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읽은 신문기사에서 보니까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한국인의 수가 외국인으로서는 중국, 인도 등에 이어 3위라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고,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도 외국 유학생 순위 1위에서 3위를 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비슷한 맥락인데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신문지상에 외국의 명문 대학교 입학에 성공한 한국의 젊은이들의 성공담이 나오고 서점가에도 이들이 어떻게 공부 하고 어떻게 명문 대학 입학에 성공했는가 하는 이야기들이 종종 나옵니다.
이렇게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나서 이들의 목표가 무엇일까요? 물론 한국에 돌아가서 취업을 함에 있어서 경쟁력을 키우고자 외국에 나오는 이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만 일부는 분명 외국에서 해외 유수의 글로벌 기업에 들어가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은가 봅니다. 취업을 걱정하기도 전에 졸업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지 작년에 한국 교포 2세 학생의 논문으로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미국 명문 대학 탈락생 통계를 조사한 결과 한국계 학생들이 중도 탈락률이 44%로 22%인 중국계의 무려 두 배의 숫자로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학교는 그렇다고 치고 직장 관계는 어떨까요? 한국인의 국제 기구 진출을 보면 어떤 자료에서는 유엔본부 사무국 전문요원은 약 1만 5000명인데 이 중 한국인은 18명이라고 합니다. 한국인이 갖는 언어적인 어려움을 원인으로 삼기가 쉬울 수도 있지만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는 일본의 경우 일본인은 약 160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계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어서 전체적인 추세에 관한 이야기라고 단정을 지을 수는 없지만 제가 최근 읽은 책에서 보니 뉴욕의 한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중역에 따르면 미국의 명문 대학교에 그렇게 흔한 한국인이 이쪽 글로벌 기업 세계(한국에 진출한 기업의 한국지사가 아닌 외국 현지의 글로벌 기업)로 오면 입사에 성공한 예를 찾아보기가 힘들었고 더 나아가서 중역과 같은 위치에 오른 사람은 더더욱 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유수한 인재들이 도대체 왜 외국에 나가면 그렇게 경쟁력이 떨어지고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가 하는 원인을 찾는 것에 관해서는 수많은 언론과 단체에서 논의가 있어 왔으므로 해당 전문가들에게 미루기로 하고 오늘은 글로벌 기업에 들어가고자 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도대체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 쓰여진 책을 한 권 소개하려고 합니다. 책의 제목은 <한 권으로 끝내는 뉴욕 취업(2009, 21세기 북스)>입니다.
source ; reuters photo
위에 언급한 뉴욕의 글로벌 기업의 그 한국인 중역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이정희’님입니다. 이 분은 세계 4대 회계/컨설팅 회사라는 Ernst & Young LLP에서 이사(Exp. Senior Manager)로 재직 중입니다. 저자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JP 모건 체이스, 도쿄 미츠비시 은행 등과 다국적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기도 하고 한국과 관련한 업무로는 국민은행의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가 있습니다. 2008년 서울대 MBA와 숭실대에서 특강을 하시기도 했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 분의 이름을 이미 들어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분의 책을 읽고 제가 가장 감동을 느낀 부분은 책의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인상을 받은 부분은 저도 월가의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는 것을 본적은 없지만 듣기는 엄청 많이 들었던 터라 저자는 저자와 같은 관리자의 입장에서라면 뉴욕의 글로벌 기업의 살인적인 업무량을 소화하면서 하루 하루 넘기기도 힘들었을 텐데 한국의 젊은이들을 위해서 책을 썼다는 사실 자체였습니다.
혹시라도 이 책이 더욱 폭 넓은 독자를 타깃으로 한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류의 에세이였다면 자신의 성공을 발판으로 책도 팔고 유명세도 얻을 목적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해외의 글로벌 기업에 입사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선배로서 가이드를 자처하고 쓴 실용서입니다. 당연히 해외 글로벌 기업에 꿈을 두고 있는 젊은이가 그 독자이기 때문에 독자층이 무척 좁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저도 미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의사 혹은 의대생이라는 무척 좁은 독자층을 두고 이들을 돕고자 블로그를 시작하기도 했지만 제가 블로그에 올린 자료와 글들은 이미 그 전에 쓴 것의 재활용이었기 때문에 제 자신의 희생이랄 만한 부분은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블로깅 자체에 재미를 붙이고 나서 블로그의 글의 주제를 넓히면서는 많은 시간 투자가 있었지만 이 역시 제 자신의 취미생활의 연장이었기 때문에 굳이 제 시간을 희생했다고 표현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감히 이 책의 저자인 ‘이정희’님은 자신의 시간을 꽤 ‘희생’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럼 저자는 뭐 하러 이런 책을 썼을까요? 책을 읽다 보면 군데군데 묻어 나오는 저자의 생각이 있는데 이 역시 본 글의 서두에서 제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를 무대로 좀 더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진출해서 국위를 높였으면 하는 마음 말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유태인이나 중국인, 인도인, 러시아인 등 제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자기 동족이 좋은 직업에 많이 진출하고 서로 도움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아주 조그맣더라도 자기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도움을 주고 받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민족성에 그리고 저자의 정성에 깊은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책의 내용을 보면 크게 일곱 부분을 나뉘어 있습니다. 글로벌 리더의 정의와 조건에 대한 부분, 적성과 직업적 준비에 관한 부분, 취업을 위한 이력서 쓰기부터 인터뷰 옷차림까지 세세한 실전 전략, 글로벌 기업 입성 후의 자세에 관한 부분, 입사 후 비즈니스맨으로서의 문화적응에 대한 부분, 회사에서 승진을 위한 전략, 유학과 영어공부에 관한 조언 등이 그것입니다.
제가 제 책 <뉴욕의사의 백신영어>를 쓰면서 영어를 직업으로 삼고 사는 ‘영어전문가’의 책과 달리 영어를 직업의 도구로 활용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인’의 관점에서 영어공부를 논하기를 원했던 것처럼 이 책도 글로벌 기업에의 도전에 관한 이야기가 ‘취업 전문가’가 아닌, 현장에서 일하는 현직의 회사원의 관점을 담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책은 무척이나 자세하고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솔직하고 냉정한 조언이 곳곳에 보입니다.
예를 들어 저자가 근무하는 회사의 뉴욕 본사에는 50-60명의 한국계가 근무하고 있으나 매니저급 이상은 단 3명뿐이고 문제는 동양계 스스로가 이 벽을 뛰어 넘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시스템을 불공평한 미국의 시스템을 탓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자가 보는 문제점은 이들이 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비즈니스 문화를 잘 안다는 커다란 착각을 없애지 않고 비즈니스 처세술을 익히려고 노력을 하지도 않는데 있는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저자가 경험한 신입 사원들 중에는 아이비리그의 명문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자신감이 넘쳐서인지 일부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으로 동료나 상사를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고, 사소한 잡무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피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의 일의 경계를 명확하게 긋고 책임으로 할당된 이상의 일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저 조차도 몰랐던 점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국직장에서 이런 문화가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에서 간접 경험한 미국은 이런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한 곳이었기 때문에 오해한 면도 있었습니다. 저도 역시 미국에 와서 병원의 경험을 통해 적어도 미국 병원에서 이런 사람들은 환영을 받지 못하고 또한 성공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제 근무지가 아무래도 약간은 특수한 환경이다 보니 감히 일반화해서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즉, 어차피 병원에서는 교수들이나 선배 의사들에 대한 제자나 후배 의사들의 존경과 복종이 유별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어서 일반 직장도 그럴 것인지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보니 아이비리그를 나온 잘 난 신입사원도 미국 뉴욕의 한복판에서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할 때는 복사도 해야 하고, 직장 내 부서 사람들을 위해서 점심 주문도 맡아야 하고, 할 일이 있으면 늦게 까지 남아서 일하기도 해야 하고, 직장 상사가 남아서 일하고 있으면 자신이 의무는 아니더라도 도울 수 있어야 하고, 굳이 자기의 취미가 아니더라도 돋보이기 위해서 음악, 미술, 술(와인)에 조예가 있어야 하는 등 한국에서 본 직장의 풍경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더라도 불평하지 않고 깔끔하게 잘 해내는 사람이 결국은 성공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직장인들 고생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알고 있지만 자유분방해 보이는 미국도 결국 상류기업으로 올라갈수록 한국과 비슷한 분위기가 많이 느껴진다는데 대해 놀랐습니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이렇듯 이 책은 단지 글로벌 기업에 입사하는 전략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생존과 성장 전략에 관한 부분을 모두 담고 있다 보니 유능하고 인정받는 구성원이 되기 위한 국내 기업의 회사원들도 참고할 만한 부분이 꽤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어서 아주 살아있는 재미난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이 책이 얼마나 생생한지 보여주는 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이 책 소개를 마칩니다. 이 책에는 인터뷰 시 옷차림에 대한 조언이 이 책에 꽤 긴 부분을 할애되어 써 있는데 우리와 문화가 꽤 다른 부분이므로 이런 차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신입사원을 인터뷰하시는 입장에 있는 저자의 관점을 자신의 관점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 조금이라도 자신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될 것입니다.
명문 학교를 졸업한 후배가 있었다. 월 스트리트에 있는 회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는 것이다. 파워 슈트를 입을 것을 권하는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베이지색 계열의 반짝이는 바지 정장을 입고 당당하고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 그녀를 본 면접관이 농담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어조로 “Are you going to a party?”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그 인터뷰를 통과하지 못했고, 그 이유는 결단코 옷차림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저자는 최근 글로벌 기업에의 진출을 원하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블로그도 열었습니다. 책에서 못 다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도전 글로벌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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