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어떤 유명 자동차 잡지의 편집장이 중국의 특정 자동차를 거명하면서 아낌없는 칭찬을 하고 한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중국만도 못하다고 했다고 해보겠습니다. 아니 한술 더 떠서 한국은 그런 차를 만들 가망이 없다고 했다고 해보지요. 물론 한국의 자동차 시장을 지배하는 특정 업체에 대해 국민들의 불만이 많다고 해도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인심 얻기는 힘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일이 미국에서 있었습니다.
최근 미국의 유수의 자동차 저널인 모터트랜드의 편집장은 앵거스 맥킨지씨는 얼마 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미국 자동차업계의 위기에 대해서 미국 자동차업계 내부에서 변화가 시작되어야 함을 역설한 바가 있습니다. 이런 말은 안 하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미국 자동차업계에서 계속 나오는 이야기라서 저에게도 새로울 것이 없었는데 지난 2월 24일 모터트랜드의 블로그에서 맥킨지씨는 디트로이트 발언의 후속타로써 욕먹을 각오를 한 듯 작심하고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을 보고서야 저도 그의 뜻을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는데 한국의 자동차 업계에 대한 내용과 엮이는 부분이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제목부터 충격적입니다.
2009 Hyundai Genesis: A car Detroit can now only dream of building?
현대 제네시스: 디트로이트는 만들 꿈이나 꿀 수 있는 차
물론 제목과 마찬가지로 본문도 제네시스에 대한 칭찬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네시스를 칭찬하면서 미국 자동차 빅 3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다 해석하기는 어려우므로 일부 내용을 따 보겠습니다. 원문의 내용이 궁금하시면 위에 제목을 클릭하시면 원문과 연결됩니다. 괄호 안은 제 설명입니다. 아래 내용은 전반적인 취지를 살려 의역한 것입니다.
제네시스는 대단한 차다. 4.6엔진의 차를 1주일간 몰아보니 나는 진정으로 뛰어난 작품에 거의 근접한 자동차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소음은 낮고, 장비 수준은 높으며, 실내는 조용하게 절제된 품질이 배어 나왔다. 내가 손을 보면 뭘 할 것이냐고? 일단 프런트 그릴부터 시작하겠다. -중략- 하지만 킴 레이놀드(모터트랜드 편집위원)가 ‘독일과 일본의 똑똑한 엔지니어들은 한국의 기술자들이 턱 밑까지 쫓아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고 썼듯이 현대는 이 모든 것들은 손쉽게 손볼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독일과 일본은 그렇다고 치고 미국의 똑똑한 기술자들은 그럼 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충격적인 현실이 나에게 엄습했다. 아마도 현대 제네시스는 아마 미국의 빅 3가 만들 수 있는 능력 밖의 차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빅 3는 모두 망해가고 있거나 빚에 쪼들리면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이제 대형 후륜구동 고급차는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GM은 후륜구동 식 캐딜락 STS/DTS 개발을 중단시켰고 신형 노드스타 8기통 엔진 개발 계획을 철회했으며 포드의 대형 후륜구동 세단은 1978년에 도입될 당시에도 이미 구닥다리였던 낡은 플랫폼에 올려질 예정이고, 크라이슬러는 벤츠에서 받은 구식 플랫폼을 어떻게 길게 늘릴까 연구하고 있다.
그들이 돈이 있다고 한들, 빅 3는 이미 대형 후륜구동 세단 개발 계획에서 이미 저만치 비켜나있거니와 부드러움, 세련됨, 성능, 연료효율 등을 따져볼 때 그들이 제네시스를 능가할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어쨌거나 빅 3가 아직은 그래도 괜찮은 디자이너들이 있으니까 어쩌면 덩치 큰 캐딜락, 링컨, 크라이슬러 자동차가 현대보다 겉보기에 나아 보일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더 나은 차를 만들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듣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한 때 이 분야의 시장을 지배했었다. 이제 그들이 다시 이 분야로 돌아온다면 이젠 거꾸로 유럽, 일본, 한국 자동차를 따라 잡아야 하는 도전자의 입장에 서야 할 것이다. 아마 그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30년 동안 오로지 질 낮고, 세련되지 못하더라도 마진이 많이 남는 SUV에 집중하면 누구에게라도 생기는 현상이리라.
시작은 제네시스에 대한 아낌없는 칭찬이지만 결국은 시대를 예측한 기술 개발에 게을러서 이젠 값싸고 품질 좋은 고성능 자동차를 만들 능력을 잃어버린 미국 자동차 업계에 대한 낙담과 비판이 들어 있습니다. 이 글에 일부는 분노하고 일부는 동조하면서 다양한 댓글이 달리고 있습니다.
자존심 상한 미국 네티즌들의 다양한 반응
다양한 댓글의 반응을 유형별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일단 맥킨지씨의 말이 틀렸다는 쪽입니다. 즉, 미국 업체들은 제네시스에 필적하는 혹은 능가하는 차를 이미 만들고 있다는 의견을 보시죠.
Is the G8 so bad in your opinion that it doesn't even warrant mention in your article?
당신 생각에 폰티악 G8은 당신 글에 한 번 언급을 할 가치도 없는 나쁜 차인가?
스포츠세단, 폰티악 G8
source ; edmunds.com
No CTS? I understand it's not a large car but it was the basis for the STS.
캐딜락 CTS는 왜 언급을 안 하시나? 큰 차는 아니지만 캐딜락 STS의 기본이 될 차인데.
Um GM and Chrysler both have vehicles that can go toe to toe with this Genesis. The G8 comes to mind first but also the 300 and the Charger. Those two second ones are older now and need a refresh, but they can still put up a good fight against this much newer entry. Also, how can you forget the CTS? It unlike the Genesis actually won the COTY award in its respective year. Seriously, you are slipping.
음. GM과 크라이슬러는 제네시스에 필적하는 차를 이미 가지고 있는데. 폰티악 G8이 먼저 떠오르고, 크라이슬러 300과 닷지 차저도 그렇고. 크라이슬러 차들은 좀 오래된 것들이라 새 단장이 필요하긴 하지만 제네시스에 대항마로 적절한 것 같은데. 그리고 캐딜락 CTS는 잊어버리셨나? 제네시스는 아깝게 모터트랜드 올해의 자동차 상을 못 탔지만 CTS는 상을 탔잖나. 진짜 당신 실수하고 있다고.
캐딜락 CTS
source; edmunds.com
이런 발언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 위에 언급된 차들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제네시스는 이 블로그 글에서 소개하듯이 후륜구동이고 8기통이며(6기통도 있지만) 럭셔리 스포츠 세단을 표방하고 있고(이론의 여지는 있습니다) 값이 비교적 저렴하다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충족하는 차는 미국에서 나올 수가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폰티악 G8은 미국의 BMW M5라는 차입니다. 제네시스에 필적하는 차체크기에다가 6.2리터 8기통엔진의 경우 415마력을 내는 괴물스러운 엔진을 가졌습니다. 가격은 제네시스와 비슷하나 훨씬 핸들링이 낫다는 평가이고 대신 럭셔리한 면모는 떨어지는 평범한 내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캐딜락 CTS는 소나타와 제네시스의 중간 정도의 길이지만 일단 후륜구동 럭셔리 스포츠 세단으로 평가 받고 있고 캐딜락을 살린 히트작입니다. 크라이슬러 300도 다임러크라이슬러 시절에 개발된 벤츠의 플랫폼에 기반하는 후륜구동 차로 미국 시장에서 히트작으로 손꼽히는데 크기나 엔진도 제네시스에 딸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언급된 세가지 자동차가 모두 후륜구동에다가 가격도 비슷하므로 제네시스의 경쟁자로 꼽히기에 자격이 있어 보이나 문제는 조금 있습니다. G8과 300은 한국의 아반테나 소나타처럼 럭셔리 자동차로 분류되지 않는 보통의 큰 차에 불과한데 한국차는 커지면 커질수록 럭셔리가 되어가기 때문에 크고 럭셔리가 아닌 차가 없어서 이해가 안 되는 카테고리이긴 합니다만 미국은 그렇습니다.
반면에 럭셔리 자동차인 CTS는 값은 더 비싸지만 크기가 작습니다. 어쨌거나 제네시스의 경우는 후륜구동의 럭셔리 자동차인데 값은 저렴하다는 측면에서 그 자체로 아주 독특한 차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미국산은 이렇게 저렴한 럭셔리가 없다는 것이 맥킨지씨의 글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빅 3는 아직도 승산이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왜 한국차는 칭찬하면서 미국차는 깎아 내리느냐고 항의하면서 빅 3에 아직도 기회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I don't think it's really an attack on the big three; if anything, maybe a little motivation to get back into it. I think the point is hyundai was a maker of cheap vehicles and their adminstration and engineers were able to turn the company around over a decade period to the point where it's starting to pump out luxury or near luxury vehicles under the same brand and people actually want them. If they can do it, maybe the Big 3 can too.
내 생각에는 저자가 빅 3를 비난한 것이라기 보다는 하루 속히 정신을 차리라는 입장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현대는 싼 차나 만들던 회사인데 경영자와 기술진이 노력해서 십 년 남짓한 시간에 럭셔리 혹은 준 럭셔리 차를 만드는 회사가 되었고 이런 차를 사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는 것이지. 그들이 할 수 있다면 빅 3도 할 수 있다고.
Ok so Korea came out over night with a big RWD lux sedan and all of the MT staff seem to have fallen head over heels about it. Well how long has Hyundai been in the RWD market? One year? So how can you say that the big three have been out of the "business" for so long that they could never compete if Hyundai has been never been in the "business" and comes out with an instant hit? What's to stop the big three from getting it right on the first try?...since they have "effectively been out of the large rear drive luxury sedan business for so long now". You make it sound as though they have no chance.
그래, 한국차가 하룻밤 사이에 대형 후륜구동 럭셔리 세단으로 나타나서 모든 모터트랜드 편집진이 사랑에 푹 빠진 것처럼 보이는군. 근데 현대가 얼마나 오래 후륜구동 자동차 시장에 있었나? 일년? 현대가 이런 차를 만들지도 못했다가 갑자기 히트작을 들고 나타났다면서 어떻게 당신은 빅3가 너무 오랫동안 이런 차를 못 만들어서 이젠 경쟁할 수 조차 없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 왜 빅 3는 지금 현대가 했던 것처럼 첫 번째 시도로 뭘 못 만든다고 하느냐 말이지. 당신은 빅 3가 이젠 기회조차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고.
곤혹스러운 모터트랜드의 맥킨지 편집장
source; motortrend.com
The big three is hopeless when it comes to anything refined and sophisticated.
빅 3는 이제 세련되고 정밀한 차를 만들기는 글렀다구.
all i have to say is if hyundai can beat the U.S. in the automotive industry go ahead because big 3 were too stupid to see that building crappy cars would eventually cost them EVERYTHING. I love Ford, and GM but it is their own fault they are were they are. I am acutually proud of Hyundai for being so smart and patient with the way they do business. watch out everyone I bet you Hyundai ends up on top and everyone ends up with one. its just how it goes when others are too greedy. Hyundai knows what they are doin, we are just too prideful to admit it.
내 생각에는 현대가 빅 3를 물리칠 수 있다면 그냥 그렇게 하라는 거야. 왜냐하면 빅 3는 너무 멍청한 나머지 덜 떨어지는 차를 만드는 것이 결국 망하는 길이라는 것을 몰랐단 말야. 나는 포드나 GM을 좋아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들 잘못이야. 나는 솔직히 현대가 그토록 똑똑하고 참을성 있게 사업을 잘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느낄 정도야. 모두들 지켜보라고. 내가 내기해도 좋은데 현대는 결국 세계 정상에 설 거야. 이게 결국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너무 욕심이 많을 때 일어나는 일이야. 현대는 자신들이 뭘 하는지 잘 알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기에는 자만심이 너무 많다는 거거든.
Drive the Genesis and then drive the G8 - there is no comparison - the Genesis is far better in every respect. Plus it looks great.
제네시스를 몰아보고 나서 G8을 몰아보라고. 비교가 안돼. 제네시스가 모든 면에서 훨씬 낫고 더욱이 외관도 더 멋있어.
크라이슬러 300
source; edmunds.com
아직은 갈 길이 먼 한국차 산업계 자만하지 말기를
저는 이런 글을 읽으면서 앞으로 미국인들의 두 가지 측면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약자를 응원하는 심정에서 나오는 응원입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약자로 분류되던 사람이 갑자기 몰랐던 실력을 보여주고 나오면 더욱 더 열광과 박수를 보내게 되고 성공을 축하해주게 됩니다. 미국 네티즌들의 현대 칭찬은 이런 측면이 큰데 지금까지는 얼리어답터나 젊은 층에서만 현대를 평가해주었다면 앞으로는 현대를 아는 일반인이 많아 질수록 이런 반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서 필리핀산 자동차가 떠 오른다면 한국에서는 어떤 반응들이 있을까 궁금해집니다만 우리도 이런 대인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현대를 이젠 강자로 인정을 해주고 이에 걸맞은 자세를 요구하려고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불과 2년 전만해도 빅 3와 현대를 비교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짧은 시간에 정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 같습니다. 이만한 성취를 이루기 어려웠겠지만 이만큼 이룬 데에 대해서 칭찬은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현대나 한국 자동차업계가 이런 칭찬에 너무 도취될까 봐 걱정이 됩니다. 솔직히 현대의 기술력은 부분별로 다르긴 하나 일본이나 독일은커녕 빅 3만도 못한 측면이 아직 많이 있습니다.
지금 오바마 정부는 미국의 내수 시장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만큼 한국 자동차 시장을 더 개방시키는 것과 더불어 미국에 들어오는 수입차에 대한 규제를 시행할 구실을 찾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가 강자로 비쳐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매스컴과 네티즌들로부터 받던 군소업체로 누리던 동정심은 싹 사라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현대든 기아든 한국차가 미국에서 팔리는 이유의 90%는 가격대비 가치가 크다는 것(즉, 싸다는 것)이라고 짐작해봅니다. 만약 가격이 혼다 수준으로 올라가기라도 한다면 아마 매출의 90%는 날아가지 않을까 싶고요. (그냥 짐작이니 너무 무게를 두지는 마세요.)
만약 지금까지 일본차 대비 95%의 품질에 85%의 가격으로 장사를 했다면 현대의 브랜드 이미지로는 100%의 가격을 받으려면 105%이상의 품질을 달성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의 품질과 가격에 대한 주장의 근거는 comsumer report 같은 잡지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지금의 칭찬은 전례가 없던 것이니 마음껏 즐겨도 되지만 앞으로는 긴장의 끈을 더 조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 지금 미국의 일본업체가 이 정도 위치에 선 비결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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