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겨울이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병원 인터뷰를 하고 텍사스의 휴스턴에서 다음 날 바로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호텔에 돌아와서 자고 다음날 비행기를 타기위해 새벽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일어나서 텔레비전을 보니 간밤에 폭설이 내렸다는 뉴스로 난리들이었습니다. 제가 퍼뜩 든 생각은 그럼 비행기는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예정보다 두 시간이나 체크아웃을 빨리하고 공항에 갔습니다. 절망스럽게도 제가 탈 예정인 비행기는 아예 취소가 되어 있었고 탑승을 원하는 사람들은 언제인지도 모를 운항재개를 기다리면 공항 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비행기가 오전 9시 출발예정이었고 제가 공항에 도착한 것이 오전 7시 정도로 기억합니다. 이미 7시 이전 비행 편들이 다 취소가 되었기에 공항 내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대기 중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상당히 의외의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정말 조용하게 의자에 앉아서 무작정 기다리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기상관계로 비행기가 운항이 연기가 되어도 항의하는 사람들로 상당히 시끄러울법한 상황이었지만 아무도 항의할 생각도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후 7시 정도까지 정말 지루한 시간이 흘러가고 드디어 기상이 나아지고 활주로가 치워지면서 휴스턴에 밤늦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 속에서 생각해보니 미국사람들 정말 인내심도 대단했지만 왜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마디 불만도 표하지 않고 순한 양처럼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911 이후에 미국의 공항이용객의 불만은 정말 최악이 되었습니다. 각종 보안 관계로 혹은 정비관계로 정말 정시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운이 따라야만 하는 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사람들은 항의하지 않고 잘도 기다립니다.
미국에서는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 가나 정말 인내심 있게 기다려야 하는 곳이 많습니다. 공항뿐만 아니라 관공서, 은행, 병원, 그리고 식당 등에서 단지 사람이 많아서 뿐만이 아니고 일처리가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정말 비정상적으로 느려서 그런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은 누구나 정말 온순하게(?) 한도 없이 자기 순서를 기다립니다. 저도 사실 별로 용기가 없어서 앞에서 누군가 시간을 끌면 한마디 하고 싶어도 하지는 못하고 뒤에서 기다리는 누군가가 재촉을 해주기를 바라는데 이런 악역을 해주는 사람이 정말 없습니다. 분명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미국인과 한국인은 다른 국민성을 가진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분명 일부사람들은 선진국 국민은 이런 성숙함을 타고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가정교육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미국의 부모들은 아이가 뭔가 요구할 때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안 되면 나중에 해준다는 식으로 타협하지 않고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아이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벌을 주어야 할 상황이면 우리나라처럼 사랑의 매를 드는 것조차 사회적으로 범죄성이 있는 폭력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대개 방에 가두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리고 갇힌 아이가 화를 내고 울고불고해도 냉정하게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나중에 무엇을 잘못했나하고 스스로 말하게 하고 반성하게 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똑같은 입장을 취해주기 때문에 잘못을 한 경우 아빠한테 혼나더라도 엄마한테 가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인받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한마디로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고 배우게 되고 어찌 보면 체념의 정서가 싹트게 됩니다.
상당수의 한국 사람들은 이 세상 어떤 것도 하면 된다고 배웁니다. 어려서부터 처음에는 안 된다고 거절당한 것도 계속 부모를 조르면 결국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됩니다. 아빠에게 혼난 것도 엄마에게 가면 다 괜찮다고 용인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식당에서 시끄럽게 뛰고 돌아다니는 것을 옆에서 나무라면 왜 어린아이 기를 죽이느냐고 부모가 나서서 아이를 변호합니다. 다행인 것은 이런 자녀교육의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도 성인이 되면 내재적인 도덕심으로(혹은 superego라고 해도 좋습니다.) 개인적 성향이 극복이 됩니다.
하지만 일부의 성인들에게는 원칙적으로 안 되는 모든 것은 떼쓰면 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공항에서 항공기가 정비관계 같은 문제로 운항 지연되면 정비가 끝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도 비행기가 뜨게 해달라고 떼를 씁니다. 은행에 가서도 오래 기다리면 빨리 봐달라고 떼를 씁니다. 병원 응급실에서도 나를 먼저 봐달라고 떼를 씁니다. 선착순이 아니고 위급한 환자 순이라고 해도, 검사결과가 아직 안 나왔다고 기다려 달라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물론 모든 한국인들이 떼쓰는 어린이처럼 행동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실 다수의 한국인의 피에는 빨리빨리 정신이 흐르지만 그 쾌속성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참을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극히 일부의 한국인은 분명히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며 이런 사람의 비율이 미국인과 비교해서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눈에 쉽게 뜨이기 때문에 비율이 약간 과장되어 있을 수는 있습니다.)
체념을 모르는 국민성이 우리나라의 고속성장을 이끈 중요한 자산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이제는 약간 더 합리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폭설로 공항이 마비되었는데 어떻게 항의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리라고 기대한다는 말입니까. 식당에서 식사가 늦는다고 항의하면 순서를 무시하고라도 정말 더 빨리 나올 수 있습니까. 이제부터라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자식의 기를 조금 죽이더라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가르치는 부모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관련기사 ; 항공기 잇단 지연.결항 승객들 항의농성 빈발 인천공항 먹칠
http://news.korea.com/journal/read.asp?cp=930&seqno=43261921&ds=S1&dt=&pg=1
비행기가 오전 9시 출발예정이었고 제가 공항에 도착한 것이 오전 7시 정도로 기억합니다. 이미 7시 이전 비행 편들이 다 취소가 되었기에 공항 내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대기 중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상당히 의외의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정말 조용하게 의자에 앉아서 무작정 기다리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기상관계로 비행기가 운항이 연기가 되어도 항의하는 사람들로 상당히 시끄러울법한 상황이었지만 아무도 항의할 생각도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후 7시 정도까지 정말 지루한 시간이 흘러가고 드디어 기상이 나아지고 활주로가 치워지면서 휴스턴에 밤늦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 속에서 생각해보니 미국사람들 정말 인내심도 대단했지만 왜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마디 불만도 표하지 않고 순한 양처럼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911 이후에 미국의 공항이용객의 불만은 정말 최악이 되었습니다. 각종 보안 관계로 혹은 정비관계로 정말 정시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운이 따라야만 하는 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사람들은 항의하지 않고 잘도 기다립니다.
미국에서는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 가나 정말 인내심 있게 기다려야 하는 곳이 많습니다. 공항뿐만 아니라 관공서, 은행, 병원, 그리고 식당 등에서 단지 사람이 많아서 뿐만이 아니고 일처리가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정말 비정상적으로 느려서 그런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은 누구나 정말 온순하게(?) 한도 없이 자기 순서를 기다립니다. 저도 사실 별로 용기가 없어서 앞에서 누군가 시간을 끌면 한마디 하고 싶어도 하지는 못하고 뒤에서 기다리는 누군가가 재촉을 해주기를 바라는데 이런 악역을 해주는 사람이 정말 없습니다. 분명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미국인과 한국인은 다른 국민성을 가진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분명 일부사람들은 선진국 국민은 이런 성숙함을 타고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가정교육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미국의 부모들은 아이가 뭔가 요구할 때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안 되면 나중에 해준다는 식으로 타협하지 않고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아이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벌을 주어야 할 상황이면 우리나라처럼 사랑의 매를 드는 것조차 사회적으로 범죄성이 있는 폭력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대개 방에 가두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리고 갇힌 아이가 화를 내고 울고불고해도 냉정하게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나중에 무엇을 잘못했나하고 스스로 말하게 하고 반성하게 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똑같은 입장을 취해주기 때문에 잘못을 한 경우 아빠한테 혼나더라도 엄마한테 가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인받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한마디로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고 배우게 되고 어찌 보면 체념의 정서가 싹트게 됩니다.
상당수의 한국 사람들은 이 세상 어떤 것도 하면 된다고 배웁니다. 어려서부터 처음에는 안 된다고 거절당한 것도 계속 부모를 조르면 결국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됩니다. 아빠에게 혼난 것도 엄마에게 가면 다 괜찮다고 용인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식당에서 시끄럽게 뛰고 돌아다니는 것을 옆에서 나무라면 왜 어린아이 기를 죽이느냐고 부모가 나서서 아이를 변호합니다. 다행인 것은 이런 자녀교육의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도 성인이 되면 내재적인 도덕심으로(혹은 superego라고 해도 좋습니다.) 개인적 성향이 극복이 됩니다.
하지만 일부의 성인들에게는 원칙적으로 안 되는 모든 것은 떼쓰면 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공항에서 항공기가 정비관계 같은 문제로 운항 지연되면 정비가 끝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도 비행기가 뜨게 해달라고 떼를 씁니다. 은행에 가서도 오래 기다리면 빨리 봐달라고 떼를 씁니다. 병원 응급실에서도 나를 먼저 봐달라고 떼를 씁니다. 선착순이 아니고 위급한 환자 순이라고 해도, 검사결과가 아직 안 나왔다고 기다려 달라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물론 모든 한국인들이 떼쓰는 어린이처럼 행동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실 다수의 한국인의 피에는 빨리빨리 정신이 흐르지만 그 쾌속성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참을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극히 일부의 한국인은 분명히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며 이런 사람의 비율이 미국인과 비교해서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눈에 쉽게 뜨이기 때문에 비율이 약간 과장되어 있을 수는 있습니다.)
체념을 모르는 국민성이 우리나라의 고속성장을 이끈 중요한 자산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이제는 약간 더 합리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폭설로 공항이 마비되었는데 어떻게 항의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리라고 기대한다는 말입니까. 식당에서 식사가 늦는다고 항의하면 순서를 무시하고라도 정말 더 빨리 나올 수 있습니까. 이제부터라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자식의 기를 조금 죽이더라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가르치는 부모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관련기사 ; 항공기 잇단 지연.결항 승객들 항의농성 빈발 인천공항 먹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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