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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그리고 미국 생활 이야기

30대와 40대, 노후준비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얼마 전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CNBC에서 우연히 한 코너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목부터가 기상천외했는데 “Can I afford it?”입니다. 저는 처음 보았기에 잘 몰랐으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꽤 유명한 the Suze Orman show라는 프로그램의 한 코너었습니다. 진행자 수지 올만도 오프라 윈프리 쇼 게스트 출연 등으로 이미 잘 알려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제가 “Can I afford it?”이라는 제목이 기상천외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제목을 그대로 해석하면 내가 그 물건을 구입할 능력이 되는가?” 하는 것인데 돈이 있으면 사면 되고, 없으면 못사는 것이지 물건을 살 능력이 되는가 하는 것을 도대체 누구에게 묻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니 미국의 전국의 시청자들이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서 수지 올만 아줌마에게 내가 이런 이런 물건을 사고 싶은데 내가 살 능력이 되느냐고 묻는 것이 나왔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사람들이 얼마나 판단력이 흐리면 도대체 자기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인가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방송을 보다 보니 이게 납득이 전혀 가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들의 전형적인 이야기를 조금 만들어 보면 이렇습니다.

 

나는 45세의 남성이고 연봉이 8만 불이다. 30만 불짜리 집을 가지고 있고 주택구입자금 대출로 한 달에 2천불을 불입하고 있고 불입이 20년 정도 남았다. 연금 계좌에 10만 불이 있고 통장에 당장 있는 돈과 투자액을 포함해서 15만 불이 있다. 지금 내가 젊었을 적의 로망을 잊지 못해서 10만 불짜리 포르쉐 스포츠카를 사고 싶은데 내가 사도 되겠느냐?

 

그러면 수지 올만 아줌마는 자신만의 독특한 조언을 줍니다. 예를 들면 너 그 정도 저축액으로 은퇴자금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꿈깨고 노후를 위해 더 저축이나 해라라든가 지금까지 열심히 모은 돈을 보니 은퇴 대비가 충분한 것 같다. 당장 가서 차를 사고 인생을 즐겨라.’ 라는 식으로 아주 재미있는 답을 해줍니다. 저도 이런 프로그램이 처음에는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물건을 살까 말까 망설이는데 이렇게 재정에 대한 전문가가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싶어졌습니다.

 

아래 링크된 동영상은 미국의 유명한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 facebook(한국의 싸이월드에 해당)의 창립자인 Mark Zuckerberg가 수지 올만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Twitter를 살까 말까 물어보는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트위터의 구입가격으로는 1 8천억원에서 2 3천억 원을 예상하는데 자신의 재산이 현금으로 3500억원정도, 투자액으로 4 6천억원 정도 가지고 있다고 밝히는 내용이 나옵니다. 물론 사회적 명사의 장난이 들어간 전화지만 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 프로그램을 유심히 보다 보니 미국인의 자산의 포트폴리오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즉 연봉, , 주택 자금 대출, 은행 계좌 잔고, 연금 저축 등으로 대출과 저축이 짜여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조금 다른 점이라면 연봉, , 주택 자금 대출, 저축까지는 비슷한데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은퇴 계좌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Roth IRA IRA 401(k)니 하는 은퇴 저축에 대해 알게 됩니다. 한국에서 국민연금이라는 것이 있지만 미국에서 이런 개념과 비슷한 것으로는 social security라고 해서 국가 퇴직연금 제도가 있고 은퇴 저축구좌는 이에 더해서 본인이 비과세로 월급에서 미리 돈을 제해서 적립해놓고 이 돈을 투자를 통해서 불린 다음 은퇴한 후에 찾게 된다는 개념입니다. 위에 예로 든 것들이 다들 성격이 조금씩 다른데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통의 평범한 미국인들은 젊어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은퇴를 대비해서 저축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은퇴를 대비해서 지금 모아야 하는 금액을 따져보니

 

제가 레지던트를 하고 있을 때도 재정설계사와 같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아와서 보험 상품을 소개하면서 은퇴에 대비하려면 이런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의를 해준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미국 의사가 전문의로서 35세에서 65세까지 일한다고 가정하고 65세에 은퇴해서 85세까지 살아가면서 레지던트 월급 정도의 생활수준으로 살아간다는 가정하에 은퇴에 준비한 자금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서 예시해준 표를 본 적이 있습니다.

대충 한화로 15억은 모아야 은퇴 준비가 된다는 억장이 무너지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미국의대를 졸업한 동료들은 대부분 3 5천 정도되는 빚을 가지고 있었고, 저의 경우는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대신 더 적은 빚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장 쓸 돈도 없는데 은퇴를 대비해서 돈을 모아야 한다니(저의 경우 지금부터 매달 500만원을 은퇴할 때까지 저축해야 겨우 모아지더군요.)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특히 문제는 연 3%로 감안한 물가 상승률이었는데 매년 돈의 가치가 3% 졸아든다는 것이 40-50년 후에는 상당히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더군요. (물론 저축의 이자로 어느 정도 상쇄가 가능한 것이긴 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변수가 들어갈만한 아주 대충의 계산이긴 하지만 그 재정설계사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틀리지 않았던 것 같은 것이 제가 스스로 아무리 계산을 해도 (저의 경우) 25년을 일하면서 저축해서 은퇴하고 20년을 살아가려니 더 나은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재정설계사들도 지금부터 은퇴 준비를 못하면 결국 먹고 살기 위해서 죽기 전날까지 일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던데 듣는 레지던트들도 한숨만 푹푹 쉴 따름이었습니다. 이렇게 충격을 받긴 했지만 저도 아직 저축할 여유는 되지 않아서 결국 은퇴를 늦게 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속 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산술적으로는 한국에서도 35년 근속 회사원이 노후 25년 정도를 정년 퇴직 전과 비슷한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싶다면 당연히 신입사원 때부터 월급의 반 이상을 저축했어야 할 것입니다.

 

source ; wordpress.com

한국 사람들이야 정년을 연장해서라도 늦게까지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에 미국은 은퇴할 때가 되면 은퇴해서 노년을 유유자적하게 보내는 것이 대다수의 중산층의 바람이기에 미국에서 은퇴 준비는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국의 노년층들도 일을 하고 싶어서 찾는다기 보다는 생활에 돈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보니 일을 찾는 경우가 많을 것이므로 한국이라고 은퇴에 대비한 준비의 중요성이 미국보다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국과 다른 점이라면 전통적으로 한국의 부모들은 일단 집을 갖기 위해 평생을 보내다가 나중에는 자식의 교육과 결혼과 같은 대사를 치르면서 자산을 소진해버리고 결국 자식에게 의존해서 노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보니 미국과 같은 은퇴준비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한국인의 은퇴 준비

 

그래서 제가 든 의문은 과거의 부모님들은 그랬다고 치고 현재의 30-40대의 한국인들은 노후를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문 기사를 좀 검색해보니 국정홍보처 자료가 나오는데 연령대별 자료는 아니었습니다만 국민의 절반 이상이 노후 대비를 개인적으로 하지 않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래도 정기적금 등으로 현금을 보유하는 경우가 많았던 이전 세대에 비해서 지금 한국인의 자산구조의 취약점이라면 자산의 80%가량이 부동산-정확히는 자신이 사는 단 한 채의 집-이고 금융자산의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일 것입니다. (미국은 금융자산의 비율이 30%가 넘습니다.)

지난 노무현 정부가 종합 부동산세를 만들면서 부동산 부자들에게 적정한 과세를 하려고 노력했을 때 조중동과 같은 보수 언론의 반대 논리 중의 하나가 강남에 아파트를 가진 수입이 없는 은퇴 노인들은 어떻게 세금을 내냐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부자라는 강남의 10억대 아파트를 가진 은퇴 인구들의 자산 상황이 정말 한 해 몇 백 만원의 세금도 못 낼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문제는 강남에서도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나머지 95%도 넘는 인구는 과연 어떨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여러 경제 연구소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한국 부동산의 거품이 장기적으로 빠지게 된다면 그나마 유일한 자산의 가치가 감소하니 미래의 노인들은 어떻게 생활을 유지하게 될까 걱정입니다.

 

한가지 더 문제가 있습니다. 요즘은 대한민국이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20년 후인 2030년 후에는 65세 이상의 노년층의 수가 전체 인구의 25%에 육박할 것이라고 하지요. 상당수의 현재의 40대들은 20년 후에 아무 준비 없이 은퇴를 맞게 될 것입니다. 결국 부모 세대의 부양은 현재의 20대가 40대가 되어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 20대의 취업률이 50%대라고 합니다.

더욱이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대표하듯이 취업을 했어도 그 질이 높지 않다는 걱정이 많습니다. 그럼 자기 앞가림도 힘겨운 젊은 세대가 과연 은퇴한 노인들을 부양한 능력을 얼마나 갖게 될까요? 그나마 지금의 노인들은 서너 명 이상의 자녀를 두는 일이 흔했기에 어렵더라도 자녀들이 서로 도와서 부모를 부양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자녀가 없거나 하나 정도에 불과한 경우가 많은 지금의 30대와 40세들은 자녀의 도움을 기대하기로 어려울 것인데 말이죠.

 

미국이야기로 돌아와 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들은 한국인 노인 부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들이 하시는 말이 미국 정부만한 효자가 없다.’고 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대개 몇 십 년 전에 미국에 이민 와서 고생하면서 자식을 교육시키고 나서 별 다른 대비 없이 은퇴한 분들입니다. 하지만 미국정부에서 은퇴자를 위한 아파트를 제공받고 위에서 말한 미국식 국민연금으로 일인당 한달 60만원 가량의 생활비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더욱이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로 의료가 보장이 되니 아파트가 있는 노부부가 살기에 그리 적지 않은 돈이 될 것입니다.

덕분에 자식에게 손을 벌릴 일도 없고 자신은 자신대로 존엄을 지키면서 노년의 생을 살 수 있으니 미국 정부가 고마울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대한민국 정부도 미래의 노인들에게 효자 노릇을 해 줄 수 있을까요?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정부를 믿고 개인적인 대비책을 세우지 않는 것도 좀 그렇습니다. 어쨌거나 노후 대비는 지금의 대한민국 3040 세대가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