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P야. 날도 더운데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 지난 번에 한국 가서 만났을 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도 변하고 세상도 변했지만 네 마음 속에 순수했던 열정들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참 안심이 되고 기분이 좋았다. 너를 만났을 때 나의 블로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너에게 블로그를 시작할 것을 권유했던 것 기억하지? 오늘은 약속한대로 블로그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자세히 이야기하려 한다. 오늘 뉴욕은 구름이 잔뜩 낀 날씨다. 아름다운 저녁의 구름 지난달 일간 페이지뷰
블로그의 '블'자도 몰랐던 나
블로깅이 내 삶에 한 부분으로 들어와 자리잡은 이후로 정말 셀 수 없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블로깅을 한다는 사실’ 자체이다. 내가 블로깅을 하지 않았으면 그 시간에 무엇을 했을까 생각해 본다.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위치이니 공부를 했을 수도 있겠지.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과 진짜 행동으로 옮겨진다는 것은 좀 다르므로 ‘했을 수도 있다’라고 표현했다.) 아이와 놀아주거나 아내의 집안일을 돕는 것도 분명히 좀 더 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가능성이 많은 것은 직장에서 힘든 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핑계로 소파에 누워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everybody loves Raymond를 보거나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보낼 시간도 꽤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블로깅은 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것 같다.
2005년에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학과장인 닥터 가드너는 “이제 우리 내과에서도 전용 블롹을 만들었으니 각 전공의들은 각종 발표자료를 블롹에 올리도록” 하고 광고를 하더군. 생전 첨으로 이상한 말을 들어본 나는 속으로 “what the heck is 블롹?” 했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블롹의 스펠이 blog이고 새로운 형태의 인터넷 서비스의 일종임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하고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한데 2007년 디워의 열풍이 한반도에 상륙할 무렵 나에게도 디워의 이야기는 큰 관심사였지. 그래서 뉴스를 찾아 읽다 보니까 다음에 블로거뉴스라는 데에 가서 글을 읽는 시간이 많아지더구나.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blog라는 개념과 다음에서 본 블로거라는 단어를 연결시키지도 못했다. 그저 관심 가는 글이 거기 있으니 읽을 뿐.
드디어 블로그를 시작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너도 아는 K형의 권유로 나의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미국의사시험과 관련한 자료를 좀 가지고 있었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진출하는 의사들에게 조금이라도 돕는다는 마음으로 가지고 있는 글을 블로그에 올려 읽게 하고 싶었지. 하지만 이 봉사정신 못지 않게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K형의 금전에 관한 유혹이었음을 숨기지는 않겠다. K형이 그러더구나.
“구글에서 광고를 받아서 블로그에 걸면 돈도 벌 수 있어. 단 몇 개월 만에 천만 원도 더 번 사람도 있데. 하루에 방문객 2000-3000천명이 꾸준히 들면 한 달에 200-300백 불은 벌 수 있을걸. 생각해봐. 좋은 일하는데 돈도 생기잖아. 이건 누구를 속이거나 손해를 끼치는 일도 아니고. 광고주는 광고해서 좋고. 독자는 광고를 통해서 상품의 정보를 얻고. 너는 돈을 벌잖아. 윈윈 아니겠어?”
블로그에 광고를 넣는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걸렸지만 윈윈이라는 명제는 전혀 하자가 없었다. 어쩐지 돈 받고 자선 사업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모두에게 이익이 된단 말이지?” 하면서 위안을 했지. 그 때 바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하지만 국민의 0.001%도 관심 없을 미국의사시험 이야기만 하기에는 블로그가 너무 심심했고 미국에서 의사를 하자면 영어도 잘해야 하니까 영어 이야기도 넣었고, 내가 초보자로서 미국생활에서 겪은 수많은 불이익을 생각하면 이런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생기면 안되겠기에 미국생활이야기도 넣었다. 또 가끔 잡다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질 것 같아서 좀 더 다른 카테고리도 추가했다.
블로그 시작하자 얻은 세가지 감동적인 경험
한데 K형의 말이 다 옳았던 것은 아니었어. 2007년 11월 내가 블로깅을 시작하기 직전에 구글의 애드센스 정책이 변경이 되었던 이유 때문인지 하루 200-300명의 방문자가 있었는데도 내 예상수입인 매월 20-30불(하루 50센트에서 1불)과는 거리가 멀게도 실제수입은 대부분 0원이었거든. 물론 문제가 그 뿐은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200-300명 방문도 사실 허수였다. 로봇방문을 제외하면 20-30명이 실방문자였던거지. 블로그를 시작할 때는 하루 2000-3000명 방문을 먼 훗날의 목표로 삼고 시작했지만 당시에 하루 방문자(혹시 페이지뷰) 20-30명이 100배로 증가한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목표 같았다. 하지만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준다는 것이 원래 취지였으니 20명도 만족했지.
그런데 갑자기 감동적인 경험을 세 번이나 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내가 쓴 영화평에 파워블로거인 ‘사진은 권력이다’의 블로거께서 댓글을 달아주신 것야. 이게 내가 난생 처음 받아본 댓글이었는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고 반가 왔다. 더군다나 파워블로거가 방문했다니 교육부총리 표창을 받은 초등학생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때부터 많은 블로거들이 말하는 바로 그 ‘소통’의 맛을 안거야.
이것은 동호회 게시판이나 싸이월드에서 아는 사람이 댓글 달아준 것을 보는 그 느낌하고는 다른 어떤 것이 있었다. 아마 다른 매체와 블로그의 가장 큰 차이는 내가 비교적 길게 쓴 글을 남이 다 읽어준다는 것과 (마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인내심 있게 잘 들어주는 수백, 수천 명의 청중을 얻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 바탕 위에서 의사소통이 시작되니 단 몇 줄의 글로도 마음이 통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인 것 같다. 물론 반대되는 의견도 얻지만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고 배우게 되지.
두 번째는 내 글 “영어공부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이 올블로그에서 잠시나마 1위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연 이틀 동안 1000명도 넘는 방문자가 왔다 갔어. 너무 기쁘고 흥분스러운 경험이었는데 반대로 블로그가 돈이 별로 안 된다는 냉정한 현실(?)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세운 이론상으로는(?) 애드센스를 통해서 10달러는 벌었어야 할 것 같았는데 이틀간 수입이 1달러 정도로 그쳤거든. 하지만 수백만 블로거의 글이 있을 텐데 잠시나마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글이 되었다니 아마도 낚시성 제목의 역할이 컸겠지만 좋은 의도를 가지고 쓴 글이고 대체로 많은 공감도 많이 받아서인지 수입이 많고 적음을 뛰어넘는 기쁨이 있었던 것 같아.
세 번째 사건은 내 글 “마담투소에서 패리스힐튼 인형을 보다”가 다음에서 소개된 것이다. 초기화면의 좌 하단에 단 몇 글자만 소개되었을 뿐인데 놀랍게도 링크를 타고 5000명도 넘게 들어왔어. 그리고 이번에는 진짜로 19달러라는 큰 돈도 벌었다. 포탈사이트라는 점 때문이었는지 올블로그에서 1위한 것과는 또 다른 흥분이 있었고 가슴이 벌렁벌렁해서 잠도 못 이룰 지경이었다.
블로그는 인터넷에 쓰는 생활의 기록?
Blog가 Web log의 준 말이라고 하더라. (철자를 앞 단어의 이니셜인 w가 아니고 왜 b를 땄는지 좀 이해가 안되지만.) log라는 것은 항해일지나 기록이란 말이고(통나무라는 뜻도 있지만) 많은 블로거들이 일기 쓰듯 블로그를 활용하고 있는데 블로그가 현대인의 일기가 되어가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물론 나에게는 블로그가 일기의 개념보다는 내가 발행하는 잡지 같은 개념이다. 나를 위한 글이라기 보다는 내 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고 이 개념이 조금 넓어져서 이제는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 얻게 된 것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 무슨 장점을 느끼게 되었는지 알려줄게.
1. 내가 가진 지식을 남들과 나누고 (댓글을 통해서 내가 아는 것을 확인하기도 하고 몰랐던 것을 배우기도 한다.) 교류하면서 즐거움을 갖는다. 대부분의 블로거도 다 인정을 하는 것 같은데 사실 블로깅을 하는 재미의 90%는 의사소통인 것 같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카페나 싸이를 하면서 아는 사람들만 끼리끼리 뭉치는 것과는 또 다르게 전혀 상관이 없을 이질적인 사람들이 만나고, 토론하고, 싸우고, 헤어진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고 하지만 사람을 이어주는데 이만한 테크놀로지가 또 어디에 있을지…
2. 지나간 기억들이 글을 쓰면서 정리되고 나와 읽는 독자에게 반면교사가 될 것 같다. 특히 미국생활에 대한 내 글들은 내 성공의 기록이 아니고 실패의 기록이기 때문에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생생한 경험이니 내 글을 읽는 사람은 같은 실패를 겪지는 않기를 기대해 본다 고나 할까.
3.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이전에는 남들이 만든 콘텐츠의 소비의 시간이었으나 이제 생산의 시간 혹은 생산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 되었다. 물론 남들이 봐주면 더 좋지만 많은 사람이 읽어주지 않아도 여러모로 자기계발의 시간이 되고 있다. 더군다나 2000명이 넘는 구독자가 있다는 사실은 나 자신을 조금 더 돌아보게 만든다.
4. 블로그에 넣을 목적으로 사진을 더 많이 찍게 되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만 게으름으로 그러지 못하는데 블로그는 사진 찍기의 큰 원동력이 되는구나.
5. 조금 유명해졌다. 얼마 전에 뉴욕 라디오코리아 방송과 전화 인터뷰도 했는데 어찌하여 평범한 의사가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블로그의 주인이 되었는지 알고 싶은 분이 있는가 봐.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감사한 일로 생각된다.
6. 매달 구글에서 용돈을(?) 받고 있다. 내가 당초에 예상했던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월간 평균 400불 정도를 버는데 요즘 와서 왠 일인지 방문자 수 대비 수입이 10분의 일로 줄었다. 가장 많은 방문객이 있었던 이번 달은 희한하게도 수입상으로는 근래에 가장 적은 수준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블로그로 수입이 생기는 것이 아직도 완전히 자연스러운 느낌은 아니지만 블로깅으로 사용되는 시간이 소비가 아닌 생산이라는 또 다른 증거가 되는 것 같아서 좋다.
이제 구름이 걷히겠지.
처음에 한 달 5-6만 명의 방문(혹은 페이지뷰)가 실현 불가능한 까마득한 목표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는데 최근 몇 개월 동안 연속해서 매월 페이지뷰가 100만을 넘고 있다. 내 블로그의 성장이 사실 98%의 운과 1%의 특이한 경험, 그리고 1%의 재능으로 이루어진 일이기에 별로 크게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누구나 블로그를 시작하면 나와 같은 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행복함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또한 자신의 경험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도 보람 있는 일 아니냐. 블로깅은 이러한 것 같다. 너도 블로그를 시작하면 참 좋겠다. 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술자리에서만 하면 되겠냐. 그리고 나에게 들려준 너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정의로운 생각을 다른 사람과도 나누면 어떠겠냐.
이곳 뉴욕은 아침은 이불을 덮고 자야 할 정도로 기온이 내려갔는데 서울은 어떤지 모르겠다. 아직도 열대야가 심한지 아니면 가을의 기운이 시작되었는지. 어쨌거나 건강 조심하고 다음에 서울에 가면 보자.
뉴욕에서 수민 씀
추신.
내가 전화로 설명한 내용을 이해했겠지만 이 편지는 블로그 포스트로도 발행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다 볼 수 있게 되어있다.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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