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cupy wall street 시위가 월가를 중심으로 시작되더니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손실을 낸 거대 투자은행들이 정부의 도움으로 살아났으면서도 자사의 임직원들에게는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하는 보너스를 준다는 뉴스는 상위 1% 부자를 향한 99%의 나머지 사람들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정부의 돈 찍어내기는(정확히는 연방준비은행) 실물가치의 상승을 불러왔고 덕분에 유가를 비롯한 각종 물가가 올라서 미국도 한국처럼 보통 사람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습니다. 더욱이 실업률은 9%대의 고공행진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고 한국처럼 미국도 특히 청년 실업이 매우 심각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에 9%가 취업을 못하고 있으니 91%는 직장이 있는 것은 아닌가 오해할 수 있지만 실업률의 결정적인 함정은 구직을 원하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한 구직 포기자를 제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구직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도 어떤 이유로건 현재 구직활동을 벌이지 않고 있으면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구직을 하는 도중에 파트타임잡(알바)을 하더라도 취업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어 역시 실업률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업률보다도 고용률 추이가 실제 고용상태를 더 잘 반영한다고 봅니다. 고용률은 15세 이상의 생산 가능인구에서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입니다. 미국의 이 고용률이 10년 전인 2001년만해도 64% 정도였는데 2011년 현재 58%대로 떨어졌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서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여기다가 워렌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 같은 일부 최상위 부자들까지 월가 시위대의 주장에 동조하고 나섰으니 월가 점령 시위가 미국을 바꾸는 커다란 계기가 될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 월가 점령 시위는 결국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서서히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 정치인들, 특히 공화당이나 기득권층이 반대해서 그럴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겠지만 사실은 보통의 미국인들이 반대해서 그렇습니다. 소위99%라는 사람들에 더해서 일부 상위 1%까지 찬성하는데 누가 이걸 반대하나 싶겠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참고로 아래 글을 읽어보셔도 됩니다.
링크에서 젊은 남자가 들고 있는 종이의 메시지만 번역해보겠습니다.
나는 세 잡(job)을 뛴다.
집이 있지만 (집 값이 떨어져서) 팔 수도 없다.
우리 세 식구의 (의료)보험료는 너무 비싸다.
그러나 불평하는 자(월가 점령 시위대를 지칭)는 들어라.
나는 월가를 비난하지 않는다.
나는 월가를 어슬렁거리며 불평이나 하는 너희들을 먹여 살리는 53%의 (세금을 내는) 사람이다.
월가를 점령하자는 99%의 보통사람을 대표하는 시위대를 대항해서 이번에는 세금을 낸다는 53%의 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미국에는 소득이 적거나 공제 받을 여지가 많아서 실질적인 소득세를 거의 내지 않는 사람이 47% 정도 된다고 합니다.) 퍼센트로 말장난하는 것도 같은 것이 어차피 1%의 부자를 제외한 99%에는 세금을 내는 53%도 대개 속해있는 것이 당연하건만 53% 운동에 참여하는 세금을 내는 이들은 99% 시위대들에게 남을 불평할 시간에 일자리를 찾아서 열심히 일하고 미국의 번영을 위해 기여하라고 요구합니다.
나라와 공동체가 어려우면 이왕이면 가진 사람들이 더 내놓는 것이 건강한 사회일 것이고 미국의 부자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백만장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8%가 자신들에 대한 증세에 동의했습니다. ) 그런데 난데없이 중산층들이 이를 반대하고 나섰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이 세금의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월가의 시위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미국의 부자들은 이미 상당한 세금을 부담하고 있어서 부자들은 세금을 피해가고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만 세금을 다 낸다는 속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래 표는 소득별로 20%씩 계층을 나누어 전체 미국민 소득의 얼마를 가져가고 얼마를 연방세금으로 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미국의 상위 5%의 부자는 소득의 30%를 가져가는데 세금은 40%를 내고 있습니다. 반면 하위 40% 정도의 경우 소득의 12% 정도를 가져가는데 3% 정도의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중간의 55%의 경우 58%의 소득을 가져가고 50% 정도의 세금을 부담하고 있는데 버는 것에 비례해서 세금의 부담이 커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에 말한53%라는 것은 세금을 거의 내지 않고 오히려 사회보장으로 국가의 보조를 받는 사람에 대비적인 개념으로 세금을 내면서 열심히 일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는 것인데 99%의 국민을 대변한다는 사람들을 향해서 ‘우리는 세금을 내지만 남에게 이것 내놓아라 저것 내놓아라 하고 불평하지 않는다’ 라고 하면서 월가의 시위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미국의 1% 부자들이 자신들이 가져가는 소득에 비해서 더 많은 돈을 연방세로 이미 내고 있고 이 비율은 실제로 어떤 다른 소득 계층보다 높은 비율입니다. 그리고 하위 40%는 세금을 거의 내고 있지 않고 있는데다가 오히려 이들에게 들어가는 각종 복지 혜택 비용이 작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볼 때 미국이 서구 선진국 중에서 복지 지출이 짜기로 유명한데도 부자들과 중산층에서 거둬들인 세금은 국방비(20%)를 뺀 국가 전체 예산(37%)보다 더 많은 금액이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사회 보장 연금(social security)등으로 나가는 복지 예산(43%)으로 편성되어 있는 정도입니다.
따라서 세금을 충실히 내면서 세금을 내지 않는 47%를 먹여 살리는 53%의 사람들에게는 비록 자기 자신에게 세금 더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상위 1%의 부자들에게 더 내놓으라는 시위대의 주장이 모순되게 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월가 시위대가 조금 더 진보적이라면 53% 운동은 더 보수적인 입장에서 사회를 보기 때문에 이런 정치적인 견해 차이가 엇갈린 주장을 하는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만 둘 다 주장에 일리가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한 쪽이 압도적으로 여론을 주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둘째로 부자 증세는 결국 투자 소득에 대한 세율 인상을 부를 것인데 이는 정당하게 부를 일궈가는 중상류계층에게 더 큰 손해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듯이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있다고 했는데 웨렌 버핏은 자신은 자신의 비서보다도 세율이 더 낮다면서 자신과 같은 미국의 부자들이 더 세금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모순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평균적인 미국인들이 백만장자가 되는(10억대 재산을 모으는) 과정은 대충 이렇습니다. 젊어서는 주중에 일하고, 밤에는 또 다른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주말에는 또 다른 일을 찾아서 일하는 식으로 죽어라고 일해서 자식도 키우고, 학자금도 상환합니다. 그러다가 40세가 넘어서면서 은퇴를 위한 저축을 하는데 여기에 저축은 대개 예금이나 주식 투자 등의 방법으로 합니다. 이렇게 돈이 점점 쌓이면 60대 중후반에 은퇴할 때쯤 백만장자가 되어 모은 돈으로 여생을 즐기면서 삽니다. (이게 지금까지 백만장자되는 주된 공식이었는데 요즘은 집 값이 폭락하고, 주식시장도 요동을 치는데다가 대학 등록금까지 엄청나게 올라서 보통 사람이 부자되기가 매우 힘들어지고는 있습니다.) 하여간 이렇게 돈을 모으는 사람이 많은 미국에서 애써 종자돈을 모은 사람들이 펀드에 투자해서 연간 5-10%의 복리로 돈을 불리는 것이 거의 공식이다시피 합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면 법인세나 개인 소득세는 각각 최고 세율이 35% 정도이고 여기에 주세, 의료보험료, 국민 연금 등을 합하면 45% 정도 소득이 빠져나갑니다. 대신 이들이 투자를 해서 얻는 배당 소득은 세율이 15%입니다. 즉, 사업소득이나 월급에서 세금이 나가는 것에 비하면 투자로 얻는 소득은 덜 세금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이 평범한 미국인들이 뮤추얼펀드 등을 이용해서 은퇴를 준비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고 특히 월급에서 미리 은퇴 연금을 제하고 나머지로 월급을 받는 등의 형태로 활발하게 저축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못먹고 못써도 나중에 편안하게 은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말이죠.
덕분에 웨렌 버핏과 같은 극상위층들은 어차피 월급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주식투자로 버는 수입에 비하면 작을 것이니 전반적인 소득에 있어서 세율은 다른 투자하는 곳이 없이 그냥 월급만으로 먹고 사는 그의 비서에 비해서 세율이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이런 1% 부자들의 세금을 더 걷기 위해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런 투자 소득에 대한 세율을 올려야 하는데 이는 미래에 부자가 될 꿈을 꾸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어차피 1% 부자들은 더 세금을 낼 여력이 많지만 보통사람들은 은퇴자금으로 펀드에 들어가 있는 돈의 한 푼이 다 아쉽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근로 소득세에 대한 세율을 올리자니 1%의 부자들은 어차피 그들의 수입에서 근로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되지 않으므로 타격이 적을 것이고, 세율을 올리는 것이 실질적으로 세금의 절대적인 대다수를 이미 부담하고 있는 월급받고 사는 중상층과 자영업자, 중소기업인들을 더 어렵게 만들어 정부에 대한 반발만을 키울 것입니다.
결국 상위 1% 만을 겨냥하고 나머지 납세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조세 개혁은 매우 어려운 형편이고 어떻게 세금을 올려도 결국 극상위층은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 반면에 중상위층은 타격이 클 것입니다. 이런 개혁에 대해서 중상위층 이상만 반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재 중간층이나 중하층도 세금이 부담되어 쩔쩔매는데 상황이 개선되어 나중에 중상위층이 되었을 때 세금 부담이 그토록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들 조차도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내라는 것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결국 세금을 올리는 것을 전폭적으로 지지할만한 계층은 현재 세금을 거의 내지 않고 있으면서 정부의 보조로 살아가는 계층이 될 것이라는 이론적인 계산이 가능한데 이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저소득층이 한나라당을 더 지지하는 한국의 상황에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한국과 똑 같은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보수 = 한나라당 = 미국 공화당, 진보 = 민노당/민주당 = 미국 민주당 하는 식으로 단순화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미국의 공화당도 어쩐지 수구꼴통이라는 식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미국의 공화당은 영국의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반대파를 소련에 동조하는 좌파로 몰아세우는 사람들도 아니며, 인종차별주의자들도 아닙니다. 노예를 해방한 링컨 대통령이 공화당 출신입니다. 단지 보수의 가치에 더 충실하려고 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공화당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미국인들과 똑같은 자부심이 있습니다. 저도 큰 틀에서 미국의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어차피 똑같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을 알고는 있습니다만 두 정당간에는 기본적인 철학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배경을 알면 1% 부자도 아닌 평균적인 미국인들이 왜 상위 1%에게 더 내놓으라는 월가 점령 시위를 좋지 않게 바라보는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때 미국에서 최고 세율을 적용받는 부자들의 세금이 전체 근로소득세의 90%를 넘은 때도 있었습니다. 이 비율이 점점 줄어서 현재 40%까지 내려왔습니다. 부자들이 자신들이 버는 소득에 비해서 어느 계층보다도 더 세금을 내고 있긴 하지만 세금부담은 예전보다 훨씬 덜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어차피 부자들의 부도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더해서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일구어진 것이므로 그러한 사회의 시스템을 함께 조성하고 지탱하고 있는 다른 구성원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가진 자들에게 의무와 희생을 강요함으써 사회 전반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부자들이 자신의 부를 자연스럽게 사회에 환원함으로서 존경과 신망을 얻고, 공동체에 참여하게 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조성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듯 합니다. 문제는 이것을 어느 정도까지 제도화시키고 강제화 시키느냐 하는 것인데 참 어려운 문제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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