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 글을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블로그 글을 쓸 기운도 없어서 한 주는 포스팅을 쉬려고 했습니다. 어차피 정치나 시사평론 쪽은 저보다 잘 쓰시는 분이 많으니까 저까지 끼어들어서 읽는 분들의 시간을 빼앗지 말자고 생각했다가, 어제는 너무 생각이 많아서 길게 글을 썼는데 다시 마음이 변해서 다 부질없이 느껴져 지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만 좀 짚어보고 싶어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얼마 전에 다음 뷰를 보다 보니까 각 언론사와 포탈 사이트에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의미로 인터넷 홈페이지의 로고를 바꾼 것을 소개하면서 구글만 로고를 바꾸지 않았다고 지적하신 블로그 글을 보았습니다. 저도 이명박 정부의 유튜브 동영상과 관련한 인터넷 통제 정책에 보기 좋게 거부한 구글의 배포에 박수갈채를 보냈던 사람이지만 유인원 화석이 나왔다는 뉴스에도 로고를 바꾸었던 구글이 이런 사안에 성의를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해 불쾌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댓글을 읽으면서 사실 조의를 표하는 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외국인이건 외국 회사이건 이런 문제는 자신들의 선택의 문제라고 위안을 삼았습니다. 내국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추모를 하건 안 하건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추모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께서 그토록 맞서시던 독재와 전체주의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추모를 하는 사람들 중에 있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진정한 애도의 마음으로 노 전 대통령의 가시는 길에 명복을 빌었습니다만 애도를 표한다는 일부 정치인, 검찰, 언론의 말은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방송 인터뷰 내용이나 슬픈 듯한 표정연기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만 노 전 대통령이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은 전혀 느끼지 않는 듯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임채진 검찰총장께서 조문을 하셨고 어제 국무회의에 앞서 애도를 표한 이명박 대통령께서 영결식에 참석하실 것이라는 소식도 들립니다. 바쁘신데 시간을 내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이게 다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얼마 전 하루 늦은 한국의 방송 뉴스를 보다가 눈물을 왈칵 쏟을 뻔 했습니다. 봉하 마을에 조문오신 어떤 아주머니를 인터뷰하는데 ‘사람을 그렇게 괴롭혀 놓고……’라고 말씀하신 부분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차분한 이성적 분석이 중요한 때도 있지만 가슴을 울리는 짧은 한마디가 진실을 더 잘 함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민들은 다 압니다. 노 전 대통령이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 그리고 누가 이렇게 괴롭혔는지 말이죠. 혹자는 검찰은 그저 정당하게 진실을 밝히기 위한 수사를 했을 뿐이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아주머니는 또 이러시더군요. “(노 전 대통령이 금품을 수수했다고 쳐도) 돌을 던질 자격이 (정치인 중에) 누가 있느냐?”고 말이죠. 노 전 대통령과 감옥에 있는 측근을 제외하고는 거리를 활보하는 정치인들이 다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살아있는 권력은 깨끗하고 죽은 권력만 더럽다는 것은 저도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을 잘 모시는 전통을 세우겠다고 했지만 결국 검찰의 망신주기 수사를 통해서 제대로 정치보복을 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설사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일은 벌어졌습니다. 네티즌들은 노 전 대통령이 포괄적 뇌물수수죄라면 검찰은 포괄적 살인죄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얼마 전에 ‘전 주한 미국 대사의 후회’라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을 다루면서 자신들의 판단 미스가 사건을 크게 만들었다는 반성이었습니다. 이미 신문보도를 통해서 알려진 바와 같이 비록 사망사고가 발생했더라도 미국은 실정법상 의도하지 않았고 규범을 따랐다면 처벌할 수 없으므로 사고를 일으킨 미군들이 무죄선고를 받았다는 내용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마 우리나라 법정에서라면 재판 결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또한 미군 사단장인 러셀 아너래이씨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중생 사건 발생 후, 2사단의 입장 발표를 공보담당 소령에게 맡겼는데 이 장교는 사죄 하는 태도가 아니라 해명하는 자세를 보였다”고 했다. “이는 결국 한국인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주게 됐고 전국적인 시위로 이어졌다”며 “그때서야 내 실수를 깨달았지만 너무 늦었다”고 자책했다고 합니다. 재판은 그렇다 치고 말로라도 제대로 사죄를 했어야 했는데 해명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에 급급했다는 것이 실책이었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미국과 한국이 문화가 다르고 법이 다르니 여기서 미국 법이 어떻다고 논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우리나라 국민정서는 도의적인 책임을 중요시하며 심지어는 의도하지 않는 잘못도 법적으로 책임을 묻는다는 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심지어는 의사가 환자의 목숨을 살리려는 좋은 의도를 가졌어도 결과가 잘못되면 억울하든 어쨌든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생기는 곳이 한국입니다. 이게 좋다 나쁘다는 것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고 그런 광범위한 책임을 묻는 것이 우리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검찰이 지난 반 년 동안 이 잡듯이 파헤친 수사가 정치보복이 아니고 정당한 법의 집행이라고 항변하는 내용을 100% 받아들이고 인정해도 현 정권과 여권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가져온 책임이 면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문 오신 고위층 인사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노 전 대통령의 뜻은 화해와 통합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동의하고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문 와서 ‘애석하다.’, ‘명복을 빈다.’고 말 몇 마디 해준다고 노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국민들의 마음에 화해와 통합의 기운이 싹트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상하게 나라 안에서는 언론들이 모두들 화해와 통합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외국 언론들이 차라리 냉정하게 현실을 보는지 한국 사회 분열과 갈등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반목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용서를 빌 사람이 용서를 구해야 용서가 시작됩니다. 국민들의 마음 속의 분노를 용서로 바꾸고자 한다면 사과할 사람은 진실한 사죄를 먼저하고 명복을 빌어주시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합니다.
한국을 떠나 있어도, 노 전 대통령의 열성적인 지지자가 아니었던 저도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슬픈데 한국에 계신 독자들의 상심이 얼마나 크실지 모르겠습니다.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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