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공부에 관해서 글을 쓰다 보니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는 어떤 책으로 공부하면 좋을지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영어공부에서 좋은 교재의 중요성을 잘 알면서도 감히 구체적으로 예를 들지 못했던 것은 제가 소개하는 제한적인 몇 가지 교재가 좋은 교재의 전부도 아닐 것이고 저에게 좋았던 교재라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교재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저에게 시간낭비를 시켜주었던 ‘나쁜’ 교재라도 공개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만 그것도 쉽지 않더군요. 저에게는 분명히 나쁜 교재였는데 이 교재를 옹호하는 사람도 꽤 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구체적으로 이 책은 좋고 저 책은 나쁘다라고 한다면 괜히 소모적인 논쟁만 일으킬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일반론적으로 볼 때 좋은 영어공부 교재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약간 추상적일 수도 있지만 도움을 받을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일단은 영어공부 교재라는 것이 매우 넓은 범위의 책들을 포함합니다. 가장 대중적인 것이 ‘영어공부 이렇게 해라.’ 혹은 ‘영어공부 이렇게 했다.’라는 류의 책일 것입니다. 대개 저자의 실제적인 경험이 들어가 있어서 롤모델이 될 저자들의 성공담은 독자들에게 공부할 에너지를 충전하게 해주고 좋은 영어공부의 방향은 무엇인가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만 상식을 망각한 어이없는 주장으로 독자들이 공부의 방향을 잃고 표류하게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위험성도 있기 때문에 양날의 칼을 가진 책입니다. 아쉽지만 이 분야의 책에 대해서는 오늘 다루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저 자신도 이런 주제의 책을 집필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제가 이런 책을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는 자체가 중립성에서 오는 제 글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입니다.
수준에 맞는 영어공부를 해야
그래서 영어공부 방법에 관한 책은 배제하고 나머지 카테고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영어공부의 범주라고 하면 저는 흔히 말하기(회화), 듣기(청취), 읽기(독해), 쓰기(작문)으로 나눕니다만 그 외에도 출판계에서는 문법, 단어(혹은 숙어), 발음, 생활영어, 비즈니스영어 등으로 분류하고 있으므로 저도 이런 통상의 분류에 맞추어 책을 고르는 법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든 영어 학습서의 선정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대원칙을 한가지 이야기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것은 책이 자신의 수준에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제 글 ‘피해야 할 최악의 영어공부법 5가지’ 에서도 수준에 맞지 않는 공부는 나쁜 공부법이라는 주장을 한 적이 있었는데 댓글에서 공부 교재는 아무 것으로나 하면 되지 무슨 수준이 상관이 있느냐는 반박을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국어 교육에서도 초등학생용 교재와 고등학생용 교재가 다르고 1학년 교재와 2학년 교재는 다릅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학년용 교재의 난이도가 다르고 당연히 고학년일 수록 수준이 높은 교재로 공부를 합니다. 모국어도 아닌 외국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수준에 따른 교재 선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고 심지어는 저 자신도 한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수준이 높은 교재로 공부하면 할수록 실력이 빨리 늘지 않을까 하는 생각 혹은 그렇게 높은 수준의 교재로 하면 할수록 제 영어의 수준이 그 높은 수준에 맞춰진다고 생각하기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오해는 조급성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 심정은 하루라도 빨리 영어를 정복하고 싶었고 쉬운 교재부터 천천히 공부해서는 몇 년이 걸려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공부였기 때문에 어려운 교재로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빨리 실력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시도를 다 해본 제 경험으로는 어려운 교재로 공부를 하면 단계별로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한 경우보다 실력 향상이 오히려 더디지 않는가 하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해서 실력에 맞지 않게 너무 쉬운 교재만 붙잡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손해가 많습니다. 공부는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목적인데 새로이 배울 것이 거의 없는 책을 그저 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고집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책은 자신의 실력보다 약간 어려운 책을 골라서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되 꾸준히 그간 공부했던 내용이 복습이 되는 내용이 좋겠습니다.
수준에 맞는 책은 독자가 알아서 골라야 합니다. 시중의 책들은 각각의 수준이 다 다르지만 스스로 초급자, 중급자, 고급자용이라고 거의 표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 독자층을 제한해서 판매량을 축소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급자용으로 집필된 책도 비록 초급자가 보아서 큰 도움을 얻을 수 없더라도 초급자가 구입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서는 장려하기도 합니다. 영어 학습자를 분석해보면 마치 피라미드 형으로 되어 있어서 초급자가 가장 많고, 중급자는 적고, 고급자는 아주 적습니다. 따라서 고급자용이라고 초급자나 중급자가 사주지 않으면 그나마 작은 시장에서 판매량이 아주 작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영어 학습서는 초 중급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고급자용 서적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는 것을 보면 초 중급자도 꽤 그 책을 사준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보면 책 판매는 마케팅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영어 회화 책 고르기
먼저 말하기에 관한 책을 보겠습니다. 주로 두 사람간의 대화를 상황에 맞게 구성해서 통상적인 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소개하는 종류의 책이 전통적으로 많았고 요즘은 각각의 표현을 현장감 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쓰이는지 설명하는 부류의 책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런 책은 대개 수준의 구애 받지 않고 누구나 접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서 그냥 읽으면 되는데 읽을 때는 다 아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나지 않아서 외우고 써먹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공부를 하는 사람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르므로 책을 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책을 고르는 요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가능한 최근에 집필된 것이 좋습니다. 영어도 언어이므로 세월에 따라서 조금씩 변합니다. 그래서 최근의 표현을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말은 70년대에 나온 한국영화를 보아도 말이 어색하게 느끼는 정도로 많이 변했는데 영어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미국사람들도 예전에 쓰는 말을 그렇게 많이 어색하게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는 합니다. 따라서 이 기준에 절대적인 가치를 둘 필요는 없지만 참고할 만은 합니다.
둘째로 틀린 표현이 나온 책은 좋지 않습니다. 전에 뉴스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영어교과서조차도 원어민이 쓰지 않는 틀린 표현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문제는 해당 교재가 틀린 영어 표현이 나온 것인지 알 방법이 뾰족이 없다는 것이므로 저의 경우는 원어민이 감수를 하거나 공동저자로 참여한 것을 선호합니다. 원어민도 나름이겠습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질은 보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셋째로 내용에 어느 정도 재미가 있어야 좋습니다. 그래야 책도 잘 읽어지고 지루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요즘은 영화나 미드 등을 응용해서 나온 책들이 많은데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합니다. 저도 공부하려고 샀는데 몇 장도 보지 못하고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이 많습니다. 책 사놓고 공부를 안 한 것은 제 잘못이지만 공부도 안 할 책을 산 것은 더 큰 실수인 것 같습니다.
청취에 관한 책 고르기
듣기에 관한 책도 참 많습니다. 대개 CD를 동반하고 있는데 활용하기에 따라서 큰 도움이 될 만합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듣기 공부만을 위해서 듣기 전용 교재를 구입하는 것을 별로 추천하고 있지 않습니다. 공부해도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고 듣기는 많이 듣는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오바마 연설문을 이용한 책이 한 권 있다고 하면 이 책을 사서 열심히 CD를 듣고 원문의 내용을 읽으면 그 때는 잘 들립니다. 그렇다고 듣기 실력이 근본적으로 늘어난 것은 아닌 것이 몇 달 지나고 다시 들어보면 처음에 안 들렸던 내용은 다시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다만 듣기 교재도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완전히 다른 성과를 거둘 수도 있습니다. 듣기교재로 읽기를 연습하는 것이 그것인데 자세한 방법은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공부한 방법의 공통분모를 찾아라’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독해 공부를 위한 책 고르기
독해 공부를 위한 책도 많습니다. 읽기 공부는 전통적으로 속독과 정독으로 나눌 수 있지만 공부의 측면으로 소리 내어 읽는 방법과 눈으로만 읽는 방법으로도 나눌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속독과 정독을 각각 다른 교재를 이용해 둘 다 하면 좋지만 영어의 기본 실력의 향상이 우선 목적인 사람이 매일 공부에 투자할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면 소리 내어 책을 읽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눈으로 만 빨리 읽는 속독용 교재로는 영자신문, 영어잡지, 외국 인터넷 사이트 등을 시간 내어 읽는 것이 좋으며 주로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내용을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이 경우는 따로 해석이 없는 교재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이 공부는 선택과목입니다. 필수과목은 소리 내어 읽는 공부입니다. 또한 교재로는 문법과 해석 실력의 향상을 위해서 정확한 해석이 써 있는 교재가 좋은데 이 역시 최대한 자신의 관심사에 맞춰서 고르되 미국 대통령 연설집, 고전 문학 소설, 영한대역 리더스 다이제스트, 각종 출판사에서 발간된 교재 등 가능하면 질 높은 독해가치가 있는 글이 좋습니다.
영작문 책 고르기
작문을 안내해주는 책을 서점에 가서 일단 골고루 여러 가지 책을 둘러보고 결정을 해야겠습니다. 독해나 듣기 공부 등과는 달리 쓰기 공부는 상당한 열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책이 가장 좋습니다. 아무리 베스트셀러라도 몇 장도 지나지 않아서 하기 싫어지면 그 책은 그냥 버려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직접 책에 쓰면서 공부하게 되어 있는 책보다는 관용표현 사전식으로 최대한 많은 표현이 소개된 책을 선호합니다. 이런 책을 대충 한 번 읽고 나서-사실은 읽지 않고 필요할 때 마다 찾아보는 사전과 같은 목적으로 활용해도 좋습니다- 진짜 쓰기 연습은 인터넷상에서 구할 수 있는 작문 교정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편 정도 작문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최대한 작문 교재의 표현을 활용하면서 작문실력을 길러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원어민(혹은 전문가)의 교정을 받으면서 정확한 표현을 길러갈 수 있습니다.
영문법 서적 고르기
저는 문법 서적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물론 기본적인 영어 실력에 따라 다르지만 초보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그냥 재미로 빨리 한번 읽고 문법의 개요를 파악하게 도와주는 책과 백과사전식으로 최대한 자세하고 깊이 문법이 나온 책 두 가지를 다 구입하기를 권합니다. 요즘은 예전과는 달리 문법공부가 영어공부에서 힘을 잃고 있습니다만 문법이 중요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문법만 해도 영어가 안되니까 나온 반작용으로 보입니다. 일단 재미있게 써진 가벼운 문법책으로 문법에 대한 공포감을 이길 겸 한 번 내지 두 번 읽고 감을 잡은 다음에 사전식 문법책은 영어 공부를 하면서 그 때 그때 활용하는 것입니다. 문법책을 활용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영문법 공부 할까 말까’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단어, 숙어 서적 고르기
단어 혹은 숙어 공부하는 책 고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일단 선택권이 너무 많고 책들간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답은 역시 자기 스타일에 맞는 것을 고르라는 것이지만 제 의견으로는 다음의 두 가지를 고려하여 고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첫째로는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진도를 아주 천천히 나갈 것 같은 책은 피하시기 바랍니다. 개개인의 영어실력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책을 고르더라도 한 페이지가 다 처음 보는 단어로 채워진 책은 하기가 싫어집니다. 대충 1/3은 이미 아는 단어, 1/3은 대강은 아는데 확실하지 않은 단어, 1/3은 처음 보는 단어가 있는 것이 좋습니다. 두 번째로는 단어든 숙어든 이야기로 단어를 풀어준 책이 그냥 단어와 예문만 주욱 나열된 책보다 수십 배 낫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므로 쉽게 읽고 오래 기억에 남으려면 이야기(혹은 설명)가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발음에 관한 책 고르기
발음에 관한 책은 일단 동반된 시청각 교재의 질이 중요합니다. 동반된 CD나 테이프가 책의 내용을 훌륭하게 보충해주고 있어야 하는데 사서 직접 보기 전에는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책의 질을 짐작하는 방법이라면 일단 교재를 열어보시고 소리 내는 법이 얼마나 자세히 써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입술의 모양, 혀의 위치, 입을 벌리는 정도가 자세히 써 있어야 하고 한국말 발음과 대비해서 어떻게 다른지 써있으면 더 좋습니다. 또한 그 발음이 사용된 단어를 많이 소개해 주고 있어야 하고 연음법칙 등의 음운 현상에 대해서도 최대한 많은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해주는 책이 좋습니다. 일단 책을 보시면서 한 페이지라도 정독해보시고 그 책에서 기술된 대로 그대로 발음을 내도 발음을 자신 있게 낼 수 있을 정도로 설명이 잘 되어 있는지 아니면 그냥 동반된 테이프를 듣고 따라 해야만 발음을 연습할 수 있게 되어 있는지 보시고 후자의 경우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좁은 지면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이야기가 간략한 느낌이 있습니다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어떤 책이 좋은지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을 이용해서 영어공부하시는 분들을 도와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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