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잇달아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관한 뉴스들이 전해 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공식행사에서 모습이 안 보인다며 와병설이 흘러나오다가 나중에는 각종 매체에서 김 위원장이 뇌졸중(중풍)에 걸렸음을 확인해주는 구체적인 보도가 나왔습니다. 셜록 홈즈와 와트슨 박사
그리고 최근 다시 중국의 군의관들이 북한까지 가서 김 위원장을 수술했고 현재는 재활치료 중이라고 합니다. 이런 일련의 보도를 보면서 김정일의 건강 상태가 어떠한지 의사로서 짐작이 가는 것이 있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의사는 추리가 직업
제가 전에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으로 기록된 이소연씨의 건강상태에 관하여 추리해본 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제 의도대로 그냥 재미로 읽어주신 분도 있었지만 댓글을 통해 의사가 추리는 무슨 추리냐며 나무란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은 것은 의사라는 직업자체가 추리가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추리라는 것은 단지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것만이 아니고 기존의 데이터를 종합해서 현상을 보면서 기저의 원인을 분석해내는 작업을 말합니다.
환자들은 다양한 질병의 결과인 ‘증세’를 가지고 의사에게 오는데 의사는 어떤 원인이 이러한 증세를 초래했는지 귀납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고과정을 거쳐 진단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범죄의 결과인 ‘현장’을 보고 범인이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 복기하는 형사의 사고과정과 비슷하게 됩니다. 여기서 증거를 모으는 능력과 현상을 분석하는 능력 외에도 기존의 알려진 지식을 다 동원해야 최선의 추리가 가능해진다는 것은 의사나 형사가 추리하는 능력과 의학이나 범죄학적 지식을 조화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즘 인기가 많은 미국의 CSI같은 드라마를 보더라도 의학적인 지식이 실제 범죄를 분석하고 범인을 추적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것을 보면 의학적 추리와 범죄의 추리는 참 가까운 관계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도 이런 범죄학과 의학의 관계가 일찍이 소설로도 잘 표현된 바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추리소설의 고전 명탐정 셜록 홈즈를 보면 일단 셜록 홈즈 자신이 의학에 상당한 식견이 있었고, 이에 더해서 동료인 와트슨 박사가 바로 의사였습니다. 그리고 셜록 홈즈 전 시리즈를 통틀어서 무려 60% 이상에서 신경학적 징후나 진단명이 언급되어 있었다라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의학적 식견이 높았던 셜록 홈즈와 작가 코난 도일
이러한 배경에는 아마도 그 자신이 의학도로서 추리의 꿈을 키웠으며, 의사가 되어서는 신경질환에 대한 논문까지 썼고, 셜록 홈즈 시리즈를 한참 펴낼 때는 안과의사로서 활동했던 셜록홈즈의 작가인 코난 도일 경의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의 의학에 있어서 진단과정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관찰과 추리였습니다.
지금처럼 몸 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내시경이나 CT, MRI가 없었던 시절에는 환자의 혈색, 체중, 걸음걸이, 신발 뒷굽이 닳은 정도, 신체에서 풍기는 냄새까지도 진단에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지금 의학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징후와 증세에 대한 기술은 이 시기에(20세기 초반) 이미 다 이루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간편한 진단법이 너무 많기 때문인지 이러한 관찰의 중요성이 많이 퇴색된 감이 있습니다만 아직도 현대 의학교육에서 진단학은 가장 어렵고도 흥미로운 과목입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김정일 위원장이 복부비만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이고 사실상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대표적 성인병인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을 가지고 있을 확률은 충분합니다. 그래서 언론보도대로 뇌졸중이 생겼다는 것도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입니다.
뇌졸중에 외과의사가 왜 필요했나
그런데 제가 궁금하게 여겼던 것은 왜 중국의사들이 수술을 위해 북한에 갔는가 하는 것입니다. 뉴스기사를 그냥 무비판적으로 읽게 되면 뇌졸중이 생겼고, 수술을 받았다는 것인데 의학적으로 보면 이게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됩니다.
"김정일, 사지에 장애…상당기간 정양 및 재활 필요" - 교도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고 수술 후 경과도 양호하지만 아직도 김 위원장은 사지에 장애가 남아 있다고 이 소식통들은 말했다."
경동맥 그림, NIH에서 가져왔습니다. 벌써 지나간 추억이 되버린 드라마 뉴하트
아시다시피 뇌졸중에는 뇌혈관이 막혀서 뇌가 손상되는 뇌경색이 있고 뇌혈관이 터져서 뇌가 손상되는 뇌출혈이 있습니다. 뇌졸중과 수술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 이유는 뇌경색은 수술을 요하는 질환이 아니라서 발병 후에 외과의사의 역할이 극히 제한적인 질환이고, 뇌출혈은 수술해도 가망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최근 뉴스처럼 수술 받고 급격히 회복이 잘 되고 있다는 것이 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중국 의사들이 북한에서 어떤 ‘신의 손’의 역할을 했는가 궁금해졌습니다.
뇌출혈을 먼저 보면 이 질환은 발병 한 달 내 사망률이 50%에 이르는 치명적인 질환입니다. 전에 학생 때 신경외과 레지던트들이 환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1/3은 병원에 오기 전에 사망하고, 1/3은 병원에서 사망하며, 1/3만이 대부분 장애를 가지고 살아남는다고 하더군요. 그 때는 괜히 사람 겁주는 것처럼 느껴졌고, 지금 찾아봐도 이 통계에 약간 과장은 있어 보이지만 이 질환이 무섭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잘 나타내 주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김 위원장이 뇌출혈일 가능성은 그래서 높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뇌출혈은 수술 받고 (수술을 했다는 자체가 출혈이 심하다는 의미도 됩니다.) 살아나서 재활치료 받고 쉽게 현업에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수술이 먼저냐 뇌졸중이 먼저냐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수술로 고쳐야만 하는 질환이 있었고, 중국의 의사들이 이 질환을 고치기 위해 동원되었으나, 수술과정에서 뇌경색이 생겼다는 것이 바로 제 추론입니다. 뇌경색이 일어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에 흡연과 음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뇌에 공급될 혈액을 운반하는 경동맥(목 안의 혈관)에 동맥경화증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고 (다른 말로는 죽상종이라고도 합니다.) 이 죽상종은 정도에 따라 수술로 교정해야 하는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술의 위험도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섣불리 받을만한 수술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방치할 수 없는 상황까지 악화가 되었거나, 아주 약한 중풍이 살짝 왔기 때문에 위기감을 느끼고 급하게 수술을 하게 되었으리라고 봅니다.
이 수술은 사망률이 최고 1.8%까지로 되어있고, 수술로 인해 중풍이 올 확률도 5%까지 됩니다. 즉, 중풍을 예방하기 위한 수술인데 수술자체가 중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수술의 부작용인 중풍의 확률은 워낙 고난도의 수술이다 보니 외과의사의 숙련도와 기술에 따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우리가 이미 의학드라마로서 재미있게 시청한 바가 있는 ‘뉴하트’를 생각해보더라도 한 사람의 훌륭한 외과의가 탄생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훌륭한 스승을 두는 것이고, 또 외과의 자신이 그 수술을 충분히 많이 경험해서 숙달이 되어야 합니다. 김 위원장을 수술했던 중국의 군의관들을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 들이 이러한 수술에 세계적인 수준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것이 제 짐작입니다.
예전에 우리나라 흉부외과 의사들이 미국에 연수를 가서 배워온 것들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심장 수술이라는 것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타고난 아가들의 심장을 고쳐주는 것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한국 의사들이 미국에 가보니까 심근경색을 예방하기 위해 관상동맥 우회로술이라는 수술을 보게 됩니다. 먹고 살기가 힘든 당시 우리나라에는 이런 선진국형 질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물론 보고 배울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전세가 완전히 바뀌어서 한국의 흉부외과의들도 관상동맥 수술이 주된 수술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경동맥 수술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
경동맥 수술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회자체가 서구화가 별로 되어있지 않은 나라에서는 그다지 많지도 않고 의사들의 주목을 받는 질환도 아닙니다. 더욱이 현재 중국의 의사들을 가르쳤던 선대의 의과대학 교수들이 이 질환에 정통했을 리가 없습니다. 또한 현재의 중국 의사들도 많은 케이스를 경험하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군의관이라니 군의관은 주로 젊은 병사들과 40대 미만의 장교가 자신이 보는 환자의 99%를 차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인구가 많은 중국이고 군대내의 의료체계가 한국과 다르다고 해도 노인성질환으로 분류되어야 할 경동맥 수술에 풍부한 임상경험을 가진 군의관이라니 상상하기가 힘듭니다.
다시 말하지만 중국의 의학 수준이 낮다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은 자기가 항상 보는 질환을 잘 보게 되어 있다는 평범한 진리에 입각해서 이 중국 군의관들이 수술을 했고 그 후에 뇌졸중이 발발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추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어제 뉴스를 보니까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YTN | 기사입력 2008.09.14 07:15
이게 바로 경동맥 협착증의 증상입니다.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면 일시적으로 실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래 뉴스에서는 수술을 먼저 받은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한편 한나라당 이철우의 의원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지난 10일 국회 정보위원회 현안보고에서 "김 위원장이 지난달 14일 순환기 계통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는 등 집중 치료를 받아 현재 많이 호전됐다는 첩보가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즉, 여기서 말하는 순환기 계통의(심장과 혈관) 이상이란 것이 경동맥 협착이 생겼고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 바로 경동맥 수술이며, 합병증으로 뇌경색이 생긴 것이며, 지금 회복중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제 짐작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다들 아시다시피 한국의 혈관외과는 이 분야의 수술에 있어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만약 중국이 아닌 우리 외과의에게 도움을 청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김정일이 대남 유화정책과 협력 정책을 가속화시켰으면 어땠을까요. 지나간 일에 대한 가정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지만 김정일이나 남쪽이나 다 좋은 기회를 한 번씩 놓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어쨌거나, 정리를 하자면 김 위원장이 만약 뇌출혈이 있었다면 상당히 심각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고 온전한 모습으로 곧 현업에 복귀할 가능성은 많지 않습니다. 부자세습이 신속히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뇌경색이라면 휠체어에 앉아서라도 곧 모습을 나타낼 것 입니다. 일부 언론에 뇌출혈 설도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만 위에 소개시켜드린 보도를 바탕으로 제 짐작은 뇌경색에 조금 더 기웁니다. 어떤 경우에건 우리 민족에게 불안감보다는 희망을 주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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