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에는 초고속 인터넷 회사에 전화해서 좀 따질 일이 있습니다. 제가 지난 1년 남짓 신용카드사에서 유료로 제공하는 신용점수 조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신용조회 리포트를 보니 인터넷 회사에서 제가 요금을 연체했다고 통보한 바람에 신용점수가 대폭 삭감된 것으로 나온 결과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일년 반정도 이용하던 optimum online이라는 케이블 회사의 인터넷 서비스를 끊고 Verizon 이라는 광케이블 시스템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무선 인터넷 때문이었습니다. 때로는 아이를 피해서 안방으로 들어가서 노트북 컴퓨터로 작업할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집에서 사용하던 Netgear사의 무선 인터넷 중계기가 끊임없이 접속 장애를 일으켜서 무선 인터넷을 거의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verizon이 좀 비싸긴 했지만 그쪽 회사에서 제공하는 라우터를(router) 사용하면 고장이 있거나 작동불량이 나도 인터넷 회사에서 알아서 다 해결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을 바꾸고 나서 verizon에서 제공하는 중계기가 집에 들어왔고 이제는 맘껏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써보니 거실에서는 되는 무선인터넷이 침실에서는 안 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무선인터넷이 가장 필요한 공간에서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다시 인터넷 회사를 바꾸다
한번 설치했는데 다시 취소하기도 뭐해서 몇 년은 그냥 이대로 불편과 손해를 감수하면서 살려고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가을 유혹의 손길이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optimum online의 스팸 전화 같은 것을 받았는데 인터넷을 다시 자신들의 서비스로 옮기면 2년간 할인율을 적용해줄 뿐 아니라 verizon과 계약해지 시 발생할 200불 가량의 벌금도 대신 내주고 덤으로 200불짜리 상품권까지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무선 인터넷은 포기하고 살았는데 그래도 매달 요금으로 상당액을 아낄 수 있는데다가 위약금까지 해결해준다는 조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경망스럽게도 일년도 안되어 다시 인터넷 서비스를 optimum으로 되돌리기로 결정했습니다.
optimum으로 바꾼 후로 그럭저럭 문제가 없이 잘 흘러간 것처럼 보였습니다. 보내준다던 200달러짜리 상품권도 왔고, 케이블 회사의 잘못으로 세 번이나 팩스를 보내는 수고를 해야 했지만 위약금에 해당하는 돈도 수표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매달 요금도 verizon보다 더 싸서 전반적으로 만족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verizon에서는 작년 11월말에 서비스를 끊었기 때문에 고지서가 안 와야 정상인데 12월에 고지서가 왔습니다. 저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일단 납부했습니다. 그리고 1월에도 고지서가 다시 왔습니다. 이제서야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저는 verizon에 전화해서 따졌더니 착오가 있었다는 설명을 들었고 다시 제대로 된 고지서를 보내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 초 갑자기 verizon과 계약을 맺은 무슨 연체 수금 전문 회사에서 최후 통보가 날아 왔습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지만 당장 연체된 돈을 갚아라 는 협박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보내겠다고 한 제대로 된 고지서는 오지 않고, 쓰지도 않은 12월에서 1월까지의 인터넷 요금을 안내서 연체가 되었다니 황당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연체 통보를 하려면 몇 차례에 걸쳐서 연체를 안내를 하는 것이 상례인 한국과는 달리 고지서를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두 달을 기다리게 만들더니 뜬금없는 압류라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어 전화를 해야 했습니다. 전화를 붙잡고 20분이나 순서를 기다린 끝에 통화가 연결된 첫 번째 직원은 자신은 해지 고객 정보가 없다고 다른 직원에게 돌려주었고 그 직원은 자신이 담당이 아니라고 잘못 연결된 것 같다고 또 다른 세 번째 직원에게 전화를 돌렸습니다. 세 번째 직원은 다시 네 번째 직원에게 전화를 돌렸고 네 번째는 다섯 번째에게 돌려서 결국 같은 이야기를 다섯 번이나 하고서야 제대로 된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악성 연체자가 되다
저는 서비스는 11월말에 끊었고 당연히 12월과 1월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에 온 고지서를 납부한 적이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Verizon은 선불 시스템이라 사실 제가 12월에 낸 요금은 1월 요금이나 마찬가지여서 저는 사용하지도 않은 두 달치를 이미 납부하고도 연체 처리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이 직원은 그래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어서 상황을 결국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계산을 해 본 결과 연체 처리를 한 데에는 자신들의 착오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제가 그간 낸 돈이 서비스 조기 중단 위약금 액수와 맞게 되어 더 이상 돈을 내지 않고 모든 요금 문제가 종결된 것으로 해결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도착한 신용점수 조회서에는 제가 verizon의 악성 연체자이므로 신용점수가 거의 100점이나 깎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11월에 끝난 인터넷 서비스를 해결하는데 5월까지 끌게 되었습니다.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서 이제 다음 주중에 다시 verizon에 다시 전화를 해야 합니다. 제가 전에도 썼지만 미주리주의 운전면허와 자동차 등록을 뉴욕주로 옮기기 위해 무려 9번이나 자동차 등록 사업소(DMV)를 찾았던 아픈 경험이 있었던 관계로 이런 일에는 이력이 나있지만 하여간 겪을 때마다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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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은 이런 일들을 너무 많이 겪습니다. 한국에서는 순식간에 될 일처리가 며칠이 걸리고 몇 달이 걸리고, 그리고 직원들의 자잘한 실수 때문에 다시 지연되는 경험 말이죠. 은행에 가봐도 그렇고, 슈퍼마켓에 가봐도 그렇고, 병원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들이 여유 있는 것은 좋은데 어찌나 일이 느리고 머리가 안 돌아가는지 울화통이 터지는 경험을 하다 하다 적응이 되어버리게 됩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오신 (정확히는 1주일이 된)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가 아마도 앞으로 이런 일을 종종 볼지 모르겠다고 경고(?)를 했더니 이미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미국 사람들의 덜 떨어짐을 많이 경험했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습니다.
재미교포든 유학생이든 한국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한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똑똑하고 일 잘한다고 합니다. 저도 100% 동감하고 눈곱만큼의 이론의 여지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왜 한국은 아직도 국민소득 2만 불도 못 미치고 미국은 4만 불이 넘는 것일까요. 한 나라의 발전의 척도가 단지 국민소득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국이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혹자는 미국은 자원이 풍부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자원 없는 일본이 잘 사는 것이나 자원이 풍부한 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어렵게 사는 것을 보면 저는 자원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인재 자원은 분명 뛰어난 면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1950년의 67달러가 노무현 정권시절 2만 불을 잠시나마 돌파하기도 했으니까요.)
똑똑한 한국사람들이 미국을 못 따라가는 이유
그런데 최근 조선일보 인터넷 판을 읽다가 해답이 될만한 글을 발견했습니다. 조선일보의 정치적인 편향성 때문에 조선일보 읽기가 껄끄러울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으나 덜 똑똑한 미국 사람들이 많은 미국이 왜 잘사는지 궁금하다면 이 글은 분명 읽을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지난 5월 8일 장용성 로체스터 대학 교수가 “한국의 노동 생산성이 미국의 절반밖에 안 되는 이유” 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이 글을 읽을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서 제가 마음에 들었던 내용을 정리해 드리자면 이런 내용입니다.
이 글에서는 미국의 근로자와 한국의 근로자를 비교해보면 편의점이건 은행이건 대학이건 한국의 근로자들이 더 똑똑하고 친절하며 일도 잘한다는 것을 일단 소개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노동 생산성이 한국의 두 배나 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말단직원들이 덜 똑똑하다는 사실에 비결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사회 시스템은 똑똑하고 일 잘하는 말단 직원들을 말단에 남겨두지 않고 바로 바로 승진을 시켜서 조직을 이끌도록 해주는 데 강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능한 말단 직원이 갑작스럽게 승진하는 사례는 아마 영화 같은 데서 많이 보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덜 유능한 사람들은 말단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리더의 뛰어난 능력으로 조직이 효율적으로 이끌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솔직히 한국의 은행에서 10분이면 끝날 계좌 하나 개설하는 일이 한 시간씩 걸리는 미국이지만 이렇게 시간이 걸린다고 은행이 결정적으로 어렵게 될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리더가 무능하면 그 조직의 생존이 위태로워지고, IMF때 문을 닫고 매각되어야만 했던 한국의 은행도 그렇고 최근 파산한 미국의 리먼브러더스도 그렇고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연공 서열을 중시하는 풍조로 인해서 똑똑하고 잘난 사람도 크기가 어렵고 세월의 도움으로 리더의 자리에 오른 무능한 사람들이 조직을 망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무능한 리더를 모시고 사는 한국인들의 고통
예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얼마 전에 모 대학의 총장님이 아직 첫 등교도 하지 않은 유명 스포츠 선수를 거명하면서 자신의 대학의 정신을 불어 넣어주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하는 황당한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전에는 또 이 대학의 광고에서 자신들이 이 선수를 키웠다고 해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구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정말 이런 사고를 하는 대학 총장님이 이해가 도저히 가지 않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이렇게 황당한 사고를 하거나 행동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꼭 이런 사례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평균적인 국민들은 똑똑한 나라에서 덜 떨어지는 지도자들을 모시고 살다 보니 국민들의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직장이나 학교에서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99%의 경우는 가장 유능하고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이야기가 사실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이런 말도 들었습니다. 미국은 보통 사람들은 한국의 보통 사람보다 떨어지지만 미국 상위층은 한국의 상위층보다도 훨씬 뛰어나다고 말이죠. 이 말도 공감이 많이 갑니다. 지나친 일반화는 좀 위험하지만 미국은 각 분야의 인재가 넘쳐납니다. 특히 미국이 부러운 것은 이렇게 재능 있는 사람들이 도덕성까지도 겸비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부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대학이나 자선사업에 기부하는 전통이 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일각에서는 상속세가 워낙 높다 보니 차라리 선행이라도 베푸는 것이다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사회 시스템이라도 만들어 놓은 것이 어디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이 부시 대통령이 정권 말기에 기업의욕을 고취시킨다며 상속세를 폐지하려고 했을 때 강하게 반대하고 나선 사람들은 바로 빌 게이츠나 웨렌 버핏 같은 억만장자들이었습니다. 한국의 상류층들이 다 들 나쁜 사람들이고 미국의 상류층은 그 누구도 지탄받을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한국의 상류층보다는 미국의 상류층들이 조금은 더 재능이 있는데다 더 도덕적이기까지 하다고 미국에서 살수록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정치계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한지 모르겠지만 특히 경제계와 학계로 가면 이런 경향이 더 큰 듯합니다.
인재는 많지만 필요한 곳에 쓰지 못하는 우리나라 시스템이 안타깝습니다. 이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국민소득은 2만달러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게걸음만 칠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저도 미국 사회의 답답한 미국의 말단 직원들을 감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적응이 빨리 되어야 하는데 적응이 잘 안 되는 것을 보니 앞으로도 한동안은 느려터진 미국의 시스템 덕분에 한국의 똑똑한 직원들을 그리워하면서 살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다음 중에 Verizon에 전화하는 문제는 제발 한번에 해결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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