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세인트루이스를 방문했을 때 새로 개발되고 있는 대규모 주택 단지를 지나갈 일이 있었습니다. 같이 동행했던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50불만 이상 짜리 고급 주택들이 한꺼번에 지어졌다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이은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직격탄을 맞아 공사도 중단되고 이미 지어진 집들도 팔리지 않아 빈집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테네시 주의 멤피스를 방문했을 때도 거의 똑 같은 광경을 목격했고 최근 다녀온 텍사스의 휴스턴에서도 예외 없이 새로 개발되던 대규모 고급 주택단지가 텅텅 비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강남 불패가 있다면 미국에는 뉴욕 불패가 있을 법한데 지난 1월 뉴욕 타임즈에는 충격적인 뉴스가 나왔었습니다.
N.Y. Housing Complex Is Turned Over to Creditors
즉, 뉴욕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채권자들에게 넘어갔다는 기사가 나온 것입니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도 거품이 꺼지고 있는 가운데 세계의 수도라는 뉴욕도 예외도 예외가 아니었는지 뉴욕 맨하탄에 위치한 이 1만 1천 가구의(전체 110동) 대단위 아파트 단지는 Tishman Speyer Properties 과 BlackRock Realty라는 부동산 투자회사가 6조원 가량 되는 돈을 주고 샀다가 미국의 부동산 가격 하락과 불황으로 결국 채권단에게 연체된 돈을 갚지 못하고 아파트 단지를 넘기게 되었다는 기사입니다. 지금 이 단지의 시가는 2조원 정도라니 4조원이 공중으로 날아간 것입니다.
저도 지난 2005년 가을 세인트루이스에서 거주 목적으로 15만불 짜리 아파트를 샀다가 뉴욕으로 급하게 이사하게 되어 정확히 같은 가격에 일년 만에 팔고 온 경우가 있었습니다. 당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았을 때지만 그 지역에는 이미 부동산 경기가 하강하고 있어서 같은 가격에 팔고 나온 것이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다시 비슷한 아파트의 시세를 찾아보니 11만불 대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는 인근 인구가 400만이나 되는 미국 중서부의 대도시에 들어가지만 상대적으로 동서해안에서 일어났던 부동산 광풍과 거품과 별로 상관이 없었던 지역이어서 급격한 가격 상승도 급격한 가격 하락도 없었건만 전반적인 부동산 가격의 하락의 추세는 피해가지는 못했습니다.
어제일자 신문 뉴스를 보니까 산은 경제 연구소에서 발표한 내용이 상당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산은硏 "집값, 美·日 버블 붕괴 직전과 비슷"소득 대비 집값 미국·일본보다 높아
2억9000만원 아파트값 1억2000만원 낮아져야
주택가격 선행지표 3년 전부터 하락 추세
빚을 내어서 새로 아파트를 장만하신 분들께는 정말 화가 나는 소식이겠지만 한국의 집값이 미국과 일본의 거품 붕괴 직전과 비슷한 정도로 많이 올라있다는 것입니다.
투자를 잘하려면 주식도 저점에 사서 고점에 팔아야 하고 아파트든 뭐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5년 사이에 아파트 가격은 아파트를 모르는 사람도 너무 올랐다 싶게 올랐었고 도대체 어디까지 오르다가 다시 떨어질 것인가 하는 의문만 남겨놓은 상태였습니다. 물론 작년 말까지도 아파트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한 언론들이 대다수였지만 일부에서는 지속적으로 아파트 가격 하락 가능성을 경고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딱히 투자(혹은 투기) 목적으로 집을 산 사람이 아니라 정말 평생 살 집 한 칸만 마련하겠다는 일념으로 집을 산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파트 가격 하락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자기 돈으로 아파트를 샀다면 시세가 어떻게 가든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한국, 특히 서울에서는 지나치게 비싼 아파트 가격 덕분에 빚을 내어 집을 산 가구가 많기 때문입니다.
서울 시정개발 연구원에 따르면 서울 가구의 70%가량이 자기 집이 있으나 이 중 31.4%는 은행에 대출금이 있고 평균 금액은 1억 9천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이 대출금과 이자를 갚다 보면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소위 ‘은행월세’라는 말이 실감날 만도 합니다. 서울은 인구도 많으니 당연히 부자도 많을 것이고 약 2억 정도의 은행 대출은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사람도 꽤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울의 전체 가구 중 20%정도라면 결코 적지 않은 숫자입니다. 그래도 아파트 가격의 거품이 계속 유지된다면 대출금도 문제가 아니겠지만 문제는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는 경우입니다.
source ;trexglobal.com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에 들었던 비슷비슷한 레퍼토리의 이야기가 많은데 제가 들었던 지인의 이야기는 대충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 분이 허드슨 강가의 6억짜리 아파트를(한화 1억 = 10만 불로 계산) 자기 돈 1억 정도 주고 5억 정도 대출을 받아서 투자 목적으로 샀다고 합니다. 자기 집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월세로 임대를 주고 매달 은행 대출금을 충당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값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하고 월세마저도 내려버려서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월세를 내려서 내놓았습니다. 덕분에 월세 수입이 400만원 초반 대에서 300만원대로 줄고 은행에 갚아야 할 대출금과 이자는 그대로라서 월세로 받은 돈에 더해서 다달이 자기 수입에서 100만원 가량 돈을 빼서 은행 모기지를 상환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파트를 팔려고 보니 아파트 가격이 4억대로 떨어져서 아파트를 팔면 자기 돈 1억을 더 집어 넣어야 아파트를 청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를 그냥 두자니 매달 100만원의 적자가 나고, 팔자니 목돈 1억을 잃게 생긴 것입니다. 무역업을 하시는 이 분은 업 친데 덮친 격으로 미국의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수입이 줄어든 가운데 이런 일이 생겨서 고생이 많으시다고 합니다. 사실 제가 신문,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는 이보다도 10배는 기가 막힌 이야기가 많아서 이 정도 손실은 큰 이야기 거리도 아닙니다.
그럼 이 고통이 잠시 왔다가 지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저도 감히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만 제 상식으로 지난 미국의 부동산 붐이 버블이었다면 사람들이 한번 손해 본 학습효과가 있는데 버블 전의 가격으로 금방 회복이 과연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특히 지금의 주택 가격이 실제 가치 이하로 떨어진 것이라면 모를까 실제 가치로 환원된 것이라면 몇 십 년 후가 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미래에 찾아 올 다음 부동산 버블까지는 이 가격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봅니다. 현재의 시세가 실제 주택 가치 이하로 떨어진 상태라면 지금은 대단히 부동산 투자에 좋은 시기이건만 아직도 미국 정부가 나서서 주택 구입 보조금을 나누어 주면서 까지 부동산 경기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면 실수요자라면 몰라도 투자 목적으로 쉽사리 움직일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Home Sales Flat Before Spring Buying Season
한국의 상황을 보면 작년 말까지도 대다수의 연구소와 언론에서 올 2010년에도 소폭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했었고 올 초까지도 전망은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2월 말 이후에 들어서면서 약간 부정적인 전망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3월 들어서는 부정적인 전망이 월등히 많아진 느낌입니다. 급기야는 산은 경제 연구소가 버블에 대한 경고를 했고 부동산 시장은 다 아시다시피 다 파악하기도 힘든 미분양 물량이 많은 데다가 대단위 신규 입주가 줄줄이 예정되어 있고 재건축 아파트 단지들마저도 급매물도 안 팔리는 어려운 사정에 처해있습니다.
미국의 부동산 버블에 비해서 현재 한국의 부동산 버블이 더 걱정되는 한가지 이유는 한국의 부동산 거품이 심한 부문이 바로 아파트라는 데 있습니다. 미국의 주택은 그 집 자체의 가치와 땅의 가치로 가격이 정해지지만 한국의 아파트라는 것은 고층 아파트가 되어 갈수록 실제 부동산이라 부를만한 가치가 있는 대지 지분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단지 건축물 자체의 가치만 돈으로 평가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했습니다. 그럼 건축한지 20년이나 30년이 지나 수명이 다한 아파트는 소액의 땅 값에 해당하는 가치만 남아있어야 정상인 것 같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는 가격이 오히려 폭등하는 기현상을 보였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같은 대지 면적에 더 높이 아파트를 올려서 아파트를 팔고 제 3의 입주자를 받아들이는데 있었는데 저층 아파트면 몰라도 고층 아파트에서는 용적률 제한이나 동간 거리 유지 등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소식이 오래된 아파트들이 재건축 승인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고 하니 이제 시장이 이성을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은행에 수십만 불의 빚을 지고도 빚보다도 주택 가격이 더 낮아져버려서 집을 가지고 있을 수도 없고 팔 수도 없는 미국인들의 모습이 한국인의 미래의 모습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혹시 엉뚱하게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서 무슨 무슨 규제를 없앤다느니 하면서 오히려 거품을 키우고 고통을 연기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조금은 고통스럽더라도 서서히 거품을 줄이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잘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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