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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자동차 이야기

굴욕 속의 기아 모하비 美 최고 선정 진실은?

TBI라는 단어를 보면 의사로서 지금은 외상성 두뇌 손상(traumatic brain injury)이 먼저 연상되지만 예전에는 대우 르망이 연상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우자동차의 소형(혹은 준중형)차의 대표주자였던 1세대 르망의 뒤 트렁크에는 Throttle body injection의 약자라는 TBI라는 단어가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경쟁차이던 현대 액셀의 카브레터식 엔진에 비해 더 첨단엔진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였었습니다
. 저는 대우차라면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팬이었던 관계로 이 TBI야 말로 대우차가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저에게는 대우차의 굼뜬 가속은 묵직한 안정감으로, 밀리는 브레이크는 운전자에게 미리 브레이크를 밟으라는 의미로 디자인한 것처럼 미화되었었습니다

잠수함의 성능을 가진 기아 콩코드

대우차의 열성 팬이던 저처럼 기아차에 대해 열성 팬이었던 친구 한 명이 있었습니다
. 이 친구가 자신이 재수하던 시절의 신화를 이야기해준 적이 있는데 내용이 이렇습니다. 재수할 때 다니던 학원 앞에 도로가 장맛비에 넘친 물로 인해 잠긴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로가 언덕에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구조였는데 아래 부분의 도로가 차 한대의 거의 절반이 잠길 깊이여서 통행이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나가려던 차량이 다들 유턴해서 온 길로 돌아가는데 유독 기아의 중형차인 콩코드 한대가 오더니 유턴을 하지 않고 그냥 잠긴 도로를 통과해서 지나가려고 했다고 합니다
. 학원생들이 다 나와서 이 차가 도대체 어쩌려나 보고 있는데 콩코드 운전자 아저씨가 뭔가 쑈맨쉽이 있으셨는지 팬 서비스로 부릉부릉하고 액셀을 몇 번 밟으시더니 전속력으로 언덕을 내려가서 차가 물 속으로 풍덩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경악하는 것도 잠시 물 속으로 들어갔던 차가 반대편 도로로 쑥 나오면서 유유히 지나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처럼 이성 잃은 대우차 팬보다 더 심한 기아차 팬이 한 이야기여서 얼마만큼의 과장이 들어갔는지 모르겠습니다
. 아마 물이 별로 깊지 않았을 수도 있고 이 차가 탄력을 받아서 가다가 결국은 엔진에 물이 들어가서 저만큼 가서 섰을 수도 있는데 자동차의 우수성이(?) 이런 식으로 평가 받던 무지의 시대에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역시 기아차는 물에 들어가도 괜찮구나 하는 식으로 청중의 반응이 이끌어졌었습니다.

기아의 영광과 쇠락

저는 대우차 외에는 다른 차에는 눈길도 주지 않다가 기아차를 새롭게 보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 기아에서 세피아가 나온 것입니다. 당시로는 첨단적인 엔진 룸 설계로 엔진이 운전자 쪽에 쏠려있지 않고 조수석으로 쏠려 있어서 사고가 나도 엔진에 의해 운전자가 덜 다친다는 광고가 나왔었는데 조수석에 타고 있는 승객은 어쩌란 말인지 의문도 없이 그냥 열광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기아의 중형차 크레도스가 나오면서 이 열광은 더 커졌습니다. 물침대 서스펜션이라는 소나타 2나 소나타 3와는 달리 설계부터 핸들링이란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차라니 한국에도 이런 차가 있단 말인가 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물론 의대 교수님들도 차가 없는 분이 많던 시절에 저 같은 대학생이 살만한 차는 아니었지만 크레도스에 대한 자동차 기자들의 평가를 자동차 잡지에서 읽으면서 언젠가 이런 차를 몰아보리라는 꿈에 젖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IMF가 찾아오고 대우는 GM으로 넘어가고, 기아는 국민기업 기아를 살리자 어쩌자 하다가 현대로 넘어가고 대우, 기아 둘 다 점점 저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미국에서 보는 기아에 관한 소식도 별로 신통한 것도 없고 기아차 경영진들도 스스로를 무색 무취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데 별로 심적 갈등이 없었는지 그만그만한 차들만 나오면서 관심을 돌릴만한 계기가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라디오를 듣는데 기아의 광고가 흘러나왔습니다
. 내용은 기아가 미국에 진출한지 15년이 되었는데(겨우 15년밖에 안되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혼다만해도 미국 진출 50년이 되었는데……)  마즈다, 폭스바겐, BMW(?)보다 더 많이 팔리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자동차 메이커가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현대차가 연간 40만대, 기아차가 30만대 정도를 팔고 있으니까 미국에서 결코 작은 회사는 아닙니다만 이렇게까지 광고를 만들어야 하는 데는 기아라는 회사가 그만큼 존재감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런 존재감이 작은 회사에서 요즘 뭔가 심상찮은 차를 계속 내보내고 있습니다.

비운의 모하비, 그 굴욕

작년에 나온 모하비
(미국명 보레고)가 그렇고 쏘울도 그렇고 이제 기아 포르테도 그런데 신차들이 계속 뉴스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모하비는 차는 괜찮은데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는 평가고, 쏘울은 디자인이 튀는데다가 약간의 스포티한 면까지 갖추어서 아우디를 팔고 샀다거나 한번에 두 대를 샀다는 등 광 팬들이 생겨나는 조짐이 보이고 있고, 포르테는 이제 막 데뷔하는 참인데 전문가들로부터 성능은 스포티한 디자인을 못 받쳐주지만 그래도 종전의 기아차 같지 않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비운의 모하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비운이라고 함은 결국 판매 대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지난 5월을 예로 들면 이제 막 데뷔해서 팔 시간이 부족했던 포르테를 제외하면 이미 시대에 뒤진 차로 평가 받고 있고 후속모델을 기다리며 대폭 할인으로 나가고 있는 오피러스 (아만티)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인 496대 입니다. 물론 미국에서 모든 SUV가 죽을 쑤고 있는데 혼자서만 잘 팔릴 수는 없겠습니다만 모하비의 상품성을 생각하면 너무나 아쉬운 판매입니다.


첫 해 판매 12000대의 야심만만한 목표로 작년 8월에 미국 시장에 선보일 때만해도 첫 달 1000여대를 팔며 산뜻한 출발을 했는데 9월부터 판매가 200대정도로 곤두박질치더니 작년에 겨우 1869대로 마감했었습니다. 그나마 올해 좀 회복되어 매달 400대 정도가 팔리고 있고 5월까지 연간 누적판매 2000대를 넘어서긴 했습니다. 하지만 모하비의 개발진은 아마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국시장을 목표로 개발하다가 최고 경영진의 의지에 따라 부랴부랴 미국형으로 탈바꿈한 현대의 모 럭셔리 자동차와는 달리 모하비는 그야말로 미국 시장을 노린 진짜 전략차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모하비와 미국 트럭 시장의 꿈

기아 측에서 모하비를 내놓으면서 시간 날 때마다 미국 시장 이야기를 했는데 그만큼 미국 판매에 대해 기대가 컸었습니다
. 모하비가 잘 되어야 할 이유를 든다면 일단 차가 크고 비싸다 보니 마진이 많이 남고, 싼 차뿐만 아니라 비싸고 괜찮은 차도 잘 만들 수 있다는 기술력의 과시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SUV 시장에서도 승용차와 같은 모노코크(차체의 껍질이 한 덩어리의 갑옷처럼 된 것) 방식을 쓰는 말랑말랑한 CUV(crossover utility vehicle)들이 유행입니다. 현대 베라쿠르즈나 렉서스의 RX 350등 잘 팔리는 SUV들이 다 이런 방식인데 장점이라면 무게가 덜 나가서 연비가 좋고, 당연히 가속도 더 잘되고, 승차감도 승용차와 비슷하면서 안전도까지 낫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모하비(미국명 보레고)는 잘 팔리는
SUV의 공식을 마다하고 어쩌면 구닥다리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바디온프레임(body on frame, 사다리꼴의 철제 골조에 차체를 올리는 방식)방식을 써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드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미국에 팔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 근거가 되는데 이 바디온프레임 방식은 철제 빔을 바닥에 놓았기 때문에 무게도 무겁고 차가 굼뜨지만 결정적으로 오프로드에 강하고, 견인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특히 시골에서 이런 방식의 트럭과 SUV가 불티나게 팔리는데(미국 자동차 판매대수 상위에 특히 많습니다.) 오프로드 능력과 특히 견인 능력은 반드시 요구되는 조건입니다. 한때 현대와 기아가 미국의 트럭시장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나오다가 경제위기로 쑥 들어갔는데 아마 모하비의 플랫폼을 이용할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모하비에는 제네시스의
명품이라는 4.6리터 8기통 엔진을 토크는 높이고 출력은 낮추어 들이고 6단 자동 변속기를 쓰는 등 신경을 상당히 많이 썼고 실내도 기아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급차의 냄새가 나는 디자인으로 구성했습니다. 외양도 조금 심심하긴 하지만 꽤 잘 생겼는데 지금 판매가 이렇다 보니 만든 사람들 심정이 어떨지 짐작이 갑니다. 하지만 자동차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 시장 환경의 탓이지만 경제 위기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 사건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습니다.

모하비, 미국 최고의 차 선정의 진실은?

요즘 모하비로 포털에서 검색을 해보면 눈에 번쩍 뜨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 모하비가 미국에서 최고의 SUV로 선정이 되었다는 소식이 바로 그것인데 기사를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아차 모하비가 미국시장에서 한국 SUV(스포츠유틸리티차)의 존재감을 확실히 심어주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미국 자동차전문 웹사이트인 에드먼즈닷컴(www.edmunds.com)이 선정한 ‘2009 소비자가 평가한 최고차량상(Consumers’ Top Rated Vehicle Award 2009)’에서 모하비(수출명 : 보레고, Borrego) ‘25,000~35,000달러 SUV 최고 차로 선정됐다고 19일 밝혔다. 미국 유력 자동차 전문 웹사이트인 에드먼즈닷컴은 실제 차량을 운행중인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차량의 성능, 안락성, 연비, 주행성능, 인테리어, 외장 디자인, 제조품질, 신뢰성 등 총 8개 분야에 걸쳐 종합 품질평가를 진행하여 차급별소비자가 평가한 최고차량상을 발표한다. 에드먼즈닷컴은 모하비가 우수한 성능, 넉넉한 실내공간, 연비, 안전성, 다양한 편의사양 등으로 소비자들을 위한 높은 가치와 품질을 지니고 있어 25,000~35,000달러 부문 최고의 SUV 차량에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매일경제에서 인용>


결국 기아의 보도자료를 인용해서 모하비가 미국 최고의 차 중에 하나가 되었다고 하고 있는데 이 기사를 보면서 저는 오히려 기아가 애처롭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 미국 판매가 시원치 않으니까 미국에서 최고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국내 판매라도 대신 늘리려는 의도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미국에서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평가를 받은 사실이 거짓인 것도 아니지만 애드먼즈 닷컴에서의 소비자들의 평가가 미국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해 줄 정도로 판매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아니거니와 이만큼 보도할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네시스가 받은 북미 올해의 차라든가 닛산 GT-R이 받은 모터트랜드 올해의 자동차상이라면 전체 자동차 중에서 하나만 뽑히는 영광스런 상이고 즐거운 비명을 지를만하지만 이건 조금 그렇습니다.

일단 에드먼즈닷컴에 가보면 아래와 같은
‘consumer’s top rated for 2009’가 나오고 클릭해보면 여기에 선정된 19대의 차들 가운데 하나로 나옵니다.

여기에 선정된 이유는 자동차를 산 소비자들이 개개의 자동차를 평가하는 코너가 있는데 여기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모하비의 점수가 전문가로부터는 10점 만점에 7.5를 받았는데 소비자들로부터는 9.2점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아주 좋은 일이긴 한데 조금 꺼림직한 것은 평가한 소비자가 겨우 15명이라는 것입니다. 2009년 식이 나온 후로 팔린 약 3900대 중에서 겨우 15명의 평가를 가지고 미국 최고의 자동차로 선정이 되었다고 온 국민이 축하해 줄만한가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좋은데 이런 자동차 소비자 평가를 보면 대개 소비자 평가의 샘플 수가 적을수록 점수가 높은 경향이 있고
, 샘플 수가 많아지면서 차를 극단적으로 나쁘게 평가하는 사람들의 평가가 섞이면서 점점 점수가 내려와서 진짜 점수가 나오게 됩니다. 물론 초기에 이런 나쁜 리뷰가 많으면 점수가 매우 나쁘게 나옵니다. 아래 그 예로서 미국 야후의 자동차 리뷰 페이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기아 리오의 경우 전체 8명의 소비자중에 두 명의 소비자가 별 두 개의 평점을 줌으로써 평가가 아주 나쁘게 나온 반면에 소렌토는 단 한 명의 평가에 의해 평점이 별 다섯 개 만점이 되어 버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아 모하비는 잘 만든 차고 특히 미국에서의 가치는 매우 높습니다. 아마 경기가 풀리면서 광고만 잘 해주면 판매가 비약적으로 늘 가능성이 있는 차입니다. 하지만 단 15명의 평가로 미국 최고의 차가 되어버린 것은 조금 낯 뜨거운 일이고 우리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도 조금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도 조금씩 기아의 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아가 요즘 좋은 상품을 내는 것에 걸맞은 좋은 평판을 계속 받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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