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의 끝자락을 붙잡고 성장해온 저도 저 자신이 신세대니 엑스세대니 하는 말을 들을 때가있었고 지금도 기성세대에 속하는지 젊은 세대에 속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어른들이 요즘 젊은 사람들 문제가 많다고 걱정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남의 권위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대상이 학교 선생님일 수도 있고 직장 상사일수도 있고 목사님, 스님 심지어는 대통령일 수도 있는데 어쨌거나 누가 되었든지 존경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어디서 왔을까요? 어른들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이게 다 기성세대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잘못도 포함됩니다.)
신문에서만 정보를 얻던 시절의 추억
인터넷의 보급이 보편화되기 전만해도 고급 정보는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독점이 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소식을 알기 위해 신문을 보았고 신문에서 본 사실들을 비판 없이 믿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신문방송학과를 출신의 국어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신문에서 하는 이야기를 다 믿지 말라 신문도 틀릴 수가 있다는 아리송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업 내용과 관련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도대체 세상에서 가장 정확해야 할 신문이 어떻게 틀릴 수 있다는 것인가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상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때가 바로 한겨레 신문의 창간의 시기와 맞아떨어졌습니다. 집안 분위기 자체가 야당 성향이었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언론이 정권에 의해 통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자랐고 그래서 당시에 얄팍하긴 했지만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는 통로로서는 한겨레 신문만한 신문이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이 때의 생각은 독재정권의 눈치를 보는 한겨레 신문을 제외한 신문들이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언론은 공정한 심판이 아니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쳐서 이제 민주투사인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런데 이 때가 아마 저에게는 기성 언론의 기만성에 좀 더 눈을 뜨게 되는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민주화의 시대가 도래했고 신문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사실보도를 숨길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신한국당과 김영삼 정부 하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문언론(특히 조선, 중앙, 동아일보)들은 정권과 한 편으로서 여권에 우호적이고 야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일삼았습니다.
저도 처음에 가졌던 언론은 항상 중립이고 공정한 심판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어 자기들과 의견이 같은 당파나 인물을 편들어 줄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조중동과 같은 주요 언론이 모두 다 여권에 우호적이고 야권에 비판적이었지만 소비자로서 이런 것을 바꾼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거대한 일이었고 조중동에서 약간만이라도 균형감각을 가지고 반대되는 의견도 다루는 자비를 베풀어 주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독재와 싸우던 시절의 조선, 동아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이고 오랜 독재정권의 길들이기로 체질 자체가 바뀌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안티조선이라든가 ‘조선일보 제자리 찾아주기 운동’ 등이 시작된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운동에 심정적인 지지를 보내면서도 당시 여권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아무래도 다수였고 여당, 야당 모두다 조선일보 등 유력언론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야당 정치인들 조차도 조선일보의 자비를 구걸하는 상황에서 감히 이런 권위에 도전한 대안언론 중의 하나가 바로 딴지일보 입니다. 당시 딴지일보의 해학적이고 냉소적인 조선일보 비판은 요즘과 같은 인터넷과 블로그 시대를 여는 전령사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조중동이 일부 사실을 숨기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여준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거짓으로 속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크나큰 분노와 절망감이 느껴졌습니다. 학자이든 정치인이든 대다수의 사람이 이런 언론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도 강준만 교수나 노무현 의원처럼 감히 직설적으로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들이 조선일보를 비판하면 할수록 이들은 조용한 한국사회를 긴장으로 몰아가는 과격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덧칠해졌습니다.
지지부진한 안티조선 운동
이런 안티조선의 운동은 어쨌거나 운동 자체 본질의 순수성에 상관없이 한나라당 정치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반한나라당 세력으로 비춰졌기 때문에 지지를 받지 못했고 패배주의에 젖은 대부분의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조차도 괜히 조선일보와의 관계가 불편해 질것을 걱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호응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은 기성 언론의 여론조작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선택하고 지지했던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해냄으로써 엄청난 변화의 가능성을 예고했습니다. 이 때 각광을 받았던 것이 바로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과 같은 인터넷 언론이었고 외국 언론사들조차 인터넷으로 인해 앞으로는 언론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것은 아닌가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게 만드는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뿐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보수언론에게 끊임없는 비판을 받으면서 결국 조중동의 힘을 다시 확인시키며 물러났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으로 인해 촛불시위로 시작해서 이제 안티 조중동 운동의 폭풍이 불고 있습니다. 광우병 괴담과 관련한 조중동의 앞뒤가 안 맞는 궤변들이 네티즌에 의해 하나하나 밝혀지며 거대 언론사들이 점점 권위와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한때는 강준만 교수가 홀로 해야 했던 왜곡 보도의 실상을 밝혀내는 작업과 소수의 사람들만 찾는 딴지일보에서만 패러디 했던 허위보도를 비웃는 일들이 이제 젊은 네티즌들에 의해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스스로 권위를 잃어가는 어른들
박정희 정권 때 신중현의 미인은 퇴폐적이라서 금지곡이 되었는데 정작 대통령 자신은 요정에서 대학가요제 출신의 어린 가수를 데려다가 술자리를 즐기다가 저격되었다는 사실이라든가 전두환 정권 때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로봇이 나오는 어린이 만화를 다 거두어버렸는데 자신은 광주 학살을 통해 집권했다는 사실 등을 보면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예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자라나는 세대는 모범을 보이지 못한 기성세대의 권위를 인정해 주기가 힘든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 때는 스스로 앞장서서 광우병의 위험을 확산시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를 정부 비판의 도구로 사용하던 조중동이 이제 이명박 정권 때에 와서는 네티즌들이 과거의 자신들과 같은 주장을 하는데도 괴담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는 물리력과 정보통제로 권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민주화가 진행되고 인터넷이 번성한 지금은 둘 다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이신문 시대의 패러다임에 익숙한 이명박 정권은 이런 것을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물리력 동원이 시작되었습니다. 검찰과 경찰은 촛불집회관련 시민단체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있고 특정 언론에 광고를 싣지 말라고 기업에 요구한 네티즌들을 처벌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또한 다음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해 포털 사이트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정부를 제치고 논쟁의 당사자가 되어버린 조중동도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각 포털에 네티즌들의 입을 막으라고 협조공문(혹은 협박공문)을 보내고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을 압박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직까지도 기득권 층 내에서 조중동의 힘이 건재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조중동이 절박해졌다는 사실을 방증하기도 합니다.
진짜 촛불 끄는 비결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저 자신은 유감스럽게도 빨리 촛불 집회가 끝나고 이 어려운 국제 경쟁의 시대에 국민들이 제자리로 돌아가서 자기 일에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촛불 집회 어떻게 해야 끝낼 수 있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하지만 종이신문만 보는 참모들에 둘러싸여 있는데다가 종이신문만 보고 세상을 판단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 난국을 어떻게 해결할지 심히 걱정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훈수하고 있는 그 종이신문들이 지금 앞가림을 못해서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촛불집회에 선동적인 측면도 있다는데도 동감하고 누가 압니까. 조중동의 주장대로 공산당도 섞여 있을지. 문제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수십년동안 충분히 권위를 잃을 언행을 해 왔다는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어른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다 알아버린 똑똑한 젊은이들을 철부지로 보고 비난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고 어린이는 어른의 말을 듣지 않고 행동을 본다고도 하더군요. (일부)어른들의 권위는 젊은이들이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의 어른들이 어떻게 스스로 권위를 되찾을지 잘 연구해보시기 바랍니다.
신문에서만 정보를 얻던 시절의 추억
인터넷의 보급이 보편화되기 전만해도 고급 정보는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독점이 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소식을 알기 위해 신문을 보았고 신문에서 본 사실들을 비판 없이 믿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신문방송학과를 출신의 국어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신문에서 하는 이야기를 다 믿지 말라 신문도 틀릴 수가 있다는 아리송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업 내용과 관련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도대체 세상에서 가장 정확해야 할 신문이 어떻게 틀릴 수 있다는 것인가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상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때가 바로 한겨레 신문의 창간의 시기와 맞아떨어졌습니다. 집안 분위기 자체가 야당 성향이었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언론이 정권에 의해 통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자랐고 그래서 당시에 얄팍하긴 했지만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는 통로로서는 한겨레 신문만한 신문이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이 때의 생각은 독재정권의 눈치를 보는 한겨레 신문을 제외한 신문들이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언론은 공정한 심판이 아니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쳐서 이제 민주투사인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런데 이 때가 아마 저에게는 기성 언론의 기만성에 좀 더 눈을 뜨게 되는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민주화의 시대가 도래했고 신문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사실보도를 숨길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신한국당과 김영삼 정부 하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문언론(특히 조선, 중앙, 동아일보)들은 정권과 한 편으로서 여권에 우호적이고 야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일삼았습니다.
저도 처음에 가졌던 언론은 항상 중립이고 공정한 심판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어 자기들과 의견이 같은 당파나 인물을 편들어 줄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조중동과 같은 주요 언론이 모두 다 여권에 우호적이고 야권에 비판적이었지만 소비자로서 이런 것을 바꾼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거대한 일이었고 조중동에서 약간만이라도 균형감각을 가지고 반대되는 의견도 다루는 자비를 베풀어 주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독재와 싸우던 시절의 조선, 동아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이고 오랜 독재정권의 길들이기로 체질 자체가 바뀌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안티조선이라든가 ‘조선일보 제자리 찾아주기 운동’ 등이 시작된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운동에 심정적인 지지를 보내면서도 당시 여권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아무래도 다수였고 여당, 야당 모두다 조선일보 등 유력언론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야당 정치인들 조차도 조선일보의 자비를 구걸하는 상황에서 감히 이런 권위에 도전한 대안언론 중의 하나가 바로 딴지일보 입니다. 당시 딴지일보의 해학적이고 냉소적인 조선일보 비판은 요즘과 같은 인터넷과 블로그 시대를 여는 전령사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선구자적 인터넷 언론 딴지일보
지금도 기억에 남는 딴지일보의 보도 한가지는 1998년 대선 직후 김대중 당선자에 대해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꼽히던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이 월스트리트저널이라는 미국 유수의 신문을 인용해서 쓴 사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김주필은 이 글에서 외국인 투자가들이 김대중 당선자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내용은 김대중 당선자에 대해 ‘인기에 영합하고’, ‘예측이 어려운’ 정치인이고 ‘근거가 없는’ 경제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설을 두고 딴지일보에서는 원문과 하나하나 대조해가면서 왜곡된 해석을 소개했었습니다.
대충 정리를 하면 인기영합주의자라는 표현은 사실은 ‘김대중씨는 학생과 노동자 등 인민주의자(populist의 정확한 해석은 인기주의자가 아니고 인민주의자)의 지지를 받고는 있지만 인민주의자보다는 정치인(statesman)으로서 발언을 했다’는 내용이었고 예측이 어렵다는 말은 월스트리트저널의 원문에 없는 날조한 내용이고 ‘경제정책이 근거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책에 대한 우려가 근거가 없다’는 것인데 반대로 해석한 것이었습니다.
대충 정리를 하면 인기영합주의자라는 표현은 사실은 ‘김대중씨는 학생과 노동자 등 인민주의자(populist의 정확한 해석은 인기주의자가 아니고 인민주의자)의 지지를 받고는 있지만 인민주의자보다는 정치인(statesman)으로서 발언을 했다’는 내용이었고 예측이 어렵다는 말은 월스트리트저널의 원문에 없는 날조한 내용이고 ‘경제정책이 근거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책에 대한 우려가 근거가 없다’는 것인데 반대로 해석한 것이었습니다.
조중동이 일부 사실을 숨기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여준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거짓으로 속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크나큰 분노와 절망감이 느껴졌습니다. 학자이든 정치인이든 대다수의 사람이 이런 언론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도 강준만 교수나 노무현 의원처럼 감히 직설적으로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들이 조선일보를 비판하면 할수록 이들은 조용한 한국사회를 긴장으로 몰아가는 과격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덧칠해졌습니다.
지지부진한 안티조선 운동
이런 안티조선의 운동은 어쨌거나 운동 자체 본질의 순수성에 상관없이 한나라당 정치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반한나라당 세력으로 비춰졌기 때문에 지지를 받지 못했고 패배주의에 젖은 대부분의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조차도 괜히 조선일보와의 관계가 불편해 질것을 걱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호응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은 기성 언론의 여론조작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선택하고 지지했던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해냄으로써 엄청난 변화의 가능성을 예고했습니다. 이 때 각광을 받았던 것이 바로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과 같은 인터넷 언론이었고 외국 언론사들조차 인터넷으로 인해 앞으로는 언론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것은 아닌가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게 만드는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뿐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보수언론에게 끊임없는 비판을 받으면서 결국 조중동의 힘을 다시 확인시키며 물러났습니다.
강준만 교수의 오마이TV인터뷰 장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으로 인해 촛불시위로 시작해서 이제 안티 조중동 운동의 폭풍이 불고 있습니다. 광우병 괴담과 관련한 조중동의 앞뒤가 안 맞는 궤변들이 네티즌에 의해 하나하나 밝혀지며 거대 언론사들이 점점 권위와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한때는 강준만 교수가 홀로 해야 했던 왜곡 보도의 실상을 밝혀내는 작업과 소수의 사람들만 찾는 딴지일보에서만 패러디 했던 허위보도를 비웃는 일들이 이제 젊은 네티즌들에 의해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스스로 권위를 잃어가는 어른들
박정희 정권 때 신중현의 미인은 퇴폐적이라서 금지곡이 되었는데 정작 대통령 자신은 요정에서 대학가요제 출신의 어린 가수를 데려다가 술자리를 즐기다가 저격되었다는 사실이라든가 전두환 정권 때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로봇이 나오는 어린이 만화를 다 거두어버렸는데 자신은 광주 학살을 통해 집권했다는 사실 등을 보면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예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자라나는 세대는 모범을 보이지 못한 기성세대의 권위를 인정해 주기가 힘든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 때는 스스로 앞장서서 광우병의 위험을 확산시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를 정부 비판의 도구로 사용하던 조중동이 이제 이명박 정권 때에 와서는 네티즌들이 과거의 자신들과 같은 주장을 하는데도 괴담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는 물리력과 정보통제로 권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민주화가 진행되고 인터넷이 번성한 지금은 둘 다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이신문 시대의 패러다임에 익숙한 이명박 정권은 이런 것을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물리력 동원이 시작되었습니다. 검찰과 경찰은 촛불집회관련 시민단체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있고 특정 언론에 광고를 싣지 말라고 기업에 요구한 네티즌들을 처벌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또한 다음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해 포털 사이트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정부를 제치고 논쟁의 당사자가 되어버린 조중동도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각 포털에 네티즌들의 입을 막으라고 협조공문(혹은 협박공문)을 보내고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을 압박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직까지도 기득권 층 내에서 조중동의 힘이 건재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조중동이 절박해졌다는 사실을 방증하기도 합니다.
진짜 촛불 끄는 비결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저 자신은 유감스럽게도 빨리 촛불 집회가 끝나고 이 어려운 국제 경쟁의 시대에 국민들이 제자리로 돌아가서 자기 일에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촛불 집회 어떻게 해야 끝낼 수 있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하지만 종이신문만 보는 참모들에 둘러싸여 있는데다가 종이신문만 보고 세상을 판단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 난국을 어떻게 해결할지 심히 걱정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훈수하고 있는 그 종이신문들이 지금 앞가림을 못해서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촛불집회에 선동적인 측면도 있다는데도 동감하고 누가 압니까. 조중동의 주장대로 공산당도 섞여 있을지. 문제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수십년동안 충분히 권위를 잃을 언행을 해 왔다는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어른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다 알아버린 똑똑한 젊은이들을 철부지로 보고 비난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고 어린이는 어른의 말을 듣지 않고 행동을 본다고도 하더군요. (일부)어른들의 권위는 젊은이들이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의 어른들이 어떻게 스스로 권위를 되찾을지 잘 연구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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