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하는 일했던 미조리주의 병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일을 시작하기 일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이 이야기가 거의 전설처럼 입에서 입으로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약간 상스러울 수가 있으니 임산부와 노약자는 본론으로 건너뛰셔도 됩니다. 제가 일했던 병원에 중국계 의사인 닥터 푸가 있었습니다.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한번도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영어로는 쿵푸팬더의 ‘푸’와 같은 철자인 ‘Fu’ 입니다. 전에 제가 한 번 제 블로그를 통해서 소개시켜 드린 바가 있었던 바로 그 자랑스런 한국인인 선배 레지던트가 처음 미국에 와서 일할 때 전화로 간호사랑 대판 싸울뻔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병동에 전화를 걸면서 일이 일어납니다.
“May I speak to Dr.푸?” 닥터 푸 좀 부탁합니다.
“Excuse me?” 뭐라고요?
“I’d like to talk to Dr. 푸.” 닥터 푸 좀 바꿔달라고요.
“I didn’t get that. Who do you want to talk to?” 못 알아듣겠는데 누구라고요?
“Doctor 푸!!” 닥터 푸라고요!!
“Doctor who?” 닥터 누구요?
“푸!! F, U!” 푸라고요. 에프, 유!!
“F, U!” 에프, 유!!
“What?! ” 뭐야?!
이런 것도 못알아듣냐? 엿이나 먹어라!
그 후에 일어난 일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아마 영어를 조금 하시는 분은(혹은 슬랭에 능통하신 분) 폭소를 터뜨리기에 충분한 이야기일 것 입니다만 한국에서 정규영어 교육을 받으신(혹은 저속한 말을 별로 접해보지 못하신 분)은 왜 이게 우스운지 이해가 안 가실 수도 있겠습니다. 사건의 맥락을 정리하면 일단 제 선배가 병동에 전화해서 닥터 푸를 바꿔달라고 했는데 문제는 ‘Fu’의 발음을 미국인 간호사가 잘 알아듣지 못해서 생겼습니다.
어쨌거나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그게 누구냐고 못 알아듣겠다고 계속 되물었고 답답해진 선배는 철자를 불러줘서 알아듣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닥터 푸의 이름 철자가 미국의 비속어인 ‘F**k you’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같은 의미로 통용된다는 것을 몰랐던 선배가 몇 번이고 F, U를 반복했고 통화 상대방인 간호사가 난데없는 욕설세례에 함께 흥분해서 큰 사건이 될 뻔 했던 것입니다. 간호사 입장에서는 의사가 전화를 걸었는데 간호사 자신이 의사의 말을 도저히 못 알아들으니까 상대방 의사가 화를 참지 못하고 ‘엿먹어라’하고 욕설을 내뱉은 것으로 해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짐작하건대 간호사는 이 발음을 ‘Pu’로 알아들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F와 P가 그다지 다른 발음은 아닌데 미국인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발음으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가 위에 영어대화에서 유독 ‘Fu’만 한글로 ‘푸’로 적은 것이 이런 이유입니다.) 마치 닥터 강이 옆에서 일하고 있는데 닥터 방을 바꿔달라는 전화를 받으면 한국사람의 반응도 이와 비슷하겠지 싶습니다. 정말 닥터 방을 말하는 건지 닥터 강을 잘못 말한 것인지 확인하느라고 몇 번이고 되물을 수 밖에 없었겠지요.
조금 과장하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이나 이민오신 이민 1세대 분들은 영어발음과 관련된 이러한 에피소드가 없다면 거짓말일 정도로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영어교육에 최근에 큰 변화가 있었으니까 아마 80-90년대 이전에 중 고교를 다닌 시절에 배운 영어를 가지고 미국에서 적응하면 살아야 했던 세대와 지금처럼 말하기와 듣기가 충분히 강조되는 시대의 교육을 받은 세대의 영어가 같으리라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한국인에게 영어의 발음은 정말 극복하기 어려운 장벽이었습니다.
대학생으로 부터 온 편지
최근 아래와 같은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한번 읽어보시지요.
좀 전에 영어 공부하다가 궁금해서 이렇게 질문 드리는데요. 제가 obligation 란 단어를 '오블리게이션' 이렇게 발음해왔거든요? 근데 이 발음이 맞나 확인 겸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성우가 말하는걸 들어보니 '아블러게이션'이더군요. 발음기호도 그렇게 되있었구요..
궁금한 건, 꼭 발음기호에 나와있는 대로 발음해야 되는지 입니다. 오블리게이션 이라고 발음하는 건 틀린 거에요? 요즘에 영어공부를 하면서 자꾸 느끼는 건데요, 평소에 제가 알던 단어를 발음하는데 혹시나 해서 네이버사전에서 원어민이 하는 발음을 들어보면 다 틀리거든요? 또 하나의 단어를 예를 들어보면 criticize 이 단어를 크리티씨즈 라고 읽어왔는데 네이버사전에선 크리터싸이즈 라고 하더군요.
제가 발음하는 게 그냥 잘못된 건가요? 단어 외울때 옆에 발음기호대로 꼭 발음해야 정상인가요? 궁금해요 ~
제가 전에 제 글 영어공부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에서 영어공부 초기에 반드시 발음을 되짚어서 공부해봐야 한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영어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 초급자들은 반드시 영어의 정확한 발음을 알아야 하고, 이미 알고 있더라도 정말 자신이 정확한 입술의 모양과 혀의 위치를 잘 알고 있는지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 그 정확한 발음에 입각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에 편지를 주신 대학생 분은 그냥 자신이 하던 대로 편하게 발음을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발음이 사전과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조언을 구해오신 것이니 제 권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신 것이 분명하고 많이 칭찬받아 마땅한 분 같습니다. ^^
영국식과 미국식 영어의 차이 중에 한가지
일단 위 질문에 대한 답변의 일부로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겠습니다. 영어 발음을 공부하다 보면 영국식(호주나 뉴질랜드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만) 발음과 미국식 발음의 차이를 느낄 때가 있는데 한가지 예를 들어 알파벳 ‘o’를 발음하는데 있어 미국은 ‘아’처럼 발음하고 영국은 ‘오’처럼 발음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그래서 ‘아블리게이션’과 ‘오블리게이션’의 차이가 생길 수 있겠죠. (편의상 한국말로 발음기호를 적는 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근거가 100% 확실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제가 알기로는 18세기에 영어에서는 ‘o’를 원래 발음인 ‘오’ 대신 ‘아’로 발음하는 것이 일시적 유행이었다고 합니다.(물론 발음기호상 거꾸로 된 C 아시죠? 그 발음인 ‘오’라는 발음으로 시작되는 단어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발음이 아닌 obscure 업스큐어, oak 오우크 등은 해당이 되지 않으며 발음이 ‘오’로 시작해도 orphan등은 아ㄹ펀이 되지 않고 그냥 올펀입니다) 어쨌거나 그런 연유로 object는 압젝트, observation는 압서베이션, occupy가 아큐파이로 되었던 것이죠. 미국으로 이때 이민 온 사람들은 이런 발음의 트랜드에 따라 발음을 하게 되었고 자손에 그대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이렇게 발음을 하는 것이고 영어의 본토인 영국에서는 이런 트랜드가 사라져서 원래 발음이 복귀되면서 다시 ‘아’ 발음이 ‘오’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오블리게이션이든 아블리게이션이건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영국식 영어냐 미국식 영어냐의 차이일 뿐이고 둘 다 맞는 발음으로 인정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주로 배우는 미국식 발음이 옳고 영국식 발음은 틀렸다는 것은 편협한 생각으로 보입니다. 영어를 배우는 입장에서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니까 뭘 택하느냐는 선택의 문제가 약간 골치가 아플 뿐입니다.
발음이 틀리면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은 당연
하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에 있어서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어느 나라 식 발음으로 영어를 배웠건 간에 외국에 나가면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전체적인 영어의 기초실력이 부족한 것 말고 그냥 발음문제에만 한정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분명히 ‘friend’라는 의도로 발음을 했는데 ‘priend’로 들은 외국인은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고민하게 됩니다. 한국사람을 많이 겪은 외국인(한국의 원어민 강사 등)은 비록 priend로 들리더라도 재빠르게 두뇌 내에서 friend로 바꿔서 알아듣는 연습이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연습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끝끝내 못 알아 듣게 됩니다.
저도 처음에는 도무지 쉬운 발음 조차도 알아듣지 못하는 중서부 지방의 시골 미국인들 때문에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나중에는 이해를 해 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이 사람들은 다양한 영어를 접해보지 않아서 이해의 대역폭이 넓지 않습니다. 약간의 상상력으로 발음의 스펙트럼을 확장시켜서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죠. 나중에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일설에는 미국보다 외국 출신이 더 많다고 합니다.) 뉴욕에 와보니 서로 서로 희한한 발음의 영어로 잘 들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고 미국인이더라도 제 발음으로 못 알아 듣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인도 사람들과 일을 할 때 인도식 영어가 알아듣기가 너무 힘들어서 고생을 했습니다. 뭐라고 상대방이 하면 연신 ‘excuse me? Sorry? Pardon me?’를 남발해야 했고 못 알아 듣는 것이 참 미안하더군요. 나중에 익숙해지니(알아듣는 스펙트럼이 넓어지니) 점차 그냥 전형적인 미국인의 영어를 듣는 기분으로 들어졌습니다. 그럼 발음이 이렇게 다양한데 도대체 뭐가 표준이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철썩 같이 믿고 있던 미국식 영어도 표준이 아니라면 그냥 아무렇게나 발음해도 듣고 있는 상대방이 알아서 알아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발음이 덜 중요한 극히 예외적인 상황
다시 여담인데 전에 오랜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자유메달을 수상하고 한국과 미국의 저명인사들 앞에서 영어로 연설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야 말로 콩글리쉬의 상징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오랜 수감생활을 하시는 동안 책으로만 영어를 독학으로 익히셨다고 하니까 외국인들로서는 발음을 알아듣기가 녹녹하지 않았을 것은 뻔한 노릇입니다. 하지만 다들 어떻게든 알아듣고 박수도 치고 잘 지나갔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 자리에 참석한 한국인들이 연설을 알아듣기 힘들어 고생했다고 하죠.
또 정치평론가로 유명한 어떤 대학교수님이 영어공부에 대해 쓰신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분이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업 말미에 어떤 미국대학생이 손을 들더니 발음 때문에 강의를 못 알아 듣겠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면 이런 경우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일 것 같은데 이 교수님은 오히려 못 알아듣는 것은 너의 사정이니 재주껏 알아듣든지, 못 알아듣고 낙제하든지 알아서 하라고 하고 그냥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너무 요약하다 보니 이 교수님이 지나치게 거만하게(?) 말씀하신 것처럼 들리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고 제가 읽으면서 받은 느낌은 이 대학생이 아마도 시골출신이어서 외국인의 영어를 별로 들어보지 못했거나, 잘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 온 교수를 조금은 비하하는 의도로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이해를 했었습니다.
위의 두 가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인도 낯 설은 액센트의 영어에 대한 이해도가 차이가 많긴 하지만 자신이 아쉬운 입장이 되면 노력해서 알아들으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예를 우리 모두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습니다. 영어를 배우는 입장에서는(일단은 우리가 아쉬운 입장인 것도 사실이고) 우리 자신의 입장을 미국인 혹은 세계인에게 좀 더 정확하고 쉽게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위에 질문을 보내신 대학생에게 답장을 한 내용의 일부를 좀 보겠습니다.
세계화의 시대에 더 강조되는 정확한 발음의 중요성
결론을 정리하자면 사전에 있는 대로 발음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대부분의 사전은 영국식과 미국식의 발음이 다 표기되어 있으니 아무 방식이나 편한 대로 선택하시면 되지만 대개 미국식으로 배우셨을 것이니 미국식으로 발음하는 것이 편한 것이 대다수이리라고 봅니다. 누구나 사전대로 영어를 배우지만 미국사람과 똑 같은 발음을 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편차를 인정해야 하고 저 개인적으로는 원어민의 발음에 90% 비슷한 사람라면 99% 비슷한 발음을 만들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기 보다는 90% 비슷한 발음이라면 정확한 문법과 세련된 표현을 익히는데 같은 시간을 더 투자하면 더 인정을 받게 된다고 봅니다. (전에도 누누히 강조했지만 세련된 표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에 담긴 내실입니다만)
제가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비유를 해보겠습니다.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동차 관리를 잘 하기를 원한다면 외관에 대해서는 자주 세차를 해주고 가끔 왁스를 발라서 광을 내주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더 높은 광택에 집착해서 수십 만원짜리 코팅을 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겁니다. 코팅을 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것은 없는데 만약 자동차의 내부가 엔진오일도 갈아야 하고 타이밍벨트도 교환하는 등 각종 정비를 해야 할 상황인데 예산은 제한적인 상황이라면 외관에 대해서는 세차 정도로 만족하고 코팅에 들여야 할 돈을 내부정비를 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차가 번쩍거려도 엔진이 고장 날 상황이면 돈을 쓰는 우선순위가 어디인지는 자명한 것이죠.
하지만 완벽한 발음에 집착하지는 말아야
의외로 많은 영어학습자들이 영어공부 시에 영어표현을 풍부하게 하는 것보다는 원어민과 완벽하게 같은 발음에 집착해서 지나친 시간과 돈의 낭비를 하는 경우를 보았기 때문에 든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발음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만 미국(혹은 영국) 영어만 공부해서 세계 각국 사람의 영어를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은 제 각각의 고유의 액센트가 있고 영어 학습자의 입장에서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구태여 액센트를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어의 발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즉, 그 발음에 익숙해지고) 영어의 기본 실력이 늘어난다면 중국인의 영어이건, 일본인의 영어이건, 더 높은 질의 의사소통 가능합니다. 같은 이야기인데 약간 다르게 해석해보자면 익숙하지 못한 액센트의 영어를 잘 알아듣기 위해서는 단지 그 액센트를 많이 듣는 경험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영어수준이 다른 사람들의 어려운 발음을 여유롭게 감안하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충분히 높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오늘도 무진장 길어졌군요. 정확한 발음이 중요한 이유를 말하려다가 완벽한 발음보다도 내실이 중요하다는 해괴한 결론이 나버렸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정확한 발음과 완벽한 발음의 차이라든가, 어느 정도의 발음이 필요한지등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하겠습니다. 읽어주신 여러분 죄송+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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