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꽤 오래 전에 이미 지금은 뉴욕을 떠나서 다른 곳에 살고 있다고 블로그에서 언급을 하였지만 지금도 뉴욕에 살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의 전화나 이메일을 종종 받습니다. 어차피 모든 사람이 다 제 블로그를 구석구석 꼼꼼히 읽고 기억하는 것은 아닐 테니 블로그 이름이 ‘뉴욕에서 의사하기’인 이상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년 전 뉴욕을 떠나서 미주리 주의 시골로 갔었을 때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블로그를 폐쇄하거나 중단할 것이냐 아니면 이름을 바꿀 것이냐 그도 아니면 이름을 그대로 둘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당시 가장 유력한 대안은 블로그를 이름을 바꾸어서 사는 곳에 구애를 받지 않게 ‘미국에서 의사하기’ 정도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시도를 해보지 않아서 블로그 이름을 바꾸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도 확신이 없었고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저를 모든 사람이 ‘뉴욕에서 의사하기’란 블로그에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블로그 이름이 바뀌면 ‘뉴욕에서 의사하기’라는 곳에서 전통적인 블로그가 없어지는(물론 글은 남겠지만) 결과가 오게 되고, 사람들이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이사를 가도 고향의 이름이 없어지지는 말아야 하겠기에 제가 어디를 가더라도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바로 그 블로그인 ‘뉴욕에서 의사하기’란 주인으로 남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쩐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미주리 주에 살면서 ‘뉴욕에서 의사하기’를 이어가는 것이 오랫동안 어색하기는 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어쩐지 뉴욕에 살지도 않으면서 뉴욕이라는 특별한 장소의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는 것도 같았고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 글은 어차피 자동차, 건강, 경제, 영어공부와 같은 것들이 주제이므로 제가 뉴욕에 살든 어디에 살든 제 글을 읽는 분들은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도 했습니다.(설마 제가 뉴욕에 산다고 생각하는 이유만으로 제 글을 읽는 분들은 없었겠지요. ^^;;)
항상 새로운 도시, 뉴욕
그러던 제가 최근 미주리 시골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다시 뉴욕과 비교적 가까운 워싱턴 DC 외곽의 버지니아 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무사하게 이사하게 되어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하루하루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물론 블로그 이름은 그대로 이어갈 생각입니다.)
나의 음식 방랑기
오늘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인구 4백만의 세인트루이스에서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 뉴욕을 거쳐서 인구 1만 명의 시골 소도시까지 살아본 사람으로서 겪었던 제 음식 생활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일단 세인트루이스로 말씀 드리자면 메이저리그를 아시는 분에게는 익숙한 2006년과 2011년 월드시리즈 제패를 비롯해서 무려 11차례나 월드시리즈의 주인공이 된 명문구단 카디널즈의 본거지이고 왕년의 홈런왕 마크 맥과이어의 소속팀도 카디널즈입니다. 세인트루이스 주변의 메트로지역의 인구를 다 합하면 400만명이나 되는 중부의 대도시이며 자동차로 5시간 거리에 시카고가 있고 비슷한 거리에 서쪽으로는 캔사스시티, 동쪽으로는 인디애나폴리스, 남쪽으로는 멤피스 등의 큰 도시가 있습니다.
비교적 큰 메트로 지역이라서 미국 사람들 살기에는 불편함이 없이 골고루 다 갖추어진 곳인데 한가지 단점이 한국 사람이 비교적 적게 산다는 것입니다. 이곳 사람들 이야기로는 약 4000명 정도를 이야기하는데 그나마 넓게 퍼져서 사는 편이라 어디를 가도 대부분 백인이고 아주 약간의 흑인과 히스패닉과 동양인이 있을 뿐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한국 사람이 자주 갈만한 한식당도 적고, 한국 식료품 가게도 적습니다. 제가 살던 2005년에서 2006년 사이에 아마도 한국 식당은 두 군데였고, 식료품점은 세 군데였습니다. 처음 미국에 왔던 2005년만 해도 미국에 가면 미국음식만 먹고 살 비장한 각오를 하고 오긴 했는데 미국에 도착한지 하루 만에 맘이 바뀌어서 역시 한국 사람은 김치를 먹고 살아야지 하고 힘들게 한국 식료품점을 물어 물어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가게에 딱 들어가니 한국 분이 카운터를 지키고 계시고 한국 과자, 각종 라면, 김치, 조기 얼린 것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밑반찬까지 한국 식재료를 꽤 구비해서 팔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대형마트에 비하면 구멍가게 수준이었지만 영영 못 볼 광경을 다시 보게 된 그 순간은 정말 잃어버린 미아를 찾았을 때의 심정처럼 처절하게 감격적이었습니다.
미국에 살아도 입맛은 한국 사람
로마에 가면 로마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입맛은 로마 입맛이 될 수 없나 봅니다. 미국 와서 처음으로 밥을 해서 먹어보니 반찬도 없이 김 하나로 먹었는데 그 맛이 천국의 맛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일을 하게 되면 부득이하게 하루 2끼 이상을 병원에서 미국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먹던 맛과 어찌나 다른지 미국 음식 먹는 일이 정말 큰 고역이었습니다. 그나마 조금 먹을 만했던 것이 돈까스와 비슷한 쇠고기 튀김과 스파게티 종류, 프라이드 치킨 종류였는데 가장 맛없었던 것이 베지버거, 샐러드, 차가운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 등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연속 두 끼를 먹고 나면 속이 메슥메슥해서 밥 생각이 간절해지고 그래서 바쁜 인턴 생활 속에서도 집에 가는 것은 단지 쉬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으로 가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감사하기 이를 데 없는 한국 음식 생활이 계속 되다 보니 이제 욕심이 더 생겼습니다. 당시 맛집 프로그램이 상당히 유행이었는데 인터넷으로 맛집 프로그램을 보다 보니 각종 회, 감자탕, 설렁탕, 떡볶이, 순대국, 족발 등이 소개될 때마다 인내심 테스트를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한국에 있었어도 맛있게 보였을 음식들을 미국에서 보다 보니 때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한국 식당들은 그 자체로 맛은 있었지만 제가 한국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라서 크게 향수를 달래줄 수가 없었습니다.
먹는 고민에 대한 세가지 해결책
제가 당시에 알고 지내던 교포 분들께 먹고 싶은 것을 못 먹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해결책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먹고 싶으면 해 먹는다. 어차피 비슷한 재료는 구할 수 있으니 집에서 짜장면도 하고, 짬뽕도 하고, 탕수육도 하고, 김치도 담그고, 된장도 담그고, 감자탕도 끓이고, 닭도리탕도 끓여 먹는다고 합니다. 잘하면 그 나름대로 맛이 나겠으나 세상에 짬뽕을 집에서 만들어 먹다니요.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는 결국 많이 해먹기는 했습니다만.)
두 번째는 한국 음식을 잊고 미국음식에 적응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음식도 하늘이 내린 형벌만은 아니기에 계속 먹다 보면 숨은 맛이 느껴집니다. 피자, 돼지 BBQ,, 비프 스테이크, 소시지 구이, 햄버거, 후라이드 치킨 등이 한국사람이 익숙해지기 쉬운 음식들인데(한국에서 먹던 맛과는 많이 다릅니다.) 여기서 파스타, 샌드위치 등으로 식생활을 넓혀가다가 올리브도 사다 먹고, 치즈도 사다 먹고, 타코나 퀘사디아 같은 멕시칸 음식까지 즐기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 생활 2년차인 저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쇠고기를 등심구이를 만들면 얼마나 맛있는데 왠 스테이크이며, 한국 양념 통닭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냥 밋밋하게 양념도 없이 후라이드 치킨을 먹으니 만족이 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는 진짜 한국 맛을 찾아서 다른 도시로 원정을 가는 것입니다. 시카고가 대표적인데 한국 사람이 5만 명도 넘게 사는 만큼 큰 규모의 한국 슈퍼마켓도 있고 식당도 여러 곳이 있었습니다. 저도 한번은 왕복 10시간을 운전해서 다녀온 적이 있는데 갈비탕을 먹어본 결과 역시 먹을 만은 했으되 한국에서 먹던 맛은 아니더라 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뉴욕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서 한국과 비슷한 맛을 내는 음식점을 만나게 되었고 더 많고 규모 있는 한국 슈퍼마켓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미국 생활의 내공도 쌓이면서 미국 음식에도 맛을 들이기 시작한데다가 먹을만한 한국 음식점도 간간히 이용하면서 한국의 한국 음식에 대한 열망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국 맛집 프로그램도 보지 않게 되었고, 순전히 맛집 소개 때문에 열심히 보던 VJ 특공대도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시골에 가다
2010년 미주리 주의 시골 마을인 케넷이라는 곳으로 다시 이사했습니다. 국도를 운전하다 보면 옥수수 농장, 면화 농장, 밀과 보리 밭이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고 산도 없고 숲도 없는 망망한 평야지역입니다. 아마도 한국 사람은 살 수도 없고 살아 본 사람도 없을 것 같은 미국의 깡시골이지만 두렵지 않았습니다.
추수가 끝난 들판
이제 미국 음식도 먹고, 멕시칸 음식도 먹고, 미국식 중국 음식도 먹고, 짬뽕이 먹고 싶으면 집에서 해먹고, 탕수육이 먹고 싶으면 집에서 해 먹었습니다. (물론 제가 요리한 것은 아닙니다.) 이제 햄과 치즈, 야채를 넣은 천하에 못 먹을 음식이던 미국 서브 샌드위치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신 그래도 주식은 한국 음식이었기에 (반경 350 킬로미터에는 한국 식료품점이 없었기에) 한 달에 두 번씩 세인트루이스의 한국 식료품점으로 grocery shopping을 해야 했습니다.
케넷 집에 가는 도로
거리를 계산해보니 직선 거리로 따지면 서울에서 부산으로 매달 장을 보러 간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05년에는 (전혀 기대가 없었기에) 꿈의 장소였다가 2006년에는 (더 많은 것이 없어서) 너무 부족한 곳이 되었는데 2011년에는 (그나마 있어줘서 고마운) 괜찮은 곳이 된 장소입니다. 특히 주인 아주머니가 너무 친절하시고 가끔 공짜로 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을 주시는 바람에 정이 많이 들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이 곳에 만족을 못하고 760 킬로미터를 7시간 30분 동안 운전해서 조지아 주의 아틀랜타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한인 최대의 슈퍼마켓이 H mart라는 곳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 사실 약간 더 멀었던 텍사스의 댈러스도 가보고 이 보다 훨씬 더 운전해서 텍사스의 휴스턴도 가보았는데 아틀랜타 정도까지가 가장 갈만 했고 그 이상의 운전은 여러가지 신체적인 무리(?)가 뒤따라서 포기했습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
2012년 7월 초에 버지니아로 이사했습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근교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미국에 관심 없는 분들에게는 어쩐지 시골 같은 느낌이 나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만 미국 내 한인 지역사회로는 LA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이어서 세 번째로 큰 곳입니다. 공식적인 통계로는 캘리포니아 중에 45만 명의 한인이 살고, 뉴욕, 뉴저지 지역에 25만, 버지니아와 매릴랜드의 워싱턴 인근 지역에 15만이 삽니다.
미국 3위의 대도시 시카고를 포함한 일리노이나 CNN과 델타 항공의 본사가 있는 애틀란타를 비롯한 조지아 주에 각각 6만 남짓의 한인이 사는 것을 생각해보면 버지니아에 얼마나 큰 한인 지역사회가 존재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버지니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순두부 집에 가서 해물 순두부 찌게를 사먹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미국 음식도 다 먹을 줄 알게 된 제가 거의 한국과 비슷한 식생활을 할 수 있는 곳에 오게 되었으니 이제 먹는 문제에 대한 고뇌과 번민의 시간은 지나갔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7년간 “먹고” 살기 꽤 힘든 때도 있었습니다만 이제 미국 식생활 적응의 삼 단계를 모두 겪은 저로서는 지나간 고생이 이제 추억이 되었습니다. 한국에 살았으면 짜장면, 짬뽕이 귀한 것을 제가 어찌 알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미국에 산 덕분에 정신수양에도 많이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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