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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그리고 미국 생활 이야기

뉴욕 형사 법정(criminal court)에 범인으로 서다.

세상에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것 같았던 일도 생긴다는 사실이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만 피고인의 신분으로 그것도 미국에서 형사법정에 서 보는 경험은 정말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중범죄자의 글을 읽는 다고 생각하실 분을 안심시키고자 미리 힌트를 드리자면 내용인즉슨 미국에서 교통위반 티켓을 받았는데 죄질이 무거워(?) 형사법정으로 가게 된 케이스임을 밝혀드립니다. 혹자는 무슨 교통위반으로 형사법정을 가게 되는 경우가 다 있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제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가 되겠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제가 제 차에 온가족을 태우고 Toys“R"us에 우리 아가 장난감을 사러 가면서부터입니다. 시내 외곽의 도로를 타고 주행 중인데 무섭게도 미국 경찰차가 경광등을 번쩍거리면 저의 차를 따라 오는 것이었습니다. 속도도 충분히 느렸고 자동차에 선팅을 진하게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트렁크에서 피가 떨어지는 것도 아닐 텐데 (영화 보면 나오죠. 특히 미국 드라마 24시의 한 장면) 왜 나를 따라오나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경찰차가 불을 막 밝히면서 따라오면 앞 차는 서라는 의미입니다. 한국에서 확성기로 ”경기 라에 1234호. 거기서“ 하지만 미국 경찰은 말없이 따라 오기만 합니다. 이 의도를 모르고 ”뭐야? “ 라고 무시하고 그냥 막 가면 나중에 혼납니다. 거기서 퍼뜩 제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내가 너무 느린 걸까” 하는 거였습니다. 영화를 보니 특히 미국 할머니들이 최저시속 30마일, 최고시속 40마일인 시내도로에서 10마일로 달리다가 경찰한테 교통위반 티켓을 받는 것을 본 기억이 났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느리지도 않았습니다. 시속 40마일 구간에서 35마일정도로 달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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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차를 세우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어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차에서 기다렸습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경찰에 의해 차가 세워지면 한국처럼 차에서 내려서 경찰차로 가서 “왜 그러시는데요?”하고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일단 차에서 내리는 자체가 경찰에는 위협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차에서 얌전히 운전대에 손을 얹고 창문을 내린 다음 경찰이 접근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혹시 경찰이 범칙금 떼 주는 것을 도와줄 의도로 조수석 앞 글러브 박스에서 자동차 등록증을 찾는 것도 경찰이 달라고 할 때까지는 미리 하면 안 됩니다. 글러브 박스에서 총을 꺼내려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습니다.

경찰이 오더니 너 저기 신호등 안보이냐 하고 묻습니다. 제 생각에 ‘뭐? 무슨 신호등?’하는 생각을 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정말 지나갈 때는 보지도 못했던 신호등이 있는 겁니다. 속으로 저는 ‘아, 또 100달러는 나가겠구나. 왜 신호등을 보지 못했을까 하며 ’하며 자책을 했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봐 달라고 사정도 못하고 그냥 교통 범칙 티켓을 받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교통범칙금 티켓에 벌금 액수가 쓰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냥 법정 출두 날짜와 법정의 주소, 제 죄목(reckless driving, 위험한 운전?)만 있더군요. 이상하게는 생각했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했죠. 그 후로 며칠이 지나고 한인라디오 방송에서 광고를 들었는데 교통위반 티켓을 해결 준다는 업체의 광고가 있었습니다. 한국에는 없는 것이라 이상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미국에서는 이런 영업을 하는 업체가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변호사와 개인을 연결해 주고 변호사는 교통법정에서 판사에게 변호를 해줌으로써 범칙금과 벌점을 받을 만한 일을 형량을 내려서 벌점을 안 받고 범칙금만으로 사건이 해결이 되게 해줍니다. 이 벌점이란게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아주 치명적이어서 뉴욕의 경우 연간 보험료가 수백불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범칙금과 변호사비(보통 300-400불)를 들이는 것이 대개의 경우 이익이라고 합니다.

그 교통위반 티켓처리 업체에 전화를 걸어서 이것저것을 물어보다가 그쪽에서 티켓 색깔이 뭐냐고 묻더군요. “흠.. 빨간 색인데요”했더니 잠시 침묵 “....”. “형사법정으로 나가는 것이거든요. 안 나가면 체포될 수도 있어요. 변호사 쓰시는 게 좋겠는데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 아시죠. 아니 무슨 교통위반 그것도 사고도 아닌 신호위반에 형사법정이라니 이해가 되십니까. 한참 정신을 못 차리다가 전화를 일단 끊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을 다시 고민했습니다.

혹시 한인 업체 측에서 고객 유치 차원에서 엄포를 놓았을 가능성을 생각해서 미국인 변호사를 수소문해서 다른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새로 변호사와 연결이 되었고 전화 통화를 했는데 결론은 형사법정에 일단 가야하고 안 나가면 최악의 경우 체포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미국인 변호사를 고용하기로 하고(비용이 조금 저렴했음) 저 나름대로 변호할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왜 신호등을 보지 못했을까해서 문제의 사건현장에 카메라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서광이 비치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래 사진과 같은 도로 사정이었습니다. 신호등에 접근하는 내내 앞쪽의 지하철로의 지상구간 다리가 신호등을 가로막고 있어서 아주 가까이 접근하기 까지는 신호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한 구조였습니다. 마지막 사진에서 보시면 카메라 렌즈의 광학효과 때문에 신호등과 다리가 충분히 먼 거리처럼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도로에 흰색 실선과 신호등의 그림자를 보시면 신호등과 다리가 사실은 30미터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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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와 시간약속을 하고 변호사 사무실로 사진을 출력해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변호사는 제 사진을 완전히 무시하더군요. 형량을 줄이는데 아무런 선처를 구할 수 있는 비중이 있는 증거가 못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망이 컸지만 체포를 면하고 벌점을 안 받으려면 일단 변호사는 있어야 되겠기에 변호사 계약은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법정에 출두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옷을 제대로 갖추고 가야 범죄를 지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양복을 잘 다려입고 머리에 헤어 젤까지 바르고 매우 단정한 차림으로 법정에 30분이나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법정 앞에 50미터도 넘는 긴 줄이 서 있고 인상이 무서운 사람들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더군요. 그들도 역시 저처럼 재판을 받으러 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저도 역시 줄을 섰습니다. 혼자 양복입고 가죽가방을 들고 줄을 서 있으니 참 어색하더군요.

소지품 검색을 하고 법원 건물로 들어가고 제가 재판을 받을 법정 앞에서 변호사를 만나서 함께 입장을 했습니다. 제가 law and order를 보면서 익숙한 그런 법정이 아닌 너무나 허름하고 조그마한 방에 허름한 의자, 그리고 많은 사람이 호명되면서 왔다 갔다 하는 어수선한 분위기. 정말 법정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도 않았고 법정 바깥의 긴 벤치들이 놓인 홀에는 100명도 넘는 사람이 재판을 받기위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너무 눈에 뜨인다. 내가 왜 양복을 입고 왔을까.'자책을 하던중.  잠시 후 제 이름이 이상한 발음으로 법원 경찰에 의해 호명되고 법정에 섰습니다. 피고인 선서를 마음으로 준비했는데 그런 절차도 없고 많은 사람이 교대로 판사 앞에 서서 법원 직원이 위반사항을 읽어주면 판사는 다 듣기도 전에 벌금 30불, 벌금 50불하는 식으로 판결이 내려집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다음부터는 그러지마”하는 판결도 있더군요. 와. 공짜. 정말 좋겠다.

하지만 피고인의 말을 들어 주는 시간도 당연히 없지요. 제 차례가 되어 제 위반사항이 읽혀지고 판사가 그랬습니다. 벌금 150불에 벌점 없음!! 구속이 아니라 좋긴 한데 변호사가 힘을 쓰면 벌금이 조금이라도 내려갈까 하는 마음에 변호사를 째려보았습니다. 저와 함께 법정에 들어온 것을 빼면 아무 것도 한일이 없는 이 사람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판사가 다시 그럽니다. “정지 신호 위반은 대단히 위험한 거야. 벌금 150불!!” 어. 신호위반이 아니었어? 정지신호? 경찰은 신호위반이라고 했는데. 사진이고 변호고 다 필요 없구나. 정지신호가 거기 있었다니... 아.. 그리고 정지신호 위반은 신호위반보다 큰 범죄구나. 근데 변호사는 왜 산거야.. 하는 복잡한 생각이 빠르게 스쳐가고.. 얼떨떨한 상태로 쫒겨나듯이 법정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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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희한한게 제가 정지신호를 아예보지 못한것도 그렇지만 어찌된게 경찰도 신호위반이라고 저에게는 그래놓고 판사에게는 정지신호를 위반했다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법정을 나와서는 미국 변호사가 실실 웃으면서 "판사가 바쁜가봐. 내 말을 듣지도 않네." 하더니 벌금은 저기 가서 내고 가면 된다고 안내를 해주고 "나 변호사비 줘야지." 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입도 열지 않고 돈을 받아가는 경우도 있나봅니다. 망연자실한 저는 어이가 없어하며 어쩔수 없이 수표를 써서 변소사에게 주고 법원을 나섰습니다. 구속을 안 되어서 다행인데 이 상황은 정말 변호사가 필요 없는 경우였습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1. 교통 위반도 조금 과실이 중하면 교통법정이 아닌 형사법정에 갈 수 있다
2. 교통 위반의 경우 법원에 갈때 영화에서 처럼 차려입고 갈 필요없다.
3. 변호사는 필요없을 것 같다. 시간맞춰서 출두만 하면 된다.
4. 정지 신호 위반은 상당히 벌금이 세다. 정지 신호 잘 지키자.

미국 생활에 이런 경험이 없는 분이 대부분일 텐데 참고라도 하시라고 적어봤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인데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정지신호 지켜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마 저 뿐만이 아니고 많은 분들이 정지신호는 거의 무시하셨을 것 같은데요 미국에 와서는 제법 잘 지켰습니다. 이처럼 벌이 무거운 줄을 알아서가 아니고 남들이 다 지키니까 그렇게 저절로 하게 되었습니다. 정지신호가 있으면 일단 정지해서 좌우를 살피고 다시 진행하지요.  어쨌든 미국 와서 정지신호에 꼭 한 번씩 섰다가 가는 미국사람들 보고 역시 선진국이라 법을 잘 지키는 가보다라고 감탄을 했었습니다. 따져보면 정지신호 아무데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많이 길을 건너는 곳, 교차로,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 근처에 있는 거니까 일단 정지해보고 살피고 가는 것이 맞긴 맞죠. 한국에서 경찰이 이런 정도는 단속을 안 하겠지만 글쎄요. 이 글을 쓰다 보니 저는 다음에 한국 가서 운전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정지 신호에 서야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월드컵 때 서울광장에서 응원 끝나고 쓰레기 줍던 정신으로 우리 스스로 선진국 국민이 되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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