 현대가 미국에서 잘하고 있건 말건 현대 자동차를 성토하는 네티즌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는데 현대 측은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눈에 뜨였던 것 한가지는 최근에 미국에 출시될 제네시스 쿠페의 가격을 국내 언론에 떳떳이(?) 공개한 것인데(환율 덕분이긴 하지만) 한국 가격이 미국 가격보다 싸니까 이제 독과점과 불공정 가격 논쟁에서는 좀 빼달라는 하소연이라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정도가 현대를 등진 민심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세계의 어느 기업이 자국민들에게 이렇게 욕을 많이 먹는 예가 또 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래도 한국 기업이 한국의 얼굴이라 미국에서는 계속 관심을 가지고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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