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표현에 party pooper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별로 품위 있는 말은 아니고 약간 속된 표현이긴 하지만 친한 사이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가끔 씁니다. 원래는 파티의 흥을 깨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지만 좋은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넓게 사용하기도 합니다. 지금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제가 원래 분위기를 이끌어가지는 못해도 최소한 남이 만들어놓은 좋은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은 아닌데 너무 아쉬워서 한마디 하려고 합니다. 현대차의 지난 3월 판매실적
최근 발표된 현대차의 미국 판매 통계를 보니까 지난 3월 총 40,721대를 팔아서 작년 동월 대비로는 5% 감소지만 전달 대비로는 33%의 판매 상승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미국의 빅 3와 일본의 빅 3가 다 약 40-50%의 감소를 보이는 상황이니 아무리 낮게 평가해도 아주 잘한 것은 맞습니다. 그 이면에는 한국산 차의 전반적인 품질 향상과 직장을 잃을 경우 차를 되 사준다는 Hyundai assurance program과 같은 파격적인 마케팅에다가 한국 원화의 약세를 타고 가격 경쟁력에 여유가 생긴 현대가 대폭 할인판매를 하고 있다는 한 몫을 했다는 것은 이미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습니다.
뜨거운 반응의 제네시스 쿠페
지난 2월말부터 미국에 팔리기 시작한 이래로 제네시스 쿠페가 상당히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미 소개시켜드린 바와 같이 일찌감치 동호회가 결정되어 각종 정보를 나누고 있으며 공동구매까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반응을 보면 아직 각 지역의 딜러들에 본격적으로 차가 풀리지 않았지만 앞으로 수요가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운이 좋으면 현대가 작년에 목표로 한 연간 3만대라는 목표에 가깝게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많은 미국 유수의 자동차 언론에서 제네시스 쿠페를 테스트하고 다른 경쟁자들과 비교 시승을 한 결과를 내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평가도 좋습니다. 지난 2월말 에드먼즈닷컴의 인사이드라인 비교시승에서는 인피니티 G37 쿠페와 비교결과 G37이 동력성능, 핸들링, 고급성 등에서 근소하나마 전반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0%나 차이가 나는 가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제네시스 쿠페의 손을 들어준 바가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오토모빌 매거진의 제네시스 쿠페 시승기에서도 직접 비교 시승은 아니었으나 인피니티 G37과 비교하면서 만 불이나 가격이 차이 남에도 불구하고 거의 근접하는 성능을 뽑아내었다면서 아마 현대가 이런 차를 만들 것은 아무도 상상을 못 했을것이라는 결론으로 상당히 우호적인 평을 했었습니다. 또 카앤드라이버에서는 가격을 생각하면 현대는 최상의 패키지로 정곡을 찔렀다면서 현대의 퍼포먼스카의 시작이 제대로 되었다고 칭찬했습니다. 또한 비교적 최근에 나온 오토블로그 시승에서는 결론에서 제네시스 쿠페를 팔기 위해서는 장기의 품질보증 서비스나 assurance program도 다 필요 없고 일단 차 살 사람이 운전석에 앉게만 만들면 된다는 극찬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셀 수 없는 군소 자동차 언론에서 제네시스 쿠페에 대한 칭찬을 계속 쏟아내고 있어서 마치 현대차와 미국 언론간의 허니문 기간이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럼 차도 잘 팔리고 새로 나온 차에 대한 평도 좋은데 도대체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인피니티 오너들의 항변
최근의 현대 제네시스 쿠페의 상승세 때문에 기분이 가장 많이 상한 사람들은 아마도 인피니티의 오너들일 것입니다. 실제로 인피니티 포럼에 가보면 심심찮게 제네시스 쿠페를 폄하하고 악담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오랫동안 저가의 삼류 자동차를 만드는 메이커로 알려진 현대가 감히 인피니티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G37의 명성을 넘보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말하는 항변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왜 현대 제네시스 쿠페가 인피니티 G37과 비교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현대가 90%의 자동차를 70%에 내놓았다지만 럭셔리 자동차를 사는 사람은 그 10%의 우위를 위해서 돈을 지불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마이바흐나 벤틀리 같은 명차를 사는 사람이 저렴한 가격의 자동차와 비교해서 가치가 더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듯 말이죠.
여러 가지 반론이 가능한 명제이지만 그래도 현대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들의 지향점은 가격대비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니 나름대로의 목표를 잘 실현한 것에 대해서 평가를 해줄 만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네시스 쿠페의 최대 무기인 이 가격대비 가치라는 것이 크게 도전 받는 사건이 최근 발생했습니다. 바로 제목에 소개되었던 모터트랜드의 제네시스 쿠페 비교시승 기사가 바로 그 것입니다. 사실 모터트랜드도 지금까지의 시승기를 통해서 제네시스 쿠페에 대해 다른 언론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호의적인 평을 해주었기 때문에 이번 비교 시승도 비슷할 것이라는 짐작이 있었습니다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천상천하유아독존’ 인줄로만 알았던 제네시스 쿠페보다 잘 난 차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제네시스 쿠페의 비교평가 꼴찌
이 잡지에서는 인피니티가 아닌 닛산의 370Z와 포드의 무스탕과 성능에 대한 비교 평가를 시행했습니다. 닛산의 370Z는 뒷좌석이 없는 2인승이고 크기가 훨씬 작으며, 무스탕은 6기통이 아니고 8기통인데다가 현대적 쿠페와 비교되기 어려운 여러 가지 태생적인 문제점(디자인, 중량, 플랫폼, 엔진, 리어액슬)이 있고 여기다가 비교 시승에 사용된 두 차종이 둘 다 제네시스 쿠페보다 4000에서 8000불 가량 비싸기 때문에 완전히 공정한 평가가 되기는 어려운 측면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렇게 변명거리가 있긴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유감스럽게도 제네시스 쿠페가 두 차량에 비해서 핸들링이나 가속력, 브레이크 성능 등에서 완패를 해서 꼴찌를 하게 됩니다.
그럼 만 불이나 비싼 인피니티는 성능 면에서 앞섰지만 가격이 비싸서 비교 시승에서 졌으나 4천불 비싼 무스탕이나 8천불 비싼 370Z가 이긴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현대는 좀 억울할지 몰라도 이런 비교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제네시스 쿠페가 더 뛰어나지 못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미국의 자동차 산업계가 멸종해가는 공룡처럼 취급 당하고 있어서 포드 무스탕이 제네시스 쿠페를 이겼다는 사실이 어쩌면 희귀한 현상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여기에 끝나지 않습니다.
최근 한국인이 디자인했다고 해서 더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시보레의 카마로라는 스포츠카가 있습니다. 예술적인 핸들링을 자랑하는 포르쉐나 BMW같은 부류가 아니고 직선에서 빨리 날아가는 것이 목표인 포드 무스탕이나 닷지 차저와 함께 묶여지는 머슬카의 부류입니다. 그런데 최근 에드먼즈닷컴의 인사이드라인에서 이 세가지 머슬카를 비교 시승한 결과 카마로가 1등을 한 것입니다. 차를 좀 아는 사람은 새로 나온 카마로가 워낙 잘 나온 차라서 하나도 놀라운 뉴스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카마로가 가진 객관적인 수치가 가공할만합니다. 캐딜락 CTS와 공유하는 3.6리터짜리 6기통 엔진은 304마력을 내는데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시간이 5.9초밖에 안 걸립니다. 더 놀라운 것은 가격인데 이런 차가 22000불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격은 제네시스 쿠페의 210마력이 나오는 4기통 터보를 살 수 있는 가격밖에 안됩니다. 지금까지는 현대의 무기는 싼 가격이었는데 더 높은 성능의 미국차가 이젠 현대의 밑을 파고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306마력의 제네시스 쿠페 3.8의 최고급 모델과 비슷한 가격의 카마로 8기통 모델은 430마력을 내는데 33000불입니다.
제네시스가 현대에서 나름대로 잘 나왔다고 자부하고 있는 제네시스 쿠페가 이미 멀리 앞에 달아나고 있는 일본차를 따라 잡으려고 시동을 걸고 있는 판에 갑자기 나타난 고성능의 미국 차들이 현대에게 먼지를 뒤집어 씌우며 앞서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과장을 하자면 가격대비 최고 스포츠 쿠페를 꿈꾸다가 졸지에 가격대비 최저의 스포츠 쿠페라는 나락으로 떨어질 판입니다.
미국의 머슬카와 현대적인 스포츠 쿠페를 직접 비교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고 가격의 차이도 할말이 많게 하긴 합니다만 무스탕과 비교하더라도 어떻게 BMW M3보다도 차체 강성이 나으며 4륜에 모두 스포츠 튜닝된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쓰는 제네시스 쿠페가 핸들링이 못하다든지, 하다못해 브렘보 브레이크까지 넣어놓고 브레이킹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해가 안됩니다. 현대는 항상 개개의 부품이나 시스템에서는 경쟁자를 앞선다고 하지만 전체로 놓고 보면 이렇게 항상 미진한 점이 나옵니다.
물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고급 휘발유가 아닌 일반 휘발유를 쓰는데다가 연비도 가장 뛰어난 제네시스 쿠페의 미덕은 다른 어떤 차도 따라 올 수가 없으며 현대의 10년 품질보증이라든가 다양한 옵션은 다른 회사가 쉽게 따라오지 못하는 강한 패키지입니다. 그런데 현대차의 장점은 항상 품질이 아니고 이런 부수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10개의 시승기에서 이기고 한 개의 시승기에서 졌다고 울상을 짓는 것은 말이 안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입니다.
현대, 기아의 불안한 선전
그리고 현대의 선전을 조금 뜯어 보면 지금의 영광에 거품이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매달 미국 내 자동차 판매 동향을 분석하는 오토모빌 매거진의 3월호 기사에 나오는 2월의 판매 동향에 대한 분석을 잠깐 보겠습니다. 보시면 자랑스럽게도 기아와 현대가 판매상승률이 3등과 4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현대 미주 법인의 천재적인 Hyundai assurance program덕분임은 말할 필요가 없는데 그럼 도대체 1,2등은 누구인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등은 한국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스마트라는 회사입니다. 차종도 포투 단 한가지밖에 없는데 한국으로 말하면 경차나 마찬가지인 차입니다. 두 개의 문에 2인승이고 1리터 엔진에 71마력을 냅니다. 당연히 연비가 좋아서 요즘 인기가 많습니다. 벤츠의 자회사인데 엔진은 미쯔비시의 것을 쓰는 복잡한 이력의 이 차는 아직은 판매량이 미미한 만큼 판매 상승률이 높다고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사실상의 진짜 일등은 2등으로 나오는 한국에는 생소한 일본의 스바루입니다. 이 스바루 하면 일반 브랜드이면서도 어느 고급 브랜드보다 먼저 승용형 전륜구동(all wheel drive) 개발에 매진해서 자신만의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있으며 특유의 장점을 발휘해서 눈이 많이 오는 미국 북쪽 지방 중산층들의 사랑을 받는 참 특이한 회사입니다. 또한 이 회사의 박서 엔진은 그 어느 회사의 엔진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하고 또한 거의 모든 라인업에 들어가는 터보엔진으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스바루 임프레자 WRX같은 차는 스바루의 기술이 총 집합된 차로서 오랫동안 랠리 레이싱에서 확고하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스바루가 잘나가는 이유
스바루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그래서 승용형 전륜구동, 박서엔진, 터보, 레이싱 등으로 다양하지만 강하게 구축되어 왔고 그래서 충성 팬들이 많아서 한번 스바루를 타면 다른 메이커로 잘 바꾸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현대를 비롯한 미국 시장의 비주류 메이커들이 대개 싼 가격과 다양한 옵션을 강점으로 자동차를 팔 때 이 회사는 오히려 일반 차 브랜드 중에 가장 차 값을 비싸게 파는 회사 중의 하나입니다. 이 회사가 최근 선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작년 말에 모터트랜드가 선정하는 올해의 SUV로 포레스터라는 차가 선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으로 SUV의 판매가 반 토막도 더 난 상황에서 포레스터는 오히려 판매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똑같이 차가 잘 팔리고 있어도 할인공세와 특이한 마케팅 전술로 잘 파는 회사와 질로 승부하는 회사의 차이는 너무나 큽니다. 이미 포드와 GM이 현대의 assurance program을 따라 하기에 나섰고 현대의 할인공세는 환율이 받쳐주지 못할 경우 계속되기가 힘들어 질 것입니다. 만약 환율이 일본 회사들에 유리하게 바뀌기라도 하면 현대와 기아의 독주는 금방 저지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차는 잘 팔려도 마음이 불안합니다.
베라크루즈의 교훈
재작년에 베라크루즈가 미국에 데뷔했을 때 모터트랜드가 시행한 렉서스의 RX와 비교한 평가에서 품질은 비슷한데 값은 훨씬 싸다며 우세승을 거둔 바가 있었습니다. 마치 지난 달에 있었던 제네시스 쿠페가 인피니티 G37쿠페를 이긴 비교시승의 결과를 연상시키는 장면이었습니다. 지금의 베라크루즈와 RX의 판매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난 달 베라크루즈는 1,587대를 팔았고 RX는 하이브리드를 포함해서 7,342대를 팔았습니다. 통상 럭셔리 메이커는 판매대수가 적고 특히 SUV의 판매는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RX의 판매는 더욱 빛나 보입니다.
몇 년 전 베라크루즈가 RX와 비교 평가에서 앞섰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광고하면서 판매에 노력하고 있을 때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렉서스는 관두고 같은 급의 마즈다의 CX-9이나 GMC의 Acadia나 먼저 따라 잡으라고 말이죠. 제가 보기에는 베라크루즈가 CX-9이나 Acadia보다 못할 것도 없지만 확고히 나은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훨씬 비싼 차와 비교를 하니 품질이 조금 떨어져도 싼 가격을 무기로 비교시승에서 가격대비 가치를 인정받아서 더 추천을 받는 현상은 종종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판매를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품질로 판매를 올리는 방법은 자꾸 럭셔리 메이커를 흉내내면서 싼 가격과 90%의 품질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바루 포레스터처럼 동급의 경쟁자를 확실히 누르는 것이어야 합니다.
제네시스 쿠페가 아무리 비교평가에서 값 때문에 인피니티를 이겼어도 베라크루즈의 교훈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네시스 쿠페가 무스탕이나 닛산 370Z에 진 것이 참으로 속이 쓰립니다. 다행인 것은 얼마 전 뉴스를 보니 현대에서 각종 경비를 줄이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는데 연구개발비는 삭감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일단 분위기는 좋은 것 같습니다. 아주 좋은 시기를 맞고 있는 현대와 기아는 지금의 불안한 리드를 확고한 우세로 바꾸기 위해 좀 더 몸을 낮추고 더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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