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부속 세브란스 병원이 지난 6월 곤욕을 치렀습니다. 다름아닌 존엄사 판결에 근거해 인공호흡기를 제거된 김 모 할머니가 자가호흡이 계속되면서 생존하자 가족들이 그 동안 과잉진료를 해 온 것이 아니냐고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생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갈 수 있는 중환자실 치료는 의학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힘 드는 분야라고 할만합니다. source; djroad.com 그림은 야후 검색 결과
한국에서 경기도의 모 병원에서 내과 전공의를 하다가 힘들어서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그만둔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이 친구 말이 병동에 많을 때는 환자를 50명씩 혼자가 책임져야 했다고 합니다. 물론 교수에 해당하는 전문의와 윗 년차 전공의가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주치의 역할을 하는 그 친구가 혼자 그 많은 환자를 다 담당했었으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이 끝이 없었음은 당연합니다. 하루에 3-4시간 정도 자는 생활을 몇 달 하다 보니 거의 미칠 지경이더라면서 그 와중에 한가지 소원은 그 3-4시간의 잠이나마 중간에 호출 받아서 몇 번씩 깨지 않고 쭉 잘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너무 다른 미국과 한국의 의료환경
제가 나중에 미국에 와서 내과 전공의 생활을 해보니까 환자의 수를 딱 12명으로 정하고 그 이상은 더 보게 하지 않았습니다. 내과 전공의 편하라고 한 것이 아니고 환자 진료의 질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전공의 한 명이 50명씩 책임질 때와 12명씩 책임질 때의 진료의 질을 생각하면 이런 미국의 시스템은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랄 일은 중환자실 근무하는 달이 되었을 때 배정받은 환자 수는 겨우 4명이었습니다. 그만큼 중환자 진료가 손이 많이가고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항상 4명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퇴원을 시키고 다음 입원을 아직 받지 않으면 일시적으로나마 환자의 수가 2-3명이 되기도 했습니다. 내공이 센 한국 의사들 생각에 겨우 환자 최대 4명 보면 할 일이 뭐 있냐 싶겠지만 저를 비롯한 미국 의사들은 나름대로 엄청 바빴습니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저의 경우 새벽 5시경 일을 시작해도 오후 5시경까지 물 한 모금 마시거나 화장실 한 번 갈 시간도 없이 바빴던 경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보다 몇 배의 환자를 보는 한국의 중환자실은 그래도 나름대로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같은 의사지만 이렇게 중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의 고생을 잘 알기에 그들의 노고에 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중환자 진료가 돈이라도 된다면 그래도 보상이 될 텐데 대개의 중환자 진료 수가는 원가의 40% 수준이라고 합니다. 중환자 진료를 하면 할수록 병원에는 손해가 가는 것입니다. 다행히 큰 병원들은 진료 부문의 적자를 장례식장, 매점, 주차장 사업 등으로 수지를 맞추지만 지방의 중소형병원들은 중환자실을 운영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리라고 짐작합니다. 어쨌거나 중환자실 운영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는 대표적인 의료계의 3D 업종입니다.
폐색전증은 어떤 병?
그전에 폐색전증 이야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지난 7월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폐렴으로 세브란스에 입원해서 중환자실 치료를 받았습니다. 상태가 호전되면서 7월 22일 일반 병실로 옮겼으나 갑자기 폐색전증이 발생하면서 다음 날 다시 중환자실로 가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몇 차례 위기를 넘기고 7월 29일 장기적인 인공호흡기 치료에 대비해 기관지 절개술까지 받았습니다. 저는 이 폐색전증에 관한 보도를 보고 꽤 황당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장기간 환자가 거동을 하지 못하고 누워있게 되면 심부정맥 혈전증(팔 다리 혈관에 피떡이 생기는 현상)이 생기게 되는데 이 혈전이 폐로 가서 혈액순환을 막는 병이 바로 폐색전증입니다. 폐에 피가 못 가면 숨을 쉬어도 산소가 몸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으므로 정도에 따라 다르나 사망률이 높은 무서운 질환입니다.
병이 생긴 후에 치료하는 것보다는 치료 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므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는데 미국의 경우 다리에 공기 펌프를 감아서 억지로 다리 근육을 마사지하듯이 쥐어짜서 혈액이 돌게 만들어 피가 고이지 않게 하기도 하고 항응고제라는 약을 주기적으로 투여해서 피를 묽게 하는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도 심부정맥 혈전증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았던 과거에 많은 중환자들이 자신이 가진 병 자체뿐 아니라 어이없게 폐색전증으로 많이 사망했기 때문에 심부정맥 혈전증의 예방조치는 이제 진료의 표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물론 이런 예방치료가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얻는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에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거의 모든 환자가 혈전증 예방조치를 받게 됩니다. 만약 병원에서 실수로 혈전증 예방조치를 누락해서 폐색전증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요? 환자와 가족은 당연히 소송을 걸 것이고 병원 측의 태만이 드러나면 엄청난 배상에 직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장 구글로 이 질환 관련 소송을 검색해보니 수도 없는 관련 사건으로 먹고 사는 변호사와 로펌이 줄줄이 나옵니다.
그래도 폐색전증이 생기면서 세브란스 의료진들이 아마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도 환자가 잘못되면 항상 비난의 화살은 주인을 찾게 되어 있는 한국의 실정 때문에 말이죠. 그만큼 중환자 진료는 어렵고 위험도 크지만 보상은 적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행히 병원과 의료진의 탓하는 분위기는 아직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진료기준에 익숙한 의사라면 다른 금기사항이 없는 이상 심부정맥 혈전증 예방조치를 분명히 했을 겁니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그래서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source; spinal-injury.net
욕창이 잘 생기는 부위
전직 대통령에 생긴 욕창이 믿기지 않는 이유
그런데 저를 두 번째로 놀래 킨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김 전 대통령이 욕창이 생겼다는 뉴스였습니다. 욕창은 대개 몸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의 눌리는 신체부위에 많이 생기는 상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중풍으로 마비가 되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한자리에 계속 누워있으면 눌린 엉덩이 윗 부분에 혈액 순환이 안되게 되고 피가 통하지 않는 부위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괴사가 진행되어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물집이 생기는 정도부터 살과 뼈가 괴사되고 심하면 뼈가 노출되는 정도로 진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폐색전증과는 달리 한국사람이라고 별다른 유전적인 보호장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환자의 몸을 자주 돌려주지 않으면 거의 예외없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 전 대통령의 욕창이 도대체 왜 생겼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이 전 대통령이 너무 VIP이다 보니 몸에 손을 대는 것을 어려워했을까요? 의료진들이 욕창까지는 미처 신경을 못 썼을까요? 보좌진이 경호상 잦은 간호인력의 출입을 제한하기라도 했을까요? 아니면 예방조치를 다 했음에도 생기는 불가항력적인 경우였을까요?
저도 폐색전증은 몰라도 욕창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자세히 세브란스 병원에서 돌아가는 자세한 상황을 모르면서 이렇다 저렇다 판단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이 욕창이 생긴 이야기를 미국에서 동료들에게 해보면 다들 눈이 커지면서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병원 측에서 뭔가 기본을 지키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들게 하는 예이기 때문입니다. 일이 생겼을 때 비난하기는 쉽지만 아무나 일을 맡아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잘해야 본전인 전직 대통령을 치료하면서 노심초사하고 있을 세브란스 병원의 의료진에게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참 많이 안타깝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 부족한 이유
그리고 한가지만 추가하려고 합니다. 전직 대통령은 그렇다 치고 일반 중환자들의 욕창 예방은 한국에서 제대로 되고 있을까요?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환자 진료수가가 원가의 40-50%라고 하니 어떤지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욕창예방에 특수 제작된 공기침대, 발 뒤꿈치 보호대 등의 기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충분한 의료인력을 확보해서 (대개는 간호사나 조무사) 환자의 체위를 2시간마다 돌려주고 피부를 마사지 해주는 것입니다. 욕창 치료는 첨단 의학이 필요한지 몰라도 예방에도 별다른 첨단의학이 동원되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충분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충분한 인력이 없으면 결국 적은 수의 간호인력들이 죽을 힘을 다해서 하는데 까지 하겠지만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마치 미국에서는 전공의 한 명당 환자 10명을 보는데 한국에서는 수십 명을 봐야 한다면 그 진료의 질이 어떤 차이가 있겠느냐 하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물론 제가 보았던 것은 이미 10년 전의 상황이니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보다는 나아졌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생명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고 이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모든 희생을 아끼지 말라고 의료인에게 주문하면서 정작 비용부담에는 인색한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면 그것 또한 위선적인 일일 것입니다. 혹시 의사들(혹은 병원들) 돈을 많이 버니까 중환자 진료쯤은 알아서 다 부담해라는 것이 주장이라면 문제가 있습니다. 병원도 기업처럼 되버린 현실에서 수익이 안나는 분야에 대해 투자를 강요하는 것은 통하지도 않을 주장이면서 결국은 환자들의 고통을 연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전반적으로 보건대 지금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 사회 각 분야의 구성원들이 초인적인 희생을 감내해왔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안되면 되게 하고, 실력이 안되면 정신력으로 해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더 합리적인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중환자 진료 시스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민주주의와 남북화해를 위해 노력하신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명복을 빕니다.
양깡님 트랙백에서 아실 수 있듯이 김 전 대통령의 욕창은 오랜 휠체어 생활로 생긴 것으로 이번 입원 생활과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제 우려와 오해를 풀어주신 양깡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을 성심을 대해 치료해주신 세브란스 의료진과 간호진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혹시 제 글이 어떻게든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면 용서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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